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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부. 꼬꼬마 헌터
그는 시현과 효재에게 자신을 치안부장이라고 소개했다. 치안부장이라면 치안대장과 치안1부장을 이어 치안대에서 서열 3위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치안대장과 치안 1부장은 각각 한 사람이 맡고 있었고 치안부장은 시현이 알기로도 여러 사람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굉장히 높은 자리라는 것은 확실했다. 그런 치안부장이 이익헌의 앞에서 이익헌을 깍듯이 대우하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이익헌을 알고 있었던 듯한 모습이었다.
익헌은 그 근방에 괴수가 나타났을 때 효재의 할머니가 빌라로 피하게 된 경위와 빌라 주민들이 괴수가 있는 곳으로 효재의 할머니를 내쫓은 사실, 그리고 효재의 집까지 찾아와서 난동을 부린 사실에 대해서 설명하고 경찰과 치안대가 출동하고도 그 일을 그냥 넘겼다는 이야기까지 전부 해 주었다.
치안부장은 고개를 끄덕여가면서 얘기를 들었다. 얘기를 듣는 동안 그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치안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일반인들의 사건에 관여하지 않는다. 치안대는 경찰조직과는 별도로 구성된 조직이었다. 차크라를 사용할 줄 아는 헌터들이 범법 행위를 하기로 작정을 하면 그들이 사회에 입힐 수 있는 피해는 그야말로 지대했다. 그런 헌터 범법자들을 크리미널 헌터라고 불렀는데 치안대는 바로 그 크리미널 헌터들에 관한 일을 도맡아 했다.
치안대는 '공명정대'하고는 거리가 멀었고, 사회에 기여도가 높은 사람들에게 관대하게 굴었다. 레이드 실력이 뛰어난 상급 헌터에게는 한없는 자비를 베풀고 일반인에게는 그다지 관심을 쏟지 않았다. 치안대원들도 기본적으로 헌터, 그것도 상급 헌터로 구성돼 있었기 때문에 헌터로서의 선민 의식이 굉장히 강했다. 그래서 상급 헌터와 하급 헌터가 부딪친 사건에서는 상급 헌터의 편을, 헌터와 일반인이 부딪친 사건에서는 헌터의 편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았다. 괴수의 출현 빈도가 높아지면서 그런 경향은 점점 더 심해졌다.
싸가지 없는 헌터라고 하더라도 괴수의 처치에는 꼭 필요한 재원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 치안부장이 효재와 효재의 할머니에게 일어난 일을 들으면서 그런 표정을 짓는다는 것은 굉장히 작위적으로 보였다.
“상심이 컸겠구나. 할머니는 다치지 않으셨어?”
치안부장이 물었다. 효재는 자기가 질문을 받았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헌터들조차 벌벌 떨게 만드는 치안대의 서열 3위인 치안부장이 직접 찾아와서 그 일을 챙겨준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같이 가서 사람들을 만나보자. 얼굴을 기억할 수 있지?”
“네!”
효재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빌라 사람들이 왔다 간 후, 집은 치울 수 있었지만 조각난 마음은 불일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부당한 일을 겪고도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막막했었다. 그러나 정말로, 이 세상에 좋은 사람들도 있나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대한 새로운 믿음이 생겼다.
“시현이는 먼저 집에 가 있을래? 삼촌은 효재랑 같이 빌라에 갔다가 집으로 갈게.”
“나도 같이 가면 안 될까?”
시현이 물었다.
“그 사람들이 너를 찾으려고 여기에 왔던 거라며. 네가 괴수를 데리고 왔다고 말하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한테 네 얼굴을 보여주는 게 좋은 생각일 것 같냐? 효재가 너랑 같이 가면 효재 할머니가 거짓말 하신 게 들통나지 않겠어?”
“아, 그런가?”
시현이 말하자 효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 우리는 내일 보자.”
효재가 말했다.
“그래.”
시현은 삼촌이 여전히 못미더웠지만 삼촌이 하는 말이 일단은 전부 다 맞는 것 같아서 걸음을 돌렸다.
“너는 왜 기숙사에서 다니지 않아?”
지바겐에 올라타고 익헌이 물었다. 효재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보고 익헌은 경제 문제라고 짐작했다.
"혹시 말이다. 기회가 된다면 기숙사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있냐?"
"그야. 그건 당연하죠. 할머니는 저 때문에 저러고 계신 거라서 제가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다고만 하면 할머니도 편하게 사실 수 있을 거예요. 큰아버지 댁에서 할머니를 모시려고 하는데 큰어머니가 저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거거든요. 할머니는 제가 그 집에 가서 구박받는 게 싫어서 저를 데리고 나와서 사시는 거고요. 제가 없으면 할머니는 편하게 사실 수 있어요."
"잘 됐네. 진짜 잘 됐다. 너처럼 운이 좋기도 힘들겠다. 기회를 잡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경우에 누군가를 배신하게 되는 처지게 놓이게 되는데 너는 안 그렇잖아. 기회를 잡으면서 그걸 네 희생으로 치장하고 생색낼 수도 있잖아. 진짜 운이 좋네."
"네?"
효재는 이 사람이 자기 얘기를 제대로 이해하긴 한 건가 하는 표정으로 익헌을 바라보았다.
"시현이한테 문제가 생겨서 갑자기 기숙사에 들어가야 할 것 같거든. 시현이한테는 친구도 없는 것 같고. 같이 지내면서 시현이 말동무도 돼 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익헌이 말했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아직은 제가. 그럴 형편이 안 돼서요. 우선 큰아버지께 말씀을 드려보긴 할게요."
"기숙사비는 걱정 안 해도 돼. 그럼 그 얘기는 끝난 걸로 하자. 할머니한테 말씀을 드려놔라. 시간이 많지는 않아. 적어도 모레까지는 시현이가 기숙사에 들어가야 되거든."
"그럼 저도 그때까지요?"
"응. 문제되는 거 없지?"
"네."
"좋았어. 시원시원하니 좋네."
효재는 아직도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후에 두 대의 지바겐이 나란히 빌라 앞에 도착했다. 효재는 괜히 주눅이 들어서 일부러 어깨를 펴고 심호흡을 했다. 익헌이 그런 효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준비 됐으면 가 보자. 우리 조카를 감싸주시려다가 그런 일을 당하셨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이익헌은 의욕을 다지면서 앞장섰다. 치안부장이 그 뒤를 따랐고 치안대원들은 효재를 뒤따라 왔다.
빌라 사람들의 위세는 대단했다. 처음 들어간 곳에서 나온 사람부터가 효재의 집에 쫓아왔던 사람 중 하나였다.
"뭔가요?"
안에서 나온 여자가 말하면서 문 앞에 늘어선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인상과 말투도 그렇고, 꽤나 호전적인 성격인듯했다.
“어머. 누군가했네. 얘좀봐. 거지같은 게 겁도 없이 여기가 어딘줄 알고 찾아와? 이 사람들이 뭔데 데리고 온 거니? 뭐, 깡패라도 동원한 거야? 내가 뭘 어쨌다고 이렇게 쫓아온 거야? 진짜, 별 거지같은 것들이 단체로 웃기고 있네. 내참. 어이가 없어서. 너 여기에 그대로 서 있어. 내가 당장 경찰 부를 거니까. 아니. 치안대 불러서 당장 연행하라고 할 거니까 그대로 서 있어! 당신들도 그대로 있어, 알았어?”
치안부장이 이익헌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입니까?”
“폐쇄하죠.”
“예?”
“이 빌라요. 폐쇄하죠. 격리조치를 하는 겁니다."
이익헌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이 근방에 나타났던 괴수는 스피터였던 걸로 알려졌죠. 스피터는 조류와 어류, 파충류의 특성을 약간씩 나눠 가지고 있는데 특히 독이 있는 괴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때 그때마다 사용하는 공격 방법도 다른데 스피터는 신경독을 사용하는 걸로도 알려져 있죠. 스피터의 독은 침으로 분사가 됩니다. 그 침이 몸에 닿아도 통증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미약한 발열 증세만 나타나다가 침이 닿은 곳을 중심으로 해서 살이 썩어들어가죠. 증상은 바로 나타나지 않고 잠복기간이 깁니다. 2주안에 나타나는 게 대부분인기는 하지만 두 달 후에 나타난 경우도 있었죠.”
이익헌이 말했다.
“정말입니까?”
치안부장이 물었다.
이익헌이 하는 말은 객관적으로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치안부장은 이익헌이 빌라 사람들에게 올무를 놓으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익헌 역시 클랜 A의 일원이었고 치안대에서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클랜 A의 요구를 언제든 들어주도록 되어 있었다.
이익헌이 빌라를 폐쇄하자고 한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주인 여자가 경찰에 연락하겠다고 설쳐대다가 익헌이 하는 말을 듣고 점점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다가 익헌을 향해 다가오면서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항의를 하며 큰 소리로 따져물었다.
“먼저 소리를 지르고 보는 게 습관인 것 같은데 치안대의 업무를 방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형량도 높고 재량의 여지도 많지 않습니다. 그 말은, 계속 그렇게 떠들어대다가는 재미없어질 수 있을 거란 말입니다.”
익헌이 낮은 목소리로 뇌까리자 여자는 하던 말도 끝내지 못하고 입을 딱 다문 채 그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익헌은 하던 말을 계속했다.
“이 빌라에, 스피터가 나타난 시점부터 드나들었던 사람은 모두 격리 조치를 하는 걸로 합시다.”
“병원으로 옮겨야 합니까?”
치안부장이 물었다.
“아뇨. 병원으로 옮겨도 스피터의 신경독에는 해독제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자연적으로 몸이 해독을 하기를 기다려야 하는 거죠. 그 기간이 보름 정도 소요될 겁니다.”
익헌이 말했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도 아니면 왜 그 조치에 따라야 하는 거죠?”
여자가 기겁을 하며 물었다.
“당신들이 전염을 시킬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런 겁니다.”
“스피터 독에 전염성이 있나요?”
“거기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게 없습니다. 전염성이 있다고 밝혀지지 않았다고 해서 곧바로 전염성이 없다고 간주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일단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치를 취해야 하겠지요.”
익헌은 반장 선거에 나간 초등학생처럼 야무지게 말을 했다. 자신의 입에서 나가는 말이 상대방을 얼마나 겁에 질리게 하는지 알면서 하는 말은 가벼운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얘네 할머니도 여기에 왔었어요. 그럼 얘네 할머니랑 그 고등학생도 격리를 시켜야죠!”
“치안대에서 알아서 할 겁니다. 누가 댁한테 자문이라도 구했습니까? 목소리도 지랄 같아서는.”
“뭐, 뭐라고요?”
여자가 소리를 질렀지만 익헌은 여자의 말을 무시하고 아예 치안부장을 향해 돌아섰다.
“그러는 걸로 합시다. 스피터에 대해서 알아보셔도 됩니다. 내 말이 안 믿기면.”
"왜 못 믿겠습니까. 당장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치안부장이 말했다.
“아. 나중에 본인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아두는 게 좋겠죠? 그래야 대비가 되는 거니까.”
그렇게 말한 익헌은 자신의 스마트폰에서, 스피터의 독에 당해 다리의 피부가 썩어들어간 헌터의 사진을 찾아 보여주었다. 그 사진을 본 여자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익헌은 여자가 정신을 수습할 틈도 주지 않은 채 여러 장의 사진을 계속해서 보여주었다. 여자는 자기한테도 그런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곧 패닉에 빠질 것 같은 여자를 보면서 이익헌이 치안부장에게 눈짓을 하자 치안부장은 치안대원들에게 신호를 보냈고 그들은 각자 밖으로 나가면서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돌아다녔다.
“할머니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효재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익헌에게 물었다.
“우리 할머니도 그렇게 되는 거예요?”
효재도 이익헌이 여자에게 보여준 사진을 본 모양이었다.
“이건 스피터의 독에 닿아서 생긴 상처가 아니야. 다른 괴수의 독에 당한 상처지."
"네? 그럼. 일부러 거짓말을 하신 거예요?"
"그래."
"네?"
"나중에 누가 물으면 실수였다고 하면 되는 거고.”
“네? 왜요?”
“내 조카를 괴롭히면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알게 해 주려는 것 뿐이야.”
이익헌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