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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부. 꼬꼬마 헌터
“타인이 잘 되기를 바라면서 관심을 가지라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측을 하다가 정말로 그 결과가 나오는지 관찰을 하는 관심에 대한 거죠.”
사람들은 이익헌이 하는 말을 한동안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런 사람들 앞에서 이익헌은 자신의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이익헌은 순식간에 자신의 모습을 미하일의 것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미하일의 습관과 동작, 걸음걸이까지 완전히 복제해 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놀라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익헌은 그대로 모습을 바꾸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의 얼굴이 바뀌더니 순식간에 그는 사라지고 지우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이익헌은 그 모습을 한 채로 지우가 평상시에 잘 짓는 표정을 하고 앉아서 강현에게 말을 걸었다. 목소리는 이익헌의 목소리였지만 영락없는 지우였다.
그 정도가 되자 그때까지 흥미로워 하면서 보던 사람들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 그 얼굴은 그 다음에 서규태를 거쳐서 용하가 되더니 나중에는 시현이의 모습이 되었다. 시현이의 모습을 한 이익헌이 지우를 바라보았을 때, 지우를 바라볼 때마다 시현이가 짓던 그 표정으로 이익헌이 지우를 바라보자 지우는 울컥해져서 고개를 돌렸다. 임정은 소리를 지르고 밖으로 나가버렸고 지우는 그런 임정을 위로하러 따라나갔다.
그 일의 끝이 그런 식으로 나 버려서 이익헌은 사람들에게 집단으로 성토당하고 말았지만 미하일은 그런 이익헌을 보면서 자기도 언젠가는 그 정도가 될 수 있도록 계속 연마를 하겠다고 스스로 마음을 다지게 되었다.
지금도, 옆자리에 앉아있는 이익헌은 렌트카 업체 직원 한 사람의 얼굴을 그대로 복제하고 앉아 있었다. 미하일은 그냥 추상적으로, 대충 ‘사람 얼굴’을 둘러쓰고 앉아있는 실정이다. 화상을 입었던 환자가 피부 이식을 받은 것 같은 어색함이 풍겨났지만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캐츠 아이의 헌터들이 그의 얼굴을 들여다 볼 일은 생기지 않을 거였다.
“도착 시간은요?”
미하일이 물었다.
그러다가 이익헌의 시선을 받고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레오니드랑 같이 다닐 때의 습관이었다. 미하일은 자꾸 이것 저것 잘 잊어버렸고 레오니드에게서 들었던 것을 몇 번이나 레오니드에게 다시 묻곤 했다. 거의 습관적이었다.
지금 자기가 이익헌이랑 같이 앉아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을 했다가 미하일은 침을 꿀꺽 삼켰다.
“긴장 제대로 하고 정신 차려라. 어?”
이익헌이 말했다.
“네.”
미하일이 여기에서 이런 대접을 받고 있을 거라는 것을 현신 헌터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물론이고 그 어떤 헌터들도 알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레오니드나 미하일 할 것 없이 클랜 A의 클랜원들 앞에서는 거의 언제나 그런 신세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나마 인성이 괜찮아서 이렇게 대놓고 쥐잡듯이 하지는 않지만 이익헌은 달랐다.
애초에 이익헌에게는 인간적으로 우월한 품성 같은 것을 기대하면 그걸 기대한 사람만 바보가 되는 것이다.
이익헌은 슬슬 준비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미하일을 안에 들여보내서 입국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게 할까 하다가 이익헌은 그냥 차 안에서 기다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만에 하나 운이 좋지 않아서 미하일에게 다른 사람들이 다가가 질문이라도 한다면 미하일의 기묘한 얼굴을 보고 소란을 피울 수도 있어서였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웬 멍청한 관광객들이 미하일에게 길을 물으려고 왔다가 미하일의 이질적인 얼굴을 보고 비명을 질렀던 것이다. 그 일 때문에 이익헌의 일만 두 배로 늘어났었다. 멍청한 관광객들은 언제나 처리 곤란한 변수로 등장했다.
“저 사람들 아닌가요?”
캐츠 아이를 먼저 발견한 사람은 미하일이었다. 이번에도 캐츠 아이가 한국 땅을 다시 밟았다는 것은 전에 제대로 쓴 맛을 못 봤다는 뜻이었다. 이익헌은 지금 막 비행기에서 내린 캐츠 아이를 우선 차근차근 밟아준 다음에 미국에 있는 본진을 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번에 파견된 헌터들은 열 일곱 명이었다. 그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미하일과 이익헌이 타고 있던 차로 먼저 다가왔다.
미하일이 문을 열어주었다. 이익헌이 차에서 내려 그들을 반겼다. 그들은 이익헌과 미하일이 렌트카 업체 직원들이라고 믿고 있었다. 미니 버스로 자신들을 렌트카 회사로 데려다주면 거기에서 각자 차를 받아서 떠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익헌은 모두가 차에 타자 미하일의 옆자리에 올라탔다. 이내 차가 출발했고 뒷자리에서는 일상적인 얘기가 오갔다.
비행기 안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얘기들이었다. 한 아이가 계속해서 우는데 목을 꺾어버리고 싶었다는 말과, 옆 자리에 앉은 남자한테서 베이비파우더 냄새가 나는데 아주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는 말들이 시끄럽게 오갔다.
미하일은 제법 잘 해냈다. 쓸데없이 관심을 주지도 않았고, 능숙하게 운전을 해나갔다.
그들이 경로를 벗어났을 때도 뒷좌석에 있던 녀석들은 한동안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모두들 한국에는 초행길이었고 렌트카 회사가 있는 곳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하는지 아는 놈들이 없었다. 그래도 원래 예상했던 시간보다 많이 걸린다고 생각했는지 한 놈이 이익헌에게 물었다.
“얼마나 더 가야 됩니까?”
“5분 안에 도착합니다.”
이익헌이 말했다. 그러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한국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관광?”
그러자 이익헌에게 물었던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일이 빨리 끝나면 관광을 할 시간도 있겠죠.”
“일이라면 어떤 일인데요?”
“사람을 찾는 일인데.”
“어떤 사람요? 내가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요?”
남자가 말했다. 이익헌은 반팔 차림에 드러난 그의 팔을 보면서 웃었다.
“헌턴가 보네요?”
“예. 헌텁니다. 우리 모두다.”
“혹시 치안대?”
이익헌의 말에 뒷자리에 남자들이 일제히 잡담을 멈췄다.
“혹시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는 사람들이 클랜 A입니까?”
이익헌은 혼자만 분위기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사람처럼 계속해서 떠들어댔다. 미하일의 입술이 비죽이 올라갔다. 모자 아래에서 그가 웃고 있었다.
“클랜 A는 해산됐다고 알고 있는데요.”
이익헌에게 말을 걸었던 남자가 말했다.
“그런데 아직 그 말을 안 믿는 사람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클랜 A한테는 무슨 볼 일입니까?”
“클랜 A를 찾으러 왔다고 말한 적 없는데요?”
남자는 그 대화를 멈추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이익헌에게 계속 말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뒷자리에 사선으로 앉아있던 남자가 그의 입을 다물게 했다. 이익헌도 그때부터는 말을 멈추었다.
차가 큰 도로에서 벗어나서 좁은 길을 타고 어딘가로 깊이 들어가자 그때부터는 뒷자리에 앉아있던 헌터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거요.”
그러나 이익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서 밖을 내다보았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캐츠 아이 요원들은 그때까지도 크게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미국 치안대의 최정예 요원들로 구성된 캐츠 아이가 고작 두 사람에게 납치를 당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다가 적당한 곳에서 두 사람을 제압하고 고문을 해서 어떤 사람들이 연관돼 있는지 알아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일은 그들이 생각한 속도보다 조금 더 빠르게 일어났다.
“인사들 하시죠.”
차가 갑자기 멈추더니 문이 열렸다. 그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길가에 대기하고 있다가 하나씩 차에 올랐다. 캐츠 아이 요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가 하면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가장 먼저 올라온 사람은 태인이었다. 그의 손에는 초소형 감응기가 들려있었다. 그것은 지연으로부터 넘겨받은 감응기로, 헌터 타투를 가진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주는 거였다. 태인이 각 사람들의 헌터 타투 근처에 감응기를 가져다 대자 디링, 디링 소리가 울리면서 화면에 각자의 신원 정보가 뜨며 일치한다는 문구가 떴다.
“환영합니다. 캐츠 아이 여러분.”
태인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태인의 얼굴을 알아본 사람들이 경악했다.
“클랜… A 잖아!”
태인은 그들의 얼굴에 일렁이는 혼돈을 그대로 방치한 채 차에서 내렸다. 이제부터 쇼타임이 벌어지겠지만 쇼의 주인공은 태인이 아니었다. 태인이 차에서 내리자 그 뒤로 지우가 올라왔다. 지우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은 캐츠 아이 요원 중에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대통령과 스무 명의 경호 헌터들을 차크라만으로 죽인 남자에 대해서 그들은 너무나 많이 들어 알고 있었다. 그 후로 1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전한 모습이었다.
“말을 알아듣는 놈이 없었나보군.”
지우가 말했다.
“그만 두라고 말했을 텐데.”
지우의 말이 끝나자 캐츠 아이 요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도 헌터였다. 미국을 대표하는 최정예였다. 그런 그들이 한꺼번에 덤빈다면 아무리 안지우라고 하더라도 쉽지 않을 거라고 그들은 멋대로 생각했다. 그가 아직도 정상의 기량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을 거라고, 그들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뒤에 있던 누군가가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가 방아쇠를 당긴 순간 그것이 지우의 인내심을 끝장내리라는 것을 절대로 알지 못했다. 귀를 찢는 소리를 내면서 총알이 날아갔지만 지우는 그것을 피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의 몸에 보이지 않는 물결이 일렁이는 것 같았다. 총알은 지우를 관통하지 못하고 그 앞에서 떨어졌다.
지우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내 동료들은 그게 항상 나를 붙잡는다고 하지. 주저하는 마음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의욕을 보여줘서 고맙군.”
지우가 천천히 통로를 걸어가는 동안, 열린 문으로 클랜 A의 클랜원들이 하나 둘씩 올라왔다. 그 가운데 임정의 모습이 보였다.
“내 아이한테서 관심을 끄라고 했을 텐데. 그 말을 뇌에 새겨놨으면 좋았잖아.”
임정의 손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 캐츠 아이 요원들도 처음보는 차크라였다. 그것은 그대로 요원의 얼굴 속으로 들어갔다. 임정의 앞에 앉아있던 요원의 얼굴은 그게 투명하게 쏘아진 빛이라도 되는 것처럼 저항도 없이 임정의 손가락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임정의 손가락은 요원의 얼굴을 칼처럼 뚫고 지나갔다. 얼굴에 다섯 개의 구멍이 뚫린 채로 바둥거리던 요원의 다른 팔은 임정의 무릎에 맞고 부러졌다.
지우는 캐츠 아이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의 내장을 잡아 꺼내고 있었다. 바닥에는 그의 머릿속에서 끄집어낸 뇌가 떨어져 있었다. 클랜원들은 지우의 괴수 차크라가 폭주하지 않을까 해서 계속해서 곁눈질로 지우의 상태를 살폈지만 지우는 차크라를 사용하지 않은 채 자신의 힘만으로 상대를 찢어발기고 있었다.
캐츠 아이 요원들은 한 사람, 한 사람, 처절하고 명확하게 존재를 상실해갔다. 클랜 A의 요원들이 차에서 내리자 대기하고 있던 레오니드가 지우를 바라보았다.
“시작하면 되는 거죠?”
레오니드의 질문에 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하일도 나온 거죠? 멍청하게 꾸물거리고 있다가는 같이 묻힐 텐데요.”
레오니드의 말에 미하일이 웃기는 소리를 하고 있다면서 빈정거렸다.
모두들 레오니드의 주변에서 물러섰다. 그러자 레오니드의 발 아래로 땅이 순식간에 훅 꺼져들기 시작했고 그것은 한참동안이나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