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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콜로니
“교수님. 클랜 A가 전력으로 나가면 200마리의 괴수가 있는 콜로니를 한 번에 공략할 수도 있지 않은가요?”
무영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를 믿어주는 건 고마운데. 사실상 어려워요. 1급 괴수 한 마리를 공략하는데 A급 헌터나 B급 헌터들 열 명으로 구성된 공격대가 투입됐을 때 걸리는 시간이 대략 8시간입니다. 최고 공격 증폭률을 내는 무기를 들고 싸운다고 했을 때요. 괴수가 처음 출현했을 때부터 시간이 지나면서 괴수들의 체력은 점점 늘어났습니다. 우리가 처음에 레이드를 했을 때는 이 정도가 아니었어요. 그 때 싸웠던 녀석들은 그냥 귀요미였죠. 덩치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체력이요. 그런데 헌터들의 기술이 발달하면서 괴수들의 체력도 높아졌어요. 내가 하급 헌터였을 때 5급 괴수 중에는 체력이 200만이 갓 넘는 녀석도 있었어요.”
“겨우 200만요?”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들이 나왔다. 시현의 시대에는 괴수들의 평균 체력이 확실히 올라 있었다. 세진의 설명을 듣고 무영의 얼굴에도 본격적으로 근심이 서렸다.
“어떡하냐?”
무영이 시현을 바라보았다. 시현의 표정이 조금 전부터 좋지 않았다. 콜로니가 위험한 곳이라는 것은 시현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곳에 클랜 A가 출동을 한다고 하니 마음이 좋을 리가 없었다. 엄마와 아빠, 삼촌들까지 위험한 곳으로 향한다는 말을 들었으니 걱정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세진은 그런 시현을 보고 괜히 미안해졌지만 달리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그게 세진이 이 강의를 타이트하게 몰이부치는 이유이기도 했다. 여기에서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1,2년 전만 해도 고등학생이었다. 헌터가 됐다는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 오르고 그것을 즐기면서 갑질도 왕창 해 보고 싶고 사람들한테 으스대보고 싶기도 할 텐데 지금 이렇게 전부 다 붙잡혀서 탑시스 공략법을 생각해내느라고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얼굴들이 왜 그래요? 뇌도 젊잖아요. 좋은 생각이 막 나야죠.”
세진이 그렇게 말을 해도 좋은 생각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고 결국 그것은 과제로 남았다.
수업이 끝나기 전에 한 학생이 물었다.
“교수님도 콜로니에 가세요?”
“가죠.”
“겁은 안 나세요?”
“동료들을 믿고 나를 믿으니까 겁은 별로 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될 거예요. 동료들을 믿고 자기 자신들을 믿을 수 있게 되면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미리 준비를 해 두는 게 좋을 겁니다. 지금 여러분보다 조금 못한 사람들을 찾아내서 그 사람들한테 잘난척하는 대신, 지금은 열심히 힘을 키우고 훈련을 해서 계속 위로 올라가 보세요. 으스댈 수 있는 기회는 언제든지 오거든요.”
세진이 말했다. 그 말에 모두들 웃었다. 세진의 말이 맞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
교수와 헌터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짝을 이루어서 레이드를 하러 가기로 한 날이 다가왔고 신입 헌터들은 레오니드와 짝이 되었다. 시현에게 특별히, 레오니드가 가진 괴수의 힘을 보여주자는 회의 결과에 따른 결정이었다.
시현과 효재, 무영과 제이가 레오니드와 팀을 이뤄서 레이드에 나섰다. 5급 늪의 5급 괴수였고 체력은 880만이었다.
무영은 레오니드의 옆에 딱 붙어서, 교수님이 이런 괴수를 해치우는데는 얼마나 시간이 걸리냐고 물어보았다.
“그게 궁금해? 그게 왜 궁금해? 내가 5분만에 끝낼 수 있다고 하면 나를 믿고 그냥 놀고 있으려고? 괴수 공략에 전혀 기여가 없는 사람은 유급이다.”
레오니드의 입에서 청천벽력같은 소리가 떨어졌다. 사실 헌터 아카데미에서 유급을 당한다고 크게 불이익을 겪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유급을 당하면 시현이나 효재와 앞으로 같은 과정을 배울 수가 없게 된다는 것 때문에 무영은 혼자서 긴장을 했다.
“교수님. 이 늪의 괴수는 독성을 가지고 있어요?”
무영에게는 그게 가장 큰 관심사였다. 레오니드는 무영의 마음을 알겠다는 웃었다. 제이는, 자기한테는 믿고 기댈 곳이 없다는 생각에 코뿔소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숨결이 목에 닿자 효재가 깜짝 놀라서 옆으로 도망칠 정도였다.
“자. 남자 헌터 다섯이 뭉치면 얼마나 막강한지 보여주자!”
시현이 말하자 제이가 시현을 흘겨보더니 이제 자기도 포기했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괴수에 대해서 먼저 말해줄게. 오늘은 괴수를 보고 그리고 익스트림 헌터에 다 같이 갈 거야. 무기를 고르기로 한 건 알고 있지?”
모두들 대답을 했지만 시현은 자신의 너클을 보면서 자기한테도 새 무기가 필요할 것 같냐고 물었다.
“글쎄다. 그게 벌써 익숙해진 것 같기는 하지만 다른 종류로도 한 번 보기는 하자.”
늪으로 내려가기 전에는 서로 잘도 떠들어대더니 일단 늪 아래로 내려가자 모두가 그렇게 과묵할 수가 없었다. 사체 운반은 몇 번 했지만 살아있는 괴수와 마주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죽은 괴수를 보는 것도 아직 적응이 잘 안 되고 서규태의 좀비 괴수 드립 때문에 두려움을 완전히 떨치지 못하고 있는데 살아있는 괴수라니. 그건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네 명의 헌터들은 잔뜩 긴장을 한 채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레오니드의 뒤에 다닥다닥 붙어서 움직였다. 레오니드는 그때마다 고개를 뒤로 돌려서 말을 하는 게 불편해서 옆으로 옮겨갔지만 그러면 또 어느새 레오니드의 뒤로 다닥다닥 붙어버리는 것이다.
“베니가 움직일 때까지는 자꾸 내 뒤로 가지 마라. 그리고 이번에는 공략을 하려는 게 아니고 그냥 베니를 보기만 할 거니까 긴장할 것 없어. 베니가 갑자기 너희들을 공격할 것 같으면 그때는 내가 베니를 처리할 수도 있으니까. 응? 지금은 실전 감각을 익히라는 거지 과도하게 겁을 먹으라는 게 아니야. 알았어?”
레오니드가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말을 해 봤자 소용이 없었다.
늪의 주인인 베니는 6미터가 조금 넘는 문어였다. 실제로 괴수를 보는 것이 처음이니 문어 괴수를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물이 없는 곳에서 문어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있자니 이건 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아요. 저 문어요. 문어면 바다에서 살아야죠.”
제이가 말했다.
“문어면 바다에서 살아야지. 늪 아래에서 살지 말고.”
레오니드가 말했다.
“괴수들 중에는 자연계에 있는 동물의 외형과 특징만 닮고 맵은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사는 녀석들도 많아.”
레오니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신입 헌터들은 베니를 훔쳐 보았다.
“괴수치고는 굉장히 체격이 작은 편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하면 안 돼. 무는 힘도 굉장히 강하고 독도 세거든.”
“그런데 왜 저희를 이런 데로 데리고 오셨어요?”
무영의 입에서 당장에 그런 말이 나왔다. 레오니드가 예상하고 있던 말이기도 했다.
“베니의 공격 방법은 상대를 물어뜯으면서 독을 주입하는 거다. 그것만 피하면 돼. 그걸 피하기만 하면 다른 곳은 전부 공격을 할 수가 있지. 데미지도 쉽게 들어가는 편이고. 말하자면 하급 헌터 맞춤형 괴수랄까? 아르마딜로 괴수같은 녀석들이 걸리면 공격을 하는 게 아주 까다롭거든. 너희들 솜씨로는 칼을 찔러 넣는 것조차 어려울 거야.”
그제야 수긍이 된다는 듯 신입 헌터들이 나란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를 공격하지 못하게 교수님이 확실하게 막아주실 거죠?”
무영은 몇 번이나 그렇게 말했다.
자기는 독에 내성이 있어서 독을 가진 괴수를 만나면 자기가 다 해치워주겠다고 말을 해 왔던 것을 생각해보면 무영은 지금 완벽한 언행 불일치를 시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은 그냥 보고만 나갈 거라고 해도 우선 교수님이 하시는 걸 볼 수 없을까요? 그러면 무기를 고를 때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효재가 조용조용히 말하자 레오니드가 그들을 바라보았다.
“일단 내가 베니를 도발하면 그 다음에는 베니가 아무나 공격할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
레오니드가 말하자 무영이 효재를 푹 때렸다.
“왜 그런 소리를 했어. 안 되지. 너라면 가만히 있겠냐? 처음부터 안 건들면 모르지만 일단 건들면 어떻게든 갚으려고 할 거 아냐. 그럼 강한 사람을 공격하려고 하겠냐고. 그렇다고 너를 공격할 것 같아? 나 아니면 제이지. 제이를 봐. 통통하기는 하지만 짜리몽땅하니까 잘 보이지도 않을 거라고. 그러면 나를 공격할 텐데. 너는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무책임하냐?”
무영은 한 번 입을 열면 어지간해서는 닫을 줄을 모르는 것 같았고 레오니드는 다른 헌터들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여차하면 도망치는 거다.”
레오니드가 말하고 베니를 향해 달려가자 무영이 비명을 질렀다. 시현과 효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웃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네 근처에 오지 못하게 내가 막아줄 테니까 정신 좀 차려. 앞으로 독성 있는 괴수가 나오면 네가 맡아줄 거라고 믿고 있었는데!”
시현이 말하자 무영이 시현을 바라보았다. 그런 거였어? 이 자식. 나를 믿고 있었던 거였어? 그런 생각이 무영의 머릿속에서 진행 중인 것 같았다.
“그러려면 열심히 배우라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독을 가진 괴수한테는 네가 나서서 저렇게 싸워야 하는 거잖아.”
시현이 말하자 무영도 언제까지 그렇게 바보처럼 굴 수는 없다는 듯 허리를 세우고 레오니드를 바라보았다. 레오니드는 바람처럼 달려가서 자신의 무기를 휘둘렀다. 베니는 레오니드를 잡아서 물어 뜯으려고 했지만 레오니드는 너무 빨랐고 베니에게 조금도 기회를 주지 않았다.
“어림도 없네. 베니는 그냥 압살당하겠다. 교수님한테.”
효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단 1초의 허비도 없었다. 레오니드가 차크라를 다시 충전해서 괴수를 공격하는 시간이 너무 빨라서 거의 연속으로 공격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교수님이라서 가능한 거야. 다른 사람들은 저렇게 못해. 다른 헌터들이 공격을 할 때는 7초동안 꽉 묶여있는 거나 마찬가지거든.”
어느새 무영이 나서서 중계를 했다.
“저 정도로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서 도대체 얼마나 연습을 하신 걸까?”
효재가 말했다. 제이는 완전히 겁 먹은 표정으로 할 말을 잃고 레오니드 교수와 베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이 너도 너무 겁먹을 것 없어. 우리 셋이 무슨 일이 있어도 제이 너는 지켜줄 거니까.”
시현이 제이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면서 말했다.
“봤어? 교수님이 방금 베니한테 뛰어오를 때. 바닥에 아무 것도 닿지 않았거든. 그런데 허공을 차고 올라가셨어.”
효재가 말했다.
“차크라로 추진력을 얻고 계시는 것 같아.”
제이가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자세히 바라보니 정말로 레오니드가 위로 올라가려고 할 때는 발 아래로 차크라가 보였다. 레오니드가 우렁차게 기합을 넣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베니조차 레오니드를 올려봐야 할 정도였다. 레오니드는 두 손으로 검을 잡고 힘껏 베니를 향해 내리쳤다. 베니의 앞부분이 통째로 날아갔다.
“안시현.”
레오니드가 시현을 불렀다. 시현이 레오니드와 베니를 향해 달려갔다. 효재도 제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만지작거렸다.
“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은 와봐. 5분 정도는 움직이지 못할 거다. 괴수의 재생 능력 때문에 가벼운 상처는 바로바로 회복이 되지만 이 정도의 치명상을 입으면 꽤 오랫동안 움직이지 못한다.”
레오니드가 말했다.
“그렇다고 그렇게 꾸물거리면 시간은 다 지나가.”
제이에게는 아예 무기가 없었고 무영은 제이의 옆으로 바짝 다가가면서 제이는 자기가 지켜주고 있을 테니까 너희들은 어서 가서 공격을 해 보라고 말했다. 그러는 무영의 무릎이 요란하게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