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부터 레벨업-292화 (29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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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콜로니

“호흡도 잘 맞아요. 서로에 대한 신뢰도도 높고요. 이런 팀은 솔직히 처음 봤어요. 헌터 아카데미에 있는 동안 이런 팀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팀웍이나 실력, 모든 면에서요. 그리고 각자가 가진 잠재력은 더 엄청나요.”

레오니드가 말하자 익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만 더 물어도 돼?”

제이를 눈 앞에서 따돌리고 자기들끼리만 얘기를 하는 게 미안하기는 했지만 그것만큼은 꼭 알아야겠다는 듯이 이익헌이 더욱 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시현이가 혹시 제이를 좋아해?”

“여동생처럼 아끼죠. 아니. 남동생처럼 아껴요.”

“제이가 예뻐지면 시현이가 제이를 더 좋아하게 되려나? 이성으로서 말이야.”

“아마. 안 그럴 것 같은데요? 제이는 효재를 좋아하는 것 같던데요? 효재도 제이를 많이 아끼고요. 제 생각에는 효재도 아직 자기 마음을 제대로 몰라서 그러는 것 뿐인 것 같고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 그리고. 효재는 제이의 지금 얼굴을 좋아해요.”

“그래애애애? 그거야말로 진실한 사랑인 건가? 외모를 초월한?”

익헌은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말했다.

“왜 그러세요? 저도 제이의 지금 얼굴 귀여워서 좋아하는데요?”

레오니드가 말했다.

“너는 이 자식아! 애초에 그런 얼굴을 안 해 봐서 그따위 말을 하는 거야. 그런 얼굴을 가지고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 말이 안 나오는 거라고. 사람이 내면의 가치를 가꿔야지 왜 외모를 갖고 그러느냐고 하는 놈들 대부분은, '그럼 네가 나랑 사귈래?' 그러면 도망치기 바쁘다고. 위선자 같은 놈들!”

제이는 자기랑 같은 과(科)라고 생각하면서 미하일이 분개하며 말했다.

“좋아. 굉장히 좋은 흐름이야.”

이익헌은 신이 나서 말했다. 시현이를 사위로 삼기로 하는 과정에 거칠 것은 없을 것 같았다.

제이가 멀뚱히 서서 그들을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쟤는 누구냐고 한 마디씩을 했다. 그러면서도 그냥 지나치지는 못하고 몇 걸음을 걷다가 한 두 번씩은 꼭 다시 돌아보면서 제이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한 번씩 스캔을 했다. 변신이 성공적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한 것 같았다. 결국 이익헌도, 지속 시간에 대해서 제이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제이도 지루해했다. 어차피 자기가 의식적으로 바꾸기 전까지는 얼굴이 바뀌지 않을 텐데 언제까지 이렇게 서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을 다 받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제이한테 가르쳐준 게 시아라고 그랬죠? 나도 시아한테 배우는 건데 그랬어요.”

미하일은 끝까지 불평을 쏟아냈다.

“좋아. 좋아. 다 잘 돼 가고 있어.”

이익헌이 혼자 신이 나 있을 때 지연이 클랜원들을 소집했다. 지연이 소집을 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무슨 일이예요?”

신입 헌터들까지 다 모이라는 말에 뛰어온 무영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다들 느긋하게 지연의 설명을 기다리다가 무영의 목소리를 듣고 웃었다. 저만한 나이 때에는, 기다리는 건 진짜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지연이 감응기를 켜고 몇 개의 화면을 연속해서 보여주었다.

“시현이 차크라예요. 콜로니에 처음 들어갔을 때. 그리고 입구를 지나서 거의 연못에 도착했을 때. 연못에서 나왔을 때. 다시 콜로니 입구로 돌아왔을 때, 그리고 이건 제가 오늘 따로 시현이의 차크라를 찍은 것들이예요.”

시현은 왜 갑자기 자기 차크라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건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들의 표정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원래 이 정도 시간이 지나면 차크라가 어느 정도 회복이 돼야 해요. 그런데 여기를 자세히 보세요. 시현이가 콜로니 입구에 처음 들어갔을 때부터 연못에 이를 때까지의 과정에서 차크라 소모가 많았다는 걸 아실 거예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아시죠?”

“콜로니 입구에 있던 괴수들을 시현이가 차크라 기둥으로 한 번에 없애버렸죠. 거기에 있던 괴수가 80마리에서 백 마리 사이는 됐을 겁니다.”

서규태가 말했다.

“백 마리가 조금 넘었을 거예요. 모두가 상급 괴수였던 건 아니지만 탑시스나 헤르겐 같은 녀석들은 거의 없었죠.”

지연이 말했다.

“세상에. 우린 그럼 그동안 뭘 했다는 거야? 시현이가 오면 콜로니 하나는 그냥 전멸이잖아!”

태인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모두의 표정이 비슷하게 변했다. 그 표정을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자면 ‘허무’였다. 그러자 지연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하려는 얘기는 지금부터가 중요해요. 차크라 양의 변화를 보세요. 차크라가 영구적으로 소실된 것처럼 보여요. 어제 이루어진 차크라 소모가 너무 커서 지속적으로 관찰을 해 왔거든요. 클랜 내에서 특별한 차크라를 가진 클랜원들의 차크라 회복 속도랑 비교를 했는데 다른 분들은 이 시간쯤 되니까 다시 차크라가 정상 수준으로 회복이 됐어요. 이 표들을 보시면 아실 거예요.”

지연은 지우와 야로슬라프, 레오니드와 미하일의 차크라 량을 시간별로 각각 비교해 나타낸 표를 보여주었다. 콜로니에서 나온지 열 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는데도 다른 사람들의 차크라는 거의 원래의 상태만큼 회복이 되어 있었다.

“문제는 시현이의 차크란데.”

지연이 시현의 차크라를 보여 주었다.

“이게 입구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차크라고 이게 지금의 차크라예요. 회복 속도가 더딘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게 아닌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영구적인 소실이 이루어진 것 같아요.”

지연은 그런 말을 하게 돼서 미안하다는 듯이 힘없이 말을 마쳤다. 차크라 양이 소실된 폭은 그래프만 가지고 확인을 하기에 정확하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정 양의 차크라가 사라져버렸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가 있었다. 머리숱이 적은 사람이 아침에 베개에 붙어있는 머리카락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것만큼이나 큰 상실감과 불안함이 클랜원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소실된 차크라 양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이 안 나실 텐데. 레오니드가 가진 총 차크라 양의 여섯 배에 달하는 양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지연이 말하자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동자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대로 아래턱만 떨어뜨렸다.

저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건가!

레오니드의 차크라 양이라면 지금 클랜 내 서열 5위 안에 드는 정돈데 그것의 여섯 배라는 말에 클랜원들은 해머로 머리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것처럼 큰 충격에 휩싸였다. 정작 당사자인 시현은 지연이 하는 말을 알아들어 보려고 열심히 귀를 기울였지만 도저히 그들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사정은 다른 신입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들은 어때요? 회복 속도가……. 우리 시현이가, 회복 속도가 유난히 느린 건 아닐까요?”

임정이 물었다.

“일단 시현이 얼굴만 봐도. 차크라 회복이 덜 된 걸로 보이지는 않죠.”

지연이 말하자 모두가 일제히 시현을 바라보았다. 시현은 갑자기 모두가 자기만 바라보자 얼굴이 제멋대로 붉어져서 어디로든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이 되어버렸다.

“결국은. 엄청난 차크라를 영구 소실시키면서 콜로니를 일시적으로 소멸시켰다는 거네. 콜로니를 완전히 소멸시킨 것도 아니고 일시적으로. 거기에서 나온 러프 스톤을 팔면 그 돈이야 상당하겠지만 시현이의 차크라를 포기할만큼 대단한 건 아닌데.”

태인이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진 차크라 양은 시현이가 가진 전체 차크라 중에 비중을 얼마나 차지하나요?”

효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1.6퍼센트.”

지연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대답을 해 주었다.

"1.6퍼센트라니. 1.6퍼센트가 레오니드 형이 가진 차크라의 여섯 배래. 뭐야, 그럼. 시현이가 가진 차크라는 도대체 얼마나 많다는 거야!"

강현이 말했다.

“1.6퍼센트를 써서 콜로니 하나를 거의 전멸시켰다는 건 대단한 거지만. 1퍼센트라고만 하더라도 시현이가 저런 공격은 평생에 백 번 밖에 못 쓴다는 거네. 에이! 계산하기 어렵게 1.6퍼센트가 뭐야. 1.6퍼센트가!”

익헌이 당장에 소리를 질렀다.

“62.5번이예요.”

지연이 말해주었다.

“말도… 안 돼….”

무영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차크라를 다 쓰면 시현이는 죽어요?”

무영이 물었다.

설마 차크라가 없다고 죽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거기에 있는 사람들 중 그런 상황을 상정해 본 적이 없어서 아무도 뭐라고 정확하게 말해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럴 때는 당연하게도 모두의 시선이 지연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지연도 그것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 차크라가 없는 일반인들이랑 비슷해지지 않을까?”

지연이 말했다.

“그럼 지우씨도. 그때 차크라가 폭주했을 때 차크라가 영구 소실된 걸까요?”

임정이 물었다.

“그건 모르겠어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하긴 해요. 이전 기록이랑 가끔 비교를 해 보는데 미미하기는 하지만 꾸준히 떨어지고 있었거든요. 그게 왜 그러는 건지 몰랐는데 시현이를 보니까 알 것 같아요.”

“우리도 그래요?”

야로슬라프가 물었다. 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레오니드가 가장 심해요. 레오니드의 차크라가 왜 큰 폭으로 줄어드는지 몰랐는데 지금 말하다가 깨달았어요. 아마 레오니드도 그래서 그런 걸 거예요. 레오니드는 괴수 차크라를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잖아요.”

“줄어드는 폭이 큽니까?”

레오니드가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아뇨. 아뇨. 걱정할 정도는 아니예요. 그 정도의 사용은 시현이처럼 폭발적이지도 않고.”

지연이는 레오니드를 안심시키려고 한 말이 오히려 레오니드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레오니드는 자존심이 상한 얼굴이기는커녕 한시름 놨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럼 됐어요. 그럼 저는 제 차크라를 계속 써도 되는 거죠?”

아예 그렇게 확인을 구하기까지 했다. 지연은 자기가 판단을 하기보다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레오니드의 차크라 양을 기록한 표들을 보여주고 많은 사람들이 같이 결정을 내리게 했다. 혼자서 결정하기에는 너무나 중차대한 문제였다.

레오니드가 어느날 갑자기 쓰러지면서, ‘누나가 괜찮다고 했잖아요! 으억!’ 하고 숨을 거두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용인할만한 수준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당사자도 마찬가지였다. 저 정도씩 소모가 되는 거라면 남은 생애동안 하는 모든 레이드에 차크라를 그만큼씩 써도 차크라를 다 못 쓰고 죽겠다고 답이 나왔다.

“문제는 시현이예요. 시현이가 괴수의 차크라를 쓰는 경우는 대부분 극단적인 경우니까. 그리고 지금은 시현이의 차크라가 커지는 단계가 지난 것 같거든요. 그 전에도 시현이가 그 차크라를 쓴 적이 있었지만 소실되기는커녕 계속 커졌잖아요.”

지연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어렸을 때는 시현이가 별 이상한 데에도 다 차크라를 썼잖아요. 똥 쌀 때도 차크라를 썼어요. 뒤집기도 못하는 갓난 아기때. 그때마다 차크라를 못 쓰게 혼내면 시현이가 울면서 차크라를 쏙 집어 넣었죠."

용하가 생생한 증언을 하자 시현의 얼굴이 귀까지 순식간에 빨개졌다.

"삼촌! 그런 얘기까지는 안 해도 되거든?!"

"야, 인마. 내가 생명의 은인인 거야. 생명의 은인. 희한한 놈이, 파리 잡는데도 차크라를 쓰고 모기 잡는데도 차크라를 쓰고 그랬었는데. 그래도 이제 다 컸다고 지가 아빠도 구하고 사람 구실도 하네."

기승전 조카 칭찬의 흐뭇한 결말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밤 사이에 시현의 차크라가 영구 손실됐다는 사실을 다시 기억하고 걱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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