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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298화 (298/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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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부. 괴수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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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의 일상은 단조롭다. 헌터 아카데미의 학생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현신 헌터 아카데미 1학년 헌터들의 주위에서는 늘 사건과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제이와 효재는 이제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자타공인 세기의 닭살 커플로 등극했다. 효재는 언제나 어디서나 제이에 대한 애정 표현을 가리지 않았다. 그런 것을 보고 있노라면. 웃기지도 않았다.

효재가 제이에게 키스하는 걸 보면 무영은 남자끼리 그러는 거 아니라고 근엄하게 말해주고 제이에게 얻어맞았다. 그런 무영을 보면서 시현은 무영이 메조키스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말을 하면 맞을 거라는 걸 알면서, 그것도 아주 센 주먹에 아주 진지하게 맞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 말을 매번 하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제이의 괴력은 점점 더 강해졌지만 안타깝게도 무영은 그 쪽으로의 발전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였다. 맷집도 늘지 않았다.

서문열은 무영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을 생각을 진지하게 하고 있었다. 무영은 서문열이 알고 있는 지식을 모두 습득한 것은 물론이고 독을 가진 괴수들의 공격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 가고 있었다.

무영은 때에 따라서 혈관독과 신경독을 같이 주입해 공격을 하기도 했다. 혈관독은 혈관을 타고 흘러 들어가 혈구를 파괴해서 생명체를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무영의 독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혈관벽을 녹이고 그 주위의 장기를 녹이다가 내부를 전부 썩게 만들고 피부까지 썩어 문드러지게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성공을 거둔 것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쥐같은 작은 동물에 한정되었지만 실력이 빠르게 늘고 있었기 때문에 괴수에게도 그 공격을 성공시킬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신경계를 마비시키는 신경독의 경우에는 혈관독보다 훨씬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돼서 공략이 까다로운 괴수를 상대할 때 무영이 신경독을 주입해 다른 헌터들에게 공격 기회를 만들어주는 일이 종종 생겼다. 그런 면에서 무영은 딜러보다는 탱커같은 역할을 하는 헌터였지만 자신의 독으로 괴수를 무력화시켜 놓은 후에는 무영 자신도 얼마든지 무기로 딜을 가할 수가 있었다. 말하자면 딜과 탱킹을 전부 맡아서 하는 살림꾼 같은 역할이었다.

클랜 A의 클랜원들은 제이와 무영이 서로 뒤바뀐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괄괄한 무영은 독으로 괴수를 마비시키고 조신한 제이는 괴력으로 괴수를 압살하고 있으니 이미지의 충돌이 꽤 크게 일어났던 것이다.

효재는 정신 공격을 가하는 괴수를 만나지 않는 동안은 그저 평타를 칠 뿐이었다. 하지만 일단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는 괴수를 만나기만 하면 얘기가 달라졌다. 클랜 A에서도 정신 공격의 방법을 쓰는 괴수를 만나게 되면 일단 덮어 두었다가 효재를 호출했다. 효재가 나서기만 하면 레이드가 간단하게 풀렸기 때문에 괜히 애를 쓸 필요가 없었다.

정신 공격을 가하는 괴수들의 공격은 거의 얼굴 쪽에서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효재의 공격이 효과적으로 들어가질 않아서, 괴수의 정신 공격에 혼자 면역력을 가지고 있다는 대단한 장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싸울 수 있도록 괴수의 공격을 차단해 주어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단 몇 초라도 괴수를 묶어둘 수 있어야 했다. 그게 되지 않는 동안은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가 제이와 시현에게서 특훈을 받은 덕에 이제는 그럭저럭 쓸만한 타격 기술도 배우게 되고 나름대로 필살기라고 할 수 있는 기술도 터득하게 돼서 클랜 A나 다른 헌터들에게 힘을 보탤 수 있게 되었다.

효재 입장에서는 정신 공격을 하는 괴수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신입 헌터들은 이제 그게 별 상관이 없게 되었다. 무영만 하더라도, 이제 독을 쓰는 괴수를 방어하는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독을 사용해 공격을 할 수도 있게 되어서 특별히 상대를 가리지 않게 되었다.

헌터 아카데미의 과정이 갑자기 타이트해졌지만 신입 헌터들이나 다른 아카데미 학생들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곧 지각변동이 일어날 거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클랜 A를 포함한 소수의 몇 명 뿐이었다. 윤해민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지우로부터 들은 얘기는 아니었고 해민의 프레딕터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해민의 고민은 계속해서 깊어졌다. 시현을 좋아하는 마음과 별도로, 자기가 시현의 곁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프레딕터가 보여주는 장면 중에 해민에게 확신을 주는 장면은 없었다. 시현은 늘 괴수와 싸웠고 늘 위험했고 위기를 겪었다. 시현과 같은 길을 걷기로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민은 알고 있었다.

어느날 해민으로부터 편지가 날아들었다. 시현은 해민이 남긴 짧은 문구들을 오랫동안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사람들은 네가 만든 길에 너와 함께 가려고 할 거야. 너는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드는 사람이야. 너를 많이 좋아했지만 우리가 함께 하는 건 여기까지야. 너에게 행운이 항상 함께 하길 빌어. 아니. 그건 내가 알아. 너한테는 언제나 행운이 항상 함께 할 거야. 이제 와서 이렇게 말하는 건 미안하지만. 너를 많이 사랑했어.]

시현은 편지를 찢으려다가 그냥 몇 번을 접어서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 두었다. 편지를 찢는다고 마음이 정리될 것 같지는 않았다.

시현이 심란하다는 것을 알고 제이가 술을 사겠다고 제안했다. 다음날이 쉬는 날이기는 했지만 언제 갑자기 호출이 올지 몰라서 너무 많이 마시는 건 헌터 아카데미 차원에서 금지되어 있었다. 그렇긴하지만 간단히 몇 잔 정도 하는 건 상관없는 것 아니겠냐고 하면서 제이가 신입 헌터들을 충동질했고 무영과 효재도 시현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해서 시현을 술집에 억지로 끌고 나갔다.

네 사람 모두 술을 즐겨 마시지 않는 편이어서 호프가 어색했고 어디가 어떻다는 정보도 거의 없어서 그냥 간판이 가장 얌전한 곳으로 골라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간 곳에는 현신 헌터 아카데미 선배들도 있었고 다른 헌터들도 있었다. 아는 사람들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조용한 곳에 들어가 술을 마시는데 합석을 해도 되겠냐는 요청이 몇 번 들어왔다.

신입 헌터들이 클랜 A와 콜로니 공략을 하고 왔다는 것이 이미 널리 퍼져 있어서 현신 헌터 아카데미의 선배들은 어떻게라도 그들과 얘기를 하고 친분을 쌓아두고 싶었던 것이다. 제이는 그때마다 정중하게 거절했다. 친구에게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기분을 풀어주러 온 거기 때문에 오늘은 조용히 마시다가 가고 싶다고 말을 하자 모두들 이해를 해 주었다.

시현은 그 자리가 자기를 위해서 마련된 거라는 건 알았지만 자기가 꼭 위로받아야 하는 상태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무영은 그런 자리를 마련해 준 사람들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우울한 척 좀 제대로 하라고 핀잔을 주었다.

“그래. 한 사람한테 두 번 차일 줄은 몰랐어.”

시현이 중얼거렸다.

“이제 다시 못 만나다고 생각하니까 우울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너희들이 이렇게까지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어쨌거나 신경써 줘서 고마워.”

시현이 그렇게 말을 해도 이런 일은 한 잔 쭉 마시고 잊어버리라면서 다른 녀석들이 계속해서 시현의 잔에 술을 들이부었다.

“너. 이이제이라는 말 알아, 몰라. 이제이 말고. 이이제이. 오랑캐를 오랑캐로 통제한다는 거. 응? 떠난 여자를 잊으려면 다른 여자를 만나야 되는 거야. 어? 이럴 때 쓰라는 말 맞지. 이제이? 응? 맞아, 안 맞아?”

혀 꼬부라진 소리로 무영이 말을 하는 동안 효재는 술에 취한 채 제이의 목에 얼굴을 파묻기에 바빴다.

“하아, 이 자식들! 야. 그거나 말해봐라. 너희들 했어. 안 했어. 어?”

무영이 효재와 제이를 노려보며 물었다.

“우리가 너한테 그걸 왜 말해?”

효재 역시 만만치 않게 꼬부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너희를 모르냐? 백년 만년 서로 간만 보는 거 아니야? 어?”

무영이 떠들어대는 것을 듣다가 시현이 의자를 드르륵 끌면서 일어서자 무영이 시현을 바라보았다.

“왜? 어딜 가려고?”

“화장실. 오줌 싸는 것도 일일이 보고를 하고 가야 되냐?”

“당연히 보고하고 가야지. 화장실이 어딘 줄은 알아?”

“몰라. 나가면서 물어보면 되겠지.”

앉아있을 때는 알지 못했는데 일어나고 보니 꽤 취한 듯했다.

시현은 화장실이 있다는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이 좁았다. 계단을 올라가 화장실에 들어가자 머리를 묶은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 죄송합니다!”

시현은 얼마나 놀랐는지 얼굴이 달아오른 채로 후다닥 문을 닫고 나왔다. 그런데 문을 닫으면서 보니 그곳이 남자 화장실이었다. 시현은 노크를 했다.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생각하며 기다리는데 영 사정이 좋질 않았다.

“죄송합니다만. 여기가 남자 화장실이거든요.”

시현이 안에 대고 말했지만 아무런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오래 걸린다는 게 무슨 뜻이라는 건지 알 것 같아서 조금 더 버티려고 노력을 하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한계에 다다랐다.

“저기요. 정말 미안한데요. 어떻게든 해 주셔야겠는데요?”

안에서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여자는 안에서 일을 볼 거고 자기는 밖에서 볼 거니까 크게 부딪칠 문제는 없는 것 아닌가. 게다가 화장실을 잘못 찾아온 사람은 여자였으니.

그런 생각으로 화장실에 들어가자 여자가 거울을 보면서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황당해졌다. 밖에서 그렇게 급하게 소리를 쳤는데 고작 화장을 고치고 있다는 것 때문에 화가 났다.

“이봐요!”

시현이 소리를 지르자 여자가 시현을 바라보았다.

“혹시 저한테 말했어요? 미안해요. 청각 장애가 있어서 듣지 못해요. 그런데 왜 여기에 계세요? 여기는 여자 화장실인데요.”

여자가 말했다. 시현은 자기가 오해했다는 게 미안해서 소리지른 것에 대해서 사과했다. 그러자 여자가 웃었다.

“소리지른 것에 대해서는 사과 안해도 돼요. 어차피 못 들었거든요. 그런데 여기에서는 나가 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여자는 여전히 그곳이 여자 화장실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시현은 갑자기 신호가 급하게 와서 여자의 어깨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시현의 입술이 보이지 않자 여자는 시현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졌다. 수화를 하지 않는데 알아듣는 것을 보면 입술을 보고 알아듣는 구화를 하는 거였다. 여자가 고개를 돌려서 시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긴 남자 화장실이예요. 네. 미안하겠죠. 괜찮아요.”

시현은 여자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는 것을 보면서 여자를 밖으로 밀어내놓고 변기를 뚫을 듯이 세차게 소변을 보았다. 몇 초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서서 요의를 해결하고 지퍼를 올리고 돌아서자 거울 앞에 여자의 작은 파우치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어!”

먼저 가버린 것은 아닌가 해서 파우치를 챙겨 밖으로 나가자 여자가 서 있었다. 파우치 때문에 가지 못하고 기다렸던 건지, 여자는 시현이 파우치를 들고 나오는 것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그러다가 자기가 저질렀던 실수를 깨달았는지 꾸벅 고개를 숙이면서 사과를 했다.

“실례했습니다. 제가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했어요.”

여자가 말했다.

“아니예요. 그럴 수도 있죠. 화장실에 그려진 사람이, 성 정체성이 정확하지 않게 그려지긴 했네요.”

시현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여자를 두둔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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