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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콜로니
“다른 학생들이랑은 반응이 다르니 그 시간 동안 그냥 있는 건 지루할 것 같은데. 길무영 학생을 위해서 따로 수업을 진행하도록 하죠. 길무영 학생이 내 수업에서만큼은 경쟁자가 없는 1인자인 것 같으니 말입니다. 선배들을 전부 통틀어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군요.”
서문열은 정말로 놀라운 녀석이라는 듯이 말했다. 서문열은 아예 길무영을 위한 엘리트 코스 강의를 즉흥적으로 직접 개발했다.
“헌터에게 독을 주입했을 때 50퍼센트의 사망률에 이르게 하는 양을 HLD 50이라고 합니다. HLD 수치가 낮을수록 독이 세다고 할 수 있겠죠. 적은 양만 주입을 해도 50퍼센트의 헌터가 사망에 이른다는 말이니까요. HLD 50이 낮은 독을 가지고 있는 괴수라고 해서 그 괴수의 독이 무조건 위험한 건 아닙니다. 한 번에 주입하는 양이 얼마나 많은지, 거기에 따라서도 달라지죠. 자연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독중에는 신경독도 있고 혈관독도 있고 그 두 가지가 섞여있는 혼합독도 있습니다. 지금 신입 헌터들에게 주입된 건 신경독입니다. 신경독을 주입하면 신경기능이 차단되죠. 결국에는 호흡곤란이 와서 죽게 될 겁니다. 혈관독은 혈관을 따라 돌면서 혈구를 파괴하고 어떤 괴수의 혈관독은 혈관벽까지 파괴하고 몸 내부로 점점 번지는 것도 있습니다. 독이 주입되고 나서 여섯 시간 가량 지난 후에 헌터의 시신을 해부하면 속이 비어있죠.”
“아. 막강하네요.”
무영은 자기가 그렇게 무시무시한 독의 효과가 통하지 않는 헌터라는 생각에 점점 자부심이 불어나고 있었다.
서문열도 무영이 기세등등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찬물을 끼얹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독에 내성을 갖고 있는 헌터가 있다면 그 팀은 큰 전력을 보강한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대부분의 괴수들이 독을 무기로 이용해서 싸우고, 헌터들은 독침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이리 저리 움직이고 도망다니면서 과도하게 체력과 차크라를 소모하게 되는데 만약 무영이 모든 독에 면역력을 가지고 있다면 무영이야말로 모든 정규공격대가 탐내는 최강의 무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교수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무영은 몸이 달았다.
“다른 독도 그냥 한 번에 주입해 보시면 안 될까요? 빨리 확인하고 싶은데요.”
“그렇다고 길무영 학생을 죽일 수는 없죠. 내 생각에 길무영 학생은 독의 성분이나 독이 주입되는 방식에 영향을 받지 않고 모든 독에 면역을 갖고 있을 것 같긴 합니다.”
“주입 방식이 다르기도 한가요?”
“분무기로 뿌리는 것처럼 독을 뿌려대는 녀석도 있거든요. 그런 녀석들은 헌터들이 접근해서 공격을 하는 게 굉장히 위험하긴 하죠. 분무되는 독은 직접 주입되는 독에 비해서 독이 약하기는 하지만 지속적으로 맞다보면 그것도 분명히 위험합니다. 갑옷과 헌터의 방어력으로 어느 정도 상쇄가 되기는 하겠지만 F급 헌터한테 그 정도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고요.”
“아. 갑옷요…….”
무영이 말했다.
방어 증폭률이 1000퍼센트에 이르는 갑옷의 가격은 30억이 넘었다. 지금은 부모님과 냉전 중이라서 갑옷을 사달라는 말은 입밖에 꺼내보지도 못했고, 나중에 사체 운반 일을 하게 되면 그때 돈을 모아서 우선 방어 증폭률이 낮은 갑옷이라도 사려고 알아보는 중이기는 했다.
“혀에 묻어있는 독을 내둘러서 그 독액을 헌터들 몸에 묻히는 괴수도 있고 독니를 찔러서 독을 직접 주입하는 녀석도 있고 뱀이나 도마뱀, 악어, 거미나 다른 곤충들. 심지어 어류 형상을 한 괴수들 중에도 독을 가진 괴수는 정말 많습니다.”
“대단하네요. 교수님.”
“괴수가 말입니까?”
"네? 네. 괴수도 대단하긴 한 거죠."
"그럼 누가 대단하다는 말이었습니까?"
서문열이 물었다.
무영은 그걸 정말 몰라서 묻냐는 표정으로 서문열을 바라보았다.
"그거야 당연히 저죠. 교수님. 교수님, 다음번에는요. HLD 50 수치가 가장 낮은 독으로 주입해 주세요. 그게 가장 강력한 독인 것 맞죠?”
서문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알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길무영 학생이 그런 체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거기에 맞게 갑옷을 제작해 달라고 하면 될 것 같거든요. 다른 갑옷들은 독이 주입되는 것을 막는데 주안점을 많이 두고 있는데 길무영 학생의 갑옷은 그것보다는 외부의 직접적인 타격을 막는데 주안점을 두면 될 것 같고요.”
“아, 그건. 새로 주문까지 해서 살 수 있는 입장은 아니고요. 어쨌든 참고는 할게요, 교수님.”
시현과 효재, 제이는 끔찍한 시간을 겪었다. 복통과 근육통, 발열 증상 때문에 몸을 구르고 끙끙대면서 괴로워했다. 무영은 자기가 축복받은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 다행스럽게 여겼다. 그 후로 서문열의 강의가 있을 때마다 신입 헌터들의 표정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길무영은 아무래도 독성학 강의가 헌터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면서 독성학 강의를 1주일에 일곱 시간 이상 받게 해 달라고 건의를 해 봐야겠다고 떠들어댔고 다른 헌터들은 기겁을 했다.
“아무리 독에 내성이 있어도 괴수의 앞발 한 방에 날아가 버리면 끝인데 그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제이가 기고만장한 무영에게 말하자 무영은 눈을 흘겼다.
"쟤는 남이 좋아하는 꼴을 못 보더라.”
“제이는 진심으로 너를 걱정해서 해 주는 말 같은데?”
시현이 말하자 웃기고 있다면서 무영은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제이와 엮이는 건 언제나 사양하겠다는 의지가 다분히 녹아 있었다.
수업은 고등학교 때의 과정에 비할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일주일에 세 번은 실습을 나가서 괴수의 사체 운반을 해야 했다. 그 돈으로 학비나 생활비에 충당하는 학생도 있었다.
사체 운반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의무사항이었다. 클랜 A의 클랜원들이 그 과정에 의미를 크게 부여하고 있어서 다른 헌터들도 사체 운반 헌터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마련되었다.
여전히 괴수의 사체는 바디 펌에서 매입을 했고 바디 펌에서 가공된 괴수 사체로 여러 가지 것들이 만들어졌다.
17년 전과 크게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사체 운반을 하고 받는 일당이 성과급으로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적당히 시간을 떼운다고 해서 돈을 받아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운반을 많이 할 수 있는 사람한테는 적은 시간에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됐지만 차크라 양이 적어서 사체 운반 자체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효재는 마음이 급했다. 익헌에게서 정기적으로 돈이 들어오고 있었지만 자기가 스스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면 지원 받는 것을 중단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익헌도 효재의 뜻을 받아들였다. 어느 정도는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기기도 했다.
이제는 사체 운반을 할 때 어차피 자기가 나른만큼 돈을 받는 거라서 세 명이 팀을 이뤄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범식이 헌터 아카데미를 그만둔 후로는 제이도 거의 같이 끼어서 한 팀을 이루어 활동을 하곤 했다.
현장은 실전 감각을 익히는데 도움이 되었다. 헌터 아카데미의 신입 헌터들이 사체 운반을 하러 가면 헌터 아카데미의 지도 교수가 동행해서 써전의 역할을 맡아해 주었다. 그 일은 가끔 외부에서 지원을 하기도 했는데 클랜 A의 클랜원들이 그 일에 참여하기를 좋아했다. 특히 강현과 태인이 자주 지원을 나와 주었고 서규태와 임정, 그리고 어느 때는 지우까지 나와서 써전 역할을 맡아 해 주었다.
그럴 때면 모두들 신입 헌터들을 부러워했다. 시현이 지우와 임정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퍼졌고 이제는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길무영은 가끔 시현을 볼 때 한기를 느끼곤 했다. 시현이 누군지도 모르고 깝쳤던 순간들이 떠오를 때면 특히나 더 그랬다.
네 명이 팀을 이뤄서 사체 운반을 처음 하러 간 날, 그들을 인도한 사람은 서규태였다. 서규태는 몇 번이나 시현을 보면서 혼자 웃음을 지었다. 왜 그러시냐고 무영이 묻자 지난 일이 떠올라서 그렇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냐고 무영이 물었고, 서규태는 별로 재미가 없을 거라고 했다.
클랜 A에 관한 일이라면 모두들 하나라도 더 듣고 싶어 했기에 얘기를 들려달라고 졸랐지만 서규태가 하는 말을 듣고 있노라니 정말로 재미가 없었다. 얘기를 그렇게 재미없게 하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서규태는 말을 하기도 전에 웃는가 하면, 자기가 웃느라고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한참을 웃다가 겨우겨우, 숨 넘어가는 소리로 말을 이어놓는 것을 들어보면 솔직히 내용이 그렇게까지 재미있지도 않았다. 클랜 A의 서규태 치안1부장이 그렇게 숨 넘어가게 웃으면서 재미있어 하면 당연히 그 자리에서 구를만큼 재미있는 얘기가 나올 거라고 기대가 되는 게 당연했지만, 기대가 너무 커서였는지 허무함이 밀려올 정도였다.
서규태는 자기도 그럴 줄 알았다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써전님은 미키 위도하고 어떤 사이세요?”
무영이 기습 질문을 했다. 시현은 무영이 그런 정보들을 도대체 어디에서 얻는 건지 궁금했다. 서규태는 확답을 피하려는 눈치더니, 무영이 간절히 대답을 기다리면서 눈을 초롱초롱 빛내자, 좋은 친구고, 언젠가 서로의 생활이 안정이 되면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분위기가 왜 그렇게 숙연해진 건지.
무영은 서규태가 좋아졌다. 과장되지도 않고 화려한 색깔도 갖지 않았지만 묵묵하게 자기 자리를 지켜내는 약초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는 써전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무영이 말했다.
서규태도 무영을 어느 정도 봐 왔고, 세 사람 중에서 남의 비위를 가장 잘 맞추고 나름대로 정치에도 능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그 눈빛은 꽤나 진실돼 보였다.
“그러면 나도 더 훌륭해져야 되겠구나. 나를 따르려는 사람이 생겨났으니까.”
그러자 무영이 손을 마구 저었다.
“그러시면 안 돼요. 목표를 우선 낮게 잡아서 성취감을 느껴가면서 올라가려고 그러는 거거든요.”
“…….”
정말로 그렇게 생각을 했더라도 그 말을 꼭 했어야 했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후로는 계속 분위기가 안 좋았다.
효재는 분위기를 수습해 보려고 시도했다.
“무영이는. 애는 괜찮은데 그냥 너무 솔직한 것 뿐이예요.”
그 후로 분위기는 더욱 안 좋아진 것 같았다.
그 분위기를 수습한 사람은 제이였다.
“저희 중에는 탱커가 없는데 그래도 괜찮을까요? 클랜 A에는 탱커가 있잖아요. 탱커가 없이 레이드를 하는 건 탱커랑 함께 하는 거하고 차이가 많이 나나요? 저희는 어떻게 될까요? 저희랑 같이 레이드를 하려고 하는 탱커는 없을 것 같거든요.”
제이가 말하자 서규태가 네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까 그렇구나. 탱커가 있는 게 좋기는 할 텐데. 더군다나 지금은 스스로 방어하면서 싸울 기술이 부족할 테니까. 헌터 아카데미에서는 어떻게 가르치는지 잘 모르겠지만 거기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기는 해야 되겠구나. 선배들은 어떻게 했다고 하던?”
“선배들 중에는 탱커가 있어요. 각 기수마다 탱커가 한 명씩은 있더라고요. 신기해서 제가 물어봤더니 탱커를 다른 헌터 아카데미에서 데려온 경우도 있었대요. 스카웃처럼요.”
제이가 말했다. 시현과 효재는, 제이도 선배들이랑 교류를 활발히 하는 모양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저희는 탱커 없이 싸울 수 있지 않을까요? 왜냐면요. 효재는 정신공격을 하는 괴수한테 내성이 있잖아요. 저는 독에 내성이 있어요. 독을 가진 괴수가 공격을 해도 저한테는 안 통하거든요.”
무영이 말하자 서규태가 무영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신기해하기는 했지만 동시에 걱정스러운 눈빛이기도 했다.
“좋은 걸 가진 사람은 그게 자기한테 이익이 되도록 잘 관리를 해야 된다. 머리가 좋다고 자만하면 머리가 나쁜 사람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어.”
“네. 저도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요.”
무영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제이도 너무 기죽지 마라. 정신 공격을 하는 괴수를 만나면 무영이가 가진 능력은 쓸모가 없어지는 거고 독을 가진 괴수를 만나면 효재가 가진 능력은 쓸모없어지는 거잖아. 적어도 너는 혼자만 꼴찌를 하지는 않을 거다.”
서규태가 말했다. 억지로 제이의 상처를 싸매주려다가 너무 꽉 묶어서 아예 상처를 터뜨려버린 꼴이었다. 그래도 제이는 서규태의 본심을 알아차렸고, 서규태에게 고마워하려고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