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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303화 (30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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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부. 괴수의 왕

호저는 고슴도치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미세한 돌기가 있는 가시가 있어 그것으로 적을 공격했다. 일단 가시가 적의 몸에 박히면 자연스럽게 빠지지는 않고, 가만히 놔두면 계속해서 안으로 들어가 경우에 따라서는 내장이나 심장을 관통당해 죽게 되기도 한다는 말이 전해지는 까다로운 동물이었다.

자연계에서 공격과 방어 능력이 뛰어난 생명체가 있으면 그런 능력을 가진 괴수들이 나타나기 마련이었고 호저의 특성을 가진 괴수도 나타났다. 그 녀석의 특기 역시 가시 날리기였는데 헌터들이 아무리 방패와 갑옷으로 완전 무장을 한다고 해도 호저 괴수의 가시 공격을 완전히 막는 것은 어려웠다.

가시가 언제 어디서든 날아오고 헌터들을 향해 날아간 가시는 금세 빠른 속도로 다시 자라나기 때문에 공략에 여간 애를 먹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정원의 칼이 머금은 차크라가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호저의 가시처럼, 자기가 파고든 괴수의 살 속으로 계속해서 파고드는 것이다. 정원이 칼을 휘둘러 괴수의 몸통을 떨어뜨렸을 때, 처음에는 굉장한 힘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정원과 정원의 무기가 만든 합작품이라는 것을 지우와 임정 두 사람은 뒤늦게 깨달았다. 칼의 절삭력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베어지지 않고 남아있는 조직을 칼에 스며든 차크라가 잘라낸 거였다.

“무기랑 헌터가 저렇게 잘 맞기도 어려울 것 같아.”

지우가 말하자 임정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쪽 상황이 어떤지만 알 수 있으면 계속 보고 싶은 심정이지만.”

임정이 말하자 지우도 고개를 끄덕이고 전력으로 달려들어 아르마딜로를 해치웠다. 아르마딜로 괴수를 쓰러뜨리고 러프 스톤을 챙긴 임정은 다른 쪽 괴수도 러프 스톤을 떨어뜨렸을지 궁금해했다.

아르마딜로가 쓰러지자 허상이었던 괴수도 단 번에 사라졌다. 그야말로 허무하다는 말 말고는 생각해낼 수 있는 말이 없을 정도였다. 강현이 다른 헌터들을 데리고 달려왔다.

“러프 스톤은? 있었어?”

임정이 묻자 강현은 러프 스톤이 없었다고 말했다.

“힘만 잔뜩 쓰고. 뭔가 사기당한 기분이예요.”

강현이 말했다.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우와 강현이 조용히 임정에게 다가갔다.

“하정원씨. 되겠어?”

지우가 물었다. 임정도 지우의 질문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지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임정이 치유 차크라로 정원의 청력을 회복시킬 수 있겠는지를 궁금해하고 있었다.

“시도는 해 보려고요. 하지만 확답은 못해요.”

“써전님 다리도 고쳤잖아요, 누나는. 다치신지 정말 오래 됐었는데도 말이예요.”

강현이 말했다.

정원은 레이드가 끝난 후에 극도의 피로감을 느꼈다. 괴수에게만 집중을 하면 되는 게 아니었다. 너무 많은 사람의 입술을 봐야했다. 그리고 정원은 지금 임정과 지우가 하는 말을 보았다. 그들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지만 계속해서 보고 있으려니 자기를 고쳐주겠다는 말인 것 같았다.

정원은 마음이 급해져서 시현에게 다가갔다.

“나를 고쳐주신대요.”

정원이 시현에게 말했다.

“엄마가요? 엄마가 정원씨한테 그랬어요?”

시현이 물었다.

“나한테 말씀하신 게 아니라. 말씀하시는 걸 봤어요.”

“아. 멀리 있어도 입 모양이 보이니까. 아마 엄마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시현 역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럼 정말 좋겠네요.”

임정은 정원이 자신의 입모양을 보고 미리 알게 됐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된 이상 뒤로 미룰 수가 없었다.

늪을 나가서 임정이 정원에게 치유 차크라를 쏟아 부었을 때 주위에는 기대에 찬 사람들이 가득했다. 시현은 엄마가 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임정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지우도 뭔가가 잘못 됐다는 것을 알았다.

임정은 고개를 저었다. 정원은 드디어 다시 들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가 임정의 얼굴을 보고 절망했다. 실망이 얼마나 컸으리라는 것을 가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임정이야말로 충격을 받았다. 자기가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탓이었다.

“써전님한테도 됐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왜 안 되는 거죠? 단순히 너무 오래 전에 다쳐서 그런 거라고 말하기에는 이상하잖아요.”

임정이 지우에게 말했다.

“그때가 특이한 케이스였던 건지도 몰라. 이 상태로 오래 고착돼서 어려운 건지도 모르지.”

지우가 말했다. 정원은 말할 수 없이 실망한 표정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임정을 탓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임정은 괜히 정원을 기대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면서 미안해 했다. 정원은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시현이 정원을 위로해 주었다.

"지금도 잘 하고 있잖아요. 너무 실망하지 말아요."

“들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 상태에서 더 발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정원이 밝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하며 말했다. 임정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정원씨 말이예요. 아르마딜로와 효재가 있는 곳은 어떻게 안 거죠?”

강현이 물었다.

그 말에 다른 사람들도 뒤늦게 의문을 품었다. 정원은 그 대답을 해야 할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저는 땅의 진동으로 느껴요. 땅의 진동을 통해서 멈춰있는 생명체의 위치도 알 수 있고 움직임도 느낄 수 있어요.”

“뱀이 내이를 이용해서 하는 걸 하는 것 같은데요?”

강현이 말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지 못한다는 걸 빼면 레이드를 하는데 특별히 무리가 없기는 하겠는데?”

임정이 말했다.

“정말로 그럴까요? 콜로니 같은 곳에서도 레이드를 하고 싶어요. 하지만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정원이 말했다. 지우는 고개를 갸웃거리기는 했지만 어렵기만 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늪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이 정도의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나요?”

임정이 물었다.

“아뇨. 그랬다가는 너무 지칠 걸요?”

“땅을 전해오는 진동으로 위치를 파악하는 것도 차크라를 사용해서 하는 거예요?”

강현이 묻자 정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무한정으로 각성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얘기인 거네요. 레이드를 하는 동안에는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요?”

임정이 묻자 정원은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꼭 콜로니에서 레이드를 하고 싶었다. 그것은 정원이 소리를 잃은 이후에 점점 더 간절한 소망이 되었다. 자기가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정원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부상에서 회복하고도 청력을 다시 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 정원을 다시 일어서게 해 준 것은, 정원이 헌터가 된 이후로 한곁같은 믿음을 보여 주었던 정원의 칼과 정원의 차크라였다.

소리를 듣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과 집중에 차크라가 반응을 보였다. 땅을 통해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을 정원에게 알게 해 주었고 그것으로 괴수와 헌터들의 움직임을 알게 해 주었다. 움직이지 않고 있는 생명체의 위치도 알 수 있었다. 호된 노력의 결과이기도 했지만 정원은 그것이 차크라가 자기에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잘 됐네요. 앞으로 신입 헌터들을 호되게 밀어붙일 사람이 필요한데 우리는 아직 다들 여기저기에 묶여 있는 신세여서 그 일들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거든요. 정원씨가 블레이드 공격대랑 문제가 좀 있는 것 같다고 하던데. 이참에 공대를 정리하고 클랜 A 일을 도와주는 건 어떻겠습니까? 우리 신입들 훈련을 부탁하면 봐 줄 수 있겠습니까?”

지우가 말했다.

그런 말은 사전에 상의라도 좀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혼자 내린 결정이었다.

모두의 눈에 놀란 빛이 가득했다. 임정마저도 정말 그럴 생각이냐고 물으려는 표정으로 지우를 바라보았다. 지우는 모두를 향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그의 시선은 신입 헌터들을 향했다.

“이제 너희들은 현신 헌터 아카데미 소속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지금은 소꿉놀이를 하면서 평화롭게 유년기를 보낼 수 있는 시절이 아니니까. 지금 실력으로는 아무 것도 못 해. 당장 콜로니나 1급 늪에서 너희가 뭘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지우가 말했다.

이건, 이제 막 태어나서 뒤집기를 하고 있는 어린 아기한테 왜 논문 주제를 아직 정하지 않았냐고 다그치는 것보다 더 황당한 경우였다. 그러나 임정과 강현은 지우가 그렇게 서두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임정이 의문을 가진 것은, 과연 하정원이 최선인가 하는 점이었다. 자기들이 여기저기에 묶여 있는 몸이라서 그곳 일들을 정리하고 자유 신분이 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정원보다는 나은 사람을 물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다못해 현신 헌터 아카데미의 교수들 중에 뽑는다고 해도 하정원보다는 나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우는 제법 단호했다.

“하긴. 차크라로 무기와 하나로 이어지는 걸로 말하자면 우리 중에서도 하정원씨를 따를 만한 사람이 없을 것 같긴 해요. 그리고 하정원씨는 헌터 차크라를 가지고 차크라의 도움을 받아서 자기한테 허락되지 않은 영역의 능력을 갖게 된 거고요.”

강현이 말하면서 하정원에게 헌터 타투를 볼 수 있겠냐고 물었다.

"네."

하정원은 자신의 헌터 타투를 보여주었다. 차크라등급과 차크라 운용능력이 1등급에 100퍼센트였다. E등급 딜러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수치였다.

“이 정도면 차크라 운용에 관해서만큼은 거의 지우 형 수준이예요. 지우 형도 처음에 이랬잖아요. 하긴. 지우 형은 F등급일 때 벌써 차크라 등급이 1등급이었나?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애들이 차크라를 다루는 기술을 습득하는 거잖아요. 나는 나쁜 생각이 아닌 것 같아요.”

강현이 말하자 임정도 그제야 이해를 하는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훈련이 마쳐졌다고 생각되면 그 다음부터는 너희를 데리고 줄곧 레이드를 할 거다. 그때는 쓰러질 각오를 해야 될 거야. 경험치를 쌓고 등급을 올릴 거거든.”

지우가 말했다. 드디어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한 건가, 하면서도 그런 말을 적어도 자기하고는 사전에 나눴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해서 임정이 지우를 노려보았다. 지우는 임정이 자기를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선을 피하기만 할 뿐 별다른 항변을 하지 못했다.

지우로서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거야말로 딜레마였다. 시현이 빨리 스스로 강해져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하려면 시현의 등급을 올려주고 시현의 기본 스텟들을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시스템의 영향을 받는 괴수들은 여전히 헌터의 기본 공격력에 의해서 좌우되었다. 기본 공격력이 어느 정도 갖춰져야 괴수에게 데미지를 입히고 괴수의 체력을 차감해가면서 괴수를 쓰러뜨릴 수 있는 건데 지금의 신입 헌터들은 F등급 딜러의 기본 공격력 200으로 병아리 눈물만큼씩 괴수의 체력을 차감하는 게 고작이었다. 공격 증폭률을 높인 무기의 사용으로 공격력을 높일 수는 있었지만 등급을 올려 기본 공격력이 높아진다면 무기의 공격 증폭률의 지원을 받았을 때 훨씬 큰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익스트림 헌터에서 제공되는 무기의 공격 증폭률이 이제 천 퍼센트를 거뜬히 넘어가고 있는 실정이었기에 기본 공격력을 200에서 400으로 높이기만 해도 2000이 넘는 공격력 상승의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문제라면 시현이 가진 괴수 차크라가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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