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SSS급 용병의 회귀
- 2권 5화
-콰직! 콰직! 콰지직!!
페이린은 그것들을 바닥에 버리고 발로 짓밟아 모두 부숴 버렸다. 다시는 누군가가 사용하지 못하도록. 그럼에도 성에 차지 않은 페이린은 체내의 마나를 끌어모았다.
-화르륵.
바닥에 조각난 장치는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까만 재가 되어 버렸지만 페이린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아 계속 그곳을 노려봤다.
'후우. 몬스터들 습격만 아니었으면 지금 당장 네 녀석 목을 베러 갔을 텐데. 쳇.'
페이린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이미 이것을 누가 벌인 것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화가 풀리지 않았다. 당장 눈앞에 있다면 달려가서 목을 베어 버렸을 것이다.
다만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고 그 힘을 얻지도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 그런 현재의 상황이 페이린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앞으로 상인들에게 이 소식이 알려지면 네 녀석의 계획에는 차질이 생기겠지. 지금 당장 네 녀석을 죽이지 못하는 대신 그것으로라도 만족할 수밖에 없다니, 젠장.'
상인들에게 이미 이번 일에 대한 대책을 알려 주었다. 모든 상인들이 이 소식을 알기까지 시간이 걸리긴 할 것이다. 그래도 아예 모르고 녀석의 뜻대로 놀아나는 것과, 알고서 대처를 하는 것은 차이가 상당했다.
아마 이번 일로 인해서 그 흑마법사는 자신의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게 될 것이다.
'어쩌면 내가 저걸 부숴 버린 지금 녀석이 눈치챘을 수 있겠지. 뭐. 그쪽에서 먼저 나를 찾아와 주면 고맙지.'
한두 개도 아니고 이곳에 있던 모든 증폭기를 부숴 버렸다. 발로 짓밟은 것도 모자라 마법을 사용해 불에 태워 버렸으니 분명 알아차릴 것이다.
그렇지만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녀석이 그것을 눈치채고 찾아와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야 직접 찾아가 녀석의 목을 베어 버리는 수고를 덜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뒷정리도 끝났고 도시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모두들 이동합시다."
용병들 중 가장 등급이 높은 A급의 용병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이미 주위는 모두 정리가 되어 있었다. 몬스터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챙겼으며, 전우의 시체 또한 모두 수습을 했다.
페이린은 일행의 중간에서 데일과 함께 걸어갔다.
강렬하게 등장한 첫인상만큼 페이린의 무력 또한 압도적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힘이 강한 자들이 대우를 받는 용병들 사이에서 페이린은 영웅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도시로 향하는 내내 이곳에 있는 모든 용병들이 아부를 할 정도였다.
페이린에게 쏟아지는 찬사를 보며 데일은 자신이 이곳에 굳이 오지 않았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나름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얼마 가지 않아 상인들과 용병들은 페이린이 살고 있는 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상인들은 도시에 도착해 곧바로 용병 길드에 들렀다.
그곳에서 더크에게 지금까지 있던 일들을 모두 설명해 주었는데 A급 용병과 다른 용병들까지 설명을 해 주었다. 그 덕분에 페이린은 보수금을 받을 수 있었고 추가로 상인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 준 그에게 따로 보수금을 더 얹어 주었다.
돈을 바라고 행한 일은 아니었지만 뜻밖에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상인들은 계산을 끝내고 곧장 시장으로 향했다. 오늘처럼 많은 상단들이 오는 일은 드물었다. 그것도 오랜만에 많은 상인들이 찾아왔기 때문에 이날 늦은 시간까지 시장은 꽤나 붐볐다.
한동안 상인들이 찾아오지 않았다는 점도 시장이 늦게까지 열리는 데 한몫을 했다. 상인들은 늑대인간의 경매에 참가하기 이전에 활발하게 거래를 하며 시장을 활성화시켰다.
한편 용병들은 다른 의미로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들은 여관에 방을 모두 잡고 곧바로 큰 술집으로 향했다. 페이린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술을 권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최대한 이 도시에서 맛있는 음식들을 사서 그에게 권했다.
'어울리고 싶진 않지만 오늘은 어울리는 게 낫겠지.'
혼자 조용히 있으며 힘을 쌓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용병들의 소속감 같은 이런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그렇기에 페이린은 평소에 마시지 않는 맥주까지 마시며 용병들과 어울렸다.
그렇게 이날은 작은 도시에 찾아온 많은 손님들 덕분에 한동안 거리가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런 분위기를 싫다고 하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오랜만에 떠들썩하게 된 이런 분위기를 반겼다. 그리고 이렇게 떠들썩하게 만든 원인을 제공해 준 페이린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 감사를 하고 있었다.
정작 늑대인간을 잡고 상인들과 용병들을 구해 주어 이곳으로 데려온 페이린 본인은 신경 쓰고 있지 않았지만 말이다.
10장. 미혹의 숲
그날 밤 홀로 숙소에 들어온 페이린은 취기를 날릴 겸 마나법을 하며 명상에 잠겼다.
'앞으로 남은 날짜는 한 달 정도인가.'
몬스터들의 습격이 있기까지는 약 한 달 하고 며칠 더 남았다. 그것을 떠올리며 페이린은 오늘 있던 일을 떠올렸다.
원래라면 과거에 늑대인간을 잡지 않아 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어디에선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상인들이나 용병들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것도 자연적으로가 아닌 인위적으로 자신의 목적을 채우기 위한 흑마법사들 때문에.
하지만 오늘 페이린은 자신이 너무 안일하게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저 몬스터들의 습격을 막은 뒤 이 도시를 떠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늑대인간을 잡음으로 인해 예상과 빗나가는 일이 생겼다.
'역시. 지금 당장 그 힘을 얻어야 돼.'
마나법을 하며 페이린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어찌나 꽉 쥐었는지 가녀린 두 팔이 부르르 떨리며 힘줄이 보였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 도시를 벗어나 대도시로 가는 길에 그 힘을 얻으러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예정을 바꿔야 했다. 최대한 빨리 그 힘을 얻고 돌아와서 흑마법사들이 일으킨 몬스터들의 습격을 막아야 했다.
'제길. 배후가 어떤 녀석인지 알 수만 있다면 당장 쳐부수러 가겠는데!!'
과거에도 사건을 일으킨 흑마법사는 끝내 등장하지 않았다. 그저 검은 오우거의 외형과 막강한 힘을 보고 이후에 흑마법사들이 일으킨 일들을 보며 녀석들의 짓이라고 단정 지었던 것이다.
'내일 당장 미혹의 숲으로 떠나야겠어.'
페이린은 미혹의 숲을 떠올렸다.
그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미혹의 숲.
대도시로 향하는 길목에서 벗어나면 작은 숲이 존재했다. 나무와 풀이 우거진 곳이 한두 곳이 아니긴 하지만 미혹의 숲만큼은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이곳이 미혹의 숲입니다'와 같이 친절한 표지판은 없지만 그 숲의 주위에는 항상 짙은 안개가 끼어 있기 때문이었다. 어찌나 짙은지 그 숲 전체를 집어삼키고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었다.
미혹(迷惑)의 숲은 이름 그대로 무언가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만드는 특이한 힘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주위를 1년 내내 감싸고 있는 안개에 그런 힘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밝혀진 바는 없었다.
미혹의 숲은 숲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주 작은 크기였다. 고작 3분 정도 산책을 하면 시작과 끝을 왕복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어찌 보면 숲이라는 이름이 맞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곳이 미혹의 숲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런 작은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가 상당히 힘들기 때문이었다.
크기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 그곳에 발을 들인 사람은 최소한 일주일, 길게는 한 달 정도 헤매며 죽다 살아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정도도 운이 좋아 살아남은 것이지, 재수가 없다면 그 안에서 영영 길을 잃고 헤매다 죽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그렇기에 지금은 아무도 가지 않고 버려진 숲이었지만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미혹의 숲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조건은 갖춰졌으니까.'
미혹의 숲을 통과할 수 있는 조건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건 바로 정령과의 계약을 맺은 사람이라면 문제없이 그곳을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정령이라는 것과 계약을 맺는 것이 극히 힘들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곳에 발을 들이면 헤매게 된다.
과거에 페이린은 검의 정령과 계약을 맺기 전에 흑마법사에게 납치를 당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상단을 무차별적으로 습격하는 흑마법사였다.
겨우겨우 탈출을 해서 살기 위해 도망을 쳤던 곳이 바로 미혹의 숲이었다. 그때에는 어떻게든 살기 위해 몬스터도, 흑마법사도 그곳에는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페이린 역시 다른 이들처럼 정령과 계약을 맺지 못해 한참을 헤매게 되었다.
'그때는 운이 좋긴 했지.'
그 당시 페이린이 가지고 있던 낡은 단검에서 은빛이 뿜어져 나왔고 미혹의 숲에 존재하는 안개를 모두 걷어 버렸다. 그 덕분에 페이린은 밖으로 무사히 나갈 수 있었는데 그 전에 그곳에서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페이린이 가지고 있던 검의 정령이 봉인된 낡은 단검은 상당히 유서 깊은 물건이었다. 다른 정령들과는 다르게 검의 정령은 불러내기가 힘들었으며 현재 불러내 계약을 할 수 있는 물건들은 모두 없어졌다고 봐도 무관했다. 그나마 남아 있는 검도 낡은 단검이었으니 말이다.
그 단검 덕분에 페이린은 미혹의 숲을 지키는 주인에게 인정을 받고 그 힘을 받았다. 다만 모두 받지는 못해 어정쩡하게 마법은 8서클, 검은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
'그 힘을 모두 온전히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과거보다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갈 수 있을 거야.'
8서클의 대마법사와 오러 블레이드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소드 마스터라는 모두가 인정하는 경지. 그 두 가지의 경지에 모두 도달한 이는 페이린이 처음이었으며, 결국 SSS등급이라는 유일무이한 최강의 용병이 되었다.
그런 페이린이 전보다 한 단계씩을 더 높이 나아갈 수가 있다면 아마도 유일무이한 그랜드 마스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검은 검대로, 마법은 마법대로 두 가지 모두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힘. 그 정도라면 분명 마왕과도 싸워 볼 만할 것이다.
'우선 그 힘을 얻어서 오러를 쓸 수 있어야 해. 4서클이지만 아직 이전처럼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페이린은 마나법을 끝냈다. 체내에 충만하게 존재하는 마나와 맹렬히 회전을 하고 있는 네 개의 서클들. 지금 페이린이 15살이니 그 나이 대에서는 대적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그보다 나이를 많이 먹은 이들도 어지간해선 페이린의 무력 앞에서 무릎을 꿇을 것이다. 그렇지만 과거의 힘에 비해선 한참 모자랐다.
'뭐. 그래도 잘됐어. 이 힘을 먼저 얻으러 갈 생각을 했으니까.'
페이린은 기억 속에 존재하는 한 흑마법사를 떠올렸다. 이 도시의 일이 끝나면 가장 먼저 박살 내 주겠다고 다짐한 녀석. 그 녀석 덕분에 안일한 생각을 지워 버리고 더 빠르게 강해질 생각을 했다.
'녀석에겐 고마워해야 하나?'
페이린은 잠시 생각을 했지만 이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녀석 덕분에 더 강해지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지만 그건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과거에는 날 그렇게 막 다뤘지만 이번에는 네 목을 베어 주마.'
생각을 마친 페이린은 잠을 청했다. 내일 아침 일찍 출발을 할 예정이니 조금이라도 잠을 자두기로 했다. 이불을 덮으니 따스한 온기가 금세 몸을 뒤덮어 아늑하게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