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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325화 (325/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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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부. 괴수의 왕

주비가 그 맵을 찾아낸 것은 우연이었다.

맵의 괴수는 제 힘을 키우고 늪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새끼를 낳아 잡아 먹고서 늪의 오픈을 기다렸다.

보빗이 크게 기대하는 괴수였다.

주비는 그런 괴수였기에 더 활용 가치가 높다고 생각했다.

헌터들이 부르는 이름은 따로 있었지만 괴수 세계에서 부르는 이름은 청소부였다. 주비는 그 녀석이 청소부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주비는 괴수를 설득하려고 하고 있었다.

주비는 보빗이 다스리는 현 상황에 대한 불만을 청소부가 스스로 터뜨리도록 말을 잘 잡아갔다. 청소부는 시현 본인이 왕이 되지 않겠다고 하는데 무슨 수로 그를 왕으로 만들겠다는 거냐고 말했고 주비는 주군의 마음도 이제 거의 움직였다고 확언했다.

자기들이 믿고 섬겨야 할 주군이 누군지에 대해서 말하는 도중에 주비는 그 맵이 여느 맵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라진 늪과 콜로니의 종착역.

그런 맵이 있다는 것을 주비도 들은 적이 있었지만 정말로 그런 곳을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 괴수의 맵이 그런 곳이었다.

맵은, 주위를 떠도는 잔해들을 강력한 힘으로 빨아들였다.

사라진 늪 속에 남아있던 괴수의 사체와 헌터들의 사체가 맵으로 빨려들어오면 청소부는 그것들을 오랫동안 아껴가면서 먹었다.

청소부가 보빗에게 충성을 하는 것도 그 이유였다.

보빗은 청소부에게 떠도는  먹잇감들을 내주었다.

간혹 죽지 않은 것이 들어오면 직접 싸워야했지만 청소부에게는 패배가 없었다.

청소부가 여전히 그 늪의 주인이라는 사실이 증거였다.

주비가 청소부를 회유하고 있을 때 맵의 벽이 일그러졌다.

청소부는 그때부터 주비의 말에 집중하지 못했다.

먹잇감이 살아있었다.

주비 역시 그 사실을 눈치챘다.

청소부가 맵으로 들어온, 살아있는 헌터를 공격하려고 했을 때 주비가 그 앞을 막아섰다.

청소부는 단단히 화가 났다.

당장 비켜서지 않으면 아무리 주비라고 하더라도 그냥 놔두지 않겠다고 말했다.

주비는 헌터를 알아보았다.

차라리 죽었다면 좋았을 것을.

정원이었다.

다른 헌터라면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었겠지만 자기가 직접 그 모습을 하고 주군에게 접근을 한 적이 있었으니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맵으로 떨어져 들어온 헌터는 살아있다고는 하지만 거의 죽음에 이른 상태였다.

그때까지 살아남았던 것은 청소부의 맵과 같은 곳에 떨어졌을 때 괴수를 이기고 괴수의 사체를 먹으면서 연명해 왔던 것 같았다. 정원이 그 정도의 실력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주비는 정원이 그때까지 살아 있었다는 것과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고 놀랐다.

맵에 떨어져 괴수와 싸우고 헌터에 의해 괴수가 죽은 늪은 다시 사라지고, 정원은 다시 또 떠돌이 잔해가 되었다가 또 다른 청소부의 맵에 떨어져 괴수와 싸워 괴수를 죽이고 괴수를 먹으며 버텨왔던 것이다.

그 지독한 생명력에 치를 떨면서도 주비는 정원을 미워할 수 없었다.

정원이야말로 주비의 딜레마였다.

제이가 정원의 모습을 하고 시현을 속였고 시현도 그 사실을 믿은 것 같았지만 언제부턴가 시현이 의심을 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현의 감각이 예민해지면서였을 것이다.

그는 차크라를 정교하게 사용하면 누가 어디에 있는지까지 그의 차크라로 알아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시험 삼아서 용하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기도 했다.

시현이 시도했을 때 용하가 어디에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용하가 그때 러시아에 있었는데도 거리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만큼 많은 차크라가 소모되기는 했지만 시현은 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해민을 찾았다.

해민이 어디에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해민은 다른 헌터 아카데미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한 후였다.

시현은 정원을 찾았다.

그러나 정원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너무 멀리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미국에 있는 미키 위도도 찾아냈다.

거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살아있는 사람이기만 하면.

땅에 발을 붙인 채 존재하고 있기만 하면 누구든 찾아낼 수가 있었다.

그런데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은 정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시현은 그 일로 혼자서 고민을 하다가 주비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주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드디어 정원을 잊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주비는, 정원이 고양이 섬에 찾아왔다가 돌아간 이후에 다시 사고를 당했거나 일을 당해서 죽은 건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시현은 그 말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시현이 정원을 잊은 건지 어떤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주비에게는 오랫동안 정원이 신경 쓰였다.

그래도 적극적으로 찾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하필 청소부의 맵에서 정원을 마주했다.

정원은 하얗게 뜬 입술을 하고 두 괴수를 노려보았다.

사람의 형체와 똑같은 주비를 보고는 잠깐 헷갈려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주비의 팔에 헌터 타투가 없는 것을 보고 괴수로 단정지은 것 같았다. 헌터가 아닌 사람이 괴수의 맵에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주비는 정원이 흐려지는 초점을 간신히 저에게 맞춘 채 허, 하고 짧게 웃는 것을 보았다.

주비는 정원이 저를 보고 웃었다고 생각했지만 정원이 본 것은 주비가 입고 있던 옷이었다.

정원은 주비가 입고 있는 옷과 똑같은 옷이 시현에게도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원이 버틸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너무 긴 시간이었다.

혼자서 버텨내기에는.

정원의 무릎이 바닥으로 꿇렸다.

체력이 다한 건지, 살고자 하는 의지가 다한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청소부가 정원에게 다가갔다.

주비가 그 앞으로 막아섰다.

“뭐 하는 건가. 주비.”

청소부의 음성이 낮게 울렸다.

“주군의 여자다.”

주비가 말했다.

“…….”

청소부는 아직 시현을 제 주군으로 받아들일지 어쩔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저 여자를 먹으면 늪의 오픈을 당길 수 있다는 사실, 늪에서 나가면 저런 먹이가 도처에 깔려있을 거라는 사실, 이제 구질구질하게 이런 걸 기다리고 있지 않아도 지상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보빗이 제안한 달콤한 자리도 선명하게 그려졌다.

“주비. 내 주군이 누군지는 모르겠어. 그런데 지금 내 적이 누군지는 알 것 같다고.”

청소부의 날카로운 발톱이 대기를 갈랐을 때 주비는 정원을 안고 도망쳤다.

정원을 그대로 놔두면 청소부가 따로 공격을 할 필요도 없이 곧 숨이 끊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원을 살리려면 제 차크라라도 급히 밀어넣어야 하겠지만 거기에 차크라를 썼다가는 돌아버린 청소부를 상대하는 것이 버거워질 수도 있었다.

주비는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지만, 청소부와 저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면서 정원의 배에 제 차크라를 사납게 밀어넣고 있었다.

이렇게 한다고 주군의 공허한 눈빛에 생기를 돌릴 수 있을지 확실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주비는 정원을 보호하면서 청소부와 싸웠다.

그것이 돌이 시아에게 보여준 기억이었다.

처절한 싸움이었다.

주비는 제 목숨을 위협받으면서도 정원을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청소부가 쓰러졌을 때 주비는 정원에게 다가갔다.

정원이 눈을 떠 주비를 바라보았다.

주비의 차크라를 받은 정원은 주비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주비가 정원을 보지 않은 채 말을 하는 동안 주비가 하는 말을 정원이 알아듣고 대답을 했던 것이다.

“주군을 떠나야 할 거다.”

주비가 말했다.

돌이 보여주는 기억을 보는 것이 시아에게 긴장감을 증폭시켰다.

정원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시아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시아는 절벽을 열고 나온 것은 주비 뿐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 주비의 곁에 정원은 없었다.

돌이 보여주는 기억은 계속되었고 시아는 다시 거기에 집중했다.

정원이 주비를 바라보았다.

주비는 한숨을 쉬고 정원에게 설명했다.

시현이 정원을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는 것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 사람들이 시현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시현은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얘기까지 주비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비의 얘기가 이어지는 동안 정원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다가 정원이 주비를 바라보았다.

정확하게는 주비가 입고 있던 옷을 봤던 것이다.

주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군의 것이라고 주비가 말해주었다.

정원은 깊은 숨을 뱉었다.

시현은 절대로 괴수의 왕이 되지 않을 거라고 정원이 주비에게 말했다.

주비는, 그렇더라도 너는 주군을 떠나야 할 거라고 말했다.

정원은 떠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동안에도 맵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 끝없이 시도를 했었을 거라고 시아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늪의 입구는 고집스럽게 입을 닫고 있다가 정원을 가둔 채로 사라졌다.

입구를 통해 들어오지 않은 헌터에게는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맵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주비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비는 정원이 그곳을 떠날 수 있도록 출구를 만들어주었다.

정원은 몇 번이나 주비를 돌아보다가 늪을 떠났다.

그때부터 주비의 몸에서 댐이 터지듯 피가 쏟아지고 청소부로부터 받은 공격의 결과가 한꺼번에 나타났다.

돌은 주비가 떠나는 모습까지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 후의 일은 시아가 알고 있었다. 절벽 밖으로 나오는 주비를 봤던 것이다.

시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효재는 시아가 왜 그러는지 알 길이 없었다.

“왜 그래? 오늘 다들?”

효재가 물었다.

“정원 언니. 살아있어요.”

“뭐?”

시아는 효재에게 자기가 알게 된 것들을 얘기했다.

효재는 변화무쌍한 표정을 보이더니 시아보다 더 복잡한 얼굴을 했다.

“시현이한테 말해야 되는 건가?”

“그래야 되지 않을까요? 시현이 오빠는 이미 의심을 하고 있었던 것 같으니까요. 정원 언니가 어디에 있는 건지에 대해서요.”

“주비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까지 돌이 전부 아는 거야?”

“자연계에 존재하는 사물은 생각까지 보여주지는 못했는데, 맵에 있던 돌이라서 그런지 주비의 기억까지 보여주네요.”

“시아 너도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그걸 왜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어?”

효재가 서운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신기하다는 마음이 컸다. 그런 능력을 가진 헌터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고, 시아의 도움을 받으면 자신의 능력을 발달시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공간에 같이 있던 사물이 사람들의 비밀을 털어놔 준다면 그것을 이용해서 정신 공격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게 무슨 쓸모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나도 싸울 테니까 나한테도 무기를 달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하늘에서 포크가 떨어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이예요.”

시아가 말하자 효재가 웃으면서 시아의 머리카락을 헝클었다.

“중재자처럼 중요한 존재는 없어. 네가 시현이 옆에서 그 일을 해 주면 좋겠다. 내려가자. 정원이 누나가 죽지 않았다니까 기뻐. 그건 정말 반가운 소식인 거잖아. 그런데. 그럼 정원이 누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효재가 물었다.

시아도 확실한 답을 해 줄 수는 없었다. 떠나는 것만 봤을 뿐이었다.

“어딘가에 정착해서 공대에 들어가서 다시 레이드를 하게 되지 않을까요?”

효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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