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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부. 괴수의 왕
헌터들 중에는 콜로니를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열 명이라는 입장 제한이 없고 콜로니 안에 있는 괴수 중 작고 약한 개체를 공략하는데 성공하기만 해도 러프 스톤을 획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늪보다 공략이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콜로니 안에서 다른 개체들이 협공을 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콜로니 안에서의 전투를 더 선호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새로 생긴 콜로니에서 성과는 좋지 않았다.
러프 스톤을 바라고 들어갔던 사람들이 번번이 패배의 기록만 남긴 채 빈손으로 돌아나오곤 했던 것이다.
클랜 A가 콜로니를 공략하러 들어갈 때 베로니카 공격대가 그랬던 것처럼 함께 들어가서 협업을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아주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그들은 익스트림 헌터 길드 소속이었다. 그런 식으로 하자면 길드 소속이 아닌 헌터들이 거의 없는 실정이기는 했지만 클랜 A도 상급 헌터들의 조력을 받을 기회를 마냥 거절만 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콜로니에 입장 제한이 없다는 생각이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것은 언젠가 베로니카 공격대와 협공을 펼쳤을 때 지연이 추측했던 것과 같은 식으로 진행이 되는 것 같았다. 지연은 안에 있는 개체수에 따라서 헌터의 입장 수가 정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었다. 그 사실을 추측해 낼 수 있었던 것은 시현이 지우를 구한다고 들어갔을 때 세 명의 신입 헌터가 따라 들어간 이후에 다른 헌터들의 입장이 제한돼서였다.
이번 역시 그때와 비슷했다. 얼마나 많은 인원이 들어갈 수 있는지를 먼저 알아보고 계획을 세우기 위해 콜로니에 들어가보았을 때 콜로니가 저절로 닫히면서 더 이상의 헌터들을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다행히 클랜 A와 신입 헌터들은 모두 입장한 후였다. 그게 단순히 헌터의 수로 인한 제한이었는지 클랜 A가 아닌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콜로니의 의지때문이었는지는 알 방법이 없었다.
베로니카 공격대의 공대장인 조위 펠릭스의 말에 의하면 미국에 나타났던 콜로니 중에는 D급 이상의 헌터들에게만 입장이 허용된 곳도 있었다고 했다. 아무튼 새로 생긴 콜로니에는 새로 적용되는 규칙들이 많았던 데다 그게 헌터들에게 알려지기까지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까다로운 것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새로 생긴 콜로니에 대한 탐사를 시작하고 지연은 콜로니의 구성을 알아낼 수 있었다. 새로 생긴 콜로니에 서식하고 있는 개체의 수는 300개가 조금 못 되는 수준이었다. 지연은 감응기에 반응을 천천히 보이는 괴수들이 간혹 존재하기 때문에 이 콜로니에도 300개 정도의 개체가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콜로니의 입구 쪽에 체력이 낮은 개체들이 밀집해 있었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강한 녀석들이 즐비했다.
감응기를 통해 밖에서 먼저 탐사를 하는 동안 서규태는 감응기 화면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때는 거기에 대해서 제대로 얘기할 시간이 없었습니다만.”
서규태가 입을 열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이미 서규태가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 건지 대충 짐작을 했다.
그 일이 있었을 때 그곳에 같이 있지 않았던 지우도 임정을 통해서 그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다. 시현이 콜로니로 들어가자 괴수들의 서열에 변동이 생겼다는 얘기였다.
베로니카 공격대와 콜로니 공략에 같이 나섰을 때 지우를 구하러 시현이 안으로 들어가자 시현이 괴수 중 서열 1위로 표시되는 것을 보면서 다른 헌터들이 지연에게 물었었다. 자기들이 콜로니에 있는 동안 자기들의 서열도 표시가 되었었냐고. 하지만 지연은 그렇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괴수 차크라를 가진 지우나 야로슬라프, 레오니드와 미하일 조차도 그런 표식이 나타나지 않았었다는 얘기였다.
“시현이가 콜로니에 들어가면 이번에도 시현이가 1순위로 등극하게 되는지 그걸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게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서도요.”
서규태가 말했다.
다행히 신입 헌터들은 그 자리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자기들끼리 공대를 꾸려서 한 번의 레이드 경험이라도 더 쌓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어서 그들에게는 쉬는 시간이 거의 없는 지경이었다.
서규태의 말에 헌터들이 일순간 말이 없어졌다.
그러나 임정은,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이는 절대로 괴수가 아니라는 말을 매번 반복하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그걸 매번 주장하는 거야말로 바보같은 짓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시현이는 괴수가 아니예요. 하지만 시현이가 특별한 차크라를 가졌다는 사실도 분명하죠. 그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임정이 말하자 태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 서열이 나타난다면 1등을 하는 게 좋죠. 가장 강하다는 거잖아요.”
“괴수 차크라를 쓰지 않고는 1위가 아닌 게 아닌가?”
이익헌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봐야 알기는 하겠지만 저는 이번에도 시현이가 서열 1위일 것 같아요.”
지연이 말했다.
“콜로니 안에 라이어 버드는 없는 건지 확인할 수 있어요?”
강현이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것이 궁금했다.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라이어 버드였다. 체력이나 공격 방법 때문이 아니라 라이어 버드가 만들어내는 말 때문에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큰 문제로 작용했던 것이다.
“아직 라이어 버드는 발견되지 않았어요.”
지연이 말했다.
‘아직’이라고밖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라이어 버드가 사람 모습까지 흉내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일단 콜로니에 들어가면 얼굴이 보이지 않은 채로 들려오는 말은 믿지 않는 걸로 하죠. 라이어 버드는 없을지 몰라도 라이어 버드와 유사한 방법으로 공격을 할 수 있는 다른 개체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지우가 말했다.
"그리고. 공략에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않는 걸로 하고요."
태인이 말했다.
“이런 질문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아키라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모두가 아키라를 바라보았다.
“만약에 안에 있는 괴수들이 시현이한테 호의적이라면 공격을 멈춰야 하는 겁니까?”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이익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 때문인가 보군요. 괴수가 했다는 말요. 시현이가 괴수의 왕이 되기로 한다면 자기들은 시현이를 위해서 싸울 거라고 했다는 말 말입니다. 하지만 그건 이미 결정이 난 걸로 아는데요? 시현이는 괴수의 왕이 되지 않을 거라고요. 그 말은, 시현이 편에 서게 될 괴수들은 없다는 얘기가 되는 거겠죠.”
“그 일은. 시현이가 직접 결정하게 해야 할 일이 아닌지. 나는 아직도 거기에 의문이 듭니다.”
아키라가 말했다.
클랜원들의 시선이 지우에게 향했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참극의 원인이 자기한테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시현이는 버티지 못할 겁니다. 나는 시현이가 불필요한 책임감을 느끼도록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지우가 말했다.
“괴수의 왕이라는 거. 그게 어떤 건지 마스터도 제대로 알지는 못하는 거잖아요. 오히려 시현이가 그걸 좋아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키라가 말하자 이익헌이 고개를 저었다.
“인류를 전멸시키고 그 엄청난 시신 위에 세우는 제국의 왕이 되는 걸 시현이가 원할 리가 없습니다. 아키라가 시현이를 보게 된다면 그런 의문은 갖지 않게 될 겁니다.”
이익헌이 말했다.
아키라는 일단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의문이 가시지는 않은 얼굴이었다.
자기라면 괴수의 왕이라는 자리에 혹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인류를 전멸시킨다는 거야 극단적인 얘기고, 시현이가 괴수의 왕이 돼서 다른 괴수들을 다스릴 수 있게 된다면 클랜 A나 자기가 원하는 사람들의 목숨은 구명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는 괴수와 인류가 공존을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키라는 괴수의 왕이라는 자리에 관심이 없었지만 괴수의 왕이라는 자리가 카르마 클랜의 클랜 마스터와 크게 다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세상을 다스리는 모든 권력이 자신에게 주어진다고 해서 모두에게 자신의 힘을 내세울 수는 없다. 결국 대리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고 계급이 생겨날 텐데 자기가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을 최상위 계급에 배치를 하고서 괴수와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를 만드는 것도 크게 나쁘기만 할 것 같지도 않았던 것이다.
아키라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별로 없었다.
괴수에 대해서는 호의적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지만 인류가 괴수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그다지 동조할 수가 없었다.
레이카는 아키라의 생각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알았다.
“우리가 시현이의 뜻을 알게 될 방법은 전혀 없는 거군요.”
아키라가 말했다.
“시현이를 알게 되면 시현이가 어떤 생각을 할지도 알 수 있을 겁니다.”
임정이 말했다.
아키라도 결국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이란 녀석에 대해서 제대로 알 기회가 없어서 그런 말을 한 거라고 생각하게 놔두기로 한 것이다.
레이카가 그런 아키라를 보고 혼자서 웃었다.
괴수와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카르마 클랜의 클랜 마스터였던 아키라가 아니라면, 괴수를 결박하고 제압해서 괴수의 차크라를 이용해 클랜을 부흥하게 만들었던 아키라가 아니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인 거라고 레이카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한테는 왜 스카웃 제의가 안 들어오지? 내 아버지도 괴수 차크라를 가진 사람이었는데. 내 어머니가 치유 능력을 가진 헌터가 아니라서 그런 건가?”
아키라는 결국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클랜원들은 약간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레이카가 결국 참다 못해서 혼자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웃을 상황인가 하면서 클랜원들은 레이카를 바라보았다.
자기들이 제대로 된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 맞는 건지, 그 순간에는 짙은 의심이 깔리게 되었다.
“하던 얘기들 계속 하세요. 나는 시현이가 정말로 괴수의 왕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 건지 그걸 알고 싶었던 것 뿐이고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알았으니까.”
아키라가 말했다.
“하나만 물어도 될까요?”
레이카가 말했다.
안 된다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아무도 레이카를 막지 않았다.
“시현이가 괴수의 왕이 되고 싶어한다면요. 그때는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레이카가 말했다.
“그건…….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거예요.”
임정이 강하게 말했다. 모욕을 당했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만약에요. 만약에 시현이가 그렇게 말을 한다고 하면요.”
임정은 지우를 바라보았다.
지우는 고개를 저었다.
생각할 필요가 없는 문제의 답을 찾아내기 위해서 머리를 혹사시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레이카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는 않았다.
모두가 그 이야기가 끝난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그 질문은 오랫동안 각자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시현이가 괴수의 왕이 되기를 원한다면.
하지만 도대체 왜 시현이가 괴수의 왕이 되고 싶어한다는 말인가.
시현의 주변에 시현을 믿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그러면서도 그 의문을 제대로 떨치지 못하고 있는데 마침 시현이 다른 신입 헌터들과 함께 달려왔다. 그 옆에서는 무영이 깡충깡충 투스텝으로 뛰면서 손을 흔들며 오고 있었다.
“5급 괴수를 공략했다고 저렇게 좋아하는 우리 시현이가요?”
강현이 말했다. 아키라에게 똑똑히 봐두라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