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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부. 괴수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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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와 시현이 둘이서만 자리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였다.
시아는 주비가 막 돌아갔을 때 언덕 위로 올라왔다.
시현이 내려가려고 하다가 시아를 발견했다.
“어. 나 보고 올라온 거야? 내려가려던 참이었는데.”
시현이 말하자 시아가 시현을 보고 웃었다.
못 본 사이에 이렇게 달라졌나 싶었다.
정말로, 거리에서 만났다면 스쳐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많이 컸다. 몰라보게 변했어.”
그 말은 다른 사람들한테서도 질리도록 들었겠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저절로 그 말이 또 나와버렸다.
“변해야죠. 그럼. 그때는 그냥 애송이였는데.”
“지금도 애송이인 건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시현이 시아의 볼을 잡아 늘이자 시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시현을 바라보았다.
“이런 짓을 한 사람은 오빠가 처음이예요.”
“그래? 전에 있었던 일들을 다 잊은 건 아니고?”
시현이 시아를 위해서 적당한 자리를 골라주고 자기는 그 옆에 앉았다.
자리라고 해 봐야 흙바닥에 풀이 돋아난 곳이었다.
바다를 바라보는 시현을 보면서 시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얘기 들었어요.”
“어? 정원이? 그래도 뭐. 돌아왔잖아. 그것도 다행인 거지.”
시현이 희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은 그렇게 믿고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에 지금 자기가 그를 위로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행히 시현은 시아의 말을 그저, 여자친구랑 헤어져서 상심이 크겠어요 라는 정도의 말로 이해한 것 같았다.
“나는 운이 없나봐. 아니. 운이 없다기보다. 아니다. 괜히 그런 말을 해 봐야 기운만 빠지겠지.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이런 시대에 태어났는데. 그래도 나는. 좋은 부모님에 좋은 분들, 좋은 친구, 그리고 시아 너도 만났고. 내가 불평을 할 수는 없을 거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아니.”
시현이 한숨을 푸욱 쉬었다.
“괴수의 왕 얘기 들었어요. 오빠는 결심히 확실히 선 거예요?”
“그렇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보빗이 섬에 나타난 흔적이 발견됐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나는 보빗이 왜 나를 피하기만 하는 건지 모르겠어. 내가 보빗이라면 정정당당하게 얼굴을 내밀고 나한테 승부를 청할 것 같은데. 주비 말을 전부 믿는 건 아니지만 보빗에 대해서 하는 말은 맞는 것 같아. 보빗한테는 괴수의 왕이 될 자격이 없다는 말 말이야. 누가 괴수의 왕이 돼야 한다고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보빗은 하여간. 몰라. 마음에 안 들어. 내가 왜 이런 얘길 하고 있지?”
시아가 시현을 바라보았다.
“주비는 정확히 어떤 포지션이예요?”
“나도 모르겠어. 나를 회유하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는 것 같아. 처음에 나한테 했던 말로 봐서는 몇 번 회유를 해 보다가 안 되면 보빗이랑 같이 나를 공격하기로 했나본데 보빗이 받아주지 않았는지. 보빗이 주비를 공격해서 주비 빼고는 전부 다 죽었다고 하더라고.”
“그래요? 그럼 주비 계획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오빠 말대로. 오빠가 거절하면 보빗한테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가, 보빗이 주비가 저지른 짓을 알고 주비를 공격했다면.”
“걔도 어설퍼.”
“오빠 말을 들으니까 그런 것 같긴 하네요.”
시아가 웃었다.
뭔가 좀.
여자 무영이 같은 느낌이랄까.
“넌 어떻게 지냈어? 괜히 나 때문에 엄마 아빠랑 또 헤어져서 지내게 되고. 미안하다. 오빠가. 잘 해 준 것도 없이 그런 상황이나 만들고.”
“괜찮아요. 애도 아닌데요, 뭘. 그리고 가까우니까 내가 원하기만 했으면 올 수도 있었고.”
“내 말이 그 말이야. 왜 한 번도 안 왔어? 정말 통 오질 않았잖아.”
“나도 나름대로 뭔가 제대로 해서 얼굴을 보이고 싶었거든요. 그냥 적당히 하는 걸로는 클랜 A나 오빠들한테 명함도 못 내밀 것 같아서.”
“그래서 명함 파느라고 이렇게 오래 걸린 거야?”
시현의 올드한 조크에 시아는 차마 웃지도 못하고 얼굴 근육을 꿈틀거렸다.
“효재 오빠는 이제 완전 몰라보게 달라졌던데요? 제이 언니는 말할 것도 없고요.”
“무영이는 안 봤어? 무영이도 굉장해졌어.”
“얼굴 말한 거예요.”
“아. 얼굴. 그럼 무영이는 빼놓고 얘기할만도 하네.”
시현이 혼자서 키들거렸다.
이 오빠는 위트가 넘치거나 말을 재미있게 하는 것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면서 시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현신은 안전했지? 너 때문에도 그렇고 용하 삼촌 때문에도 그렇고, 거기에는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어.”
“네. 오빠랑 떨어져 있는 게 더 안전한 거죠.”
“그래. 그렇지.”
시현은 잠시 말이 없다가 그대로 일어섰다.
시아를 데리고 할 말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오랜 시간동안 보지 못했다가 다시 만났다고는 하지만 그 전에 쌓아놨던 기억이라거나 공유했던 사건들이 있어야 얘길 할 텐데 두 사람 사이에는 그런 것이 거의 없었다.
시현이 일어나서 시아를 일으켜 주었다.
시아가 일어나자 시현은 시아의 어깨에 팔을 둘러주었다.
“춥게 입고 다니지 마. 바닷바람이라 차가워.”
시아가 시현의 옆에서 나란히 걸으면서 시현을 바라보았다.
시현은 먼 바다를 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말하려고 움직이던 시아의 입술이, 달리 결심을 한 듯 이내 닫혔다.
***
아키라와 미하일이 셀에 들어갔다.
셀은 헌터들이 들어가서, 특히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들이 들어가서 자신의 안에 있는 괴수 차크라를 개방시키고 복종 훈련을 시키는 곳이었다.
한 건물에 거의 스무 개나 되는 셀이 있었는데 셀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한정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아키라와 레이카의 전유물이다시피 했던 것이 나중에는 다른 헌터들도 차크라 통제를 위해 사용하게 되었다.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들이 괴수 차크라를 개방시키고 복종시키는 훈련을 하는 것. 그것은 클랜 A가 절대로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었지만 결국 일어나게 되었다. 아키라와 레이카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영영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을 것이다.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들은 아키라와 레이카가 괴수들의 힘을 이용하기 위해서 괴수를 흡수하기도 하고 다시 쫓아내기도 하는 과정을 적극적으로 도우면서 자신들도 자신들의 차크라를 운명의 저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운명에 대항을 한 사람은 레오니드 소로킨이었다.
레오니드는 등급을 올리지 않더라도 자기가 이제 괴수 차크라에 눌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고양이 섬이라는 장소의 특이성이 레오니드에게 용기를 북돋워준 면도 있었다.
고양이 섬에 있는 사람들은 시현을 중심으로 복잡한 관계들을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가 폭주한다고 하더라도 그 헌터를 도와줄 생각을 할지언정 그 헌터를 괴수로 간주하고 공격을 할 사람은 없었다.
레오니드는 그것을 근거로,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말했다.
더 이상 등급을 올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것이다.
레오니드에게서는 이미 공공연히 괴수의 힘이 나오고 있었고 레오니드는 자신이 괴수의 차크라를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다. 아키라와 레이카가 하는 것을 옆에서 본 것이 도움이 컸다.
마침내 레오니드 소로킨이 자신의 운명적인 날에 캐츠 아이 스톤을 더 이상 소모하지 않고 버텼을 때 레오니드 소로킨의 몸에서는 괴수 차크라가 폭주했다.
그러나 클랜 A가 미하일을 만나 보았을 때처럼 일방적이지는 않았다. 그때 미하일은 괴수 차크라에 잠식 당하면서 자기가 원하지 않게 사람들을 공격하려고 했었지만 레오니드는 그런 마음이 든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의지로 그것을 눌렀다.
내면의 선악중 자기가 어떤 것에 더 힘을 실어줄지 그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된 것과도 같았다.
괴수 차크라에게 몸을 그대로 맡겨버리고 싶은 생각도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레오니드에게는 그를 일관되게 응원하는 동료와 그를 영웅으로 삼고 있는 꼬마 헌터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 앞에서 그런 식으로 무너질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레오니드는 버텼다.
괴수 차크라의 폭주는 레오니드의 몸에 거친 흔적을 남겼다.
레오니드의 몸은 몇 십 분만에 벌크 업이 되었고 그의 몸에 그의 차크라가 가진 형질이 남았다.
레오니드를 벗겨놓고 볼 일이 없으니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었지만 레오니드의 배와 허벅지에는 군데군데 나무껍질이 생겨났다.
그 후로 레오니드가 괴수의 차크라를 사용해 공격을 하는 것이 훨씬 쉬워졌다. 즉각적으로 나무줄기가 튀어나가, 공중을 날고 있는 조류 괴수를 낚아채 땅속으로 수십 미터나 처박아 버릴 수도 있었고 의기양양하게 바다를 헤엄쳐오는 괴수를 붙잡아 던져버릴 수도 있었다.
한없이 자라나는 나뭇가지로 닿지 않는 곳이 없었고 그 조르기 기술 또한 쓸모가 다양해졌다.
한 번은 고양이 섬의 땅을 파고 들어온 괴수가 있었는데 레오니드의 발 밑으로 나무 뿌리가 순식간에 뻗어나가 땅을 파헤치고 괴수를 찾아내 공중에 던진 일도 있었다.
레오니드가 효과적으로 자신의 괴수 차크라를 장악했다는 것을 깨닫고 그 후로는 다른 헌터들의 마음이 급해졌다. 레오니드를 위해서는 더 이상 캐츠 아이 스톤을 쓸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모두들 그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 분주해졌던 것이다.
그 다음은 아키라가 되었다.
아키라는 갈등조차 느끼지 않았다.
캐츠 아이 스톤을 이용해 등급을 올리지 않고 운명의 날을 맨몸으로 맞이한 결과, 그의 안에 있던 온갖 괴수들이 요동을 하고 폭주를 하는 바람에 아키라의 몸에는 굉장히 극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검은 손아귀가 아키라의 턱을 감싸쥐고 검은 손가락을 눈 밑까지 뻗은 것 같은 자국이 생겨났기에 아키라는 옷을 입는다고 괴수 차크라의 흔적이 완전히 감추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키라가 워낙, 다른 사람의 시선 같은 것은 신경을 쓰지 않아서 자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는지 어쩌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혐오감을 준다고 생각했더라도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다.
레이카는 아키라의 변화가 마음에 들었으면서도 한편으로 자신의 변화에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신의 안에 있는 괴수 차크라가 자신을 괴물처럼 변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레이카는 불안에 시달리더니 그 해에는 캐츠 아이 스톤을 사용해서 등급을 올리겠다고 말했다.
모두들 레이카의 말을 따라주었다.
특히 여자들은 레이카의 뜻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다.
만에 하나 잘못해서 얼굴이 괴수의 형체로 바뀌어버린다거나 한다면 정말로 끔찍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 다음 차례는 야로슬라프였지만 야로슬라프에게는 흔적이 남지 않았다.
야로슬라프에게 깃든 괴수의 차크라는 그저 신체 능력을 극도로 강화해주는 것이 전부였는지 그 외의 변화는 없었다.
그래도 레오니드에 비할만큰 벌크 업이 되기는 했다.
그런 야로슬라프와 레오니드가 이익헌을 쫓아다니면서 아짐, 아짐하고 부르는 풍경은 굉장히 낯설었다.
난감한 일은 미하일에게 나타났다.
미하일은 처음과 거의 달라진 것 없이 괴수 차크라에 잠식당할 뻔 했고, 결국 어쩔 수 없이 캐츠 아이 스톤을 사용해서 강제로 등급을 올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