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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콜로니
“그런 게 아니예요. 그 괴수가 라이어 버드라는 이름을 가진 건 그럴만해서 그런 거예요. 그 새는 자기가 들은 소리를 모두 흉내내요. 사람이 하는 말도요. 사람들의 목소리대로 다 따라서 해요. 라이어 버드가 공중으로 사라지거나 맵 사이에 자기 몸을 숨긴 채로 다른 대원의 목소리를 흉내내서 말하면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게 라이어 버드한테서 나온 말이라는 걸 생각하지 못해요. ‘조위가 널 찾아.’ 그런 말을 들으면 정말로 조위가 자기를 찾는다고 생각하고 달려가는 거죠. 그렇게 무리에서 이탈하면 라이어 버드가 와서 공격을 하는 식이예요.”
“사람이 하는 말을 할 줄 안다고요? 괴수가요?”
임정이 뜻밖의 말에 놀라서 물었다.
“사람이 하는 말을 할 줄 아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동안 들었던 말들을 사용하는 것 같긴 해요. 하지만 이름은 헷갈리지 않죠. 우리 안에 있는 사람 이름을 넣어서 말을 해요. 그래서 속는 거죠.”
“그게 그 괴수 이름이 거짓말쟁이 새이면서 흉내쟁이 새인 이유인 거네요?”
임정이 말했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임정은 그 괴수가 무섭다는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신기한 괴수들이 많다는 정도의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쥬드도 임정의 반응을 눈치챘는지 웃음을 지었다.
“그런 반응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 미안해요.”
“아니예요. 사람들도 거의 그런 반응이거든요. 라이어 버드를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라이어 버드의 공격이 무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라이어 버드를 공략하러 들어갔던 공격대중에 한 사람도 살아나오지 못한 일이 그렇게 많았는데도 말이예요.”
“뭐라고요?”
임정은 자기가 잘못들은 건 줄 알고 쥬드에게 물었다.
“정말이예요. 라이어 버드의 늪으로 들어갔다가 살아나오지 못한 공격대가 하나 둘이 아니예요.”
두 사람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던 다른 대원들이 쥬드의 말에 힘을 실어 주었다.
“쥬드가 하는 말이 맞습니다. 라이어 버드가 무슨 수를 쓴 건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라이어 버드는 날카로운 발톱을 쓰지 않고도 자기 늪을 무덤으로 만들어 왔죠.”
그런 말들을 들으면서 임정은 헛웃음을 지었다. 남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새가, 공격대를 압살했다? 임정에게는 쉽게 믿기지 않는 얘기였다.
***
숲에서는 타격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기합을 넣는 소리와 나무가 넘어가는 소리, 부러지는 소리, 나무를 발로 차면서 위로 날아올라가는 소리.
두런두런 말을 하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헌터 아카데미 학생들이 훈련에 열을 올렸다. 시간이 흘렀지만 자리를 이탈하는 학생들은 많지 않았다. 교수들이 헌터 아카데미를 비웠다고 해서 그것을 기회로 여기고 놀러다닐 생각을 하는 헌터들은 없었다.
효재도 이제는 완전히 정신을 차린 모습이었고, 무영도 시현과 효재에게 지지 않으려고 열심이었다.
효재와 무영은, 시현이 쉴 때까지는 자기들도 쉬지 않겠다고 목표를 정해놓고 같이 훈련을 하다가 벌써 몇 번이나 쓰러졌다. 쓰러져도 기숙사로 돌아가 편하게 침대 위에서 쉬지 않고 대충 나무에 기대서 잠시 쉬다가 다시 시현을 따라 훈련에 돌입했다.
제이는 조용히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해갔다. 제이는 세 사람과 떨어져서 혼자 다른 곳에서 자리를 넓게 차지하고 훈련을 했다. 제이의 몸에서 다른 기운이 느껴진 것은 몇 시간이 되지 않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타격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여느 때와 다른 공격이 들어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과는 확실했다. 나무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부서지며 쓰러진 것이다.
제이는 그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지 못했다. 그때의 느낌을 다시 살리려고 애쓰면서 다시 나무를 쳤지만 그때의 그 느낌이 나오지 않았다. 제이는 그 느낌을 기억해내려고 조용한 가운데서 계속 집중을 했다. 이마에서 끊임없이 땀이 흘러내렸지만 그건 아랑곳하지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제이가 심호흡을 하고 나무 위로 달려 올라가 타격을 가했을 때 나무는 다시 산산조각이 나면서 사방으로 파편을 튀며 쓰러졌다. '쓰러졌다'라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었다. 안에서 시작된 엄청난 진동에 의해서 부서지면서 바닥으로 주저앉은 것 같은 형국이었다.
그 후로 제이는 그 감각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벌써 몇 그루의 나무가 비슷한 양상으로 부서지며 주저앉았다. 제이는 힘을 고르게 분배하면서 여러 그루의 나무 사이를 날아 다니면서 무너뜨리고 바닥에 뛰어내렸다. 제이가 바닥으로 내려왔을 때 제이의 등 뒤에서 나무들이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조밀하게 나무들이 들어차 있던 숲에 운동장만한 공간이 생겨났다. 제이는 그 감각이 확실하게 체득이 될 때까지 쉬지 않고 연습을 계속했다. 거기에서 점점 강도를 높일 수가 있었다. 어디를 겨냥하느냐에 따라서 결과를 다르게 만들 수도 있었다.
제이는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조밀한 나무들이 더 필요했다. 이동을 하는 제이의 움직임에서는 어떤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바람에 휘날리는 얇은 천조각처럼 제이의 몸이 이동했다. 몇 걸음만에 나무와 나무 사이를 오고 갔다. 제이는 그렇게 오르고 싶어서 안달이 났던 그 지점에 어느 순간 자기가 올라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크라의 흐름이 훨씬 편해졌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제이는 짧은 칼 두 개를 양손에 나눠 쥐었다. 심호흡을 하고 눈 앞의 나무를 겨냥했다. 눈을 감고, 그것을 덩치 작은 괴수라고 생각하면서 제이는 공격을 시작했다. 정강이를 절단내고 머리를 틀어쥐어 들어올리고 머리통을 무릎으로 찍고 머리를 손에 힘을 주었다. 정강이나 머리라고 상상한 것들이 사실은 전부 나무였지만 눈을 떴을 때 눈 앞에 서 있던 나무 한 그루가 다시 또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
제이는 몇 번이나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 공격이 괴수에게 직접 가해졌을 때 어떤 반응이 나오게 될지를 상상했다. 주먹에 스민 내력으로 힘껏 때리면 괴수의 근육과 뼈 할 것 없이 찢고 부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자기도 레오니드 교수가 그랬던 것처럼 괴수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면서 제이는 즐거운 상상에 빠졌다.
제이는 그것말고도 시아가 알려준 것들을 몇 가지 더 연습해 보았다. 시아는 상대의 몸에 마비를 일으킬 수 있는 타격법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는데 그것은 나무를 상대로 해서는 결과를 확인할 수가 없어서 제이는 실컷 해 놓고도 자기가 잘 하고 있는 건지 알 방법이 없었다.
다른 것들은 다 잘 되고 있었다. 차크라를 모아서 얼굴에 집중을 하고 얼굴의 윤곽과 융기를 바꾸는 훈련도 틈틈이 하고는 있었지만 그것만큼은 집중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잘 될 리가 없을 거라는 마음가짐 때문인 건지. 하지만 아주 포기하지는 않고 계속해서 연습을 하기는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도 가능해져서 제이는 나무를 격파하면서 얼굴에 차크라를 돌리기도 했다. 얼굴을 변형할 수 있게 되면 나중에 여러 모로 쓸 모가 있을 거고 얼굴을 변형할 수 있다는 기술 하나만으로 클랜 A에 들어갈 수도 있을 거라는 시아의 말을 떠올리면서 제이는 계속해서 힘을 냈다.
새로 옮긴 곳에도 운동장만한 공간이 생겨났을 즈음, 제이는 그대로 있다가는 쓰러질 것 같아서 두 손을 바닥에 짚고 헉헉거리면서 숨을 골랐다. 이제는 기숙사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여덟 시간을 훌쩍 지나 있었다.
“여기쯤 아니야? 이제이가 훈련한다고 간 곳이?”
무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구시렁거리던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무영의 얼굴이 보였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지만 무영은 꾸벅 인사를 하고 지나가 버렸다.
“여기엔 없다. 어디 있는 거야? 먼저 간다고 혼자 나가다가 길 잃어버린 거 아니야?”
무영이 말했다.
“이제이. 이제이이이이~~”
여러 녀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현과 효재도 제이를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모두들 나무의 바다 같은 그곳에서 제이가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제이는 저에게 무영이 멍청하게 인사를 하고, 시현과 효재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무영도 쉬지 않고 훈련을 한 덕에 온 몸이 땀에 젖어서 물에 빠진 것처럼 되어 있던데 그렇게 지친 와중에도 장난칠 기력은 남아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제이가 일어서려는데 효재가 지나가다가 제이를 발견했다. 제이가 손을 들려는데 효재도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 친구가 여기에서 훈련하는 줄 알고요.”
효재는 그렇게 말하고 지나가다가 다시 돌아섰다.
“혹시 신입생 이제이를 보시면 전해주시겠어요?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다고요. 얼굴이 동글동글한게 귀엽고 예쁘게 생긴 앤데 아마 아실 거예요. 신입 중에 여학생은 제이 하나라서요. 그럼 부탁드립니다.”
효재는 예의바르게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얼굴이 동글동글한게 귀엽고 예쁘게 생긴 앤데. 얼굴이 동글동글한게 귀엽고 예쁘게 생긴 앤데. 얼굴이 동글동글한게 귀엽고 예쁘게 생긴 앤데.
‘허! 그렇게 말해 놓고 나를 찾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웃음이 났다.
‘이것들이 떼로 작당을 해서 나를 가지고 논다 이거지?’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너무 지쳐서 따질 힘도 없어 제이는 툭툭 털고 일어났다.
“기숙사 식당은 문 닫았으려나? 지금 몇 시야?”
효재는 제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듣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엉뚱한 방향으로 뛰어갔다.
“제이야. 이제이. 너 어디에 있어?”
제이는 이제야말로 슬슬 이 장난이 지겨워졌다.
"아우, 진짜. 이 인간들은 지치지도 않나. 나를 놀리는데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지!"
효재에게 달려가 멱살을 잡고 장난 그만 치라고 말을 하는데 효재가 화들짝 놀라면서 제이의 팔을 떼어내며 뒤로 물러섰다.
“누군데 이러세요?”
효재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아, 뭐야, 넌 또. 누군데 이러시냐니! 나를 찾고 다녔으면서. 길무영이 그랬으면 이해를 하겠다. 그 자식은 원래 꼴통이니까. 오늘은 이러지 말자. 힘들어 죽겠어.”
제이의 목소리를 듣고 시현과 무영도 달려왔다. 제이는 세 녀석이 똑같이 멍청한 표정을 하고 자기를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
“왜 그러는 건데. 어?!”
제이는 짜증이 나서 얼굴을 확 구겼다가, 자기가 새로 마스터한 권법의 결과물 때문에 이 자식들이 넋이 나간 거라고 생각했다.
“아. 봤냐? 나. 의외의 능력이 있나봐. 여기 말고 한 군데도 저렇게 만들어 놨어. 나만 열등아였던 게 아니었어. 하긴. 길무영도 구르는 재주를 가지고 있는데 나한테만 재주가 아무 것도 없는 게 이상하긴 했지. 온 김에 보여 줄까? 잘 봐. 이번만 보여주는 거다.”
세 사람에게는 제이가 그냥 딱 미친 여자로 보였다. 처음 보는 여자가 자기들을 언제 봤다고 스스럼없이 말을 하는 것도 그렇고 얼굴에는 온통 흙과 나무껍질이 묻어 있었고.
그런데 중요한 건 그 별의 별 것들이 다 붙어 있는데도 예뻤다는 것이다. 현신 헌터 아카데미에서는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지만 굉장한 미모였다. 예쁘면 됐지 얼굴이 깨끗하면 뭘 하겠는가.
직접 시범을 보일 생각인지 자신있는 걸음으로 걸어가는데 뒷모습도 예술이었다. 세 사람은 거의 숨도 쉬지 않은 채, 허리에서 허벅지에 이르는 탄탄하고 매력적인 근육을 바라보았다. 걷는 걸음이 이상할 정도로 낯익다는 생각은 들었다.
"잘 봐야돼.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날 거거든. 다시 보여 달라고 해도 그런 거 없어.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너희들을 위해서 딱 한 번 만 다시 하는 거거든."
목소리는 분명히 제이의 목소리였지만 얼굴의 차이가 너무나 커서 세 사람은 자기들이 인식하는 것을 스스로 부인했다. 저것은 제이의 목소리가 아니라 제이와 아주 닮은 목소리인 거라고 생각하는 게 훨씬 편했던 것이다.
눈 앞에서 천천히 걸음에 속도를 붙이며 나무를 딛고 달려올라가 주먹을 날려 그것을 산산조각내버리고 뛰어내리는 사람은 분명히 이제이였다. 그 모든 몸의 언어가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땅에 뛰어내려서 고개를 들었을 때 그 얼굴은 제이가 아니었다.
세 사람은 동시에 물었다.
“누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