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부터 레벨업-237화 (237/331)

0237 / 0331 ----------------------------------------------

10부. 꼬꼬마 헌터

“체육관에 있을 거야.”

“왜 거기에 있어.”

시현이 말했다. 숨조리조차 나지 않았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시현은 몸을 돌려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현신 고등학교 놈들은 일단 한 놈을 정하고 린치를 가하기 시작하면 도중에 멈출 줄을 몰랐다. 어른들은 모르는 그들만의 세계였다. 그렇게 맞아도 말을 하지 못했다. 그게 불문율이라는 놈도 있고 현신의 정신이라고 말하는 놈들도 있었다. 어른들에게 말을 해도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애초에 어른들의 서열에 따라서 정해진 서열인 탓이었다.

삼촌에게 말하면 삼촌은 폭행에 가담한 놈들을 퇴학시킬 것이다. 그러나 그런 놈들이 사라진 자리는 기가 막히게 다시 채워졌다. 그 밑에 있던 놈들이 위로 올라가고, 그 자리를 채워서 똑같은 짓을 하는 것이다. 어떻게 된 게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퇴학을 당할 거라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녀석들은 현신의 전통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시현이 체육관에 갔을 때 그곳에는 민효재뿐이었다. 다른 놈들은 이미 떠난 후였다.

민효재는 몸을 일으켜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민효재의 얼굴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고 갈아입은 교복은 어깨부분이 찢어져 있었다.

‘개새끼들!’

시현의 주먹이 쥐어졌다. 민효재는 후우, 한숨을 쉬고 신경질적으로 손으로 얼굴을 훔쳤다. 눈 밑이 찢어지면서 흐른 피가 얼굴을 간질이는 것 같았다. 얼굴을 훔치다가 고통이 훅 밀려들자 민효재가 숨을 급히 들이쉬었다.

“어떤 새끼들이야.”

시현이 낮은 소리로 뇌까렸다. 민효재는 그제야 시현이 온 것을 알아차렸다.

“미안하게 됐다. 기껏 구해준 걸. 고맙게 입을 생각이었는데. 아니. 계속 고맙게 입을 생각이긴 해.”

민효재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어떤 새끼들이 이런 거냐고!”

“신경쓸 것 없어. 어른들도 바꾸지 못하는 세상인데 우리가 뭘 하겠냐? 이런 건 그냥 연중 행사같은 거니까. 이번에 이 정도 했으면 앞으로 두어 달은 조용히 지나갈 거야.”

민효재가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이건. 진짜 미안하게 됐다.”

민효재는 자꾸 교복 얘기를 했다.

“그건 신경 안 써도 되고. 어떤 새끼들이 그랬는지만 확실히 말해.”

“나를 봐서라도 그냥 지나가줘라. 그렇게 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는데? 퇴학이라도 시키게? 그러면 그 놈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냐? 나를 때렸다고 퇴학을 당하면 나를 가만히 놔둘 것 같냐고. 내가 우리 할머니 얘기 해 줬잖아. 잘못한 게 없어도 가진 게 없으면 그런 일을 당하게 돼. 그런 일을 당하고도 어디에 가서 하소연을 할 수도 없고.”

“경찰에 신고 안 했어?”

“했어. 치안대에도 했고. 누가 그런 거냐고만 묻더라. 우리가 너무 외진 곳에서 살아서 근처에 CCTV도 없다면서 누가 그런 건지 알아볼 수가 없겠대. 처음부터 그런 짓을 하고 간 사람들을 잡으려는 의지도 없었던 것 같고. 나는 그런 일에 불만 없어. 나도 대우받는 사람이 되면 되는 거니까. 지금은 이러고 있지만 나도 잘 되면 되는 거니까. 내년에 헌터 테스트를 받을 때 헌터가 될 수도 있는 거고.”

민효재의 눈이 빛났다.

“부모님은 뭘 하셔?”

시현이 물었다.

“왜? 헌턴지 궁금하냐?”

민효재가 웃었다. 그러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부모님은 안 계셔. 그래도 큰 아버지랑 작은 아버지가 다 헌터라더라. 그러니까 나도 가능성이 어느 정도는 있겠지.”

“헌터면 돈을 많이 벌잖아. 그런데도 할머니랑 너를 도와주지 않는 거야?”

“헌터도 돈 쓸 일이 많대. 항상 하는 말이 그 말이야.”

민효재는 그런 얘기까지 구질구질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손을 저어버렸다.

“많이 찢어지진 않았네. 꿰매면 입을 수 있겠다.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줘. 부탁할게.”

민효재가 일어서며 말했다. 시현도 더 이상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다시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이사장님이 이 일을 알고 있다고 해버려. 한 번은 그냥 넘어가줬지만 이제는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하고. 현신에서 퇴학당한다는 건 그 놈들한테도 데미지가 상당한 거잖아.”

시현이 말했다.

“왜? 빽이라도 있냐? 이사장님이랑 친해? 하긴. 가끔 둘이 같이 있는 걸 보긴 했던 것 같다.”

“아니. 이사장님이 워낙 오지랖이 넓으니까. 알 수도 있을 것 같잖아.”

“알았어.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은 해 놓을게. 고맙다.”

“국어책은 네 책상 서랍에 갖다 놨다.”

“그래. 고맙다.”

“네가 빌려준 건데 뭐가 고마워?”

“알았으니까 먼저 가라.”

시현은 혼자서 교실로 돌아갔다. 아이들은 민효재의 일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남의 반 일인데도 그런 소문은 빨리도 퍼져나갔다.

“그 자식 장학금 받고 학교 다니잖아. 그 장학금은 누가 주는 돈인데? 다 우리가 내는 등록금으로 받는 거 아냐? 돈도 안 내고 학교 다니면 제 학비 대 주는 우리한테 뭔가 해 주는 게 있어야 되는 거지.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염치가. 아무 것도 안 하겠다는 거야? 돈도 안 내고 남들 대접받는 것처럼 똑같이 대접받고 학교 다니겠다고? 그거야말로 불공평한 거지. 안 그래?”

시현에게 들으라는 듯이 떠들어댄 놈은 이용재였다.

“그래도 그 반은 질서가 잘 잡혀 있어서 다행인 건데. 우리 반은 큰일이야. 맨 밑바닥에 있는 새끼가 제 분수도 모르고 깝치고 말이야. 야, 다른 놈들. 뭐 좀 깨닫는 것 없냐? 맨 아랫놈 문제를 우리가 직접 신경 써야 되는 거냐고.”

이용재는 그 반에서 길무영의 바로 다음 위치였다. 부모가 헌터인 아이들도 다시 계급이 나뉘었다. 헌터 등급과 재산에 따른 분류였다. 이용재는 아버지만 헌터지만 아버지가 B급 헌터라서 다른 아이들보다 좋은 대우를 받았다.

그런 이용재의 말에 다른 녀석들이 불편을 감추지 못했다.

“하긴, 일반인 대가리가 어디 가겠냐. 부모가 그런 대가리를 물려줘서 그런 건데 뭐라고 하겠냐. 됐다. 새끼들아.”

느닷없이 부모까지 욕을 먹자 몇 몇 놈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놈들은 이번에도 자기들을 모욕한 당사자는 놔두고 자기들이 화풀이를 할 상대를 찾아 시현의 주위를 둘러쌌다.

“뭐. 할 말 있어? 너희들은 주둥이 하나 가지고는 얘기를 못 하냐? 왜 무슨 말을 하려고만 하면 떼를 지어서 다녀?”

시현이 책상 아래에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말했다.

“따라 나와.”

스스로를 이용재의 사노비라고 부르고 그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유기태가 시현의 앞에 서서 말했다. 그때 담임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사태가 어떤 식으로 치달았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담임이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시현은 답답함을 느꼈다. 저 자신은 이런 상황이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이용재나 길무영도 무섭지 않았고 3학년 선배도 겁나지 않았다.

민효재처럼, 자기가 맞은 것보다 교복이 찢어진 것 때문에 얼굴을 더 찌푸릴 이유도 없고, 일이 피곤해진다 싶으면 삼촌에게 톡을 날리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이건 부당했다. 삼촌만 아니라면 벌써 삐뚤어져버렸을 텐데,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담임은 다른 때보다 더 예의주시하면서 수시로 교실에 드나들었고 결국 유기태는 기회를 노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실 안에서, 담임의 눈 앞에서만 임시로 이루어질 수 있는 보호였다.

일과가 전부 끝나고 민효재의 교실에 들러봤지만 민효재는 교실에 없었다. 가방 정리를 하고 있는 놈을 다그쳐서 물었더니 병원에 간다고 조퇴를 했다는 말이 나왔다. 많이 다쳤냐고 물어도 녀석은 제대로 대답을 하지는 못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시현과 얘기하는 걸 다른 놈들한테 들키고 싶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혼자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데 시현의 주위로 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유기태가 가까이 다가왔다.

“잠깐 좀 같이 가자. 우리도 피곤하다. 협조 좀 해라. 현신 고등학교에 다니면 현신 고등학교 학생답게 알아서 잘 좀 처신해. 사회 생활 안 해 봤냐? 너 때문에 여러 사람이 피해를 보고 있잖아.”

사회생활 안 해봤다, 라고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시현은 제 어깨에 얹어진 유기태의 손을 치우려다가 힘의 균형을 잃으면서 바닥에 넘어졌다. 순간적으로 웃음이 나왔다.

좆나게 쪽팔린 것이다. 유기태는 저 때문에 시현이 넘어졌다고 생각하고 의기양양하게 시현을 내려보았다. 시현은 바닥에 편하게 누운 채 녀석들을 둘러보았다.

한 번 확 다 밀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의 끝자락을 삼촌이 집요하게도 붙잡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 상태는 언젠가 자신의 차크라가 폭주했을 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편으로 불안했다. 용하 삼촌이 없는 곳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골치 아파질 거라는 사실을 시현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유기태의 옆에 서 있던 녀석들은 자연스럽지 못하게 웃었다. 왜 안시현만 마주하면 이렇게 눌리고 괜히 주눅이 들고 열패감마저 느껴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시현이 벌떡 일어서려고 하자 유기태가 시현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눌러 시현을 다시 넘어뜨렸다. 시현은 이번에도 웃었다. 그냥 자꾸 웃음이 나왔다. 그 웃음을 보는 동안 녀석들이 느끼는 긴장감은 점점 더 고조되었다. 어째 웃는 얼굴이 화내는 얼굴보다 더 무서웠다.

그렇게 시현이 바닥에 누워있을 때, 한 사람이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저건 또 뭔가, 하면서 시현은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이제는 바닥이 제 집 침대처럼 편하게 느껴졌다.

‘어……. 삼…촌이다!’

시현의 머릿속에서 레이더가 작동했다.

어렸을 때부터 시현은 거의 용하 삼촌이랑 살았다. 그런데 용하 삼촌이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날이 종종 있었다. 자기가 생각해 둔 건축 자재를 주위에서 구할 수 없어서 그것을 구하러 가거나, 헌터 아카데미에 채용할 교수를 만나러 멀리 갈 일이 생기면 그랬다. 그럴 때면 다른 삼촌이 와서 집을 지켜 주었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해도 고집 하나는 끝내주는 사람이었다.

지금 시현의 앞에 나타난 삼촌이 바로 그 삼촌이다. 그 삼촌은 시현이 알기로, 바디 펌이라는 회사에 자주 드나들었다. 바디 펌은 익스트림 헌터와 함께 대한민국 2대 기업 중 한 곳이었다. 바디 펌은 괴수의 사체를 유통시키고 가공하는 것을 주된 업무로 하는 회사였는데 삼촌은 거기에서 일자리를 구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일단 시현의 생각은 그랬다. 그런 게 아니라면 삼촌이 바디 펌을 그렇게 자주 기웃거리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삼촌은 자신의 이름을 다르게 알려주었지만 삼촌의 실제 이름은 이익헌이었다. 언젠가 우연히 본 그 이름이 삼촌의 실제 이름이라는 것을 시현은 직감으로 깨달았지만 삼촌이 숨기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모르는 척해주자고 생각했다. 어차피 자기는 삼촌이라고 부를 거였기 때문에 삼촌의 이름이 뭔지를 아는 것은 크게 상관이 없었다.

익헌 삼촌은. 일단은 잘생겼다. 누구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못한다. 거기에 성격은 굉장히 괴팍하고 가치관도 이상한 것 같다. 약한 것들은 죽도록 정해져있고, 약해서 죽는 거다 라는 말을 수시로 했다.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생태계의 균형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어린 시현이 질문을 하면 꼬박꼬박 대답을 해 주기는 했는데 그게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것인가 하면 그건 해석의 여지가 많았다.

여자랑 남자랑 같이 밥을 먹으면 남자가 돈을 내야 하는 거냐고 시현이 물었을 때 삼촌은, 무조건 더 못생긴 쪽이 돈을 내야 하는 거라고 명쾌하게 대답을 해 주기도 했다. 어린 시현이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큰 몫을 차지한 사람임은 분명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