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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부. 괴수의 왕
“아직 안 끝났어요? 오래 걸릴 것 같으면 저희는 한 군데 더 돌고 올까요?”
시현이 다가와 물었다.
"의기양양한 걸 보니까 성공이구나?"
레오니드가 다가가며 말하자 제이가 러프 스톤을 케이스에 넣은 채로 레오니드에게 내밀었다.
"이제 얘들이 벌어오는 것도 쏠쏠하네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신입 헌터들 모두 더이상 돈 걱정을 할 일이 없을만큼 벌어대는 중이었다. 효재는 자기가 돈 때문에 걱정을 하던 시절이 언제였는지 생각을 해 보려고 해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한 번의 레이드로 몇 천만원씩이 그냥 떨어지는데 쉴 틈도 없이 계속해서 레이드를 해대고 있으니 돈이 모이는 것은 당연했다.
다른 헌터들은 그렇게 모아지는 돈으로 무기와 장비를 사야 했지만 신입 헌터들의 경우에는 익스트림 헌터와 클랜 A로부터 지원을 받아서 거기에 들어갈 돈도 굳어버리다보니 돈 쓸 구멍은 막히고 돈 들어오는 구멍만 하염없이 커지는 중이었다.
“이번에도 정말 대단했어요. 안 바쁘시면 잠깐 말씀드려도 되나요?”
무영이 들썩거리면서 말했다.
제발 제발 자기가 말할 수 있게 허락해 달라고 조르는 눈빛이었다.
클랜원들은 그렇지 않아도 너무 무거운 문제에 시달리다가 무영을 보게 되니 즐거워져서 대뜸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말해봐라. 누가 활약을 했는지.”
서규태가 말했다.
"무슨 괴수였어?"
세진도 관심을 나타냈다.
"로카리다요!"
무영이 재빨리 말을 하고 클랜원들의 표정을 살폈다. 클랜원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니 괴수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클랜원들은 얼굴에 웃음을 가득 지은 채 감탄사까지 내 주면서 꽤 까다로운 괴순데 어렵지 않았냐고 물었다.
"정말 굉장했어요. 크기도 엄청났고요. 맵도 엄청나게 까다로웠고요."
무영이 허풍을 쳐대자 방금까지 무영과 함께 레이드를 하고 왔던 헌터들은 이 녀석이 자기들과 같은 맵에서 같은 괴수를 공략하고 나온 녀석이 맞는가 할 정도였다. 무영은 그래도 굴하지 않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구체적으로 수치가 나오면 자기가 거짓말을 했다는 게 들통날까봐서 굉장하다느니 엄청나다느니 하는 말만 계속 늘어놓는 중이었다.
“효재한테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효재는 이제 괴수한테 환상을 보게 하는 걸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괴수가 자기 다리를 뜯어냈어요. 집게 다리를요.”
무영이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말을 하자 클랜원들뿐만 아니라 아키라와 레이카도 놀란 얼굴로 무영과 효재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정말이냐?”
이익헌이 물었다.
효재는 모두의 시선이 저에게로 향하자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효재의 요청에 따라서 정신계 공격을 하는 괴수들이 선별되는 경우가 잦았다. 다른 사람들도 효재의 능력이 제대로 발현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공감을 했기에 거기에 따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일단 정신계 공격을 감행해오는 녀석들의 정신 공격을 해제시킨 후에는 다른 녀석들도 무지막지한 딜을 가하면서 싸울 수 있었기에 그런 괴수들이 모두의 훈련 상대로 적합한 면도 있었다.
그렇게 선택된 괴수가 로카리다였다.
로카리다는 얼핏보기에 가재처럼 보이기도 하고 새우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두꺼운 껍질은 가재와 더 비슷했다.
다섯 쌍의 집게 다리가 달려있고 가장 앞에 달려있는 집게 다리의 힘으로 공격을 해 왔다. 그 힘은 상당해서 3급 이상의 늪에서 사는 로카리다는 집게 다리로 헌터의 갑옷을 꿰뚫어 공격을 하거나 신체의 일부를 잘라낼 수도 있었다.
부상을 당하는 헌터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숙련되지 않은 하급 헌터 중에는 간혹 로카리다에게 당하는 일도 발생하곤 했다. 5급 괴수 중에 정신계 공격을 해 오는 괴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낮은 수준의 정신 공격이 가능한 개체들이 간혹 있었고 로카리다가 바로 그런 괴수였다.
효재는 높은 수준의 공격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괴수가 가해오는 정신 공격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겠다는 계획이었기에 자만하지 않고 훈련에 열을 올렸다.
로카리다가 사용하는 공격 방법은 집게 다리를 이용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로카리다는 자신의 늪에 내려오는 헌터들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로카리다가 만들어내는 소리로 인한 거였는데 신경을 살살 긁어대는 통에 레이드에 제대로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투구를 쓰면 그 소리가 차단되기도 했지만 그 소리로부터 몸을 보호하려고 하다가 동료들의 소리까지 듣지 못하는 일이 생겨서 크게 권장되는 방법은 아니었다. 괴수들 중에는 거슬리는 소리를 내서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괴수들이 많았다. 그럴 경우에 정원은 효재만큼이나 막강한 존재가 되어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할 수가 있었다. 그런 소리들은 정원을 공격할 수 없어서였다.
로카리다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일정한 소리로 헌터들을 공격하면 헌터들은 처음에는 혼미해지다가 나중에는 구토를 일으키며 쓰러지기도 했다. 다른 공대는 그것을 감수하면서 로카리다와 싸워야 했지만 효재는 전세를 바꾸었다. 효재는 괴수가 그런 공격을 포기하도록 괴수의 의지를 바꿀 줄 알게 된 것이다.
단순히 소리를 내는 부위를 절단시키는 공격에서, 괴수의 의지를 바꾸는 공격으로 바꾼 것은 큰아버지와의 훈련 이후에 이룬 발전이었다. 효재는 자기가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큰아버지에게서 들었던 얘기를 떠올리면서 시도를 해 보게 되었다.
효재의 큰아버지는 효재의 아버지가 어떤 레이드에서 괴수 스스로 괴수의 다리를 잘라내게 한 적이 있었다는 얘기를 해 주었다. 아마 환상을 이용한 공격이었을 거라고 그는 추측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효재의 큰아버지는 괴수가 자신의 다리에 뭔가가 붙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스스로 다리를 끊어냈다고 했다. 그말을 들었을 때는 진지하게 믿을 수도 없었지만 효재는 그것이 아주 불가능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괴수들에게 사용하기 전에 효재가 깨우친 것들을 시험하는 대상은 언제나 무영이 되었다. 무영에게 자신의 실험 대상이 돼 줄 수 있겠냐고 정중하게 부탁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하면 될 것 같다고 어느 정도 감이 잡히면 무영을 상대로 해서 정신 공격을 감행하는 것이다.
제이나 시현에게 부탁을 한다면 기꺼이 들어주겠지만 그 녀석들에게 그런 고통을 주는 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다. 무영이라고 해서 미운 것은 아니었지만 크게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제 훈련의 결과를 시험해 볼 수가 있었다.
무영은 저한테 자꾸 일어나는 일들이 기가 쇠해서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는 일이 잦았다. 그렇다고 통증을 느끼게 하거나 과도하게 놀라게 하는 것은 아니었고 자기가 보이게 하려는 것들을 보이게 하는 정도였기에 무영도 크게 데미지를 입지는 않았다.
무영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을 때 가장 좋은 점은 무영은 자기가 느낀 것을 여과없이 말한다는 점이었다.
“기가 쇠했나봐. 아까는 내 팔에 뼈만 있는 것처럼 보였어. 당연히 잘못 본 거라고 생각하고 다시 자세히 봤는데 그때도 그렇더라니까? 나는 살을 파먹는 벌레가 있는 건가 해서 한참동안 방을 뒤지고 다녔는데 나중에 보니까는 말끔하더라고.”
그런 식이었다.
한 가지 방법이 모든 괴수에게 통하는 것은 아니었다. 치사율이 높은 맹독을 가진 거미 괴수 레드 바이올린이 다리에 붙어서 맹독을 뿜어내고 있다는 환상을 보여주더라도 어떤 괴수는 거기에 반응을 했고 어떤 괴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환상으로 보여지는 괴수에게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헌터로부터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볼 수는 있었다. 레이드 도중에 괴수가 갑자기 꿈이라도 꾸는 것처럼 헌터들을 바라보지 않고 멍하니 멈춰있다가 공격을 당하곤 하는 것이다.
환상과 환청 같은 것에도 면역력이 생기는지 레이드 초반에는 잘 먹히는 것이 나중에는 먹히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괴수의 체력이 상당히 고갈되어 있었다. 효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효재의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생각했다.
그동안은 그런 정도였다. 괴수의 집중력을 분산시키거나 겁에 질리게 해서 움직임을 둔화시키는 수준에서 그쳤던 것이다. 그런데 로카리다에게는 공격이 제대로 들어갔다.
로카리다는 자신의 맵에 찾아온 녀석들이 아직 어린 티가 풀풀 나는 녀석들인데다 다섯 명밖에 되지 않는 것을 보고 긴장을 풀었다. 긴장했다고 해봐야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을 것이다.
로카리다는 날아오르는 시현의 공격을 맞고 나뒹굴었지만 이내 다시 자세를 고쳐 일어섰다. 그리고 특유의 소음을 만들어 내면서 헌터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려고 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그 다음에 생겨났다.
로카리다의 눈에 칸디라가 들어왔다. 로카리다는 자신의 맵에 왜 칸디라가 들어온 건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로카리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분명히 칸디라였다. 칸디라는 일단 그 기계같은 입을 붙이기만 하면 살이든 뼈든 모두 녹여 흡수해버리는 녀석이었다. 칸디라가 바닥을 기어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더니 로카리다를 노렸다.
로카리다는 더 이상 헌터들에게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칸디라가 붙은 곳이 하필 로카리다의 첫 번째 집게 다리였다. 로카리다는 이제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제 오른쪽 집게 다리로 왼쪽 집게 다리를 마구 긁어냈다. 칸디라가 나가 떨어지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칸디라는 야금야금 로카리다의 껍질을 갉아먹어갈 뿐이었다.
로카리다는 더 이상 집게다리로 소리를 만들어내지도 못했다. 로카리다는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칸디라는 더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이제 껍질은 완전히 사라지고 로카리다의 살이 드러났다. 칸디라는 거기에 작은 머리를 파묻었다. 로카리다는 제 살이 녹아서 흐물거리는 것을 보았다. 로카리다는 미친 듯이 제 집게 다리를 흔들어대면서 칸디라를 털어내려고 했다. 그래도 칸디라는 떨어지지 않았다. 엄청난 힘을 자랑하는 턱으로 로카리다의 집게 다리를 문 채로 계속해서 로카리다의 집게 다리를 녹이고 있었다.
로카리다는 칸디라를 떼내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로카리다는 결국 제 오른쪽 집게 다리를 들어서 스스로 제 왼쪽 집게 다리를 잘라냈다.
헌터로부터 공격을 받은 것과 같지 않게 그것은 영구적인 손실을 가져왔다. 회복되지도 않았고 다시 자라지도 않았다. 로카리다가 갑자기 제 집게 다리를 잘라내는 것을 보면서 헌터들은 처음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로카리다의 행동에서 이상한 점이 보였다. 헌터들은 그게 효재의 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영은 거기에서 희한한 기분을 느꼈다. 기시감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닐 것이지만 다른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무영은 로카리다가, 언젠가 자기가 느꼈던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다. 집게 다리에 무언가가 붙어서 집요하게 저를 공격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로카리다는 아무 것도 없는 집게 다리만 바라보면서 고통스럽게 몸부림을 쳤던 것이다.
무영은 그것이 효재가 만들어낸 환상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 자식을 죽여버릴까 할 정도로 화가 났다. 자기 팔에 보였던 뼈도 효재가 만들어낸 환상이었겠다는 게 깨달아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