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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콜로니
“세진씨. 조위를 입구까지 데려다 줘. 가능하면 빨리 가.”
임정의 말에 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진이 조위를 옆에서 부축하고 차크라를 실어 빠른 속도로 콜로니를 빠져나갔다.
“우리는 지금부터 속도를 더 내보죠. 스켈이 앞에서 멈췄어요.”
태인이 감응기를 보면서 말했다.
“스켈 말고 다른 녀석들도 보여요.”
그러나 그동안 잘 따라오던 임정이 갑자기 비틀거리며 벽을 짚었다. 그러다가 하필 벽에 있던 헤르겐을 건들었다. 헤르겐은 제 맹독으로 임정을 공격했다.
헤르겐의 맹독은 별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할만한 양이 순간적으로 주입되었다고 하더라도 임정은 재생능력을 가진 탱커였고 자신의 힘으로 얼마든지 독을 이겨낼 수 있었다.
“윽. 레드런한테 찔렸었나봐요.”
문제는 차크라였다. 임정은 제 몸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알아차렸다. 급격히 낮아지는 온도 때문에 차크라를 평소보다 많이 돌리다보니 세세한 부분에 대한 민감도까지 유지하는 것이 어려웠다.
지우가 임정을 바라보았다.
“어떨 것 같아?”
“차크라를 동시에 그만큼 돌리지는 못할 것 같아요. 나는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아요.”
임정이 말하자 지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죠. 콜로니에 대해서 얻으려고 했던 정보는 충분히 모은 거잖아요.”
서규태가 말했다. 임정이 공격을 당하고 뒤로 빠진다면 지우는 쉽게 평정을 잃을 것이고, 그러면 지우의 차크라가 감당되지 않을 정도로 나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한 말이었다.
태인이 곧바로 찬성을 했고 다른 사람도 이견을 말하지 않았다. 임정은 자기 때문에 콜로니 탐사가 멈추었다는 생각에 미안해했지만 지금은 몸을 회복시키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지우의 팔에 안긴 채로 임정은 주변으로 쉭쉭 지나가는 콜로니를 바라보며 제 몸에 차크라를 돌렸다. 어느덧 피가 멈추고 헤르겐의 독이 해독되었고 주변은 다시 따뜻해져 있었다.
캐츠 아이 스톤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고, 헌터들은 레이드가 끝났다는 것을 깨닫고 러프 스톤을 수거했다. 조위와 세진이 걱정스런 눈으로 임정에게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레드런한테 찔렸었나봐요. 몰랐어요.”
임정이 무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혹시 다시 올 기회가 있을까요?”
조위가 기대하는 표정으로 말했지만 클랜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우가 말했다.
“아쉽네요. 그래도 오늘 해치운 수가 많아서 당분간은 안심을 해도 될 것 같긴 합니다. 남은 일들은 저희가 알아서 해야죠.”
조위가 말했다. 아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클랜 A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콜로니의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서 차크라의 소모가 생각보다 많아졌고, 곧바로 다시 콜로니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그들 모두 깨닫고 있었다. 임정도 문제였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해야 하겠군요.”
서규태가 말하자 모두들 아쉬움을 남긴 채 인사를 나누었다.
***
학부모 총회 때 클랜 A의 안지우와 임정이 오기로 했다는 말에 학교 전체가 들썩거렸다. 헌터 아카데미 학생들은 자기들과 관련도 없는 현신고 학부모 총회 때문에 분주해졌다.
학부모 총회 당일.
길무영은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차크라 연습을 하고 인사말을 하면서 혼자 생쇼를 해댔다. 누가보면 강단에 올라가서 길무영이 재학생을 대표해서 인사말을 하기로 되어있나보다고 생각할 정도로 진지한 모습이었다. 길무영은 평소보다 일찍 시현과 효재를 깨우고 준비시켜서 학교에 갔다.
“야, 친한 척은 그만 좀 해라. 가식적이라는 생각 안 드냐?”
시현이 말하자 길무영이 웃기는 소리 말라는 듯이 시현을 쏘아보았다.
“너는 인마. 가만 보면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너하고 나는 친한 사이가 맞아. 너는 친한 애들끼리 뭘 한다고 생각해? 같이 밥 먹고 같이 얘기하지? 우리가 그러잖아. 게다가 우리는 같이 자잖아. 여기서 뭘 더 어떻게 친해? 민효재. 내 말이 맞아, 안 맞아?”
“떠드는 건 좋은데 웬만하면 나는 끌어들이지 마라.”
효재가 말했다.
“하. 이 새끼. 처음에는 졸라 얌전하더니 안시현 이 새끼가 인간을 다 버려놨어. 이 새끼가 이러는 게 다 너 하는 거 보고 배워서 이러는 거 아냐. 어?”
“할머니도 오셔?”
시현은 길무영이 하는 말을 무시하고 효재에게 물었다.
“모르겠어. 아마 못 오실 것 같은데. 큰아버지는 아마 레이드를 하러 갔을 거고 큰어머니가 모시고 오지 않으면 혼자서는 못 오실 텐데. 아마 못 오시겠지.”
“보고 싶지?”
시현이 묻자 효재가 씁쓸하게 웃었다.
“이 자식도 참 잔인해. 보고 싶은 게 당연하지. 그걸 몰라서 묻냐? 몰라서 묻는 거면 멍청한 거고 알면서도 물은 거면 잔인한 거고. 둘 중에 뭐냐?”
길무영이 떠드는 동안 효재가 먼저 야나를 발견했다.
“시현아. 야나다. 혹시 클랜 A분들이 모두 오신 걸까?”
효재가 말하자 시현이 야나를 향해 달려갔다. 설마 하면서도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효재도 야나를 향해서 같이 달려가다가 그 뒤로 이익헌의 부가티가 따라 오는 것이 보여서 효재는 그리로 먼저 향했다. 이익헌이 올 거라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후견인이 돼 주겠다고는 했지만 후견인이 학부모 총회에까지 올 이유는 없었다.
길무영의 집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학부모 총회 때는 꼭 와야 한다고 말했더니 길무영의 부모님은, 이불 빨래까지 시키더니 이제는 학부모 총회에까지 나오라고 한다면서 애초에 기대하게 만든 자기들 잘못이라고 말했다. 처음에 부탁할 때부터 거절을 했어야 기대를 안 했을 거라고 한 것이다.
길무영은, 부모님이 말은 그렇게 해도 정말로 안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침에 전화를 했을 때 레이드 계획이 잡혀 있어서 빠질 수가 없다는 말이 돌아왔다.
길무영이 휘휘 돌아보니 부모가 있는 아이들 중에 그 부모가 오지 않은 경우는 거의 자기가 유일한 것 같았다. 그래도 무영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길무영은 시현이 달려간 곳으로 같이 달려갔다. 야나의 문이 저절로 열리더니 거기에서 한 다스의 사람들이 내렸다.
“클랜 A다!”
그 소리가 퍼지면서 벌떼같이 아이들이 몰려 들었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였다. 클랜 A를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가 세계적인 스타를 본 것처럼 모두가 열광했다. 헌터 아카데미에서 원정 나온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야나에서는 안지우와 임정을 비롯해서 서규태와 야로슬라프, 태인과 강현, 세진까지 모두 내렸다.
레오니드와 미하일이 멀찍이 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들에게 다가오자 야로슬라프가 달려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캐츠 아이가 와해됐다는 얘기 들었어. 정말 잘 됐어.”
레오니드가 말하자 야로슬라프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이가 전보다 더 안전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을 테니까 진짜 잘 된 거지.”
길무영은 어느새 시현의 옆에 딱 붙어서 그들에게 부지런히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길무영입니다.”
길무영입니다, 길무영입니다.
클랜원들 각자에게 그렇게 제 소개를 하면서 돌아다니는데 길무영의 소개를 받은 사람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너. 전에 나 본 적 있냐?”
태인이 물었다.
“네? 아니요? 아. 동영상 같은 걸로는 뵌 적이 있지만 이렇게 현실에서 직접 뵌 적은 없는데요?”
“근데 왜 너를 본 순간 짜증나지?”
“예에?”
“어. 형도 그래? 나도 그랬는데.”
강현이 말했다. 길무영은 가슴에 화살을 정통으로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정말요? 나도 그 생각을 하기는 했는데. 그래서 나도 언제 우리가 만난 적이 있었나 했어요.”
서규태가 말했다.
서규태까지 나서서 그렇게 말하자 다른 사람들도 놀라워했다.
“자기는 안 그래? 사실은 나도 그랬거든.”
지우가 임정에게 물으면서 쐐기를 박았다.
“어머. 사실은 나도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스팀이 빡 올라왔거든요.”
임정이 말했다.
“이름요?”
시현이 물었다.
“아아아아아아. 허무영이다. 허무영!”
강현이 소리치자 지우도 강현을 보면서 손가락질을 까딱까딱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허무영. 하, 진짜! 우리가 사체 운반 헌터였을 때 허무영이라는 사람이 엄청 괴롭혔는데. 네가 길무영이라는 거지? 알았다. 이름은 안 잊어버리겠네.”
강현이 길무영의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면서 말했다. 꽤나 악의적인 손길이었다.
“우리 시현이하고는 친해?”
임정은 그게 가장 궁금했는지 그것 먼저 물었다.
“우리 시현이가 학교 생활은 잘 하니? 잘 하지?”
“네. 제가 잘 도와주고 있으니까요. 제가 침대도 양보했고요. 책상도 양보했어요.”
길무영이 말을 하는 동안 시현은 이 자식의 생존력은 당해내지 못하겠다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시현. 뒤에 가 봐. 효재 할머니 오셨다.”
“어, 정말요?”
지우의 말에 시현이 깜짝 놀라면서 이익헌의 차량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정말 효재의 할머니가 거기에서 내려서 효재를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할머니. 어떻게 오셨어요?”
시현이 달려가서 꾸벅 인사를 하자 효재의 할머니가 시현을 토닥거려 주었다.
"아이고. 시현이구나.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아픈 데 없이 잘 지내는 거지? 내가 지금까지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시현이가 나를 살려준 건데. 고맙다. 고마워. 죽어야 되는 늙은이를 살려 놓은 거라 고맙다고 하는 게 맞는지 어쩐지도 모르겠지마는. 어쨌든. 그래. 고맙다."
할머니가 시현이의 뺨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괜찮아요. 할머니. 효재가 얘기 다 해 줬어요. 고맙다는 말도 효재한테서 다 들었어요."
시현이 웃으며 말했다. 길무영도 어느 틈에 달려와서 시현보다 더 예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길무영입니다 라고 하려다가 할머니도 혹시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중에 싫은 사람을 두지는 않았을까 해서 입을 다물었다. 할머니는 살아온 인생이 기니까 자기랑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한테서 안 좋은 일을 당했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클 것 같았다.
효재는 제 할머니에게 깍듯하게 대하는 길무영을 보면서 그동안 쌓였던 감정이 풀리는 기분을 느꼈다.
“그래. 그래. 우리 효재가 좋은 친구들 만나서 학교 잘 다니고. 이렇게 나를 데리러도 와주고. 다른 때는 와 보지도 못했는데. 효재가 창피할까봐서. 근데 이 선생님이 옷도 사 주시고 미용실에 데려가서 파마도 시켜 주셨다. 효재야. 할머니 안 챙피하지?”
할머니가 말하자 효재가 훌쩍거리면서 콧물을 훔쳤다.
“왜 울어, 이놈. 할머니가 오랜만에 효재 봤는데 우는 거 보고 가면 마음이 편하겠냐?”
할머니도 같이 울었다.
“할머니. 효재 지금만 이러는 거고요. 다른 때는 정말 잘 지내요. 할머니가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길무영이 할머니의 한쪽으로 가서 부축을 하면서 제법 어른스럽게 말했다. 시현이 익헌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가끔 삼촌에게는,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챙기면서 사람을 놀라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촌은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와 달라고 말하는 사람들한테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지만 자기가 내키면 정말 별의 별 정성을 다 쏟았다.
효재는 몇 번이나 익헌에게 꾸벅 꾸벅 허리를 숙이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나중에 갚아. 그러면 돼. 지금 네가 하기에는 벅차잖아. 내가 미리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
이익헌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