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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부. 괴수의 왕
“정원이는 시현이랑 같이 돌아갔고 그 후로도 시현이랑 같이 지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시현이 옆에 있는 사람이……. 괴수라는 말입니까? 아니예요. 오해하고 있는 겁니다. 괴수 차크라를 가졌다면 지연씨가 알아차렸을 거예요. 감응기를 계속해서 보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만약에 정원이가 콜로니 안에 남아있었다면 그 차크라가 감응기에 반응을 했을 겁니다.”
지우가 말했다. 덮어놓고 아키라의 말을 의심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아키라가 하는 말에 헛점이 너무 많다고 생각됐다.
“내가 하는 말을 믿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나는 일단 말은 해 놓은 겁니다. 괴수 차크라를 가졌다는 사실을 숨겨야 했던 기간 동안에는 클랜 A에서도 그 사실을 효과적으로 숨겨오지 않았습니까? 괴수 차크라 대신 감응기에 헌터 차크라가 나타나게 하지 않았냐는 말입니다. 인간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괴수는 왜 안 될 것 같습니까?”
아키라가 말했다.
“예?”
“그 콜로니는 처음부터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겁니다.”
“예? 하지만 그 말에는 허점이 너무 많습니다. 감응기를 통해서 우리는 계속해서 확인을 해 왔잖아요. 안에 정원이가 남아있는 걸 모르고 지연씨가 콜로니가 다 비었다고 확인해 줬을 리는 없어요.”
아키라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콜로니 내부의 모습은 나도 감응기를 통해서 봤습니다. 우리가 끝에 다다랐을 때 거기에는 암석 지대가 있었죠. 감응기에는 그 부분이 없었습니다.”
“그럼. 그 부분만 전파를 차단했을 거라고 보십니까?”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죠.”
지우는 아키라가 하는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을 믿지 않겠다고 고집 부리는 일이야말로 멍청한 짓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키라의 말대로라면 많은 것들이 설명되었다.
“시현이한테…….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걸까요. 그리고 정원이는 어디에서 구해야 하는 겁니까?”
아키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알 턱이 없었다.
***
붉은 머리의 여자는 시현이 지우와 아키라를 부른 것을 알고 화를 냈다.
그러면서도 시현에게 함부로 하지는 못했다.
시현에게 계속해서 자기를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현에게 상처가 될까봐서 지우가 시현에게 말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들이 그 여자의 입에서 다시 나왔다.
시현은 그 여자가 하는 말을 들었다.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 귀에만 들리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시현이 몸부림치는 것을 보면서 효재는 미칠 것 같았다.
자기가 실력이 되기만 했다면 시현에게 이런 일을 겪게 하지 않아도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시현. 우리는 전부 여기에 있을 거야. 네가 눈을 뜨기만 하면 우리를 볼 수 있어. 곧 마스터님도 오실 거고 아키라 아저씨도 오실 거야. 시현아. 우리가 네 편이라는 걸 잊지 마.”
고작 그런 말이나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런 것밖에 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목소리는 시현에게 닿지 않아도 효재의 목소리는 그 모든 소음과 혼란을 뚫고 시현의 귀에 들렸다.
시현에게는 효재가 하는 그 말이 자기가 딛고 올라설 단단한 바위처럼 느껴졌다.
아무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고 같이 싸워주기 위해서 곁에서 버텨주고 달려와 줄 거라는 믿음이 굳어졌다.
‘당신이 라이어 버든가?’
시현이 붉은 머리의 여자에게 물었다.
음성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생각으로 한 것 뿐이었지만 붉은 여자는 시현이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저는 주비입니다.”
‘내가 거절한다면? 당신이 말하는 것들을 내가 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때는 피할 수 없는 살육의 광풍이 휘몰아칠 겁니다. 그때는 우리도 더 이상 늪이나 콜로니 아래에 머물지만은 않을 겁니다.”
‘그동안 그 시스템이 유지됐던 건. 나를 태어나도록 하려고 했던 건가?’
“우리에게는 주군이 필요합니다. 오랜 혼란을 끝낼 유일한 분이시니까요.”
‘당신들에게는 괴수의 왕이 이미 있잖아. 원하는 녀석을 그 자리에 앉히면 될 텐데?’
“그 오랜 시간, 그 긴 싸움이 주군을 위해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약한 것들을 걸러내고 강한 종으로 진화할 수 있었고요. 강한 주군에 맞는 강한 포식자로 우리는 우리를 준비시켰습니다. 이제 주군이 저희를 다스리고 제국을 건설할 땝니다.”
‘내가 원하지 않아.’
주비는 신비로운 웃음을 지었다.
‘정원은 어디에 있는 거야. 콜로니랑 같이 사라진 헌터는 어디로 가는 거지?’
“시스템의 미로에서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
“하지만 주군의 힘으로 되돌릴 수 있습니다.”
시현은 주비를 노려보았다.
“주군이 갖는 힘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주군께서는 모든 생명체에 자유롭게 드나드실 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가진 힘이 필요하시다면 그걸 가지고 사용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내가 괴수의 왕이 되지 않겠다고 해도?’
주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너희들은 까다로운 사람을 상대하게 되겠군.’
“우리는 주군이 저희를 기억해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내가 내 가족과 동료들을 포기하고 너희와 함께 할 것 같은가?’
“주군의 몸 속에 흐르는 피가 주군을 바른 길로 인도할 겁니다.”
‘나는 절대로. 괴수의 왕이 되지 않는다. 나한테는 내 가족과 내 동료들이 있어.’
“사람들은 주군을 버릴 겁니다. 주군이 믿는 사람들조차 그럴 겁니다. 그때 주군은 완전히 혼자 남겨지게 될 겁니다. 저희만이 주군을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주군을 모실 겁니다. 그건 주군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주군이 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될 거예요.”
‘거짓말이잖아. 내가 괴수의 왕이 되지 않겠다고 한다면 나한테 대항해서 싸울 생각이라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하지?’
“저희를 믿으셔야 돼요.”
주비가 말했다.
시현은 고개를 저었다.
“시현아.”
지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현아. 눈 떠볼 수 있겠어?”
시현은 악착같이 눈을 떴다.
주비는 시현을 놔 주려는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시현은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을 느끼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마침내 현실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지우가 그런 시현을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눈을 뜨고, 눈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지만 주비가 아직도 눈 앞에 어린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꿈에서 제대로 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은 느낌에 머리는 한없이 무거웠고 저절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 시현을 바라보는 지우의 가슴은 타들어가기만 했다.
아키라는 자기가 생각했던 일들이 시현에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아빠.”
시현이 지우를 불렀다.
“저한테 무슨 일이 생기는 거예요?”
시현이 지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지우는 가슴이 먹먹해져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시현의 머리를 제 가슴에 끌어 안은 채 머리에 턱을 대고 호흡을 골랐을 뿐이었다.
그의 품에는, 아버지와 함께 있기만 하면 모든 일을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어린 아들이 있었다.
“아무 일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거다.”
지우가 시현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아키라가 시현을 바라보았다.
지우가 시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키라는 지우도 이미 알아차렸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시현의 몸 속에 괴수가 있었다.
그것은 그동안 시현을 도와왔던 시현의 차크라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닥에서 웅크리고 있었고, 새롭게 시현을 장악한 괴수가 점점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야로랑 레오니드, 미하일을 불러줘.”
지우가 무영에게 말했다.
시현은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했다.
잠시 후에 세 사람이 도착할 때까지 지우는 시현에게 일어날 일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키라 아저씨한테도 있었던 일이야. 레이카한테도 마찬가지고. 몸 안에 들어간 괴수를 쫓아버리면 된다. 할 수 있어.”
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은 의심하지 않았다.
야로슬라프와 레오니드가 먼저 도착했고 미하일은 조금 늦었지만 시간 차이가 많이 난 것은 아니었다.
야로슬라프와 레어니드는 시현의 몸을 만져보고 그 안의 차크라가 엄청난 것에 놀랐다.
레오니드는 신입 헌터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가능한한 멀리 가라. 야나를 타고 가. 시현이 몸에서 차크라가 빠져나온 후에 그 차크라가 너희들을 공격할 수 있어. 괜한 호기심으로 주변에서 어물쩡거리다가 일을 만들면 정말로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 가!”
그 말을 듣고 버틸 방법은 없었다.
세 녀석이 시현을 바라보자 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키라는 레이카의 몸에 행해졌던 엑소시즘이 시현의 몸에 다시 행해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자기도 도움이 되고 싶었지만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던 네 사람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나을 거라는 생각에 그는 시현의 손을 잡아 주었다.
“이건 사실 아무 것도 아니야. 진짜로 강한 사람들은 이런 일을 다 겪게 돼 있지. 그리고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진짜 남자가 되는 거다.”
아키라가 시현에게 말해주었다.
아키라가 친절하게 말해주는 것을 들으면서 시현은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
주비의 차크라는 지우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차크라와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지우도 그 사실을 곧 깨달았다.
지우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야로. 레오, 미하일. 안 되겠어. 너희들도 피해.”
“네?”
세 사람은 놀란 표정으로 지우를 바라보았다.
“이 녀석은 너무 강하고 공격적이야. 순순히 떠날 생각이 없는 것 같고 반드시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할 거야.”
“아키라…는요?”
야로슬라프가 물었다.
“그 방면에 관해서는 아키라가 우리 중에 가장 숙련됐다고 할 수 있어. 만약에 일이 잘 안 되면 아키라가 나를 도와줘야 돼. 모두들 건물 밖으로 나가. 차크라를 압살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모두들 이 괴수한테 당하지 않도록 제대로 방어들 하라고.”
지우의 말에 모두들 그곳을 떠났다.
아키라는 시현이 점점 지쳐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빨리 끝내야 돼요. 시현이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시작할게요. 아키라도 조심해요.”
지우는 아키라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고 시현의 몸속에 엄청난 차크라의 압력을 밀어넣었다.
시현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그것이 시현이 내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지우와 아키라 모두 알고 있었다.
시현의 입에서 푸른 연기가 끝도 없이 나왔다.
주비의 차크라가 완전히 빠져나갔을 때 시현은 기진맥진한 채 쓰러졌고 지우가 시현을 안았다.
아키라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빠.”
시현이 지우를 불렀다.
“그래. 끝났어. 다 끝났어. 시현아. 잘 참았어.”
“저는. 괴수의 왕이 되는 거예요?”
시현이 물었다.
“너는 내 아들이다. 나는 괴수가 아니야. 너도 마찬가지고. 너는 내 아들이야. 인간의 아들. 괴수의 왕이 아니야.”
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달 정도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사람처럼 잠을 잤다.
지우가 그런 시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정원이 어디로 사라진 건지, 정원을 찾을 방법도 막막하기만 했다.
제발 시현의 고통이 여기에서 끝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