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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콜로니
제이는 자기가 너무 놀라운 장면을 선보여서 애들이 단체로 바보가 된 거라고 생각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래. 믿기 어렵겠지. 나도 이해해. 나도 내가 이렇게 빨리 잘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거든."
네 사람은 어색하게 걸으면서 숲을 빠져나갔다. 그 즈음에는 다른 사람들도 거의 밖으로 나간 듯했다. 환한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제이를 바라보았을 때 제이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어? 제이네? 야. 숲에 마가 끼었나봐. 숲에서는 네가 완전히 다르게 보였었어.”
무영이 말했다.
“하긴. 그런 마라면 항상 끼는 게 좋겠다. 제이야. 너는 숲에서 나오지 마라. 숲에 있는 동안 대개 희한하게 예뻤어.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니까?”
시현도 거들었다.
“정말 그랬어?”
제이가 효재에게 묻자 효재가 어깨를 으쓱였다.
“예뻐도 뭐. 그건 이제이가 아니잖아. 예쁜 여자들이야 넘쳐나지만 그게 이제이가 아니면 의미가 없는 거 아니야?”
효재가 대꾸하자 세 사람이 일시에 얼어붙은 듯이 그 자리에 서 버렸다. 시현과 무영은 손으로 팔을 부지런히 문질러 가면서 저 개새끼가 예고도 없이 사람을 얼려버리려고 했다고 성토를 하며 주차장으로 먼저 달려갔다.
“식당 문 닫기 전에 뭐라도 먹으려면 빨리 와, 너희들도!”
무영이 뒤에 대고 소리 쳐 주었다. 제이는 얼굴이 새빨갛게 된 채로 걸음을 제대로 내딛지도 못했다.
“아까 그건 굉장하더라. 나도 알려줄 수 있어?”
효재는 자기가 제이에게 무슨 공격을 날린 건지도 모르고 순진하게 말했다. 시끄러운 식사 시간이 끝나고 장소를 옮겨서 훈련을 계속하는데 시현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배가 좀 꺼진 다음에 훈련을 하려고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던 무영이 시현의 스마트폰을 먼저 확인했다.
“안시현. 전화야. 윤해민 교수님인데? 내가 받아서 너 없다고 할까?”
무영의 말에 시현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이 새끼 진짜 뇌를 열어봐야돼. 왜 남의 사생활에 그렇게 사사건건 간섭이야?”
그래놓고 시현은 헐떡거리는 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네, 교수님.”
“시현아.”
“네. 안녕하셨어요, 교수님. 무슨 일이세요?”
시현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입이 귀에 걸렸고, 얼굴까지 붉힌 채 전화를 받았다. 무영이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것을 보고 시현은 애꿎은 무영에게 발길질을 해버렸다. 무영의 귀가 커져 있는 것 같은 느낌에 무영의 가청거리에서 달아나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아버지가……. 시현아. 마스터님이…….”
“네?”
"아버지가 위험하신 것 같아."
시현은 자기가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
익스트림 헌터의 전용기가 이렇게 갑자기 뜬 것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기내의 모든 얼굴들이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용하는 시현의 손을 잡아주었다. 시현은 용하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지만 표정을 제대로 관리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전화를 한 해민은 뜻밖의 말을 했다. 시현의 아버지가 연못 속으로 사라질 거라는 말이었다. 시현은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지금 다른 동료들과 함께 미국으로 콜로니를 공략하러 갔다고 말하자 해민도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시현은 해민과의 통화를 끝내고 용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용하 역시 시현이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해되지 않는 말이라고 해서 시현의 말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용하는 이미 그런 일들을 여러 번 겪어 왔고 그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대단한 추진력으로 전용기를 준비시키고 시현과 함께 거기에 오르는데 걸린 시간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용하가 클랜 A와 통화를 시도했지만 콜로니의 밖에 있던 지연하고만 연락이 닿을 수가 있었다. 용하는 지연에게, 지우가 연못 속으로 사라질 거라는 말을 전했다.
“콜로니에 연못이 있기는 하지만. 연못 속으로 사라진다는 게 무슨 말이래요?”
지연이 물었다.
“지우가 연못으로 뛰어든대요.”
“그런데……. 그게 뭐가 문제라는 건지 모르겠는데요? 왜요? 거기에서 익사할까봐 걱정하시는 거예요?”
지연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우가 연못으로 뛰어든다고 해서 뭐. 그게 어쨌다고? 그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우는 그보다 더한 곳에 들어가서도 괴수를 죽이고 나온 사람이었다.
“지금 지우를 거기에서 나오게 할 수 없겠습니까?”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이사장님?”
“지우가 거기에 갇힐 거예요.”
“갇히다뇨? 우선. 해 볼게요.”
지연은 이해되지 않는 것 투성이었지만 자기가 지금 용하에게 일일이 묻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콜로니에 들어갈 방법을 찾아야 돼요.”
콜로니 밖에서 대기중이던 지연이 미키 위도에게 말했다.
“헌터가 아니면 들어가지 못하잖아요. 지금 헌터들은 전부. 아.”
미키 위도는 자기가 동원할 수 있을 것 같은 헌터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러나 아무리 빨리 온다고 해 봐야 도착하기까지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계속 흘렀고 시현과 용하는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전용기 안에는 신입 헌터들이 모두 같이 있었다. 자기들이 뭘 할 수 있을지는 알지 못했지만 시현의 감정을 잡아주기 위해서는 자기들이 필요할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그들이야말로 시현이 근래 들어서 가장 오랜 시간을 믿고 의지해왔던 동료들이었다.
시현은 해민이 해 주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해민의 프레딕터가 보여준 것은 이상한 장면이었다. 처음에는 연못을 향해 뛰어드는 지우의 모습이 보였다가, 그 후에는 연못의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모습이 보였다.
처음에는 지우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었고 그 후에는 지우의 시선으로 보여진 것이다. 해민은 지우의 시선으로 보여지는 장면을 전하면서 시현이 충격을 받을 것을 걱정했다. 하지만 전부 다 말해야 한다는 것을 해민도 알고 있었다.
연못은 콜로니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또다른 맵과 같았다. 뛰어들 때는 첨벙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지만 정작 그 안에 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늪 아래의 세상과 마찬가지였다.
칼 같은 결정들이 솟아있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동안 지우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채찍같은 밧줄을 피해야 했다. 피하지 못한 밧줄이 지우의 허리를 감아채며 허리를 잘라버릴 듯이 조여댔다. 지우는 칼로 그것을 베어내고 한꺼번에 몇 개씩이나 날아오는 것들을 막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우가 피하지 못했던 마지막 밧줄은 지우의 발목을 감아 바닥에 지우의 몸을 내던졌다. 지우가 본 것은 예리하게 깎아진 온갖 나석들이었다. 지우는 거기에 얼굴이 찍히기 직전에 팔을 짚었고 손바닥부터 팔까지 깊이 찢기면서 갈라졌다. 프레딕터가 보여준 것은 거기까지였다.
해민은 그 이야기를 전하면서 시현이 당장 그곳으로 가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시현은 해민의 말을 의심할 생각도 없었고, 그것이 지금 그들이 미국에 있는 콜로니를 향해 날아가는 이유였다.
***
콜로니의 상황은 크게 변함이 없었다. 지우는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가장 앞서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 옆에는 태인과 강현이 바짝 붙어 서서 걷고 있었다.
가끔 레드 런이나 헤르겐이 보이는 게 전부였다. 레오니드와 미하일이 하급 괴수들까지 하나씩 처리를 하면서 따라왔다. 이제 슬슬 베로니카 공격대들의 차크라가 위험 수준에 도달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베로니카 공격대가 뒤따라오면 최대한 콜로니의 깊은 부분까지 함께 데리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들에게 그것을 경험시켜주는 것도 이번 탐사의 중요한 목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차크라를 비축해 둘 수 있게 배려해줄 필요가 있었다.
지우가 뒤돌아보는 것을 보고 강현이 지우를 바라보았다.
“누나를 기다릴 걸 그랬나봐요. 제가 가 볼까요?”
“아니. 곧 오겠지.”
지우는 강현에게 걱정을 끼친 게 미안해져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러면서도 아직 시간이 더 걸려야 하는 건가 하면서 자꾸만 뒤를 보게 되었다.
항상 돌아보면 그곳에 정이 있었다. 보지 않아도 정의 차크라로 정의 존재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정의 차크라가 느껴지지 않으니 옷을 제대로 갖추어 입지 않고 밖으로 나온 것처럼 불편하고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그때였다.
“왜 이렇게 느려요?”
어두운 앞쪽에서 임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현과 지우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방금. 정이 목소리 아니었어?”
지우가 물었다.
“맞아요. 누나 목소리였어요.”
강현이 말했다.
“나도 들었어.”
태인도 거들었다.
“그 사람이 언제 우리를 앞질러 간 거지?”
지우는 놀라워하면서 달렸다. 임정의 비명 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아아아아아악!!”
그 후에 바로 이어진 소리는 엄청난 물보라를 일으키며 첨벙거리는 소리였다. 무언가에 붙잡혀서 수면 위에서 버둥거리다가 꽤 먼 거리를 끌려가는 것 같은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듣고 지우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저게 무슨 소리냐고, 강현이 너도 그 소리를 들었냐고 물을 시간도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물을 필요도 없었다. 강현의 입에서 먼저 그 소리가 나왔던 것이다.
“누나가 물에 빠졌나봐요!”
지우와 강현, 태인이 동시에 앞으로 달려갔다. 뒤따르던 클랜원들도 모두 달려왔다. 그들은 무슨 일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지우는 갑옷을 벗어던지고 무기를 던진 채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누나!”
강현이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임정에게 들렸다.
“방금 앞에서 무슨 소리 안 들렸어요?”
임정이 귀를 기울이면서 쥬드에게 물었다.
“네?”
그러는 사이에 그 소리가 다시 들렸다.
“누나!”
임정은 앞을 향해 달려갔다. 치유 차크라를 쓴 직후에 전력을 다하려고 하니 몸에 무리가 오는 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강현이 그런 식으로 자기를 부른다면 분명히 무슨 일이 생긴 거라는 생각에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임정이 연못에 다다랐을 때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현씨. 무슨 일이야? 왜 나를 불렀어?”
그러면서 임정은 눈으로 지우를 찾았다. 그들 중에 지우가 없었다. 사람들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란 얼굴로 임정을 바라보았다.
“지금 어디에서 오는 거예요?”
강현이 임정에게 다가와 물었다.
“무슨 소리야? 베로니카 공격대가 당했잖아. 그래서 고쳐주고 있던 거 알잖아. 몰랐어?”
“그게 아니라. 누나 목소리가 앞쪽에서 들렸어요. 그리고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렸고요. 지우 형이 물 속으로 뛰어들었는데 아직 나오지 않고 있어요.”
“내가 들어가 봐야겠어.”
야로슬라프가 갑옷을 벗었다.
그 순간이었다.
“저게 뭐죠?”
서규태가 연못 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스켈부터, 콜로니에 들어와서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던 거대 개체들이 떼를 지어 다가오고 있었다. 다가오는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처음 그 모습이 발견되고 나서 몇 초만에 지척으로 다가와 있었다.
클랜 A는 전열을 가다듬으며 싸울 준비를 했다. 괴수들이 그 순간에 나타났다는 것이 불길하게 느껴졌다. 지우를 구출하는 것을 막으려는 것 같았던 것이다. 눈 앞에 나타난 괴수들은 어림잡아서 스물은 더 되어 보였고 만만한 것은 스켈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스켈은 대열의 앞에서 헌터들을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들뜬 모습이었지만 그것은 스켈만의 오해였다는 게 밝혀졌다. 스켈은 그 뒤에 서 있던 괴수의 턱에 순식간에 박살이 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