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97 / 0331 ----------------------------------------------
11부. 콜로니
“그대로 해 줘.”
해민이 속삭였다. 시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해민의 위에서 힘차게 허릿짓을 했다. 고르지 않은 신음 소리와, 한층 두터워진 마찰 소리. 시현은 제 정액으로 해민의 안이 채워진 것을 만족스럽게 느끼면서 그 안에서 몇 번을 더 드나들었다. 지걱거리는 소리가 시현을 자극했고 그 소리를 듣는 것으로 방금 사정을 마친 페니스가 다시 발기했다. 해민은 물 속에서 너무 오래 숨을 참은 사람처럼 헐떡거렸다. 시현은 페니스를 빼내 해민의 입속에 넣었다.
급히 숨을 갈구하던 해민의 입은 열렬하게 시현의 페니스를 빨아댔다. 갑자기 찾아온 사정으로 시현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뺀다고 뺐을 때는 이미 상당한 양이 해민의 목구멍으로 넘어간 후였다. 시현이 미안한 표정으로 빼냈을 때 해민의 입술에서 정액이 흘러나왔다. 시현은 크게 한숨을 쉬면서 해민의 옆으로 누웠다.
“너 그러다가 떨어져.”
해민이 재빨리 붙잡아 주면서 웃었다. 소파는 생각보다 좁아서 해민이 잡아주지 않았으면 정말로 바닥에 굴렀을 뻔했다. 시현은 해민의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얼굴에서부터 허벅지에 이르기까지 쉼없이 입을 맞추고 혀로 핥았다. 가끔은 크게 베어물고 머리를 흔들어대기도 했다.
“다시 와도 되는 거죠?”
“안 된다고 하면?”
“그냥 물어본 거예요. 예의상. 안 된다고 해도 올 거예요. 싫었으면 이런 걸 맛보게 하면 안 되는 거죠. 그건 너무 잔인하잖아요.”
“집에 같이 갈래?”
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숙사에 안 들어가도 돼?”
“애들이 문 열어줄 거예요. 헌터 아카데미에서 문을 잠그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나. 너무 퇴폐적으로 보이지 않아?”
“퇴폐적이고. 세기말적이고.”
해민을 가득 끌어안으면서 시현이 말했다.
“가자. 나는 배고파.”
“저도요.”
해민이 기습적으로 시현의 목을 끌어안고 키스를 해 왔다. 시현은 그럴 때 문득문득 느껴지는 해민의 감정이 좋았다. 시현이 옷을 입는 동안 해민은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얼굴을 어떻게든 수습해 보려고 했다. 일단 주차장까지 가는 동안은 멀쩡한 얼굴이어야 했다.
해민은 티슈로 정액을 찍어내면서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정신 나간 거야. 미친 거야.”
그러면서도 후회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는 아카데미 안에 있는 교직원 아파트에 살았는데 옆방 교수가 항상 남자를 데리고 와서 응응거려서 나가서 새로 집을 구했어.”
“잘 됐네요.”
“잘 된 거야?”
“잘 된 거죠. 오늘 얘가 몇 번까지 서고 몇 번까지 싸는지 볼 거예요.”
시현이 제 페니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야말로 퇴폐적이다.”
“퇴폐적인 게 아니라 당연한 거예요. 이제 스무살인데요? 그동안 전혀 방탕하게 굴지도 않았고 순정을 지켜왔다고요. 훈련도 열심히 했고 레이드도 열심히 했고 그냥 할 때 빡 하자는 거죠.”
“빡……. 그래. 내가 애 데리고 잘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이제 절대로 애가 아니라는 걸 알았을 텐데요? 아직 모르겠다면 있다가 제대로 알려줄게요.”
“많이 건방져졌네.”
“더 건방져질 수도 있어요.”
치기 어린 자신감으로 붕 뜬 것 같은 시현을 보면서 해민은 고개를 저었지만 웃음이 나오는 것까지 어쩌지는 못했다.
해민의 집으로 가는 동안 시현은 해민에게 그동안 하지 못했던 얘기를 전부 쏟아 놓았다. 그럴 때마다 해민이 지은 표정은 이미 들었던 얘기를 한 번 더 듣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면 시현은, 그것도 프레딕터가 알려준 거냐고 뒤늦게 물었고 해민은 그렇다고 말해주곤 했다. 그래도 해민은 시현이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는 것을 좋아했다.
객관적인 사건의 보도 같은 게 아니라 시현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느꼈는지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시현은 제이와 효재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를 했고 특히 무영에 대해서 말을 할 때는 거친 욕을 섞어가면서 웃음을 멈추지 못한 채 말했다.
“그 새끼는요. 그냥 미친 놈이예요. 우리는 고등학교 때부터 서로 알아왔잖아요? 그러면 놀랄 일이 더 이상 없을 것 같기도 한데 이 새끼는 매일매일 새로운 똘짓을 우리한테 선보여서 빡치게 만드는 거죠.”
“그래도 무영이를 좋아하잖아.”
“좋아해요? 좋아하는 건 아니죠. 어. 인내한다고 해야 되나?”
“사실은 그렇지도 않잖아.”
“뭐. 교수님이 그렇다고 하시면 그런 거겠죠. 하긴. 그렇게 싫었으면 벌써 발로 차버렸을 거예요. 방에 못 들어오게 어떻게든지 대책을 세웠을 거고 정 안 될 것 같으면 삼촌한테 가서 걔를 퇴학시켜 달라고 사정이라도 했겠죠.”
“삼촌은 언제나 준비돼 있는 분이니까.”
“그렇죠.”
해민과 시현은 같이 웃었다.
“시아는 어떠니?”
해민이 물었다.
“시아요? 시아가 뭐요?”
“네 감정. 시아에 대한.”
“에에? 걔는 완전 어린 애예요.”
“영원히 그런 건 아니지. 네가 지금 증명하고 있잖아.”
“에에에이. 그래도 시아는. 아니죠. 걔는 아직 어려요.”
“제이는?”
“제이는 아주 좋은 남자 친구 같은 애죠. 저는 이성애자고요. 교수님. 혹시 질투하세요, 지금?”
“누가 질투를 한 대?”
“오오오오오! 그래도 교수님도 할 건 다 하시는구나. 질투도 하시고 프레딕터 안테나 세워서 내 소식도 계속 체크 하시고.”
“네가 이렇게 시끄러운 앤줄은 처음 알았어.”
“제가 시끄럽다고요? 제가 얼마나 과묵한 앤데요. 아. 제가 무영이 얘기 했던가요? 그 녀석, 차크라에서 독을 뿜더라고요. 독을 흘려 넣어서 괴수를 공격해요. 그런 헌터에 대해서 들어보셨어요?”
“독성학 교수님이 예뻐하시겠다.”
해민이 웃으며 말했다.
“네. 그래서 요즘에는 개인 교습을 해 주시더라고요. 나 진짜 시끄러운 애 아닌데. 근데 너무 오랜만에 만나니까 어쩔 수가 없는 거잖아요. 주말마다 와도 돼요?”
“주말마다?”
“안 돼요?”
“글쎄.”
“그건 되는 거예요.”
해민은 자기가 시현에게 이렇게 계속 빠져도 되는 건지 걱정이 됐다. 시현의 미래를 감당할 수 있을지. 그런 해민의 손 위에 시현의 손이 올려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눈빛으로 시현이 해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많은 걱정으로 이 시간을 망치고 싶지는 않아요. 레이드를 하면서 생각한 거예요. 내일이 있다고 장담하는 거야말로 멍청한 짓인 것 같더라고요. 내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사랑한다고 말할 거고 내가 원하는 걸 가질 거예요.”
시현이 말했다.
“많이 변했네.”
시현의 얼굴을 만지면서 해민이 말했다.
“그때는 내일이 당연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할만큼 멍청했던 거죠.”
***
오늘이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현과 해민은 몇 번이나 서로에게, ‘우리, 너무 전투적으로 사랑하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해민에게 말을 놔야겠다고 몇 번이나 생각을 하고도 교수 연구실이라는 장소적인 특징 때문이었는지 그곳에서는 끝내 말을 놓지 못하다가 시현은 드디어 말을 놓는데 성공했다.
해민은 말을 놓고 싶다는 시현의 말을 몇 번이나 금하더니 나중에는 그것도 그냥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면서 허락을 해 주었다.
벌거벗은 채로 요리를 하는 시현을 보면서 해민이 다가와 에이프런을 목에 걸어주고 허리 뒤에 끈을 묶어 주고 소파에 가서 한없이 시현을 바라보았다.
쿵쿵거리는 음악에 몸을 맡기고 리듬을 타는 시현을 보는 해민의 얼굴에 갈등이 깊어졌다.
사랑하고 싶었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사랑하고 싶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시현은 가끔 해민을 바라볼 뿐 무슨 생각을 하냐거나 하는 질문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걱정으로 이 시간을 망치고 싶지 않다는 말이야말로 시현의 진심일 거라고, 그것이야말로 시현이 해민에게 바라는 걸 거라고 생각하면서 해민이 일어서서 시현에게 다가갔다.
시현의 등 뒤에 가만히 얼굴을 묻고 시현을 끌어안는 해민의 손길을 느끼면서 시현이 주춤했다.
“나머지는 내가 할게. 더 기다리다가는 내가 배고파서 죽겠다.”
분위기를 애써 띄우려는 해민을 바라보고 시현이 웃었다.
“애쓰지 않아도 돼.”
시현이 말했다.
“응?”
“혹시 내 결정으로 다른 사람이 상처받게 된다고 하더라도. 어떨 때는 그것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있잖아.”
“왜 그런 말을 하는데?”
“그냥. 오늘은 생각나는대로 다 말하고 싶어서.”
“왜? 다시는 못 보게 될 것 같아서?”
“꼭 그래서 그런 게 아니라. 뭐랄까. 오늘은 그럴듯한 말이 잘 나오는 날 같달까?”
“웃기시네.”
해민의 웃음이 밝아졌다. 처음의 계획은 대단한 식탁을 차려서 대단한 저녁 식사를 하자는 거였지만 결국에는 조촐해지고 말았다. 그래도 서로를 바라보는 뜨거운 눈빛을 보자니 음식 따위는 지금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숟가락을 무는 것보다 칫솔을 무는 것에 더 열중했고 칫솔을 내려놓자마자 서로의 혀를 빨아 무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집이 작아서 설거지를 바로 해 놓지 않으면 냄새가 난다는 해민이 설거지를 하러 간 동안에도 시현은 그 시간을 참아주지 못했다.
“조금만 기다리라니까?”
해민이 말했다.
“나는 신경쓰지 않아도 혼자서 잘 놀고 있을 테니까 그냥 해야 될 일 하라니까? 허리만 조금 숙여줘. 다리 좀 벌려주고.”
“혼자 놀고 있는다며.”
“그래. 혼자 노는 거야. 어디에서 논다고는 말 안 했잖아.”
자리까지 잘 잡아놓고 안정적으로 드나들면서 시현이 느긋하게 말했다.
“자기도 좋지?”
너무 좋아서 탈이라고 해야 할까. 생경한 각도에, 해민은 손에 그릇과 수세미만 들고 있을 뿐 전혀 진도를 빼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에는 두 손으로 싱크대를 붙잡은 채 머리를 푹 숙이고 헉헉대다가 시현을 향해 돌아서며 애원하는 표정을 지었다.
시현은 자비없는 표정으로 해민을 찔러대다가 해민을 안아 들었다. 해민은 시현의 목을 끌어안은 채 불안한 자세로 매달렸고 비명만 지르다가 시현으로 채워졌다.
그날 두 사람을 몰아세운 조급함이 무엇이었는지는 두 사람 모두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쫓기는 사람들처럼 사랑했다. 시현은 삽입을 한 채 그것을 한동안 바라보기도 했다. 자기가 해민에게 들어가 있다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지금 네 안에 있어. 알아?”
그 말을 듣고 해민이 말했다.
“그 말. 다른 여자한테도 하게 된다?”
그 말에 시현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설마.”
“정말이야.”
“설마. 아닐 거야.”
“우리가 결국 다른 길을 가게 된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잖아.”
“지겹다. 그 말은.”
시현이 말했다. 해민은 사과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두 사람은 결국 평행선을 내달리게 되도록 정해져 있는 거라고 해민은 생각했다.
새벽에야 시현은 해민의 집을 나섰다. 차로 데려다주겠다는 해민을 말리고 시현은 혼자서 돌아갔다. 새벽이니까 차크라를 사용해서 달려간다고 해도 이상하게 볼 사람들이 없을 거라고 안심을 시켰다. 해민은 창가에 서서 시현을 오랫동안 바라봐 주었다. 시현은 몇 번이나 해민을 바라보고 손을 흔들었다.
해민과 다시 만나기로 했던 날.
시현은 해민의 집 문에 못 보던 자물쇠가 걸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해민이 이사를 갔다는 것과 헌터 아카데미까지 그만두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잠깐 가슴에 찬 바람이 부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이별을 예감하지 못했다면 그가 둔감한 것이었으리라.
돌아오는 길에 시현은 자신의 인생의 챕터 한 장이 끝난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 챕터의 제목은 단연 해민이어야 했을 것이다.
12부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