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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콜로니
“이 새끼가! 눈깔이가 삐었나. 맨날 밟고 지랄이야.”
길무영이 시현에게 밟힌 팔을 붙잡고 소리를 질러댔다.
“병신아. 그럼 효재 침대에 붙어서 쳐자든가. 비켜. 눈깔이 좀 찾게.”
"웃기냐? 그게 개그냐?"
"너 따위를 웃기자고 말한 거 아니거든? 아, 좀 비켜봐! 이사장님이 한 말 못 들었냐? 통로는 항상 비워두라고 하셨잖아. 통로 없이 어떻게 다니라고! 비켜. 눈깔이 좀 찾게."
시현이 길무영의 허벅지와 옆구리를 차면서 말하자 분해 죽겠다는 듯이 구시렁거리면서 길무영도 벌떡 일어나버렸다.
“이십 분은 더 잘 수 있겠구만. 젊은 새끼가 아침 잠은 더럽게 없어요.”
“그래비티는 어떻게 됐냐? 주둥이로 든다며.”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이었지만 시현을 대하는 녀석들의 태도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심지어 기숙사 식당에서는, 시현이 들어갈 때까지 아무도 배식 음식을 건들지 않고 시현을 기다리고 서 있다가 시현을 가장 앞자리에 세워주었다. 실질적인 혜택이라고는 전혀 없는 별 쓸데없는 배려만 잔뜩 주어지는 판국이었다. 귀찮으니까 먼저 먹으라고 해도 며칠간 그 멍청한 의식이 반복되었다.
시현과 효재는 중간중간, 클랜 A의 소식을 확인했지만 미국 내의 여론은 쉽게 타협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뻔한 일을 두고 의견이 갈린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클랜 A 까는 놈들 집 앞에 늪이 나타나야 되는 건데.”
길무영은 항상 그런 말을 했고, 길무영의 바람이 하늘에 닿았는지 정말 그 일이 일어나버렸다. 정확히는 신문사가 들어서 있는 건물 근처였다.
스페아크린이라는 이름의 그 신문사는 오래 전부터 미키 위도와 악연을 이어왔고 미키 위도가 주장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반대를 하고 보는 곳이었다. 시현과 클랜 A에 대해서 모욕적이고 자극적인 언사를 연일 쏟아부어내는 곳도 스페아크린이었다.
스페아크린은 클랜 A가 17년 전에 미국에 와서 레이드를 했던 것은 러프 스톤과 캐츠 아이 스톤을 쓸어가기 위한 거였지 숭고한 희생정신에서 비롯된 일이 아니었다고 말하는가하면, 클랜 A의 안지우는 지금이라도 대통령과 스무 명의 경호 헌터들을 죽인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하나 따져보자면 틀린 말은 없었다.
클랜 A는 봉사활동을 한 게 아니었고 레이드를 한 대가로 러프 스톤과 캐츠 아이 스톤을 받았으며 지우는 대통령과 경호 헌터들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었다. 하지만 계약을 하자고 먼저 제의한 것은 미국 정부였고 그들은 클랜 A가 혹시 다른 나라와 계약을 하고 다른 나라로 레이드를 하러 갈까봐서 잔뜩 몸이 달아있던 상태였다. 스페아크린이 하는 말은, 앵글을 교묘히 조작해서 진실을 왜곡시키는 일과 비슷했다. 하필 그런 스페아크린의 근처에 늪이 생긴 것이다.
야무지게도 1급 늪이었다. 뭘 먹었는지, 늪이 다른 것보다 빨리 자랐다. 늪이 나타나자마자 오픈 예정일을 두 주 앞에 두었고 스페아크린의 관계자들은 멘붕에 빠졌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늪이 처음 나타나고 두 달은 지나야 늪이 오픈되었고, 대부분 늪이 오픈되기 전에 헌터들이 나서서 공략을 하면서 늪이 사라졌다. 그런데 스페아크린의 건물 앞에 나타난 늪은 그런 원칙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때가서 스페아크린이 눈을 반짝거리면서 스커트 자락을 무릎 위로 들추고 천박한 짓을 해가며 클랜 A에게 추파를 던져봤자 클랜 A는 전혀 무감동했다.
사람들은 클랜 A에 대해서 가끔 심각한 오해를 했다. 클랜 A가 대단한 희생정신과 이타심으로 중무장한 클랜이라고 멋대로 생각을 하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클랜 A는 절대로 그런 팀이 아니었다.
아무 상관 없는 곳에 늪이 나타났다고 해도 움직일까 말까 하는 상태였고,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에는 레이드 보다 콜로니 정찰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판국이었는데 연일 시현이를 괴수로 그려놓은 만화나 실어대면서 판매부수를 높이려고 비열한 짓을 서슴지 않던 신문사 앞에 나타난 늪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상황은 급박하게 흘러갔다. 몇 몇 공격대가 공략을 시도했지만 늪 안의 괴수에게 놀라서 그냥 도망쳐 나오기가 일쑤였다. 사람들은 스페아크린이 위험을 스스로 자초했다고 말하면서도 클랜 A가 인정을 베풀어서 그 늪을 공략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클랜 A는 단호했다.
“아이들도 배워야죠. 입을 함부로 놀리면 좆된다는 걸요. 함부로 용서해주는 건 정말로 멍청한 짓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더 많은 멍청이로 가득 채우는 일이 될 겁니다. 사람들이 자꾸 쉽게 용서를 해 주면 멍청이들은 자기가 멍청한 짓을 계속해도 나중에 쉽게 용서를 받을 거라고 기대하게 되거든요. 교육적인 차원에서라도 그런 사람들이 호되게 당하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누구한테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동정을 얻지도 못한다는 걸 말입니다.”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이익헌이었다. 미키 위도는 이익헌이 한 말을 최소한의 편집만 거쳐서 그대로 실어주었고 이익헌이 한 말은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스페아크린이 클랜 A에게 해 왔던 짓이 있었으니 이익헌과 클랜 A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람도 있었고 클랜 A가 너무 편협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런 의견을 실은 기사에는 예외없이 악성 댓글이 달렸다. 시현에게 어떻게든 잘 보여야 할 이유를 갖고 있는 현신 고등학교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꼭 현신고 아이들이 아니라고 해도 블랙 스왈로워 사태를 직접 겪은 시민들도 가세했고 그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현했다.
스페아크린의 건물 근처에 나타난 늪은 오픈이 될 때까지 공략되지 않았고 그대로 오픈을 맞이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치안대와 상급 헌터들이 대거 동원되었지만 그들의 역량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뻔했다. 될 일이었다면 늪이 오픈되기 전에 공략을 마쳤을 거였다.
스페아크린에도 군이 투입될 거라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충분히 예측이 가능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일찌감치 도시와 생활 터전을 버리고 도망쳤다. 클랜 A가 끝까지 나서지 않을 것인지를 두고 사람들은 말이 많았다.
현신고등학교에서도 클랜 A의 행적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클랜 A는 끝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헌터와 일반인등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재산 피해만 해도 상당했다. 블랙 스왈로워의 사태가 거의 그대로 재현된 셈이었다. 괴수는 그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피해는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작은 도시의 생명이 멈추었다. 군과 치안대, 헌터들이 총력을 기울인 끝에 괴수를 죽이는데 성공한 것은, 괴수가 늪 밖으로 튀어나온지 일주일이 되었을 때였다.
이제 클랜 A에게 화살을 돌리려는 사람은 없었다. 설사 포문을 열려고 하는 사람이 생겨난다고 해도 옆에서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방관자의 책임을 지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클랜 A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다는 것을 깨달았고 클랜 A의 편이 되어주려고 열심이었다. 그런데도 미국 정부는 엇박자 행보를 이어나갔다. 블랙 스왈로워에서 시민들에게 폭격하도록 한 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조종사와 군인들이 명령 불복종죄로 군법회의에 회부될 거라는 소식이 미키 위도를 통해 퍼져나갔다. 블랙 스왈로워에서는 폭동이 일어났다. 겨우겨우 분을 참아가고 있던 사람들에게, 그것은 불씨를 살려 거대한 불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 위해 정부를 압박했다. 결국 일치된 여론에 떠밀려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블랙 스왈로워의 시민과 클랜 A에 대한 사과였다. 미키 위도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대통령의 지지기반이 약해진 틈을 기회로 삼아 치안대의 비밀 조직인 캐츠 아이를 와해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 것이다.
야당 지도부와 손을 잡은 미키 위도는 치안대가 내부에 캐츠 아이라는 조직을 비밀리에 운영하면서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들을 납치하고 감금하는 불법행위를 벌여왔다는 사실을 밝혔다. 미키 위도가 갑작스럽게 그 일을 진행시키는 바람에 캐츠 아이의 씨를 말리려고 나섰던 이익헌이 봉변을 당할 뻔했다. 이익헌은 미키 위도가 너무 멋대로 일을 한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하마터면 모두의 시선이 캐츠 아이에 쏠린 그때 캐츠 아이를 살육할 뻔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이익헌의 방법으로는 일이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가 없을 터였다.
미키 위도가 연일 폭로전을 펼치자 치안대장은 치안대가 캐츠 아이를 운영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 일에 책임을 지고 사퇴를 했다. 사퇴에 앞서 치안대장은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들에게 사과를 했다. 시현을 비롯해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들이 괴수 섬멸에 큰 공을 세우고 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그만하면 미키 위도가 클랜 A에게 진 빚은 거의 갚았다고 생각해도 될 듯했다. 이제 미국 치안대의 캐츠 아이가 시현을 노리고 입국했다는 소식에 긴장을 하면서 시현을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서규태야말로 미키 위도의 활약이 고마웠다.
미국에 클랜 A를 데리고 온 일로 시현이 여론의 먹잇감이 되는 것을 보면서 서규태의 마음 고생이 컸던 것이다. 누구보다 시현을 위하고 있었으면서도 시현에게 그런 일을 당하게 만든 장본인이 자기라는 생각에 서규태는 시현과 같이 있는 동안 시현과 제대로 얘기를 나누지도 못하고 어설프게 자리를 피하기만 했었다.
클랜 A는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미국을 떠날 수가 있었다. 떠나기 전에 미국에 나타난 콜로니나 몇 군데 더 정찰을 하고 떠날 생각이었다. 시현이 지우에게 전화를 걸어서 혹시 학부모 총회 때 와줄 수 있냐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던 것을 지우는 기억하고 있었다.
“당연히 가야지. 우리 아들이 기다릴 텐데.”
그 말을 옆에서 들은 이익헌은 자기도 가야겠다고 하면서 왜 민효재는 전화를 안 하는 거냐고 투덜거렸다. 그 날에 맞추려면 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가 여러 명 있는 클랜 A에게는 캐츠 아이 스톤을 지속적으로 모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익스트림 헌터의 선아영 대표는 묘안을 내서 익스트림 헌터의 이름을 딴 길드를 만들어 세계의 정규 공격대들을 익스트림 헌터 길드 아래에 편입 시켰었다.
익스트림 헌터 길드가 그 자체로 독자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없었고, 길드에 편입된 정규 공격대에게만 익스트림 헌터의 특정한 무기와 보호장구들을 제공하는 것으로 정책을 바꾸었다.
정규 공격대에게는 익스트림 헌터의 무기와 장비가 필요했기에 많은 정규 공격대가 어쩔 수 없이 익스트림 헌터 길드에 편입했다.
가입비용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 비용을 지불하면서라도 익스트림 헌터 길드에 가입을 하는 정규 공격대가 많았다. 가입 비용을 캐츠 아이 스톤으로 지불하면 그에 걸맞는 혜택이 있었다.
익스트림 헌터에서 나오는 무기와 보호장비들은 계속해서 공격 증폭률과 방어 증폭률을 획기적으로 올려오고 있었기에 익스트림 헌터의 무기를 가졌는냐 갖지 못했느냐에 따라서 레이드의 질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밖에도 길드에 가입하면 받게 되는 혜택은 많았다. 괴수와 맵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수도 있었고 열악한 공격대에는 무기와 장비를 무상으로 지원해주기도 하는 등 길드 내의 복지 수준도 더불어 향상이 되었다.
익스트림 헌터가 길드를 만들어 정규 공격대들을 그 아래에 편입시킨 것은 캐츠 아이 스톤이 유통되는 단일 창구를 익스트림 헌터로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움직인 거였기에 다른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베로니카 정규 공격대는 익스트림 헌터 길드에 소속되어 있는 정규 공격대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