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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부. 꼬꼬마 헌터
사람들은 점점 더 뒤로 물러났고 레오니드만이 땅 아래로 가라앉았다. 견고한 땅위에 버티고 서 있던 미니 버스가 캐츠 아이 요원들을 그 안에 실은 채 땅 속으로 기울었다. 레오니드는 그들을 그대로 지옥으로 끌고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도 레오니드가 그대로 사라질 거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레오니드에게 괴수 차크라를 준 괴수가 어떤 존재였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레오니드는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이 땅을 무너뜨려 버스를 묻어버리더니 그 안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팔에서 뻗어내며 그것을 타고 올라왔다. 길게 나왔던 나뭇가지가 레오니드의 손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클랜 A는 각자 지우를 살폈다. 시현을 납치하려고 캐츠 아이가 특파될 때마다 지우를 살피는 것이 클랜원들의 일이 되어버렸다.
“자꾸 그렇게 겁 먹고 볼 것 없다고요. 이제 폭주 안 해요. 시현이도 이제 어린애가 아니잖습니까.”
지우가 말했다. 서규태와 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니드의 발 아래에서 차크라가 흘러나가고 있었다. 차크라는 땅을 단단하게 모으고 있었다. 이곳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알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얼추 끝난 것 같습니다만."
레오니드가 태인을 바라보자 태인이 감응기를 땅 위에 가져다 댔다. 감응기는 캐츠 아이 요원들의 헌터 타투에 반응하도록 설정되어 있었지만 어떤 반응도 나오지 않았다.
“제대로 된 것 같군.”
태인이 말했다. 멀찍이 서 있던 차가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운전석은 비어 있었다. 애초에 운전석이 따로 만들어져 있지도 않았다. 아무도 타지 않은 차가 스스로 움직여서 그들에게 다가왔다. 한 맵의 주인이었지만 클랜 A에게 사냥을 당하고 지우의 차크라를 주입받아 부활한 야나였다.
“시현이가 자라긴 자라나봐요. 지우씨의 차크라가 점점 더 안정되고 있어요.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지우씨의 차크라가 폭주할까봐 걱정이 많았는데. 오늘도 용하씨를 불러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했는데 이제는 스스로 통제가 되는 것 같군요.”
서규태가 지우에게 말했다. 지우도 그 말에 수긍했다. 시현이가 이제 더 이상 어리기만 한 아기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그도 자신을 다스릴 수 있게 되는 것 같았다.
“가죠. 당분간은 캐츠 아이도 조용할 겁니다. 그 사이에 부지런히 또 일을 해야죠.”
이익헌이 야나에게 다가가 차 문을 열려고 하면서 말했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은근 슬쩍 시도하면 야나도 방심을 하고 있다가 문을 열어주지 않을까 했는데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야나를 열 수 있는 사람은 야나를 공략할 때 같이 참가했던 아홉 명의 헌터뿐이었다. 클랜 A 중에 이익헌 혼자만 빠졌었는데 그걸 귀신같이도 알고 야나는 이익헌에게 차별을 두었다.
“그래도 태워주는 게 어딥니까. 태워주는 게.”
스스로 문을 열지 못하는 이익헌을 실컷 비웃어주면서 야로슬라프가 이익헌을 위해 문을 열어주었다.
“야나가 시현이한테 어떻게 할지 그게 제일 궁금해요.”
미하일이 말하자 임정이 웃음을 지었다.
“야나도 시현이를 알 거예요. 못 알아본다면 야나한테 실망하게 될 것 같아요.”
모두가 야나에 올라타자 야나는 그 자리에 흔적만 남겨놓고 사라졌다. 야나가 출발하면서 일으킨 바람에 흙먼지가 다시 가라앉을 때쯤에는, 야나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
일이 끝났으니 이제 현신 헌터 아카데미로 가야 할 때가 된 것 같은데 레오니드와 미하일이 어쩐 일인지 자리를 뜨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 같더니 슬그머니 이익헌에게 다가왔다.
이익헌은 두 사람이 자기에게 할 말이 있는 건가 하면서 두 사람을 노려 보앗다.
“상담 받을 일이 있으면 다른 사람을 이용해. 나는 상담같은 거나 해 주고 있을 시간 없다고. 그럴 마음도 들지 않고.”
“그래도 아짐이 듣는 게 제일 나아요.”
레오니드가 말했다.
뭔가 일을 저지른 거구나 하면서 이익헌이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말할 게 있으면 뜸들이지 말고 바로 말해!”
이익헌이 엄중한 목소리로 경고하자 레오니드가 고개를 숙 숙였다.
그리고 이익헌에게 들릴지 말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날림으로 말을 해 버렸다.
“시현이가 알게 됐어요.”
“뭐라고?”
“시현이가요. 이제 다 알게 됐다고요.”
“뭐를 말하는 거야? 혹시……. 자기 아버지가 누군지?”
이익헌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장면을 떠올려버렸다는 듯이 난감해하며 물었다.
“네. 그것도 그렇고. 클랜 A에 대해서도요.”
“뭐?”
“죄송해요. 제가 착각을 했어요. 시현이가 묻는데 저는 시현이가 이미 다 알고 확인을 하는 건줄 알았어요.”
“도대체 어쩌다가? 아니. 도대체 얼마나 멍청하면 그럴 수가 있는 건데. 어?”
레오니드는 혼이 나도 싸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미하일은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두 사람을 바라보기만 하다가 입을 열었다.
“시현이도 이제 알 때가 됐다고 생각해요. 너무나 괴로워하고 있었다고요. 시현이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 시현이가 혼자서 그런 걸 감당해야 한다는 건 너무 부당하잖아요.”
미하일의 말을 듣고 이익헌도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어디까지 알게 된 거야.”
“전부 다 말한 건 아니지만. 시현이도 곧 이것 저것, 다른 것까지 알아내게 될 것 같아요. 저희 생각에는. 시현이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보다는 이제……. ”
"진짜 마음에 안 들어."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알고 계셨잖아요.”
“우리도 다 생각이 있었단 말이야. 생각이! 헌터 테스트때 말을 하려고 했어. 헌터 테스트에서 결과가 나오는 걸 보고 말이야!”
이익헌이 말했지만 어쨌거나 엎지러진 물이었다.
“…….”
미하일은 아무 말도 못하고 이익헌의 눈치만 살폈다.
“시현이……. 혹시 나한테도 화가 나 있어?”
이익헌이 물었다.
“아닐 거예요. 시현이는 그런 애가 아니예요. 시현이는 정말 착해요. 속도 깊고요. 시현이가 화가 나 있는 건 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너무 힘든 삶을 살았다는 생각 때문이예요. 시현이는 빨리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 뿐이고. 현신 아카데미의 교수 한 사람이 시현이를 돌보고 있어요.”
레오니드가 말했다.
“믿을만한 사람이야?”
“프레딕터예요. 웬만큼 알고 와서 묻는데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시현이한테 호의적이예요. 지금은 클랜 A 외부에서 시현이한테 믿음을 주고 가르쳐 줄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아요.”
레오니드의 말에 이익헌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급해지겠군. 나는 직접 나서서 거짓말을 한 거나 마찬가지잖아. 다른 사람들은 지금까지 정체를 숨겨오고 시현이를 만나지도 않았지만 나는 시현이를 속인 건데.”
이익헌이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현이는 전부 이해할 거예요.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빨리 사실을 말해주는 게 좋을 것 같긴 해요.”
미하일이 말했다. 이익헌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빨리 다가오지 않았으면 하기는 했지만 언젠가는 닥칠 일이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는데요.”
레오니드가 말하자 이익헌이 먹이를 노려보는 뱀 같은 눈으로 레오니드를 노려보았다. 레오니드는 뜨끔해서 고개를 푹 숙였다.
“뭔데 그래!”
“이사장님한테는 아짐이 말씀해 주시면 좋겠어요.”
그 말만 해 놓고 레오니드와 미하일은 냅다 도망쳐버렸다.
“신용하가 나보다 더 무섭다는 건가?”
이익헌은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혼자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이 왜 그렇게 나오는지 익헌도 알 것 같았다.
신용하에게 그 얘기를 해야한다고 생각하자마자 벌써 손발이 오그라들기 시작하고 피도 안 통하는 것 같고 체한 것 같기도 하고 막 온 몸이 불편해졌다. 그 샌님한테 무슨 대단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닌데 괜히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럴 때는 날림으로 끝내는 게 최고였다. 어차피 캐츠 아이를 처리했다는 소식도 전해줘야 했다.
약속 장소에 불려나온 용하는 이익헌을 발견하고 다가가면서 주위를 살폈다. 캐츠 아이가 처리됐다는 걸 모르고 있었기에 아직 주위를 경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익헌은 그런 용하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 일은 해결이 됐습니다.”
익헌이 말했다.
“네? 캐츠 아이 요원들을 모두 끝냈다는 말씀입니까?”
용하가 깜짝 반가워하며 말했다.
“네. 클랜 A가 전부 다 나섰죠. 캐츠 아이 요원들을 전부 미니 버스에 태운 채로 레오니드가 땅에 파묻었어요.”
“다행이네요. 그러면 시현이랑 저는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가도 됩니까?”
“그래도 되겠지만 그러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긴 합니다.”
이익헌이 말했다.
“왜요? 무슨 일이 더 남아 있습니까? 혹시 치안대 놈들이 사람을 더 보냈다고 합니까?”
“아뇨. 그런 건 아니예요.”
이익헌은 용하에게 그런 말을 해야 하는 게 하필 자기라는 것 때문에 화가 나 죽을 것 같았다. 그러나 결국 화를 가라앉히고, 준비해두었던 말을 시작했다.
“시현이가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눈치를……. 채다뇨? 어떤…걸요? 아니. 어떻게요?”
“그거야 정확히 알지는 못합니다만. 어쨌거나 그렇게 됐어요. 이제는 우리도 시현이를 준비시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은근슬쩍 이익헌은 책임을 회피했다.
“요즘에는 괴수들이 계속 변하고 있어요. 단순히 괴수와 맵이 진화한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클랜 A가 전부 나서서 공략에 실패한 개체는 단 하나도 없었어요. 어떤 맵이든, 어떤 괴수든, 괴수의 체력이 얼마나 높거나 관계없이 클랜 A가 출동하기만 하면 모두 사냥에 성공했어요.”
이익헌이 말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상황이 변했다는 겁니까?”
이익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헌터 협회에서도, 치안대에서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는 비밀이었지만 이제는 용하도 그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현의 보호자로서 뿐만 아니라 재인 학원의 이사장으로서, 현신 헌터 아카데미를 이끄는 수장으로서도 알아야 할 내용이었다.
“거대한 늪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성장 속도는 다른 늪보다 더 느려요. 오픈 예정일은 모릅니다. 이전에는 그것들이 나타난 적이 없었고 오픈이 된 일도 없어요. 우리는 그걸 콜로니라고 부릅니다.”
“콜로니요? 혹시 군체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군체는 전에도 상대해 본 적이 있어요. 여러 개체가 하나로 모여서 하나의 생명체를 이루고 있는 군체였는데. 요즘 나타나는 콜로니에는 그런 것들이 한 마리만 살고 있는 게 아닙니다.”
“괴수가……. 여러 마리가 서식하는 늪이 나타났다는 말인 거군요.”
용하의 얼굴 색이 변했다. 익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략을 하러 갔을 때 클랜 A의 클랜원들 상당수가 부상을 당했습니다. 임정 탱커 덕에 상처는 치료받았지만 그건 아직 우리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아직 다른 곳에 또다른 콜로니가 만들어졌다는 보고가 나온 건 없지만 콜로니가 갑자기 오픈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각 괴수들의 체력이 높습니까?”
이익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문젭니다.”
“클랜 A의 지금 전력으로는 콜로니를 공략하는 게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거고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들이 전력으로 싸웠는데도 무리였어요. 헌터 한 사람이 괴수 하나를 상대해야 하는 거랑 마찬가진데 이 녀석들은 그냥 1급 괴수라고 분류할 수도 없어요. 이 녀석들을 위해서 새로운 분류 기준이 필요할 겁니다. 1급 괴수의 수준을 뛰어넘었어요.”
“지우는……. 뭐라고 하던가요?”
용하가 주저하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