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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콜로니
너클을 끼운 시현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차크라를 모으고 집중을 하고 나무를 향해 일격을 가하자 나무가 정면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반대쪽으로 가서.”
해민이 말하자 시현이 쓰러지는 나무의 반대쪽으로 달려가 나무를 다시 일으켰다. 나무는 기우뚱거리기만 할 뿐 바닥에 쓰러지지는 못하고 시현이 치는대로 이리 섰다가 저리 섰다가 하면서 시달렸다. 그렇게 몇 번을 하고 나면 시현의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시현에게 그걸 시켜놓고 해민도 자신의 훈련시간을 가졌다. 대개는 세 그루나 네 그루의 나무 가운데에 들어가서 동시에 네 그루의 나무를 같이 공격하는 연습이었다. 해민은 나무를 괴수로 생각하면서 이리 저리 몸을 날리며 피하기도 하고 갑자기 나타나기도 하고 조르기도 하면서 몰입했다.
“교수님. 교수님도 콜로니에 대해서 들어보셨어요?”
무릎을 짚고 헉헉거리면서 시현이 물었다. 해민의 훈련을 받다보면 제 안의 차크라 중에 제가 순수하게 꺼내다 쓸 수 있는 차크라의 양이 늘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만 사용하는 훈련이 되다보니 숨이 차는 것도 전보다 훨씬 자주 경험하게 되었다. 전에는 자신의 차크라와 괴수의 차크라를 구분없이 썼고 언제든지 괴수의 차크라를 얻어 썼지만 이제는 스스로 그 경계를 구분지었다.
시현이 헉헉 거리다가 바닥에 주저앉자 해민도 그의 옆으로 다가와서 숨을 골랐다.
“콜로니에 대해서는 아버지한테서 들었어?”
해민이 묻자 시현은 그 말을 해도 되는지 생각을 하면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너는 진짜 입이 무겁다. 어린 애가.”
해민이 시현의 머리를 콩, 쥐어 박으면서 말했다.
“네가 알고 있는 것들 중에 내가 모르는 건 별로 없을 거야. 네가 가진 특별한 차크라에 대해서도 나한테 숨길 필요가 없어. 네가 어떤 존잰지, 어떤 사람들한테서 보호를 받고 있는지, 그 사람들이 너를 왜 숨기려고 하는지도 알고 누가 너를 찾아내려고 하는지도 알아.”
“그것도 그게 알려준 거예요? 프레딕터?”
“응. 그렇지만 프레딕터도 전능은 아니야. 새가 둥지를 지으려고 여기저기에서 잡동사니를 물어오는 것처럼 이것저것 물어다 주기만 할 때도 있거든. 그럴 때는 레오니드 교수님이나 미하일 교수님을 찾아가서 괴롭혔지. 네가 누군지 알려달라고 말이야.”
“두 교수님이 왜 교수님한테 그런 걸 말해주시는지 모르겠어요.”
“왜? 너는 내가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면 안 되죠. 어린 애를 상대로 사기를 치신 분이요.”
“뭐야, 또 그래비티 얘기니? 그건 장난이지. 장난. 신입생 길들이기 같은 거.”
“콜로니에 대해서 아시는 게 있으면 알려주세요.”
얘기가 옆으로 흐르다보면 해민이 콜로니에 대한 얘기를 잊을 것 같아서 시현은 다시 콜로니에 대해 물었다.
“나도 자세한 건 몰라. 콜로니에는 정말 최정예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만 모여서 들어가거든.”
“교수님은 거기에 못 껴요?”
“응. 나는 그냥 찐따야. 그러니까 여기에서 고딩 상대로 사기나 치고 있지.”
“그런 거예요?”
시현이 실망한 눈치로 말했다. 그러면서, 정말로 그럴만도 하겠다고 생각했다. 클랜 A가 들어가서 부상을 당하고 올 정도면 아무나 들어갈 곳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걱정 돼?”
“네.”
“어머니는 아직 못 뵈었니?”
“네?”
시현이 해민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말들을 들을 때마다 소름이 끼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나중에 커서 여자를 사귈 일이 생기더라도 무속인 쪽으로는 쳐다보지도 말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교수님한테는 비밀을 갖는 게 별로 의미가 없는 일인가 봐요.”
“아니야. 내가 말했잖아. 내 안의 프레딕터는 전능이 아니라고.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해. 너에 대해서는 특별히 많은 걸 말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안 그래. 레오니드 교수님이나 미하일 교수님이랑은 같이 지낸지가 꽤 됐는데도 두 분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어.”
“제가 엄마를 언제 만나게 될지는 프레딕터도 모른대요?”
“모르는 것 같은데?”
“콜로니 때문에 다들 정신이 없으신 것 같아요. 그냥 정신없이 바빠서 그런 거라면 다행인데 혹시 또 부상을 당하신 건 아닌지 그게 걱정돼요. 저는 언제쯤 클랜 A랑 같이 싸울 수 있을까요?”
시현이 말했다.
“너도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해민이 시현을 바라보았다.
“네?”
“너는. 그러고 싶은 거야? 등급을 올려가면서, 매년 등급을 올리지 못하면 괴수의 차크라에 잠식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너를 맡기고 싶어?”
“저 혼자만 겪는 일이 아니잖아요. 당연히 그렇게 할 거예요. 삼촌이 그랬어요. 제가 제일 강하다고요. 제가 도와야돼요. 저한테 있는 힘이 아주 작다고 하더라도 저는 도울 거예요. 아빠랑 엄마랑 삼촌들을요.”
해민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시현의 얼굴을 만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색해져서 손을 뗐지만 그 손을 시현이가 다시 잡았다. 해민이 뭔가를 말하기도 전에 시현이 해민의 목에 팔을 두른 채 천천히 해민의 몸을 눌렀다.
해민은 시현을 멈춰야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시현은 바닥에 누운 해민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그곳에서 시현의 입술이 움직였다. 해민의 몸이 튕겨 올라갔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이후로는 영영 멈출 수 없을 것 같았다.
“안돼. 안시현.”
말하는 것치고 반항은 소심했다.
시현이 옆으로 구르면서 팔을 괴고 해민을 바라보았다. 해민은, 겨우 ‘안돼.’라는 말 하나로 멈춰버린 시현 때문에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오르려는 것을 느끼면서 헛기침을 하고 일어나려고 했다.
시현은 해민의 표정이 재미있다는 듯이 해민을 바라보았다.
“화 났어요?”
“아니? 내가 왜?”
“그런데 왜 화난 표정을 지어요?”
“안 그랬거든?”
“그랬는데요? 교수님이 화난 표정을 지으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죠?”
“까불지 말고 빨리 일어나. 훈련이나 더 하든지 아니면 일찍 들어가서 씻고 자.”
일어서려는 해민의 손은 시현에게 붙잡혔다. 시현은 해민을 제 위로 끌어당기며 누웠다.
“하지마. 안시현!”
“정말로 하지마요?”
“…….”
“정말로 하지마요?”
“…그래.”
“프레딕터가 이것도 알려줬어요? 그러면 기다리고 있었겠네요?”
시현이 웃으면서 말했다. 한 대 팍 쥐어패고, 건방진 소리 그만 하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 말이 나오질 않았다. 시현은 해민을 제 위에 올리고 틈없이 촘촘하게 해민을 감싸안았다. 시현의 묵직한 다리가 해민의 엉덩이를 감싸 눌렀다.
“정말 그만해야 할 것 같다.”
해민이 말했다. 시현은 제 얼굴 위로 쏟아지는 해민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올리면서 고개를 들어서 해민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나는 교수님이 좋아요.”
“나도 너 좋아해. 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상관 없잖아요.”
“상관 있을걸? 너는 이사장님 조카고 안지우 헌터님 아들이고 치안대장님이 엄마고 치안1부장님이 삼촌이고.”
“그냥 그딴 건 다 잊어버려요. 교수님 아래에 있는 남자가 마음에 들면 그대로 내려와요.”
“미쳤어!”
“적어도 교수님 볼은 교수님 입보다 솔직하네요.”
시현이 붉게 물든 해민의 볼을 엄지로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내가 너무 어려서 안 되는 거예요?”
“그래.”
“그럼 내가 내 또래 애하고 이러는 건 상관없어요?”
“그것도 안 돼.”
“왜요? 질투나요?”
“안시현. 훈련하자.”
“훈련도 할 거예요. 이것도 하고 싶고요.”
해민의 얼굴은 붉은 페인트가 한꺼번에 너무 많이 쏟아진 것처럼 붉어졌다. 시현은 해민의 머리를 제 쪽으로 당기고 눌렀다. 해민의 혀가 시현의 입속으로 들어왔다. 눈을 감았는데도 어둡지 않았다. 두 손이 서로 얽혀 들어갔다.
***
“이건 1급 군체 괴수가 늪에서 출몰해서 헌터들이 레이드를 하는 장면입니다. 미키가 보내준 영상이예요. 이건 사흘 전에 있었던 일인데, 아니, 다시 말할 게요. 사흘 전부터 이틀 전까지의 영상이예요. 그리고 지금도 끝나지 않았고요. 미키한테 다시 확인을 했는데 아직이라더군요.”
서규태가 영상을 준비하면서 말했다.
“아직 레이드가 진행중이라고요?”
지우는 그 말에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거의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고는 해요.”
“헌터들이 입은 피해가 크겠는데요?”
지우가 말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미키는 우리가 다시 미국에 와서 오픈이 예정된 1급 괴수들을 공략해줄 수 없을지 계속해서 물어오고 있어요. 미키 말로는, 이대로 간다면 5년 안에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구 상에서 사라질 거라고 하더군요. 나도 미국 정부가 우리를 어떻게 배신했는지 모르지 않지만. 미키가 피폐해져 가는 걸 보는 건 너무 괴로운 일이라서…….”
서규태가 미키 위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는 클랜원들은 더 이상 서규태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은 임정이었다.
“미키 위도가 써전님을 기다리면 가셔야죠. 써전님이 와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여자한테 헛된 기다림이었다는 생각을 갖게 하시면 안 되죠.”
임정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의자를 무겁게 누르고 앉았던 엉덩이들을 털고 일어났다.
“대신 협상은 제대로 하고 시작하는 겁니다. 오는 길에 미국 치안대에 들러서 캐츠 아이 놈들 얼굴에 주먹을 꽂아넣고 오면 되겠네.”
이익헌이 말했다. 서규태는 정말로 모두들 나서주는 건가 하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이네요. 미국행은. 이제 우리도 식구가 많이 늘었는데요? 야나도 가야 하니까.”
태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영상은 비행기 안에서 보는 걸로 하죠.”
결국 숙소에서 틀어질 예정이었던 영상은 기내에서 상영이 되었다.
“워즈라고 이름붙은 이 괴수는 여덟 개의 개체가 모아진 군쳅니다. 1급 괴수고 하나의 1급 늪에서 서식하지만 맵은 일반 1급 괴수의 늪보다 훨씬 크죠. 정확히 여덟 배에 해당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로 큰 것 같긴 해요. 가장 중요하건 워즈의 체력입니다. 워즈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워즈의 체력을 고갈시켜야 하는데 각각의 개체가 1급 괴수의 체력을 가졌다는 겁니다.”
“그럼 워즈를 공략하려면 일반 1급 괴수를 레이드할 때의 여덟배만큼 공격을 해야 한다는 거네요?”
야로슬라프가 물었다.
“그런 거죠. 그게 워즈가 지금까지 공략되지 못하고 늪 밖으로 출몰하게 된 결정적인 이윱니다. 워즈는 한 곳에서만 발견된 게 아니예요. 오픈예정인 워즈가 많죠. 그리고 워즈는 모두 오픈이 될 때까지 공략이 거의 불가능할 걸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거기에도 열 명의 헌터만 들어갈 수 있는 거고요?”
레오니드가 물었다.
“네. 불공정한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습니다.”
서규태가 말했다.
“정말로 굉장히. 불공정하네요.”
미하일이 중얼거렸다.
“최정예 헌터들이 전부 붙어서 레이드를 한다고 해도 시간 안에 레이드를 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 구조예요. 더군다나 미국은 익스트림 헌터하고의 관계도 좋지 않아서 공격 증폭률이 높은 무기를 제대로 공급받지도 못하고 있죠. 총체적인 난국이라는 건 이런 때를 위해서 아껴뒀다 써야 될 말이겠죠.”
서규태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