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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317화 (317/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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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부. 괴수의 왕

그랬으니 제 안의 괴수를 포기한다는 말이 레이카의 입에서 나올 리가 없었다.

아키라의 마음을 알고 있던 클랜 A의 사람들은 호의를 당장 받아들였다.

그것이 그들이 일본의 작은 고양이 섬으로 떠나게 된 경위였다.

클랜 A를 따라서 바디 펌과 익스트림 헌터가 줄줄이 따라갔다.

현신 헌터 아카데미까지 따라오겠다고 하는 걸 지우가 겨우 말렸다.

그곳은 전쟁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바디펌과 익스트림 헌터 종사자들이 머물 수 있는 셸터를 마련해 줄 예정이었지만 그곳을 사람으로 흥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시현을 죽이기 위해 모여드는 괴수들을 상대로, 그들은 강한 성을 구축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우와 클랜 A의 생각이었고 그곳은 어떤 의미로 성지가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각처에서 날뛰는 괴수들을 상대해서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헌터들에게 무기와 장비가 필요했고 공격증폭률과 방어증폭률을 익스트림 헌터만큼 높여줄 수 있는 곳이 없었으니 그것은 당연한 순환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던 황폐한 무인도 고양이 섬은 클랜 A의 이주로 때아닌 전성기를 맞았다.

***

걸으면서 고개를 돌리기만 하면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바다는 잔잔해서 마치 멈춰진 사진 속 풍경 같았다.

쫓겨온 신세기는 했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말자고 시현은 마음 속으로 몇 번이나 다짐을 했다.

사람들을 보면 미안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섬으로 왔다고 해서 괴수들의 공격이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전보다 더 심해졌다고 할 수도 없었지만 거의 그 수준을 유지하는 것 같기는 했다.

괴수들도 공장에서 찍어져 나오는 것은 아니 초반의 물량 공세 이후에는 주춤해질 거라는 게 클랜 A의 예상이었다.

지금도 점점 화력이 떨어져가는 게 느껴진다고는 했다.

그게 서로를 격려하기 위해서 그냥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싶어했다.

사실, 믿거나 말거나 상관은 없었다.

그들은 엄청나게 강해져 있었다.

늪 아래에서의 레이드가 아니라서 경험치를 쌓을 수 없겠다는 우려를 한 적이 잠깐 있었지만 그럴 때는 경험치가 필요한 사람들끼리 인근에 나가서 늪이란 늪들은 싸그리 공략을 하고 다녔다. 어차피 그 늪들도 곧 성장해서 오픈될 것이고 그렇게 나온 놈들은 고양이 섬으로 올 텐데 기다렸다가 해치우거나 미리 해치우거나 크게 상관은 없었다. 그럴 바에는 경험치나 얻자는 게 클랜 A의 생각이었다.

카르마 클랜의 마스터였던 아키라가 나서 주어서 그 일은 마찰없이 진행되었다.

언덕으로 올라가다가 시현은 잡목이 무성한 숲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저런 짓을 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훤했다. 숲속 어딘가에서 제이가 훈련을 하는 것 같았다. 높이 뻗은 굵은 나무의 끝부분이 저렇게 흔들릴 정도면 아랫부분은 이미 아작이 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섬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나무를 잘라내는 일이었다.

바디 펌과 익스트림 헌터의 건물을 새로 올리고 직원들이 지낼 숙소를 만들고 괴수들이 침입해왔을 때 도망칠 셸터까지 만들려다보니 공사가 커졌다.

다른 사람들도 큰 도움이 되었지만 제이만한 인력이 없었다.

야로슬라프는 제이를 예뻐했고 제자로 삼고 싶다고 해서 이익헌을 긴장시켰다.

쉴 새 없이 흔들리는 숲을 바라보면서 시현은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자기가 웃고 있는 것이 꼭 죄를 짓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원은 어떻게 된 걸까 하는 생각이 시현의 머릿속에서 떠나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았다.

한가하게 해수욕을 즐길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섬을 둘러싼 절벽 때문에 해수욕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고 언젠가 무영이 말한 적이 있었다. 시현은 지금 그 절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다도, 모래도, 찬란하게 반짝였다.

구름도 좋았고 바람도 좋았고.

그냥 이대로 마음을 푹 놓을 수 있으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곳에 정원과 같이 와서 앉아 있을 수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다가 시현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걸 알면 효재가 또 제 등짝을 후려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덕 위에서, 다른 때와 다름없이 축 늘어져 있는 시현을 향해 제이가 다가왔다.

언제 훈련을 마치고 온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사람 저 사람 할 것 없이 나를 보기만 하면 무슨 말로 위로해 줘야 할지 그 걱정만 하는 것 같아.”

시현이 제이에게 말하자 제이가 어깨를 으쓱였다.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서 온 건데.”

“그래? 보여줘.”

“야. 좀 간절하게 원해봐."

"보여죠오오옹."

"됐어!"

시현이 놀렸다고 생각했는지 제이가 뾰로퉁해진 표정을 지었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는 오래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자기가 먼저 마음을 풀 거라는 것을 시현은 알고 있었다.

"나. 좀 굉장해진 것 같거든.”

제이가 뜸을 들이면서 말했다.

“그래. 보여줘. 정말로 보고 싶어. 실망시키면 나한테 죽는다.”

제이는 곧 주먹을 쥐어서 단단히 응집된 차크라가 제 주먹 주위에 족히 십 오 센티는 되게 둘리는 것을 보여주었다.

“호오. 대단한데? 그런데 그걸로 뭘 할 수 있는데?”

“나야 뭐. 때리는 거지.”

“괴수를?”

“괴수나. 절벽이나. 바다나.”

“그런 것들을 왜?”

그렇게 묻다가 시현은 며칠 전에 일어난 해일이 너 때문이었던 거냐고 물었고 제이는 해실해실 웃었다.

“대단한데?”

“절벽을 때렸다가 야로슬라프 아저씨한테 거의 뒤지다 살아났다.”

“왜?”

“그 아래에 사람들이 있었거든. 바디 펌 직원들 셸터 짓는 중이었어. 나는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뭘 또 짓고 그러는 거래?”

“헐. 그런 건 제대로 알아보고 하지 그랬어.”

“나도 그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거든.”

제이가 웃는 바람에 시현도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녀석들은 어디에 있어?”

“각자 여기저기 틀어박혀서 훈련에 매진하고 있지.”

“효재랑은 잘 돼가지?”

“잘 돼가지. 내가 의심할 때마다 효재는 그렇게 말하거든. '우리는 잘 돼 가고 있는 거야.' 라고. 단지 자기한테는 시간이 필요하대. 강해질 시간.”

“강해질 시간?”

시현이 물었다.

“주비가 나타났을 때. 효재는 너를 도와주지 못해서 낙심이 컸어. 뭔가를 조금씩만 맛본 것 같은 기분이 드나봐. 그걸 제대로 할 수 있을 때까지 자기가 거기에 집중할 수 있게 해 달래.”

“그래? 효재 워커 홀릭이야? 네가 일에 밀린 거고? 이런. 우리 이제이. 자존심 상했겠는데?”

“아니야. 그런 의지도 갖지 못하는 애라면 벌써 질려버렸을 거야.”

“너희는 잘 어울려.”

“너희도 잘 어울렸는데…….”

제이는 일어서면서 시현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한 사람의 존재가 사라지는 순간은 그 사람을 기억해 주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그 사람이 사라지는 순간이래. 우리는 기억해주자.”

“……그래.”

제이가 언덕을 내려가고 제이가 내려간 쪽 바다에서 해일이 일었다.

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시현은 가만히 생각을 집중했다.

주비와 같이 훈련을 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 일이 있은 후에 주비가 말했던 것을 다시 해 본 적은 없었다.

감각을 열고, 다른 생명체의 기관을 빌리라고 했었던가.

시현은 눈을 감았다.

한동안은, 눈을 감기만 하면 정원의 모습이 떠올라서 괴로웠다.

정원은 완전히 어두운 침묵속에 갇혀 있었다.

그 속에서 정원이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느껴져서 괴로웠다.

효재에게 그 이야기를 했을 때 효재는 시현에게 몇 마디 격려를 해 주었고, 신기하게도 그 후로 그 모습이 사라졌다.

효재는 그 모습조차도 주비가 만들어낸 환상이었을 거라고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시현이 괴로워하면서, 자기가 정원을 구해내기 위해서는 괴수의 왕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기를 바라고 그랬던 걸 거라는 효재의 말에 시현도 수긍했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시현은 눈을 감고 저를 둘러싼 생명체들에 정신을 집중했다.

뱀의 내이를 통해 소리들을 듣기 시작했다.

숲 속에서 들었던 것 같은 소리들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그 섬에는 유독 고양이가 많았다.

그러나 고양이만 많은 것은 아니었다.

야생 개도 있었고 노루도 있었고 가끔 늑대나 호랑이도 나타났다.

그곳에 호랑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그 난감함이란.

난감해 하기는 호랑이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았다.

시현은 특출난 능력을 가진 짐승을 찾아서 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시현의 시선이 절벽을 향했을 때 아무렇지 않게 그곳에서 주비가 나오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라는 대목이 가장 중요하다.

그곳이 마치 콜로니의 입구라도 되는 것처럼 절벽에서 그 모습이 그대로 나왔던 것이다.

시현은 이제 놀랄 이유도 없다는 듯이 시큰둥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비는 시현이 그러거나 말거나 곧장 시현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시현은 마침 궁금했던 것이 있었기에 주비에게 물었다.

“내가 원할 때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게 어떤 원리인지 알고 싶어. 내가 내 몸을 떠나서 뱀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잖아. 뱀의 기관을 빌려서 내 몸에 이식하는 것도 아니고.”

시현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묻자 주비가 말했다.

“주군의 몸은 어떤 형태로든 빠르게 진화할 수 있으니까요. 괴수의 왕이 될 수 있는 분에게만 나타나는 특권입니다.”

“지금 괴수의 왕이라는 보빗이라는 녀석도 그런가?”

“그 자는 괴수의 왕이 될 자가 아니었습니다. 주군이 나타나지 않는 긴 세월동안 그 자리를 노리고 있다가 비어있는 자리를 찬탈한 것 뿐이죠.”

“그러면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나 뿐이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럼 내가 호랑이나 그런 것들의 능력을 가질 수도 있나? 내가 날 수도 있는 건가?”

“날개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만들어지면 가능할 겁니다. 날개가 돋아나게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주군께서 원하시면 주군께 없던 것들이 만들어지도록 하실 수도 있어요. 만약에 주군님이 어떤 곤충의 생식기를 갖고 그 곤충처럼 번식을 하고 싶어한다면 그렇게 움직이겠죠. 곤충 중에는 생식기 끝에 갈고리 같은 예리한 침이 달려있는 게 있어요. 그걸로 암컷의 몸 어디를 찌르든 그게 생식관을 흐르고 들어가서 무리없이 수정이 되는 거죠. 번식력에 관한 한 최강이라고 할 수 있죠. 한 번에 낳을 수 있는 수가 그렇게 많지 않은 게 문제긴 한데. 하지만 주군께서는 언제든 사정을 하실 수 있으니까 여러 여자들에게 사정을 하고 씨를 뿌려 놓으면 주군의 개체를 얼마든지 번식시킬 수 있을 거고 그건 강대한 제국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그건. 됐으니까 그 얘기는 그만해줘.”

시현이 소리치듯 말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개체를 번식시키기 위해서 유용한 팁인데요? 저는 신체 능력을 강화하는 것보다 그게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저에게도.”

“그 얘기는 그만하자고. 여기엔 왜 온 거야. 어떻게 온 거냐고는 물을 필요도 없겠지.”

“보빗이 공격했습니다.”

주비는 흡사 그 일이 시현 때문이라는 듯이 원망스런 표정으로 시현을 바라보았다.

“괴수가 괴수를 죽이면 우리한테는 잘 된 일일 것 같군.”

그러면서도 시현은 주비의 몸에 난 상처들을 바라보았다.

웬만하면 옷을 입고 다니면 고맙겠는데 주비는 그럴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도 못했고 시현을 위해서 그렇게 해 줄 마음도 전혀 없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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