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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부. 괴수의 왕
자기 팔에서 살이 사라지고 뼈만 보였던 것도 효재가 만들어낸 환상이었겠다는 게 깨달아졌던 것이다. 때마침 효재와 눈이 마주쳤는데 효재는 움찔하면서 시선을 치웠다. 평소에는 그 자식이 그런 식으로 먼저 시선을 치우는 일이 없었다. 현신 고등학교의 그 무력한 효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움찔한다는 건.
“이 자식이!”
무영이 소리를 지르자 효재는 줄행랑을 쳐버렸다. 그렇지만 무영은 효재가 그런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내심 놀라고 있었다. 벌써 눈 앞에 그 성과가 보이고 있지 않은가. 이제 로카리다는 집게 다리 하나만을 가지고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다른 네 쌍의 집게 다리는 그다지 위력적이지 않았다. 공격을 주도적으로 이끌던 첫번째 집게 다리 중 하나가 사라져버리자 로카리다는 스스로도 불안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로카리다가 다른 쪽 집게 다리도 스스로 떼내버리게 만들어. 그러면 용서해준다!”
무영이 효재에게 소리를 질렀다.
“옛썰!”
효재가 손을 이마에 올려붙였다 내리고 로카리다를 향해 다시 공격을 가했다. 그러나 다음 번의 공격은 성공을 하지 못했다. 그 사이에 내성이 생겨버린 듯했다.
로카리다도 바보는 아니었다. 딱 무영 수준의 깨달음을 뒤늦게 얻은 것이다. 자신이 봤던 칸디라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칸디라의 허상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본 후였다. 있지도 않은 칸디라 때문에 스스로 제 집게 다리를 잘라버린 거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기분이란.
화가 머리끝까지 난 로카리다는 신입 헌터들을 바숴버릴 기세로 덤벼들었지만 신입 헌터들은 절대로 만만한 상대들이 아니었다.
제이는 점점 더 괴력이 막강해졌고 이제는 별로 힘을 들이지 않고도 순간적으로 힘을 증폭시킬 수 있었다. 시현처럼 높은 확률은 아니지만 가끔가다 로카리다에게 치명상을 입히기도 했다.
로카리다를 공략하면서 무영은 자신의 독이 로카리다에게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럴 때는 포기도 빨랐다. 이번 레이드에서 영웅이 되는 것은 자신의 역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무영은 로카리다의 체력을 깎아내는데 일조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일찌감치 마음을 정했다. 그래서 무영은 자신의 검을 사용해 로카리다에게 지속적으로 딜을 넣었다.
무영의 실력은 빠른 시간에 부쩍 늘어 있었다. 시현은 그동안 무영을 봐 오면서 무영이 검을 다루는 실력만큼은 굉장히 더딘 발전을 보인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로카리다의 늪에서 보여준 모습은 이전의 모습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정원의 덕이었다.
정원은 훌륭한 선생이었다. 정원이 딜을 가하는 것을 옆에서 계속해서 보면서 그것을 따라 연습을 하다보면 저절로 실력이 늘게 돼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다, 무영이 자기가 본 것을 따라할 수 있는 실력을 갖췄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원은 시현의 그림자 같았다.
정원이 시현의 곁에 서 주기만 하면 시현은 자기의 영역이 그만큼 확장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시야가 넓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기가 보지 못하는 곳을 정원이 봐 주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정원에게 뒷일을 맡기고 대담하게 움직일 수가 있었다.
시현이 로카리다의 다른 집게 다리의 공격을 놓치더라도 정원은 그것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정원에게도 한계는 있었다. 정원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갑자기 공격이 이루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정원은 땅의 진동을 예민하게 느끼면서 거기에 반응을 보였다. 그것은 다른 헌터들이 소리를 듣고 알아차리는 것보다 빨랐기에 다른 헌터들은 정원에게 예지능력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정원이 로카리다의 다리가 움직이기도 전에 먼저 피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를 해 주고 공격을 먼저 막아주었기 때문이었다.
로카리다는 초반에, 존재하지도 않는 칸디라와 혼자서 싸우면서 헌터들의 공격을 피하지 못한 탓에 이미 체력이 반 이상이나 바닥난 상태였다. 신입 헌터라고는 하지만 이미 다들 B급에 오른 헌터들을 상대로 버티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다. 그리고 로카리다가 버티려고 한다고 해서 봐줄 녀석들도 아니었다.
신입헌터들은 이미 마음이 콜로니에 가 있었고 클랜 A가 콜로니의 공략 방법을 알아냈을지 거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더 이상 로카리다를 진지하게 상대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로카리다를 향한 무자비한 공격이 시작되었고, 결국 집중적인 공격이 시작된지 몇 십 분도 되지 않아 로카리다는 바닥에 쓰러졌다.
공략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두들 효재에게 다가왔다. 어떻게 한 거냐고 묻는 시현에게 효재는 로카리다의 눈에 보였을 것에 대해서 얘기해 주었다.
“칸디라라고? 다른 것들이 보이게 만들 수도 있어?”
시현이야말로 놀라서 물었다.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그 괴수들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할 것 같고. 나중에 로카리다하고 천적 관계에 있는 괴수를 늪 아래에서 만나면 그때는 로카리다를 보여주면서 공격을 할 수도 있겠지. 지속 시간이 아직은 짧은 것 같아서 문제긴 하지만. 한 번 통한 공격이 다시 먹히지 않는 것도 문제고.”
효재가 말했다.
시현은 로카리다가 거대한 집게 다리를 들고 딱딱 소리를 내면서 다른 괴수를 향해 돌격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 모습을 환상으로 만들어낸다고 한다면 다른 괴수의 기를 눌러놓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로카리다의 가장 강력한 집게 다리 하나를 영구적으로 불구로 만들어버리고 레이드를 할 수 있게 만든 건 진짜 대단한 거지.”
무영조차도 그렇게 말해 주었다.
“그건 그렇고. 다음에도 나를 상대로 연습하면 죽는다.”
“그래? 그럼 더이상 연습은 못 하겠네? 계속 이러다 마는 수밖에 없겠지. 초반에 잠깐 빛을 보다가 곧 괴수한테 들키고 공격이 무산되고.”
효재가 말하자 무영이 움찔했다.
“나한테 해. 나는 괜찮아.”
시현이 말하자 무영이 고개를 저었다.
“알았어, 인마. 나한테 해. 야. 너. 그거. 내 주위에 자꾸 오크들이 나오는 거. 그것도 네가 하는 거 아니야?”
무영이 갑자기 효재에게 소리를 질렀다.
“오크? 무슨 오크?”
“오크같이 생긴 여자애들이 자꾸 내 주위를 얼쩡거리잖아. 자꾸 말 걸고 상관하고. 그거 다 네가 만든 환상이지? 안 그러면 그런 애들이 건방지게 나한테 접근을 할 리가 없는데. 그래. 맞아. 그랬던 거였어. 너. 다 말해봐. 남의 인간관계를 전부 망칠 생각 하지 말고.”
“아직 사람이 나타나는 환상을 보여주는 건 못 하는데?”
효재가 말했다.
그 표정이 제법 진지했다. 만약에 그걸 시도하고 연습을 계속한다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환상을 만들어서 보여줄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괴수를 상대로 공격을 하는데 그걸 해서 뭘해?”
제이가 물었다.
“클랜 A가 쇄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괴수들도 겁먹지 않을까? 만약에 내가 괴순데 그 모습을 보게 되면 싸울 의지를 완전히 잃어버릴 것 같은데.”
효재의 말에 모두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다. 정말로 그렇기는 하겠다."
무영은 클랜 A가 저를 향해 달려드는 상상을 괜히 해 놓고 어깨를 부르르르 떨었다.
“일단은 나가죠. 바디 펌에도 연락을 해야 하고요.”
정원이 말했다.
다른 경우에는 공대장이 하는 일들을 정원이 맡아서했지만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해야할 일이 생기면 시현에게 부탁했다. 그렇지 않으면 문자나 톡을 주고받아야 했는데 바디 펌에는 그런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
시현이 바디 펌에 전화를 해서 사체 운반팀을 보내달라고 부탁하자 미리 얘기하지 않아서 남는 사체 운반팀이 없을 수도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른 공대의 경우에는 공략을 하러 들어가기 전에 미리 바디 펌에 연락을 해서 공략 후에 사체 운반을 맡아 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클랜 A나 신입 헌터들의 경우에는 공략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다보니 그럴 틈이 없었다.
늪 아래로 내려간다고 해서 그게 언제나 레이드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냥 괴수와 맵을 보고 올라오기만 하는 경우도 있고 해서 내려갈 때마다 바디 펌에 미리 연락을 하지도 않았고 매번 이런 식으로 공략이 다 끝나면 그제야 바디 펌에 연락을 하는 실정이었다.
바디 펌의 사장이 이익헌이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클랜 A와 관련 없는 다른 사람이었다고 했다면 이런 식의 일처리에 대해서 한마디쯤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로카리다의 갑주는 방어증폭률을 높이는데 좋을 텐데.”
정원은 그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우선은 콜로니에 가 봐야죠. 일단 바디 펌에서도 우리 얘기를 접수는 해 놨으니까 로카리다의 갑주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면 다른 헌터들이 투입될 거예요.”
무영이 말했다.
“공략이 끝난 때부터 열 두 시간이죠? 늪이 사라진다는 시간요.”
제이가 물었다.
모두들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늪이 사라지면. 늪이 사라질 때 만약에 그 안에 헌터가 남아있으면 헌터도 같이 사라지는 건가?”
제이가 다시 물었다.
“전에 베로니카 공격대랑 같이 콜로니를 공략했을 때 그랬잖아. 콜로니가 언제 사라질지 몰라서 사람들이 그 안에 남아있는 러프 스톤을 포기하고 나갔던 걸 보면. 그런 식으로 되는 게 아닐까?”
효재가 말했다.
“늪에 갇힌 채로 사라진다면.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무영이 물었다.
갑자기 어쩌다가 말이 그리로 이어진 건가 하면서 헌터들은 잠시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라진 늪에 갇힌 헌터.
괴수조차 사라진 늪에 혼자 남겨진 헌터.
시현에게는 우주를 떠도는 헌터가 상상되었다.
“가자. 서두르자고. 이러다가 우리만 놔두고 다른 분들이 먼저 콜로니에 들어가실지도 몰라.”
무영이 그렇게 말하고 가장 먼저 늪을 떠났다. 그리고 지금 클랜 A의 앞에 서서 재잘재잘 줄곧 떠들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까지 거의 쉬지도 않고 떠들어댄 무영은 생각난 김에 클랜원들에게 물었다.
“늪이랑 같이 사라진 헌터는 어디로 가게 되는 거예요?”
하지만 그 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영은 지연을 바라보았다.
“글쎄다. 나도 모르겠는데? 그러고보니 궁금하긴 하다.”
“콜로니가 사라지는 건 콜로니에 있던 마지막 개체가 공략되고 48시간이 지나서인 거죠?”
시현이 물었다.
“일단 확인된 바로는 그래. 하지만 너무 많은 변칙 때문에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어. 콜로니에는 도대체 통일된 규칙이라는 게 없는 것 같잖아. 헌터들의 입장 수도 그렇고 그 안에 사는 개체의 수도 그렇고.”
지연이 말했다.
“지연이 말이 맞아. 그러니까 공략이 끝나면 최대한 주울 수 있는 러프 스톤만 대충 주워서 빨리 나오는 방법 밖에 없어.”
태인이 말했다.
“공략 방법은 생각해 내셨어요? 여기에도 무서운 녀석들이 많이 있어요? 몇 종이나 있어요? 저희도 약한 놈 몇 종류는 공략할 수 있겠죠?”
무영이 쉬지도 않고 질문을 해댔다.
“제 생각인데요. 효재가 가진 능력은 늪 보다는 콜로니에서 더 쓸모가 있을 것 같아요. 자기를 공격한다고 생각하면 괴수가 다른 괴수한테 덤벼들 수도 있잖아요. 그걸 잘 이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무영은 궁금한 것이 너무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너무 많아서 자기가 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기다릴 수도 없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