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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238화 (238/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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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부. 꼬꼬마 헌터

삼촌은 뭘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을 때 삼촌은 크게 웃으면서 자기는 익스트림 헌터라고 했다. 어린 시현은, 아, 이 삼촌이 미친 거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삼촌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했다. 삼촌에게는 헌터 타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익스트림 헌터라니.

시현이 삼촌을 바라보는 것을 보고 삼촌은, ‘아, 그렇지. 너는 그 뜻을 모를 거야.’라고 말했다.

알 것 같기도 해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는 게 귀찮게 느껴져서 그만두었다.

삼촌은 시현을 자주 콩알이라고 불렀는데 시현은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하면서도 그렇게 불리는 게 싫지 않았다. 삼촌이 저를 그렇게 부르면 뭔가 애틋한 기분이 들었다. 저를 아주 사랑해주던 사람들이 그 마음을 가득 담아서 저를 그렇게 불러주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곤 했던 것이다.

'엄마를 닮았으면 너도 잘 생길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너는 아빠를 닮아버렸어.' 라는 말도 삼촌이 자주 쓰는 레파토리였다. 하지만 시현은 아빠를 닮았다는 말이 싫지 않았다.

시현은 어느날 클랜 A의 모습이 나오는 화면을 넋을 놓은 채 보다가 그 중에 한 사람이 익헌 삼촌 같다는 생각을 막연히 한 적이 있었다. 피아노 건반을 치듯이 손가락으로 허벅지께를 두드려대는 모습이 종종 보였는데 그건 들떴을 때 삼촌이 하는 습관이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삼촌은, 자기가 익스트림 헌터라고 말하는 불쌍한 삼촌에게는, 헌터 타투가 없는 것이다.

시현은 하필 지금 이런 때에 삼촌과 마주치게 된 것을 한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삼촌의 표정은 지금 아주 좋지 않았다. 삼촌은 애들 싸움을 절대로 애들 싸움으로 끝낼 사람이 아니었다.

“일어나. 개새끼야.”

유기태는 저에게 닥칠 재앙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 채 시현에게 말했다. 유기태가 그 말을 내뱉고 있는데 뒤에서 엄청난 무게가 유기태를 덮쳐왔다. 유기태는 갑자기 바닥에 쓰러져서 무릎이고 손바닥이고 다 까진 채로 벌떡 일어섰다.

“뭐예요? 앞 좀 똑바로 보고 다녀요! 하, 씨발!”

하지만 유기태는 제가 단단히 실수를 했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눈 앞에 서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지나온 인생이 저절로 회개가 될 정도로 덜덜 떨려왔다. 한 번도 마주해 본 적이 없는 살벌한 눈빛이었다.

“재밌냐?”

남자가 물었다. 그가 누구라는 것을 그 녀석은 알 리가 없었다.

“…예?”

“그따위로 사는 거. 재밌냐고.”

“…아니요.”

“한 번만 더 그러면 그때는 네 눈알에 영영 하늘만 보이게 만들어 줄 수 있어. 눈도 못 감고 죽게 해 버릴 줄 알아라, 이 개새끼야.”

“네.”

“조심하라고. 어? 다 너 생각해서 해 주는 말이다.”

“네.”

순간적으로 부딪쳤던 어깨가 욱신거려서 팔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로 유기태가 말했다.

“다른 새끼들도 다 꺼져라.”

유기태의 곁에 서 있던 녀석들이 하나 둘씩 뒷걸음을 치며 도망쳤다.

“왜! 어른이 애새끼들 상대로 너무한다 싶냐? 애새끼들이 벌써부터 좆같은 것들만 배워가지고! 확 그냥!”

이익헌은 바닥에 누워있는 시현을 바라보았다. 편해 보였다. 당장 저도 그 옆에 누워보고 싶을만큼.

“편하냐?”

“삼촌은 언제 왔어?”

“지금. 누워서 다 봤잖아.”

“여기에 온 걸 묻는 게 아니라.”

“어차피 다 지금이야. 안 일어날 거냐?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시현이 그제야 씨익 웃으면서 이익헌을 향해서 팔을 내밀었고 이익헌도 시현을 보고 웃어주면서 손을 내밀어 시현을 일으켜 주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피도 안 섞인 놈한테 이렇게 웃음이 쉽게 나오는 건, 이익헌에게는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저 새끼들은 너한테 왜 저래?”

“그냥. 골치아파. 다 말하려면.”

“나는 안 아픈데. 말해봐.”

“현신에는 그. 현신만의 거지같은 법이 있어. 부모님이 헌턴지 일반인인지, 부잔지 가난한지에 따라서 우리 계급이 나뉘는데 나는 그나마 부모님이 계시지도 않으니까 제일 바닥이라고.”

“네 부모님이 왜 없어?”

“용하 삼촌도 부모님이 살아 계시다고는 하는데. 정말로 살아 계셨으면 한 번쯤은 보러 오셨겠지.”

“항상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하냐?”

“어디에서? 하늘나라에서?”

시현이 피식 웃자 이익헌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히야. 안시현 키 큰 것 좀 봐. 이제 삼촌보다 더 크겠다?”

“그건 그렇겠지. 만나서 반가워, 삼촌.”

“일찍도 말하네, 이 자식. 뜬금없기는 지 아빠랑 똑같지.”

“요즘 그런 얘기 많이 들어. 아빠를 아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 느낌이야.”

“틀린 말도 아니긴 해.”

“집으로 갈 거야? 나 보러 온 거야, 삼촌?”

“정확히 말하면. 응. 그렇지.”

“차 가져왔어? 걷기 싫은데.”

“그럴 것 같아서 안 가져왔다. 걸으면서 얘기하면 좋지.”

시현은 귀찮다고 하면서도 곧바로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한 번 입을 연 이후에는 익헌이 귀찮아 하는 표정을 지을 때까지 계속해서 말을 해댔다. 이익헌은 민효재의 할머니에 대한 얘기와, 괴수의 공격을 받은 빌라 사람들이 민효재의 집에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는 말을 듣고 눈썹을 모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거기가 어딘데?”

“어딘지는 몰라.”

“친구 집도 몰라? 친구라고 해 봐야 그 놈 하나겠구만.”

“아직 친구가 아닌지도 몰라. 오늘 알았는데?”

“그래도. 교복도 줬다며.”

“근데 걔 말이 맞을지도 몰라. 애들이 나를 다 싫어하거든. 그래서 나랑 누가 엮이면 걔는 생활이 굉장히 피곤해져. 나는 별 상관이 없는데 다른 애들은 아마 안 그럴 거야. 고달프겠지. 다른 애들도 나처럼 이사장님 조카인 것도 아니고.”

“민효재라고?”

“응.”

“큰아버지가 헌터라고?”

“응.”

이익헌은 시현의 얘기를 들으면서 중간중간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 받았다.

“여기서 조금만 가면 되네. 가보자.”

“어디? 민효재네 집?”

“그럼. 우리가 누구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삼촌. 갑자기 들이닥치면 걔도 자존심이 상할 텐데? 우리 생각만 하면 안 되는 거지. 걔 입장이라는 것도 있고. 그리고 걔는 지금 집에 없을 거야. 병원에 간다고 조퇴했다고 했어.”

“너 몇 살이지?”

“열 일곱 살.”

“헌터 테스트는 내년에 받지?”

“응.”

“걔도 너랑 나이 같고?”

“응.”

“헌터가 되고 싶대?”

“당연하지.”

“헌터가 돼서 뭘 하고 싶은 거래? 저도 다른 애들 위에 군림해서 일반인들 괴롭히고 싶어서 그러는 거래?”

“나는 그럴 건데.”

하도 맑고 밝게 대답을 하는 바람에 이익헌은 그런 질문을 한 자기가 오히려 쓰레기같다고 느낄 정도였다.

“헌터가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아져. 좋은 동료도 만나게 되고 같이 레이드를 하다보면 대단한 순간들을 많이 맞이하게 되지.”

시현은 이럴 때가 가장 난감했다. 누가 들으면 삼촌이 헌터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시현은 맞장구를 쳐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삼촌을 놀리지도 못하고, 그냥 바보 형을 데리고 다니는 착한 동생같은 심정으로 삼촌을 다독이면서 같이 말상대가 되어줄 뿐이었다.

다 큰 남자한테 이제 와서, 헌터한테는 헌터 타투가 나타나는 거라고 말을 하는 것도 미안했다. 이 정도가 되면, 그렇게 말을 해 봐야 그 말도 이해를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자기가 지금까지 학교의 서열이니 뭐니 하는 복잡한 얘기를 해서 가뜩이나 용량이 부족한 뇌를 혹사시킨 게 아닌가 하고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삼촌. 힘은 안 들어?”

“나? 왜?”

“먼 길 온 것 같아서.”

“아니. 괜찮아. 근데 이 자식. 진짜 많이 컸네.”

익헌은 시현이를 보는 게 신기해서 시현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는 통에 익헌의 헌터 타투가 보였다. 시현은 그것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일반인 중에, 아주 나이가 어린 초딩이나 늦게까지 정신 못차린 중딩 중에 헌터처럼 보이고 싶어서 팔에 헌터 타투를 그려가지고 다니는 애들이 있었다. 그런 걸 하고 다니면 법에 위반되지만 어차피 헌터 타투가 나타나지도 않을 나이의 아이들이 헌터 타투를 하면 그건 보나마나 위작인 거고 불법성도 크지 않다고 봐서 그냥 넘어가주곤 했다. 그런데 삼촌이, 멋지게 나이들어간 미중년이라고는 하지만 내일 모레면 환갑이 될 삼촌이 헌터 타투를 그려가지고 다니다니.

‘크흡!’

그야말로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안타까웠다.

“삼촌. 이런 거 하고 다니면 잡혀가. 이건 범죄라고. 일반인은 헌터 타투를 새기고 다니면 안 돼.”

시현이 걱정스럽게 말하자 이익헌이 크큭거리면서 웃어댔다.

“이 얘기는 나중에 천천히 할 기회가 오겠지.”

시현도 삼촌이 힘들어하는 부분을 굳이 집요하게 파고 들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저기다. 주황색 슬레이트 집.”

몇 분쯤 더 가고나서 익헌이 시현에게 말했다.

안에서 효재가 나오고 있었다. 대문은 어른이 허리를 편 채로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효재는 허리를 한껏 구부린 채 나오고 있었다. 맞은 곳에서 통증이 느껴지는지 얼굴을 찌푸리는 게 보였다. 효재는 두 사람을 보지 못한 채, 들고 나온 쓰레기 봉투를 담벼락 옆에 세우고 다시 들어가고 있었다.

“저 애 맞아?”

“응. 삼촌. 우리 그냥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럼 너는 그냥 가던가.”

그리고 이익헌은 민효재를 큰 소리로 불렀다. 민효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더니 곧 뛰어왔다. 시현과 같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익헌에게 우선 인사를 하기는 했지만 저를 왜 찾아왔는지는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여기에서 일어난 일을 치안대가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사실이냐?”

“네?”

효재는 시현을 바라보았다. 시현이야말로 난감했다. 시현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효재의 앞에서 말해버리는 삼촌의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효재는 시현을 한 번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실이예요. 집 안에 들어와서 안에 있는 것들을 던지고 부쉈어요. 그릇도 많이 깨졌고요.”

“다친 데는 없고?”

“네.”

“할머니도?”

“네.”

“그 사람들이 누군지는 정확히 모르고?”

“네.”

“그 빌라 사람들이니까 탐문을 하면 알아볼 수는 있겠지?”

“네. 보면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그렇게 하자.”

“그렇게 해도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그럴 권한도 없잖아요. 경찰이나 치안대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우리가 찾아가 봐야 소용도 없을 텐데요?”

“치안대를 데려갈 거니까 괜찮아.”

“치안대는 안 움직일 걸요? 이런데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안 움직여요.”

효재가 말했다.

“그건 네가 지금까지 나쁜 어른들만 봐와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세상은 네가 지금까지 만나왔던 그런 쓰레기같은 인간들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야. 바른 사람들도 많아.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 그런 사람들한테도 깨닫게 해 주면 되는 거야. 똑같은 걸 가르쳐 주는 거지. 그 사람들이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세상에는 아주 많다는 걸.”

시현은 삼촌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세 사람이 멀뚱히 서서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 정말로 치안대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그 지역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더 중요한 사람들 같았다. 사복을 입은 치안대원들이 지바겐 두 대에 나눠타고 나타났고 가장 높은 사람이 이익헌에게 다가와 살갑게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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