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부터 레벨업-250화 (25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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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부. 꼬꼬마 헌터

“윽……!”

시현이 비명을 질렀다. 교실에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움직이는 녀석도 없었다.

유기태라도 소리를 내야 했는데 그 녀석의 비명 소리는 목구멍 안으로 넘어 들어가고만 있었다.

“미, 미친, 미친 새끼!”

이용재가 소리를 질렀다.

"미친 새끼! 네가 언젠가 사고칠 줄 알았어, 개새끼야!"

이용재가 시현에게 소리를 질렀지만 유기태에게 다가가거나 유기태를 돕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녀석들은 유기태의 주변으로 몰려들었지만 누구 하나 유기태를 도우려고 나서는 녀석이 없었다. 모두들 혐짤을 보는 것처럼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그러면서도 호기심을 감추지 못한 채 유기태의 상처를 보고 있었다.

유기태는 겁에 질려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살려달라고 속삭이듯이 말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현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방아쇠를 당겨 사람을 죽인 꼬마같은 심정이 된 채로 시현은 황망한 기분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문이 드르륵 열렸다.

민효재였다.

효재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 모르고 시현에게 달려갔다.

“시현아. 나 장학생으로 뽑혔대. 바디 펌에. 그래서 바디 펌에 가게 됐어. 너도 같이 오라고 하시던데? 지금.”

효재의 목소리는 굴곡을 보였다. 처음에는 신이 나고 잔뜩 흥분해서 떠들어대다가, 말을 하는 도중에 주변의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폭력의 장면은 현신 고등학교 교실에서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시현은 멀쩡하고 유기태의 안색이 창백해졌다는 것이 이상했다.

효재는 시현의 앞에서 제 팔을 잡고 있는 유기태를 보았다. 날카롭게 부러진 뼈가 스스로 흉기가 되어 안에서부터 유기태의 팔을 찢고 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유기태는 애처로운 표정으로 효재를 바라보았다. 입술이 붕어처럼 움직이면서 도와달라는 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런 얼굴을 보고 있는데도 효재는 자신의 마음 속에서 어떤 동정심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놀랄 정도였다.

'아프냐? 그래. 아픈 거야. 그런 일을 당하면. 너도 좀 느껴봐.'

효재는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가…자. 안시현.”

효재가 말했다. 시현이 그런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것과, 그들이 서 있는 위치를 보고 드디어 효재도 진실을 깨달았다.

효재가 시현의 손을 쥐고 잡아 끌었다.

“이사장님한테 가자.”

아무도 효재의 길을 막지 않았다. 효재의 손에서 땀이 났다.

녀석들도 바디 펌의 장학생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별 것 아니지?”

시현은 효재가 서두르는 대로 빨리 뛰지 않았다. 효재는 어느 새 시현의 손을 놓고 혼자서 이사장실을 향해 뛰었다. 잠시 후에, 효재보다 훨씬 더 빨리 용하가 뛰어왔다.

용하는 놀란 눈으로 시현을 바라보더니 시현의 양쪽 어깨를 한 번 붙잡고 뺨을 만지더니 그대로 교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 후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유기태의 부모가 학교로 찾아와서 감히 어떤 애가 기태를 저렇게 만든 거냐고 떠들어대다가 용하의 이사장실로 안내를 받아 들어갔다. 그곳에서 나올 때 그들은 기가 완전히 죽어 있었다. 큰 소리로 떠들어대면 돈이라도 두둑하게 챙겨받을 줄 알았지만 상황은 전혀 다르게 돌아갔다.

용하는 그동안 유기태에게 맞거나 협박을 당했던 아이들의 명단과 증언을 확보한 상태라고 말했고, 유기태가 이 일로 퇴학을 당할 거고 민형사상의 죄책을 면하게 되기도 어려울 거라고 경고했다. 그쪽에서 덮고 넘어가겠다고 하면 모른 척하고 넘어가 줄 수 있겠지만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라면 확실하게 크게 키워주겠다는 말이라는 것을 유기태의 부모도 알아 들었다.

유기태는 길무영이 입원해있던 병원에 입원했다. 길무영은 유기태를 족쳐서 교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소상하게 들었다. 처음에는 진실이 나오지 않았다. 유기태는 자기를 피해자로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고 시현의 행동을 부풀렸다. 그러나 길무영의 시선 앞에서 끝까지 그런 태도를 유지하기는 어려웠다.

유기태는 팔을 다쳤을 뿐 다른 곳은 성했기에 길무영에게 맞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누가 내 방 놈들 건들라고 했어, 이 씨발 새끼야. 겁대가리 없이, 씨발! 함부로 깝치다가는 진짜로 재미없어. 민효재 반에도 전해놔. 내 방 놈들 건들지 말라고."

길무영이 말했다.

"알았어."

"두 놈들한테 문제 생기면 네 대가리가 묻힐 거라는 것만 알아둬라. 듣기만 해서는 딱 상상이 안 오지? 무슨 일을 당하게 될 건지 확실하게 알게 해 줄까?"

"아냐. 아냐. 무슨 말인지 알아. 네가 말만 하는 애가 아니라는 것도 알아. 걔들은 못 건들게 할게. 그게 네 뜻이라고 말해 놓을게."

"조용히 처리해. 그 놈들이 모르게 말이야."

"알았어."

길무영은 자기가 없는 동안 유기태가 만든 소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길무영이 돌아왔을 때, 그 일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길무영은, 얼빠진 모습으로 다른 생각에 잠기는 시현을 볼 수 있었다. 센 척 해봤자 안시현도 그냥 어린 애였다는 것을 길무영도 알고 있었다. 갑자기 눈 앞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안시현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도 이해가 됐다.

길무영의 부모는 모두 헌터였고 부부싸움의 스케일도 일반인 따위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정도였다. 째째하게 입만 나불거리면서 싸우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싸울 때는 둘다 전심전력을 다해서 제대로 붙었고 그들이 들고 싸우는 무기도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자잘한 사시미 칼 따위가 아니었다. 그런 싸움이 한 번 지나가고 나면 둘 다 너덜너덜해졌다.

그래도 며칠이 지나기 전에 몸은 회복이 되었고 둘이 나란히 레이드를 하러 나가곤 했다.

그런 광경을 보고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닐 테니 길무영은 안시현이 좀 불쌍했다. 눈 앞에서 사람이 피를 흘리면서 다치는 것을 처음 보면, 그리고 그 일을 일으킨 사람이 자기 자신이라면 그 일로 꽤 심각한 충격을 받고 그 충격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길무영은 알고 있었다.

점심 시간에 밥도 먹지 않고 안시현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본 길무영은 조용히 시현을 뒤따라갔다.

시현은 터덜터덜 숲으로 들어갔다.

“겁 먹었냐, 새끼야?”

길무영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리자 시현이 귀찮다는 듯이 한 번 돌아보고 나무에 등을 기댔다.

“센 척 하더니. 피 쏟아지는 거 보고 오줌 지린 거냐?”

“누가 오줌을 지려, 병신아.”

시현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갑자기 지겹게 느껴졌다.

“그래서 천민 새끼랑은 상종을 안 하는 거라니까.”

길무영은 아직도 큰 소리를 뻥뻥 쳐댔다.

“너는 천민이고 부모 자체를 가져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니지. 부모 자체를 처음부터 가져보지 않은 놈은 없겠지. 어쨌거나. 부모랑 안 살아봐서 모르겠지만. 그건 요즘 세상에서 현실이야. 그냥. 판타지도 아니고 영화 속 얘기도 아니고.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고작 그런 걸로 겁 먹고 몇날 며칠동안 충격먹고 머엉 할 거면서 헌터 아카데미는 왜 기웃거리냐?”

“누가 너한테 여기까지 따라와서 잔소리하래?”

시현이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면서도 길무영이 그렇게 떠들어주는 것이 싫지 않았다.

“세상은. 특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쉽지 않을 거다. 하긴. 원시인도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지들이 사는 세상은 쉽지 않다고. 그렇게 멍한 표정 좀 짓지마. 새끼야. 전염되잖아. 괜히. 너 따위놈한테 그런 기분 옮고 싶지 않으니까 정신 좀 차리라고. 그 새끼는 병원에서 잘 지내고 있고 금방 나올 거니까.”

“…….”

"그 새끼한테 미안해서 그러냐?"

"누가 그렇대? 그 새끼가 잘못한 거야."

"그런데 왜 이러고 있어? 병문안이라도 가고 싶냐?"

"아니라고."

"그럼 얼굴 좀 펴라고. 옆에 있는 사람 기분까지 구겨지게 만들지 말고."

"누가 옆에 있으래? 여기까지 졸졸 따라와서 일부러 옆에 있는 놈이 누군데. 바보냐? 하긴. 언제나 바보였지."

"이 천민 새끼가 누굴 보고."

"피곤하다. 그냥 닥쳐라. 꺼져."

“있잖아.”

“뭐.”

시현이 길무영을 바라보았다.

"방에서 우연히 들었는데 말이야."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건가 하면서 시현이 길무영을 보았다.

"오늘 민효재랑 바디 펌에 가야 되지?”

“그걸 네가 왜 챙겨?”

“너같은 천민들이 바디 펌을 제대로 찾아갈 수 있으려나 내가 걱정이 돼서 택시 불러놨다고. 올 시간 거의 됐으니까 가자고. 천민놈들이 길 잃고 없어졌다고 해봐. 이사장이 가만 있겠냐? 너네 찾을 때까지는 급식도 중단시켜 버릴 걸? 그러니까 가자고. 네가 멍 때리는 건 그렇다쳐도 왜 너 때문에 애꿎은 다른 천민놈까지 장학금도 못 받고 그러고 있어야 되는데?”

“재수없는 새끼.”

“그 천민 놈은 네가 데려와라. 나는 택시 잡아놓고 있을 테니까. 알았지? 본관 현관 앞으로 와. 알았어? 어? 알았냐고!”

"알았다. 알았어!"

시현은 아주 지겨워 죽겠다는 듯이 소리를 빽 지르고 효재를 찾아 올라갔다. 마음에 들지 않기는 했지만 길무영이 아니었다면 효재에게 중요한 일을 잊어버리고 지나갈 뻔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 속으로 조금, 고마운 마음이 들려고도 했다.

그렇게 길무영은 바디펌에 끼어 가게 되었다. 택시 안에서 효재는 시현이 충격에서 벗어난 건가 하면서 자주 시현의 눈치를 살폈다.

길무영은 답답한 침묵이 싫어서 뭐라도 떠들어대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이 천민들이 절대로 들어보지 못했을 얘기들을 해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길무영은 큰 소리로, 자기 부모님에게서 들었던 레이드 얘기를 했다.

“우리 부모님이 미국에 가서 레이드를 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는 괴수들이 늪에서 나오는 일이 많잖아. 근데 늪에서 출몰한 괴수가 사람을 잡아먹는데 내장만 빼서 먹더래. 그 괴수 이름이 키아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마. 잘은 모르겠다. 근데 그 괴수가, 닭이 벌레를 먹는 것처럼 사람 내장만 콕콕 쪼아서 먹더래. 그렇게 먹고 날아서 도망가고 또 날아와서 내장만 빼서 먹고 도망가고. 사람을 죽이지도 않고 그랬대. 사람들은 산 채로 그런 짓을 당한 거야. 결국 우리 부모님이랑 다른 헌터들이 다같이 공격을 해서 그 괴수를 죽이기는 했는데 그때 죽은 사람들 수도 엄청 많았대. 괴수가 순식간에 여러 사람을 공격하는 바람에 치료를 못 받고 죽은 사람이 많았대.”

“그만 좀 해라. 안 그래도 충격받은 애한테.”

효재가 길무영에게 말을 했지만 길무영은 ‘어디서 천민 새끼가!’ 라고 일갈했다. 그 말에 시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게 현실인 거야. 효재야. 우리는 괴물이랑 공존해야 하는 거야. 같이 살고 싶지 않아도. 이미 그런 세상인 거라고. 우리 기숙사 방에도 한 놈이 있잖아.”

효재는 시현이 큰 소리로 웃는 것을 보면서 이제 이놈이 미치기까지 한 건가 하면서 걱정을 했다. 길무영은 자기가 시현에게 드디어 큰 깨달음을 주었다는 생각에 혼자서 흐뭇해했다.

택시는 바디 펌 앞에서 멈췄다. 세 사람 모두 위압감을 느끼고 잔뜩 쫄았지만 길무영은 전혀 그렇지 않은 척을 하고 혼자 뻐겼다.

"너희들은 여기에 와 본 적 없지? 응? 천민들아."

"어디로 들어가는 거야? 뭔 문이 이렇게 많아?"

시현이 길무영에게 묻자 길무영은 당황한 채로 열심히 두리번거렸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곳이겠지. 저기로 가서 안내 데스크에서 물어보면 되겠네."

나름대로 침착하게 대응한 효재가 아니었다면 세 사람은 바디 펌의 입구에서 단체로 길을 잃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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