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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콜로니
“학교에 가야 한다면서. 그럼 여기에는 왜 왔어?”
시현이 물었다.
열 세 살이라고 해도 제이와의 키 차이가 별로 나지 않을 정도로 크기는 했지만 아직 어려서 가끔 학교 가는 길도 잊어버리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시현은 자기가 열 세 살이었을 때의 지능 수준이 어땠는지 생각나지 않아서 시아에게 어떻게 맞춰줘야 할지 난감했다. 가끔 머리 좋은 사람들이 사사로운 것들을 다루는데 아주 바보짓을 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시아도 그런 유형은 아닌지 걱정이 됐던 것이다.
“오늘부터 뭘 하실 건지 궁금해서요. 저도 훈련 하시는 거 같이 보려고요.”
시아가 말했다.
“네가? 그러다가 다쳐.”
시현이 진심으로 걱정이 된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은 시아가 할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효재도 덩달아서 말했다.
“시간은 이미 충분히 아껴 놨는데요? 이제는 쉬어도 될 것 같아요.”
시아가 말했다.
듣고 보니 그럴 듯해서 세 사람은 어느새 수긍을 하고 있었다. 열 세 살이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는데 그 애한테 공부 열심히 하라고 말하는 게 의미없어 보였다고 해야 할까.
“하긴. 시아도 헌터가 되겠지? 엄마는 헌터가 아니지만 아빠가 그렇게 강력한 헌터니까.”
효재가 말했다.
“꼭 그런 건 아니지. 강한 헌터의 자녀 중에 헌터 타투가 나타나지 않은 사람들도 많은데.”
무영이 말했다.
그것도 무영의 재주 중에 하나였다.
사지 않아도 될 미움을 잊어버리지 않고 꼭꼭 사 두는 재주. 다른 사람들도 그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무영처럼 그런 말을 할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히야아아. 할 말이 없다. 할 말이 없어. 엄마는 익스트림 헌터 대표고 아빠는 바디 펌 대표고. 우리 나라 2대 기업이 다 시아네꺼라는 거잖아. 시아야. 무슨 일이 생기면 형을 기억해 줘! 아니지. 오빠지. 항상 제이하고 같이 다니다보니까 이렇게 되네. 진짜 내가.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시아를 보고 있으려니까 그동안 제이가 우리한테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질렀던 건지 알 것 같다. 제이가 그동안 죄책감도 느끼지 않은 채로 우리한테 마구 안구 테러를 감행해 왔던 거잖아. 시아는 이렇게 어린데도 여신이 오신 것 같잖아. 시아가 크면 그 일대에는 숨 쉬는 남자 생물이 없을 거야. 다 기절해서.”
무영이 말했다.
“기절해도 숨은 쉬는데요?”
시아가 말했다.
다른 사람한테라면 그 정도의 말로 확인을 해 주지는 않았겠지만 왠지 무영은 정말로 그렇게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꼭 짚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래. 기절해도 숨은 쉬지. 그걸 모르는 게 아니라. 그래. 인정. 형이 잘못했어. 아니. 오빠가. 아, 그노무 이제이!”
무영이 실실거리면서 웃자 효재의 표정이 슬슬 굳어졌다.
“야. 길무영. 제이가 뭐가 어때서? 제이도 귀여운데. 제이도 없는 데서 이런 말 하는 건 굉장한 실례 아니냐? 아니. 실례라기보다 네 인격이 썩었다는 뜻인 것 같은데?”
효재가 말했다.
“저 새끼좀 봐라. 이제 치마 두른 애한테는 널리 휴머니즘을 발휘하기로 한 거야? 잘난 척 하는 건 상관없는데 나한테는 이빨 들이밀지 마라.”
“이빨을 나가게 하는 건 상관 없지?”
효재도 지지 않고 무영에게 다가갔다.
시아는 냉큼 시현의 곁으로 가서 관전 모드로 들어갔다. 무영과 효재는 기숙사 안에서 싸웠을 때 받게 되는 징계 때문에 제대로 붙지는 못하고 씩씩대면서 서로를 노려보았다.
“제대로 붙을 줄 알고 기대했더니. 왜 서로 이해해주고 그래요? 제대로 이해하려면 주먹이 얼굴에 닿아야죠.”
시아가 말하자 자기들이 멍청한 짓을 했다는 게 더 깊이 깨달아져서 효재는 제 침대로 돌아가버렸다.
무영은 앉아있을 침대도 없어서 책상 앞으로 가서 의자를 쭉 빼고 앉아서 시아를 바라보았다.
시현도 그렇지만 시아도 특이했다. 엄청난 배경을 가진 아이가, 그런 것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시아 너는 그런 거 어때? 엄마랑 아빠가 진짜 엄청난 분들이잖아. 사람들이 다 너를 우러러볼 거 아니야. 친해지고 싶어서 늘 주위에 어른거릴 거고.”
무영이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말했다.
“꼭 알아야 되는 사람들이 아니면 모를 걸요? 알건 모르건 상관은 안 해요. 아빠는 항상 우리가 갑자기 가난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거든요. 우리한테 돈이 많지만 그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했어요. 우리는 엄청나게 비싼 물건을 꼭 사야 돼서 언젠가는 거기에 돈을 다 쓰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거든요. 스스로 구하지 못하면요. 그러니까 돈 믿고 건방떨면 나중에 아주 비참해질 거라고 했어요. 평범하게 살면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그렇게 살라고 했어요. 아빠가요.”
시아가 말했다.
시현은 시아가 말하는 것이 캐츠 아이 스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격은 계속 올라서 이제 캐츠 아이 스톤 하나의 거래 가격은 70조를 넘어섰다.
캐츠 아이 스톤의 낮은 드랍률 때문에 별별 방법을 다 동원해서 캐츠 아이 스톤을 모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지금 캐츠 아이 스톤의 여유분이 몇 개나 되는지에 대해서 시현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시현도 서규태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아빠의 몸에서 괴수의 차크라가 폭주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역사 시간에 배웠던 일의 진실을,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듣는 기분은 정말로 이상했다.
서규태는 아빠의 몸에서 나온 차크라가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죽이고 서규태 자신과 임정까지도 공격했었다고 말했다. 아빠는 그 와중에도 두 사람을 걱정했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차크라가 두 사람을 공격하는 것을 고통스럽게 느끼면서 스스로 뛰어내리려고 했다고도 말했다.
그것은, 시현도 그런 상황에 미리 대비해야 할 거라고 생각해서 해 준 얘기였다. 괴수의 차크라가 폭주를 해 버리면 숙주의 의지로는 통제가 되지 않고 주위 사람들을 스스로 공격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한 거였다.
그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했다. 자기가 만약 그런 상황에 처해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차크라로 공격하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지, 그것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절대로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더 강해져야 하고 캐츠 아이 스톤을 모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이해했다.
지우의 안에서 괴수의 차크라가 폭주했을 때 지우는 등급을 올리지 못한 상태도 아니었다. 시현을 자기가 지키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한 감정이 쇄도하면서 결국 그 일이 일어난 거였다. 서규태는 그 사실을 강조하면서, 지키고 싶은 사람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지키고 싶은 사람들을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계속해서 강해져야 할 거라고 시현에게 충고를 했었다.
시아는 제 폰을 시현에게 건네주고 시현에게 전화 번호를 찍어달라고 말했다.
“어. 나 번호 따였어!”
시현이 번호를 찍어주고 말하자 시아가 이번에는 효재에게 폰을 건넸다. 효재는 시아의 얼굴이 신기한 듯이 시아의 얼굴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하며 번호를 찍어주었다.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이렇게 닮았을까? 엄마랑 아빠한테서 좋은 것만 갖다 박아 놓은 것 같아. 근데 아들 하나 더 낳으시지. 사장님이 아들을 낳으면 진짜 대단할 텐데. 나는 사장님 닮은 남자애가 정말 기대되는데.”
효재가 말하자 무영이 그만 떠들고 폰이나 내 놓으라고 성화였다. 그러나 폰은 곧바로 시아가 회수를 해 갔다.
“시아야. 오빠 번호도 따야지. 응?”
무영이 애원을 했지만 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두 개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아빠는 내가 딸이어서 더 좋았다고 했어요. 아들이었으면 이것 저것 신경쓸 게 많아져서 싫었을 거래요. 감정이 너무 크게 소모됐을 거라고 말했거든요.”
시아가 문쪽으로 가면서 말하자 무영이 시아에게 달려갔다.
“안 되지. 이시아. 이 녀석들은 한 번 훈련을 하면 전화가 울리는지 어쩌는지 신경을 안 쓴다고. 내 번호를 모르면 꽤나 답답해질 걸?”
시아의 귀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시아가 무영을 바라보며 작은 손을 내밀자 무영이 번호를 찍어주고는 아침부터 여자한테 번호를 따였다면서 괴로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놈의 인기는. 이놈의 인기는.”
혼자 미친듯이 중얼거리기도 했다. 시아는 그날의 미션이 번호 따기였다는 듯, 볼 일을 다 마치고 경쾌하게 기숙사에서 사라졌다.
남자 기숙사에서 나가 현신고등학교로 돌아가던 길에 시아는 제이와 마주쳤다. 시아는 제이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혼자서 아침 운동을 하던 제이는 시아를 알아보았다. 그래서 바람처럼 시아의 곁을 휙 지나가다가 다시 돌아와서 시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시아는 일단 현신 헌터 아카데미 사람인 것을 알아보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혹시 너. 이익헌 헌터님 친척이니?”
제이가 물었다.
시아는 눈 앞에 나타난 보름달 같은 제이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세요?”
“어? 나? 어. 이제이.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네가 누구를 아는지 알면 그 사람이랑 어떤 사인지 말해줄 수 있을 텐데. 그런데 너. 왜 그쪽에서 와? 그쪽에 아는 사람이 있어?”
제이가 물었다.
“아. 시현 오빠요. 시현 오빠랑 효재 오빠랑 만나고 오는 길이예요.”
그 말을 듣고 제이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무영도 분명 같이 있었을 텐데 시아가 무영의 이름을 빼버리는 것을 듣고 무영이 벌써 시아에게 미운 털이 박힌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이제이. 걔들이랑 같은 1학년이야.”
“네? 언니가요? 아아!”
“왜? 나를 알아? 혹시 나에 대해서 얘기 들은 게 있어?”
“네? 아니요.”
“아닌 게 아닌 얼굴인데?”
제이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효재 오빠가 언니를 두둔해줘서 궁금했어요.”
“두둔이라. 두둔할 필요가 생기게 만든 건 길무영이지? 뭐. 이제는 화도 안 난다.”
제이가 웃어버렸다.
시아의 레이더가 작동을 했고 작대기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감이 잡혔다.
“우리 아빠가 효재 오빠 후견인인데 아빠는 효재 오빠를 나중에 입양을 하려고 생각하는 중이거든요? 효재 오빠 의사도 중요하겠지만 저는 잘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효재 오빠하고 저는 남매가 될 거고 저는 오빠가 생기면 완전 잘 해 줄 거예요.”
시아가 말했다.
“그래? 어떻게?”
“오빠가 여자 친구 문제로 골치가 아픈 것 같으면 사랑의 전령 노릇 같은 것도 해 주고요.”
“그래? 운이 좋네. 효재는.”
“언니.”
“응?”
“고민이 있으면 저한테 말해도 돼요.”
“무슨 고민?”
“제가 지금은.”
시아가 시계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
“시간이 없고. 언니. 헌터 아카데미는 방학이죠?”
“응. 그런 셈이지.”
“혹시 우리 아빠가 가진 차크라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으세요?”
“특별한… 차크라가 있었나?”
“그럼 미하일 교수님이 가진 차크라에 대해서는요?”
“얼굴 변형에 대해서 말하는 거야?”
제이가 묻자 시아가 눈을 찡긋거렸다.
제이의 얼굴이 붉어졌다.
“네가 봐도 많이 못 생기기는 했지?”
제이가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언니 얼굴은 못 생긴 게 아니라 사람들한테 익숙하지 않은 개성으로 가득 차 있는 건데 언니가 그것 때문에 마음 고생이 된다면 그걸 바꾸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자신감을 찾고 훈련에 매진할 수 있다면요.”
“……방법이. 있을 것 같니?”
제이는 자기가 이 말에 귀를 기울여도 되는 건지 확신을 갖지 못한 채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