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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부. 꼬꼬마 헌터
세 사람은 곧 바디 펌의 사장실로 안내되었고 비서가 안으로 들어간 사이에 밖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열린 순간, 낯선 남자가 튀어나왔다. 시현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그 사람은 세 사람중에 헷갈리지도 않고 곧장 시현에게 달려왔다.
“안시현!”
시현은 그를 바라보았다. 인사를 하긴 해야겠는데 그게 누군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 뒤로 익헌이 나왔다. 효재는 익헌이 왜 거기에서 나오는가 하면서도 꾸벅 인사를 했다.
“바디 펌 사장 이익헌이다. 이분은 천기정 부사장님이시다.”
효재야말로 놀란 얼굴이었다. 이익헌은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효재를 보고 웃어주었다.
효재는 시현을 바라보았다. 너는 알고 있었냐고 물으려고 했던 거지만 시현의 얼굴을 보자 그것을 물을 수가 없었다. 시현도 효재만큼이나 당황한 얼굴이었던 것이다.
"시현이 네 아빠가 헌터가 되기 전부터 알던 분이지."
이익헌이 천기정에 대해서 시현에게 간단히 소개를 해 주었다. 시현은 꾸벅 인사를 했고 천기정은 그동안 시현에게 익숙해진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레오니드와 미하일, 그리고 익스트림 헌터의 세 사람이 보였던 표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길무영은 이제나 저제나 인사를 할 기회를 노렸지만 그럴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눈을 왕방울만하게 키우고 한껏 착한 아이 코스프레를 하고 어른들이 자기를 먼저 알아봐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한참이나 떠들어대다가 이익헌이 길무영을 바라보았다.
“얘는 누구냐?”
이익헌이 시현에게 묻자 시현은 시큰둥하게, 기숙사 방을 같이 쓰는 녀석이라고 말했다.
“길무영입니다. 뵙게 돼서 정말 영광입니다. 정말 영광입니다.”
거듭 고개를 숙이는 길무영을 바라보다가 이익헌이 품 안에서 그래비티를 꺼냈다. 시현은 그래비티를 알아보았다. 효재도 처음에는 갸웃거리다가 그것이 기숙사 방 바닥에 굴러다니던 거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익헌은 그래비티를 길무영에게 주었다.
"이걸 들어봐."
밑도 끝도 없는 말 같았지만 길무영이 쓸만한 놈이 아니라면 길무영에게 시간을 들일 필요도 없었다. 이익헌은 길무영에게 헌터의 기질이 있는지 알아볼 생각이었다.
“삼촌, 안 돼!”
시현이 이익헌을 말렸다.
“왜?”
“얘는 차크라가 없단 말이야. 전에도 발이 그래비티에 닿아서 발가락이 썩었어. 그래서 한참동안 병원에 입원했었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익헌이 되물었다. 천기정을 바라보자 천기정도 처음 듣는 소리라는 표정을 지었다.
“차크라가 없는 사람이 그래비티를 만지면 피부가 썩는다는 말이야?”
이익헌이 물었다.
“응. 헌터 아카데미 교수님이 알려주셨어. 나는 직접 봤다니까? 얘가 그래서 병원에 실려갔어.”
시현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삼촌이 그런 위험한 걸 가지고 다닌다고 타박을 하면서 제대로 알아듣도록 몇 번이나 반복을 해 가면서 말했다.
“재미있는 얘기네.”
이익헌은 뭐가 뭔지 자세히는 모르면서도 누군가 시현을 혹독하게 훈련을 시키면서 불쌍한 영혼에게 겁을 잔뜩 주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을 하며 넘겼다.
길무영은 이익헌이 다짜고짜 저에게 그래비티를 건네자 겁에 질린 얼굴로 이익헌을 바라보았다.
“받아봐. 썩지는 않는다.”
길무영은 슬쩍 뒤로 물러서며 고개를 저었다.
“민효재.”
이익헌이 효재를 부르자 효재는 주저하면서도 손을 내밀었다. 기숙사 방에서 만져본 일이 있었지만 살이 썩지는 않았다. 효재는 그래비티를 가볍게 들었다.
“그래. 네가 그걸 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이제 손을 들 수 있는만큼 높이 들어봐라.”
효재는 손을 들었다. 어깨 높이까지 올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상당히 높이 올라갔다.
이익헌은 이제 그것을 시현에게 주었다. 시현은 왼손 검지만 쫙 펴고 있었다.
“이건 뭐하는 건데?”
이익헌이 물었다.
“나는 여기에만 차크라가 돌거든. 아직 초보라서. 그래서 여기에만 올려야돼. 다른데에 닿으면 썩어.”
“미치겠네. 너를 가르치는 사람이 누군데?”
“그건……. 비밀이야. 미안해. 삼촌. 삼촌이라고 해도 알려줄 수 없어. 당분간은 비밀로 하기로 했거든.”
“알았어. 알았으니까!”
이익헌은 시현의 그 잘난 검지 위에 그래비티를 올렸다. 잘 올려 놓은 것은 아니고 금방이라도 굴러떨어지게 대충 올려놓는 바람에 시현은 손에 뜨거운 군밤을 올린 듯이 호들갑을 떨다가 균형을 잡아서 검지 위에 올리고 익헌을 노려보았다.
“무슨 삼촌이 이래? 조카 살이 썩는 걸 꼭 봐야겠다는 거야?”
“잔소리 말고 팔을 올려봐.”
시현은 팔을 올렸다. 팔이 길다면 천장까지 닿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팔을 높이 올려서 귀 옆에 팔을 붙이는데도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시현이 보니까 그때 생각나네요. 자기 생일 때 엄마 보고 사랑한다고 하트 만들던 거. 시현이 팔이 짧아서 하트가 안 만들어졌잖아요.”
천기정이 말했다.
누군데 그런 것까지 기억하는 건가 하면서 시현은 천기정을 바라보았다.
“제 생일 때요? 제 생일 때도 같이 계셨어요? 그게 언제였는데요?”
“두 번째 생일 때였지, 아마?”
천기정이 말했다. 그러면서 신기하다는 듯이 시현의 머리카락을 헝클고 뺨을 쥐고 흔들면서 연신 웃음을 지었다. 귀여워하고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굉장히 난감한 일이었다.
익헌은 역시 자기 조카라고 말하면서 흐뭇해하더니 그래비티를 길무영에게 넘겼다. 천민들이 하는데 자기가 못할 건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가볍게 그것을 넘겨받았던 길무영은 그날 룸메이트들과 함께 기숙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대신 응급실로 직행을 해서 부러진 팔을 수술해야 했다.
그래비티는 길무영의 손에 닿자마자 지하 5백미터에 이를 기세로 푹 꺼져버렸다. 그것을 들고 있던 길무영의 손은 그대로 바닥에 깔렸고 길무영은 그 바람에 바닥으로 넘어졌다.
“아, 아직 헌터 테스트도 안 받은 애지? 너희들이 특이 케이스라는 걸 내가 잊었다. 이런 애를 데리고 다닐 때는 조심해야 돼. 너희가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따라하다가 다치는 일이 생기거든.”
이익헌은 길무영을 탓하면서 비서에게 구급차를 부르라고 지시했다.
“너도 얘들을 따라 다니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러지 않으면 다치는 일이 자주 생길 거야. 사람은 자기를 띄워주는 사람들 옆에 있을 때 행복을 느끼는 거야. 얘들이랑 같이 다니면 너는 평생 좌절감만 맛보게 될 거다.”
이익헌이 말했다. 시현과 효재는 이익헌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길무영도 마찬가지였다. 길무영은 화가 났다. 상대가 이익헌만 아니었다면, 전설적인 클랜 A의 클랜원이자 바디 펌의 사장인 이익헌만 아니었다면 벌써 그의 앞에서 미처 날뛰었을 것이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아픈 것도 잊을 정도였다.
“저희 부모님 모두 헌터세요! 저도 헌터가 될 거라고요! 이런 애들이랑은 근본부터가 다르다고요.”
길무영이 말했다.
"그래? 네가 얘들의 근본을 알아?"
이익헌이 말했다.
"네?"
길무영이 되물었다.
"멍청하게 되묻지 마라. 이번만 다시 말해준다. 네가 얘들의 근본을 아냐고 했다. 얘들의 부모님이 어떤 분들인지 네가 알고 떠드느냐고 했어."
길무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부모님이 안 계시다고 얘들을 괴롭히는 게 너희들이 하는 짓이지? 그 부모님한테 어떤 사정이 있는지 너희가 알아? 나중에 그 부모님들이 얘들한테 돌아왔을 때 무슨 일을 당하게 될 줄 알고 그렇게 겁 없이 까부는 거냐. 어?"
"그건. 현신 고등학교 전통이어서."
“이건 그래비티다. 차크라를 갖지 못한 일반인이 손에 들면 너처럼 되지. 무슨 말인지 알았냐?”
“말도 안 돼요. 그러면 얘들은 왜 아무렇지 않았는데요?”
길무영이 따지듯이 물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지. 너한테는 열을 알려주려면 열 가지를 다 가르쳐야 되는 건가 보다.”
“얘들한테 차크라가 있다고요? 말도 안 되잖아요!”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누가 정하는데? 네가 정하는 건가 보지?”
길무영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익헌이 헛소리를 할리는 없었다. 하지만 이 녀석들에게 차크라가 벌써 나타났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백번 양보해서 안시현은 그렇다고 치고. 민효재는 또 뭐란 말인지.
길무영은 늦지 않게 도착한 구급대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다. 효재는 안 됐다는 듯이 길무영을 바라보았다.
“그럼 저는 이만 내려가 보겠습니다. 안시현. 다시 만나게 되는 때가 있을 거다. 그때는 우리도 재밌게 놀자.”
"네."
뭘 하고 놀 건지는 물어보지도 않고 시현은 대답부터 했고 천기정은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떠났다. 이익헌은 효재와 시현의 가운데에서 그들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민효재. 그래비티는 차크라를 가진 사람만 들 수 있어. 그걸 든 건 잘한 거지만 너는 어깨 높이까지도 올리지 못했어. 다음에 나를 볼 땐 네 턱이 있는 데까지는 올려라.”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이익헌이 말했다.
“어떻게요?”
“훈련밖에는 방법이 없지.”
“저는 헌터 테스트를 받지도 않았고 헌터 타투도 없는데요?”
“그 전에 받을 수 있는 훈련도 여러 가지가 있어. 너희들이 현신 헌터 아카데미에서 청강을 할 수 있게 해 줄 테니까 앞으로는 거기에서 강의를 들어라.”
“네에?”
효재뿐만 아니라 시현도 놀라서 이익헌을 바라보았다. 삼촌이 그런 일을 척척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인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안시현. 너는 지금 받고 있는 훈련. 계속 열심히 받고.”
“응.”
“그 사람 재미있는 사람이네. 언제 나한테도 소개해줄 수 있냐?”
“아니.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
“여자구만? 이 자식. 벌써 삼촌을 경계하네. 그래. 이해한다. 남자들은 전부 다 그렇지. 그래도 안심해. 너도 아영이 만나봤잖아. 아영이 놔두고 어떻게 한 눈을 팔겠냐? 아영이가 없었으면 나도 자유로운 영혼이었을 텐데.”
“선…아영 대표님? 익스트림 헌터 대표님?”
“뭐야, 이 자식. 그것도 모르고 있었어?”
“그 대표님이랑 사귄다고?”
“마누라랑 사귀는 남자도 있냐?”
“마…누라? 삼촌! 삼촌 진짜 정체가 뭐야?”
“나는 앞으로 민효재의 후견인이 될 이익헌이지.”
이익헌이 민효재에게 윙크를 하며 말했다.
"네?"
효재는 갑자기 자기 이름이 나왔다는 건 알았지만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효재 너는 바디 펌의 장학생이 될 거고 내가 효재 너의 후견인이 될 거야.”
“후견인…요?”
“그래. 도움 없이 노력하는 사람이랑 도움을 받아가면서 노력하는 사람이 내는 결과는 천지 차이야.”
“……!”
효재는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몰라 머뭇거리다가 그저 고맙다고 하면서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이라고 할 것 없어. 시현이도 삼촌이라고 부르니까 너도 그냥 삼촌이라고 불러라.”
“저는 조카가 아니잖아요.”
“얘도 내 조카는 아니야.”
“네?”
“있어, 그런 게. 그래도 시현이는 조카보다 더 소중한 녀석이지. 시현이 아빠도 나한테는 친동생보다 더 각별한 사람이고.”
“네.”
효재는 자기가 이런 호사를 다 누려도 될지 몰라서 아직도 어리둥절해 했다. 시현이 그런 효재를 축하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