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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부. 괴수의 왕
“그러면 그렇지. 주비가 제 주군을 위해서 준비한 괴수가 겨우 이 정도일 리가 없는 거지!”
아키라는 잔뜩 기대하면서 라쿠를 바라보았다.
라쿠는 아키라를 겨냥해서 레미콘 주둥이처럼 콘크리트를 부어댔다.
덩치에 비해서 즉각적이고 빨라서 아키라는 도망치는 맛이 났다.
“좋아. 너를 가져 주지!”
아키라가 소리를 질러댔다.
라쿠는 아키라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알아듣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곧 죽을 놈이었다. 일단 라쿠의 생각으로는 그랬다.
아키라는 그대로 라쿠의 공격을 피하면서 라쿠의 몸을 타고 올라갔다. 상대의 덩치가 커서 목까지 올라가는데만 해도 한참 걸렸다. 아키라는 라쿠를 제대로 몰아붙일 생각으로 라쿠에게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라쿠는 제 목 뒤에 빈대처럼 붙은 아키라가 저를 정신없이 공격한다는 것을 알고도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았다.
한 놈이 무너뜨릴 수 있는 체력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키라가 한 놈이 아니라면, 라쿠는 당연히 그 상황에서 걱정을 해야 했다.
아키라는 한 놈이 아니었다.
훗카이도에 오기 전에 고양이 섬에서 흡수한 괴수 중에 제 몸을 순간적으로 재생하고 복제해내는 능력이 뛰어난 녀석이 있었다.
아키라는 고심 끝에 그 녀석을 흡수했다.
포기하고 싶은 괴수가 별로 없었기에 고민이 많았지만 결국 그 녀석을 선택했다.
그리고 지금 그의 결정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었다.
아키라는 자신을 복제하는 것에 성공했고, 어디까지 가능한지 계속해서 제 한계를 시험하는 중이었다.
이백명까지는 거뜬하게 만들어졌다.
그 후에 더 만들지 않은 것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겨져서가 아니라 그 이백명이 다시 또 복제의 기술을 시전할 수 있을지 알고 싶어서였다.
아키라의 생각대로 되었다.
아키라가 복제한 이백명은 다시 또 저희들을 스스로 복제해냈다.
오래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는 했지만 라쿠의 체력을 효과적으로 깎아낼 수는 있었다.
아키라가 만들어낸 복제인간들 중 상당수는 라쿠에게 잡아먹혔다.
기분 나쁘게도, 복제인간들이 느끼는 통증이 아키라에게도 전부 느껴졌다.
그런 것까지는 전해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인심 좋게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전해지는 것 같았다.
혀에 달린 칼같은 이빨에 온몸이 찢겨지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아키라는 라쿠의 체력이 얼마나 남았는지 살폈다.
거의 끝난 싸움이었지만 아키라는 거기에서 멈췄다.
라쿠를 죽이려고 시작한 싸움이 아니었다.
라쿠가 어느 정도인지 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끝까지 몰아붙이면 라쿠도 진면목을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라쿠는 순식간에 건물 한 채를 다 먹어 치우더니 그 잔해로 아키라를 깔아버리려고 시도했다.
멍청한 방법이기는 했지만 그런 것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쓰게 될지, 영영 쓸 일이 없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기능이 많은 것이 좋지 않겠는가.
아키라는 제 차크라가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했다.
이제는 자기도 차크라를 아껴야했다.
아키라가 바닥에 서자 라쿠는 아키라를 공격하려고 했다.
아키라는 라쿠가 다가가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멍청하게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라쿠는 알지 못했다.
그 상태의 아키라에게 닿으면 자기가 아키라에게 흡수될 거라는 사실을.
아키라가 들어올린 손에서 투명한 차크라가 원을 그리며 형성되었다.
라쿠는 보이지 않는 밧줄에 목이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켁켁거렸지만 그 시도는 너무 늦게 이루어졌다.
라쿠는 제 몸이 점점 빨려 가는 것을 깨달았다.
라쿠는 끝까지 아키라를 향한 공격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고 제가 가장 믿어왔던 혀를 내둘렀다.
그 혀가 가장 먼저 아키라의 차크라 회오리에 빨려 들어갔다.
아키라가 라쿠를 끝냈을 때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카르마 클랜의 클랜원들도 전직 클랜 마스터에게 제대로 사례를 하려고 달려왔지만 아키라가 서 있던 곳은 이미 비어 있었다.
갑자기 불어온 돌풍에 검은 이파리 하나가 하늘로 날아올라가는 것을 본 것 같기는 했지만 그것이 날개를 꺼낸 아키라였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키라는 신이 나서 곧바로 고양이 섬으로 날아갔다.
아키라는 주비가 어떤 캐릭터라는 것을 진작에 이해하고 있었다.
주비는 레이카와 아주 비슷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고르게 사랑을 줄 줄도 모르고 사랑해야 한다거나 친절하게 굴어야 한다는 생각도 갖지 못하지만 레이카는 아키라를 신앙처럼 여기며 사랑했다.
주비도 시현을 그런 식으로 존경하고 아낄 테니 주비가 시현을 준비한 괴수는 최고일 거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아키라는 새 장난감을 꺼내볼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리고 고양이 섬에 오자마자 셀에 들어가서 라쿠를 다시 꺼내서 복종 훈련을 시켜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가 미하일에게 걸렸다.
미하일은 하늘을 날다가 바닥으로 내려오는 아키라가 마치 저를 향해 온 것처럼 마주 걸어나오면서 아키라를 환영했다.
아키라는 미하일의 청을 당연히 거절했지만 섬에서 도망다니는 것에도 한계가 있고 셀에서 라쿠의 복종 훈련을 시키기는 해야 해서 결국 미하일과 함께 셀로 들어갔다.
아키라는 라쿠에 대한 복종 훈련이 제대로 될지 알지 못했지만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증도 없었기에 그저 편안하게 제 괴물을 꺼냈다.
라쿠는 아키라의 속박에서 풀려나자마자 제 앞에 서 있는 미하일을 공격했다.
미하일은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칼날같은 이빨이 다닥다닥 돋아난 혀를 내미는 괴수가 제 얼굴 앞에 다가올 때까지 미하일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라쿠의 끔찍한 비명 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아키라는 무슨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알지 못했다.
아직은 아키라 자신도 라쿠를 능수능란하게 다루지 못했다. 그래서 아키라도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라쿠가 아키라에게서 빨려나가고 있었다.
라쿠를 놓지 않으면 아키라 자신도 빨려나갈 것 같았다.
라쿠의 형체가 한없이 늘어졌다. 찢어지지는 않고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지면서 버티는 중이었다.
아키라는 그것이 미하일의 차크라가 가진 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하일! 라쿠는 내 꺼라고!”
아키라가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빨아들이는 힘이 잠잠해졌다.
라쿠는 엄청난 흡인 공격에 당할 뻔 하다가 놓여나자 정신없이 아키라에게 도망쳤다.
아키라는 라쿠의 존재를 완전히 감추었다.
아키라는 자기 자신도 괴수의 차크라를 봉인하기 위해서 괴수를 흡수하지만 미하일의 흡수는 자기가 하는 것과 목적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하일의 흡수는 죽이려는 의도뿐이었다.
그러니 훨씬 더 강력했다.
봐주겠다는 것도 없었다.
미하일은 떠오르는 김에 벽을 향해서 제 차크라를 집중했다.
벽이 비틀리는 것처럼 보였다.
익스트림 헌터와 바디 펌이 자존심을 걸고 모든 기술을 동원해서 만든 셀의 벽이 아니었다면 그것은 이미 조각조각나서 미하일의 차크라에 흡수되고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두 사람은 셀을 나왔다.
나란히 항구쪽으로 걸어가다가 아키라는 두통을 느꼈다.
괴수를 제 몸에 봉인하고 나면 가끔 부작용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이 느낌은 조금 특이한 것 같았다.
‘이게……. 우나?’
아키라는 라쿠를 풀어놓았다.
한 번 그에게 봉인되었기에 이제 라쿠는 아키라를 떠날 수도 없는 상태다.
라쿠는 아예 통곡을 했다.
머리 한 쪽이 톡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라쿠는 계속해서 몸을 들썩이면서 머리를 땅에 쿡쿡 처박고 있었다.
‘아놔. 잘못 가져왔나봐.’
아키라가 후회를 하고 있는동안 레이카가 달려왔다.
레이카는 아키라의 괴수가 나타난 것을 보고 아키라에게 일이 생긴 건 줄 알고 달려온 거였고 곧 다른 헌터들도 달려왔다.
뭐가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 헌터들에게 아키라는 미하일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아키라는 지금 다른 헌터들을 신경써 줄 여력이 없었다.
라쿠를 그냥 헌터들에게 내주고 러프 스톤이나 챙기는 게 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도움도 안되는 바보를 데리고 있다가 정작 혹할만한 괴수가 나타났을 때 흡수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아키라의 고심은 점점 깊어졌다.
라쿠는 얼마동안 아키라와 연결이 돼 있었다고 그새 아키라의 마음을 읽었는지 으허허허 울음을 멈추지 못하면서도 아키라의 차크라 회오리를 스스로 불러일으키고 그 안으로 사라졌다.
지금까지 아키라가 흡수해서 제 안에 봉인해 두었던 괴수 중에 아키라의 차크라 회오리를 스스로 불러일으킨 녀석은 없었다. 별 쓸데도 없는 능력을 가진 놈이라고 생각하면서 아키라는 혀를 찼다.
다른 괴수들과 싸울 때 필요한 능력을 하나라도 더 갖고 있어야지 왜 지가 차크라 회오리를 불러 일으키는 능력을 가졌다는 건지.
그 일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건지도 모른다.
서로의 훈련으로 바빴다가 어쩌다 같이 모였을 때 무영이 시현에게 말했다.
“시현이 너. 괴수의 왕이 되지 않겠다고 버티기는 했지만 지금도 그거랑 상당히 비슷해지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아키라 아저씨도 그렇고, 레오니드 교수님도 수영할 때 내가 봤는데 허벅지랑 배가 굉장하더라.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면 징그러웠어. 요즘에 나타나는 괴수들 중에는 사람 형체랑 비슷한 것들도 많잖아. 주비만 해도 그렇고. 괴수랑 인간들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진다고 해야 하나? 내 말은, 레오니드 교수님이랑 아키라 아저씨가 괴수라는 말은 아니지만 이 섬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네가 괴수의 왕이 된다는 게 아주 말이 안 될 이야기이기만 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괴수만의 왕이 되라는 건 아니잖아. 인류의 왕이 같이 될 수도 있고. 그리고 네가 괴수의 왕이 돼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왜 다른 녀석들이 정해야 하는 건데? 그건 네가 정하면 되는 거잖아. 괴수의 왕이 돼서 인류를 제거하고 괴수들의 지구를 만들어 달라는 건 주비랑 똘마니들 생각인 거잖아. 왕은 넌데 왜 지들이 지랄인 거래? 네가 괴수의 왕이 돼. 시현아. 그래서 인류와 괴수가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보빗이 만들어놓은 지금 같은 세상 말고, 너라면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시현은 무영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효재와 제이도 무영이 하는 말에 신경을 쓰지 말라고 말했다.
그래도 무영은 구체적으로 계획까지 세우는 것 같았다.
“나라도 분리돼 있을 필요 없잖아. 그냥 전부해서 네 나라 해. 우리 나라 말을 공용어로 하고 영어 쓰는 애들은 사형시키거나 징역형에 처하자. 아, 교도소가 모자란가? 우리 말 못하면 말을 못하게 하고 벌금형을 때릴까? 시현아. 그것도 잘 생각해 봐. 재미있지 않겠어?”
무영의 이야기는 끝도 없었다.
“어쨌거나. 언젠가 보빗이 한 번 제대로 총공격을 해 올 것 같기는 한데. 그때에 대비가 돼 있어야 하기도 하고.”
효재가 말했다.
“지금의 우리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
제이가 물었다.
“보빗의 전력에 대해서 확실히 안다고 할 수가 없으니까.”
무영이 말하는 동안 시아가 언덕 위에서 달려왔다.
“시현 오빠. 위에 올라가 봐야 할 것 같은데.”
“왜?”
시현이 시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주비가.”
시아가 위쪽을 가리키며 말하자 시현이 어느새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