# 38
SSS급 용병의 회귀
- 2권 11화
"와아. 여기는 숨 쉬기가 편해. 이런 곳은 기억에 없는데."
"당연하지. 네가 가져간 기억은 너와 관련된 기억만 있을 테니까. 내 모든 기억이 너에게 있지는 않겠지."
"그렇구나."
"하아......."
넬의 해맑은 미소를 보며 페이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저절로 아파 오며 눈이 빙글빙글 돌아 버리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곧장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바라봤다.
확실히 넬이 말한 대로 이 숲 속은 공기가 맑아 숨 쉬기가 편했다. 그것은 단순히 공기가 맑다는 소리가 아니라 주위에 마나가 풍부하다는 뜻이다.
넬은 미혹의 숲에만 있었기 때문에 그곳 외에 마나가 풍부한 곳을 가 보지 못했다. 그러니 마나를 느낄 수는 있어도 지금 자신이 겪는 이 현상을 마나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잘 들어. 내 기억을 봤으면 너도 알 거야. 우리는 또다시 녀석들과 싸워야 해. 그것이 내게 내려진 사명이니까."
"어려워."
"그래. 단순하게 가자. 흑마법사들을 모두 뿌리째 뽑아 이 세상에서 없어지게 해야 너나 나나 마음 편히 살 수 있게 되는 거야. 알겠어?"
"응."
넬은 페이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 모습을 보며 페이린은 그녀를 조금 의심했다. 과연 이해를 해서 끄덕인 것인지, 아니면 대충 고개를 끄덕인 것인지.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을 하지만 아마 기억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이해를 했다고 생각을 했다.
"일단 네가 계약을 맺은 정령들을 모두 소환해."
"여기서?"
"그래."
"알겠어."
잠시 후 넬의 몸 주위로 마나가 퍼져 나갔다. 그 마나는 그녀의 몸속에 있는 것과, 주위에 충만하게 존재하는 마나들이 뒤섞여 있었다.
-화아악!!
곧 강렬한 빛이 일어나며 넬의 발밑에서 마법진이 생겨났다. 하나의 마법진이 아닌 총 네 개의 마법진이었는데 그것들은 모두 각각 불, 물, 바람, 대지 속성의 색을 가지고 있었다.
"안녕?"
넬의 앞에는 네 명의 하급 정령들이 나타났다. 각각 4대 속성을 지니고 있었는데 과거에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익숙한 이들이었다. 다만 그들은 페이린을 처음 보기 때문에 지금 이 상황을 의아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소환."
4대 정령을 보며 페이린은 검의 정령 셀리온을 소환했다. 은빛의 마나가 주변으로 빠르게 퍼져 나가며 셀리온이 나타났다.
"저건. 정령들인가?"
"그래."
셀리온은 눈앞에 있는 네 명의 정령들을 보며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먼저 앞으로 나가 그들에게 손을 건네며 인사를 했다.
"안녕?"
"안녕."
하급 정령들도 나름대로 자아를 가지고 있지만 아직 어린아이와 마찬가지였다. 모습도, 생각하고 있는 것도 딱 어린아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반면 검의 정령인 셀리온은 소년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계약자의 힘이 강해질수록 외형이 자라고 그 힘도 강해진다.
페이린은 넬과 자신이 소환한 정령들이 서로 인사를 하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셀리온. 검이 되어라."
"알겠다, 마스터."
페이린의 말에 셀리온은 어떤 것도 묻지 않고 한 자루의 검이 되었다. 은빛으로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검을 페이린은 살며시 쥐었다.
-카아앙!!
은빛의 마나가 퍼져 나가는 소리가 꽤나 날카롭게 주위에 울려 퍼졌다. 동시에 셀리온이 변한 검신에 은빛으로 불타오르는 것 같은 마나가 넘실거렸다.
'역시 보름달의 충만한 마나가 없으니 이 정도는 버틸 수가 있어.'
페이린은 이전에 늑대인간을 상대했을 때를 떠올렸다. 오러를 쓸 수 없기 때문에 급하게 셀리온의 힘을 빌려 녀석을 잡았었다.
그 당시에는 4서클이 되지 못했다는 점도 있었지만, 보름달의 강력한 마나를 통제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처음에 셀리온의 힘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어서 애를 먹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보름달의 마나가 없기 때문인지, 4서클이 되어서인지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셀리온의 힘을 온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흐읍!"
페이린은 검신에 넘쳐흐르는 은빛의 마나를 바라보며 체내에 존재하는 마나를 쥐고 있는 검에 흘려보냈다. 정령의 힘을 얻었기 때문에 안정된 오러와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이번에 페이린이 만든 것은 검 전체에 미약하지만 날카로움을 더해주는 오러였다. 페이린이 가진 푸른색의 마나와 원래 검신을 뒤덮고 있는 은빛의 마나가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색을 만들었다.
"우와."
"뭘 놀래. 이미 알고 있잖아?"
"그래도 예쁜걸."
넬의 대답에 페이린은 다시금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지만 이내 정신을 찾았다.
"지금부터 훈련을 할 거야. 이곳은 마나가 충만한 곳이지. 여기서 전력으로 내게 덤벼. 내 힘도 끌어올릴 겸 네 힘도 더 다듬어야 하니까."
페이린의 말에 넬은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소환한 정령들과 눈을 마주했다. 정령들은 페이린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아직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정령들을 소환한 넬 본인조차도 페이린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어째서 자신이 힘을 써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걸 읽은 페이린은 한숨을 깊게 내쉬며 말했다.
"강해지지 않을 거야?"
"응? 왜?"
"왜라니. 내 기억을 읽었으면 알 수 있잖아. 그 끔찍한 일들을 다시 겪어야 하는데 힘을 기르지 않고 제자리에서 머무르고만 있을 거야?"
페이린의 말에 넬은 곰곰이 자신의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조금 이질적인 기억들. 그것은 모두 여왕이 현신을 해서 페이린의 기억을 엿봤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들이었다.
그 기억들에는 수많은 흑마법사와의 전투가 담겨 있었다. 물론 마왕과의 전투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기억들을 떠올리며 넬은 어떤 감정도 생기지 않았다.
분노가 조금 생기긴 했지만 그건 흑마법사에 대한 분노나 원망 같은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자신과 함께 다니던 페이린이 흑마법사에게 당했던 기억이 떠올라 순간적으로 화가 난 것이다.
'역시. 동기 부여가 필요한가. 하아.......'
생각을 하며 답을 내리지 못하는 넬을 보며 페이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에도 그랬던 성격이 기억을 가지게 된다고 바뀌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렇기에 페이린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전력으로 덤비지 않으면 오늘 밥 없어."
"......!!"
무심코 내뱉은 페이린의 말에 넬은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떤 말보다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두 눈동자를 크게 뜨며 놀라고 있었으니까.
'쪼잔하게 먹을 것 가지고는 아무 말 안 하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잖아?'
페이린은 누군가가 듣는 것도 아니지만 넬의 반응을 보이며 스스로를 위안하듯 생각했다.
원래 예로부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의식주, 이 세 가지라고 했었다. 추우면 옷을 껴입고, 더우면 시원한 옷을 입어야 하는 것과. 겨울에는 찬바람을, 여름에는 땡볕을 막아 주는 좋은 집. 그리고 호화롭고 맛좋은 음식들까진 아니어도 굶주리지 않을 정도는 먹어야 했다.
그것들 중에서 가장 민감한 것은 역시 먹을 것이었다. 춥고 더움은 어지간해서 해결할 수 있겠지만 굶주림만큼은 어느 것으로도 대처할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넬에게 커다란 효과를 가져왔다.
"어, 어째서!"
"그야 네가 나하고 싸울 의욕이 없잖아?"
"싸울 거야! 전력을 다할 거야!"
"그러니 밥을 주라고?"
페이린의 말에 넬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고개를 끄덕이다가는 목이 부러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격렬하게.
'지금 여기서 알겠다고 납득을 하면 안 돼. 더 나아가야 돼.'
자신과 싸워서 수련을 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지만 이대로 만족해서는 안 됐다. 매번 수련을 할 때마다 먹을 것 가지고 얘기를 꺼내는 것은 쪼잔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페이린은 고민 끝에 얘기를 했다.
"그래. 매일 나랑 전력을 다해서 싸우면 나도, 너도 강해질 수 있을 거야. 지금으로선 이 방법이 확실하니까."
"그래! 그러니까 밥 줘야 돼!"
"그래, 그래. 그런데 말이야. 이 모든 원흉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내 기억을 봤으니까 알 거 아냐?"
페이린의 말에 넬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뭔가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흑마법사!"
"그래. 그 흑마법사들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는 거야. 녀석들만 아니면 난 너에게 밥을 주지 않겠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거든."
"그, 그래!"
뭔가 페이린의 말이 어려웠는지 넬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대답을 했다. 그런 넬을 보며 페이린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제 거의 다 넘어왔다. 조금만 더 입질을 하면 커다란 월척을 낚을 수 있으리라!
"그러니까 내가 너랑 수련을 하는 것도, 내가 너에게 밥을 주지 않겠다고 얘기를 한 것도 모두 흑마법사가 나쁘기 때문이야. 알겠지?"
"응! 잘 알겠어!"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흑마법사들을 모두 없애야 돼!"
큰 소리로 마치 어린아이가 대답하는 것처럼 말하는 넬을 보며 페이린은 미소를 지었다. 조금 방향이 빗나간 것 같지만 그래도 자신이 의도한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녀석들을 모두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해!"
"그래. 잘 말했어. 자, 그러면 덤벼."
페이린은 곧바로 자세를 취했다. 언제든지 넬의 공격에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이 정도 얘기를 했으니 넬은 분명 알아들었을 것이다. 본인의 입으로도 흑마법사를 없애기 위해서 강해져야 한다고 얘기를 했으니 말이다.
강해지면 흑마법사를 없앨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무언가 결론이 이상하게 된 것 같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의욕이 없는 넬에게 커다란 동기를 심어 주었고 의욕이 꽃피게 만들었으면 그걸로 된 것이다.
"모두. 페이린을 공격해!"
넬의 목소리와 함께 지금까지 어리둥절해 있던 네 명의 정령들은 곧바로 페이린을 적으로 인식했다.
그렇게 아무도 오지 않는 깊은 산속에서 두 사람은 움직였다.
* * *
넬의 명령에 따라 하급 정령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통 정령술사라면 한 명, 많게는 두 명 정도의 정령과 계약을 해서 그들을 사용하지만 넬의 경우에는 모든 정령들과 계약을 맺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그녀는 다른 정령술사들과 다른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보통의 정령술사들은 정령을 이용해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행한다. 압도적인 공격을 퍼부어 상대가 공격을 하지 못하게끔 하거나, 혹은 방어를 하며 틈을 노리는 등 여러 사용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넬은 네 가지 속성의 정령을 모두 사용하고 있고 그 속성들의 특색을 잘 이용했다. 가령 불이나 바람 계열의 정령들은 방어보다는 공격에 특화되어 있는 이들이었다.
-화르륵!
-파아앙!!
그 때문에 현재 불과 바람의 정령들은 불과 바람을 만들어 페이린을 공격했다. 그 힘은 마법처럼 일정한 모양이 존재하지 않았다.
불은 순수하게 타오르는 불꽃이었으며 바람은 그 불꽃을 더욱 거세게 만들어 강력함을 실어 주었다.
-부웅!
페이린은 자신에게 날아드는 불 바람을 은빛으로 물들어진 검으로 베어 냈다.
마법은 물론이고 정령들의 힘도 본래라면 베어 버릴 수 없는 기이한 힘이었다. 하지만 페이린이 쥐고 있는 검도 정령이 모습을 바꾼 것이다. 또한 거기에는 페이린의 마나로 만들어진 오러가 뒤덮고 있었다. 그 때문에 충분히 정령들의 공격을 무효화시킬 수 있었다.
'매직 애로우.'
페이린은 빠르게 움직이며 몇 발의 매직 애로우를 만들어 냈다. 그것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푸르게 빛나며 정확히 넬을 노리고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