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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236화 (236/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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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부. 꼬꼬마 헌터

부모가 모두 헌터인 길무영이었다. 그 말은 길무영이 현신 피라미드의 최상층에 위치하고 있다는 뜻이다.

시현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녀석이었는데 머리는 제법 깨어있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무영은 자기가 할 말을 다 하고 자리에 앉으려다가 저를 보고 있는 시현과 눈이 마주치자 어디서 감히 천민 주제에 저를 보는 거냐는 식으로 눈을 부라렸다.

‘하, 끝까지 재수없는 새끼!’

시현도 한 순간에 기분이 확 나빠져서 길무영을 노려보았다.

‘클랜 A한테 그런 일이 있었나? 미키 위도라는 사람은 또 누구지?’

아무래도 책을 너무 멀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한테는 심각한 난독증이 있고, 책을 읽으면 머리가 아프고 구토가 날 것 같다고 온갖 뻘소리를 다 하면서 책을 피해 왔었는데 더 이상은 그래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영웅에 대해서 다른 놈이 저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굉장한 모멸감을 느꼈던 것이다.

집에 돌아가서 시현이, 책 좀 사게 돈 좀 달라고 말을 했을 했을 때 용하는 그 말을 듣고도 자기가 분명히 잘못 들은 거라고 확신을 했기에 시현의 말에 대꾸 하지 않았다.

“삼촌 카드 가지고 나가도 되지? 어디에서 썼는지 내역 나오잖아. 다른 데 안 쓰고 책만 살게.”

시현은 그대로 용하의 카드를 가지고 사라졌다.

'이 자식이!'

카드 승인 문자가 날아오는데 한 두 번으로 끝나질 않았다. 시현은 삼촌 돈 많은 건 어떻게 알아가지고 서점 주인에게 하룻동안 한 달 매출을 올려주고 관련 서적을 쓸어오다시피 했다. 서점 주인은 그게 기회라는 걸 알고, 시현이 고르지 않은 책들 중에도 좋은 게 많다면서 추천을 했고 시현은 사양하지 않고 모두 사들였다.

집으로 배달되어 온 책이 책장 네 개는 한꺼번에 채울만한 양이었다. 용하는 시현이 사온 책이 전부 헌터와 레이드, 클랜 A에 집중된 것을 알고 한숨을 쉬었다.

저녁 식사 시간에도 내려오지 않고 새벽 네 시가 될 때까지 책을 보는 시현을 보면서 용하는 그 시간에 전화를 걸었다.

“야, 안지우. 안 되겠다. 시현이는. 그냥 헌터야. 타투가 나타나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어.”

“…….”

전화기 저 편에서는 길고 무거운 침묵만이 전해져올 뿐이었다.

***

레오니드는 헌터 아카데미로 출근을 하는 중이었고, 미하일이 먼저 가 버린 것 때문에 아직도 기분이 풀리지 않아서 혼잣말로 욕을 해대고 있었다.

미하일은 레오니드의 방이 있는 이층에 대고 빨리 일어나지 않으면 먼저 가버리겠다고 하더니, 정말로 하나뿐인 차를 타고 혼자 가버린 것이다.

덕분에 레오니드는 오랜만에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는데 이 버스 기사가 레오니드를 태워줄 듯 태워줄 듯 하면서 태워주지 않고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것이다. 버스를 놓쳤다고 생각했으면 택시라도 탔을 텐데 아예 확 떠나버리는 것도 아니고 애간장을 태우면서 천천히 속도를 늦춰주기에 매번 희망을 갖고 뛰다보니 어느덧 학교 앞이었다.

“미하일, 이 개자식을 확 그 버스 기사랑 묶어서!”

그러고 있는데 낯익은 얼굴이 레오니드의 앞에 나타났다.

시현이었다. 시현은 멀리에서 레오니드를 발견하고 그때부터 쉬지 않고 달려온 것이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시현이 인사를 꾸벅했다.

“왜 여기에 있어? 수업 없냐?”

레오니드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잘못한 것은 없지만 시현의 앞에서는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정확히 나눠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저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시간을 조정했어요.”

“조정해? 왜?”

“교수님한테 레이드 수업을 받으려고요.”

시간을 조정했다는 말은 개뻥이었지만 시현은 일단 되는대로 말을 하고 있었다. 만약에 레오니드가 레이드 수업 받는 걸 허락해준다고만 하면 그 뒤의 일은 자기가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정 안 되면 삼촌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매달려야 했다.

“……. 삼촌이랑은 얘기가 됐어?”

“저희 삼촌을 아시는 거죠?”

“…….”

레오니드는 갑자기 난처해져서 시현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고. 너 혼자서 결정할 일은 아니니까 삼촌 모셔와.”

레오니드가 말했다.

“그러면 되는 거죠?”

“뭐가 되는 건데?”

“레이드 가르쳐 주실 거냐고요.”

래오니드는 시현을 바라보았다.

“너하고는 더 이상 할 얘기 없으니까 나한테 이러지마라. 나도 진짜 불쌍한 사람이야.”

레오니드는 정말로 불쌍한 표정을 짓고 시현의 앞에서 달려가버렸다.

시현은 기운이 빠진 얼굴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어, 저기, 안시현.”

뒤에서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학교에서 그렇게 다정한 목소리로 시현의 이름을 불러준 녀석은 지금까지 없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현은 뒤를 돌아보았다.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오다 가다 몇 번 본 일이 있는 녀석이었다.

희한한 것은 그 녀석이 교복 차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현신 고등학교에서는 교복을 입어야 했다. 현신 유치원부터 현신 대학원, 현신 아카데미까지 전부 마찬가지다.

시현은 녀석의 명찰을 보았다.

‘민효재?’

시현은 녀석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리고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뭔가 오해했나본데. 나한테 말 걸었다가는 너도 좋은 꼴은 못 당할 거다. 나한테 말 거는 거. 너한테 안 좋아.”

“상관없어. 나도 너보다 나을 게 없거든. 현신에서는 천민이지.”

녀석은 헐떡거리면서 뛰어오더니 시현의 옆에서 보조를 맞추며 걸었다.

“우리 할머니 도와줘서 고마워.”

“할머니?”

“응. 할머니가 네 이름을 외우고 계셨어. 네 교복을 보고 네가 현신 고등학교에 다니는 애 같더라고 하셨어.”

“혹시 그때 그 할머니가 너희 할머니셔?”

놀란 얼굴로 시현이 물었다.

“응. 폐지 모은 리어카 끌고 가시던 할머니. 그 할머니가 우리 할머니야.”

“아, 그래애? 할머니는 괜찮으셔? 많이 놀라셨을 텐데. 다치지는 않으셨대? 병원에는 안 가보셔도 된대?”

“어……. 아니. 그건 됐고. 도와줘서 고마웠다고. 할머니가 꼭 그 얘기를 전하라고 하셨거든.”

“뭐. 다치지 않으셨으니까 된 거고. 그런데. 옷은……?”

시현이 민효재의 사복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 이거.”

민효재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사람들 진짜 대단하더라. 우리 집에 찾아왔어. 빌라단지 앞에 구멍이 생긴 거랑 빌라 건물 부서진 거. 그게 보상문제가 빨리 해결이 안 되고 있나본데. 미친 것 같았어. 제정신이 아닌 것 같더라.”

“너희 집에 찾아와서 뭘 어쩌겠다고?”

“그냥 화풀이지.”

“화풀이라니? 너랑 할머니한테 왜?”

“괴수를 거기로 끌고 왔다고. 그리고 할머니가 너를 숨긴다고.”

“뭐?”

“신경쓰지 마. 원래 미친 사람들 같았어. 그리고 할머니는 원래 눈이 안 좋으시니까 너에 대해서 모른다고 잡아떼셨고.”

“내 명찰에 적힌 이름도 보셨다면서.”

“그 얘기는 그만하자. 너한테 고맙다는 얘기를 하려고 한 것 뿐이었어. 늦은 것 같은데 너는 안 뛸 거냐?”

“어.”

“배짱도 좋네. 나는 먼저 갈 테니까 너는 내키는대로 해라.”

민효재가 먼저 달려갔다.

시현은 삼촌이 아직 출근 전일 거라는 생각에 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아직 수업 안 들어갔어? 수업 중에 전화하는데 담임 선생님이 가만 놔두시냐?”

용하는 전화를 받자마자 잔소리를 퍼부었다.

“삼촌, 아직 집이면 나올 때 내 교복 좀 가져다 줘.”

“뭐야, 너. 맞았어? 애들이랑 싸웠어?”

무슨 말을 듣건 간에 시현을 걱정하는 것으로 결말을 보는 용하의 입에서, 아니나 다를까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넘어졌어. 교실로 가져올 필요는 없고. 어디에서 만날까?”

“네 사물함에 넣어 놓을까?”

“그래줄 수 있어?”

“그건 별 문제 아니지만. 너 진짜 다른 놈한테 맞은 거 아니지? 그런 일 있으면 삼촌한테 말해야 돼. 알았어?”

“알았어. 그럼 부탁 좀 할게.”

이제부터는 뛰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시현도 달리기 시작했다.

왜 세상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건지, 왜 사람들은 제대로 화낼 대상을 찾지도 못하고 힘없는 사람들만 골라서 화풀이를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1교시가 끝나고 사물함을 열어보니 교복이 있었다. 가방 안에는 교복 말고도 삼촌의 걱정이 한가득 담겨있는 것 같았다.

삼촌에게 고맙다고 톡을 보내놓고 시현은 민효재를 찾으러 갔다. 민효재는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 있었고 그곳에서는 특별할 것도 없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돈 좀 있는 일반인을 부모로 둔 애들이 민효재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 뒤에서 헌터인 부모를 둔 아이들이 구경을 하고 있었다.

흡사 검투장과 비슷한 것이다. 괴롭힘 당하는 녀석을 구경하면서 웃는 녀석들. 시현은 지금 자기가 나서면 민효재의 자존심이 상할 거라는 생각과, 자기가 교복을 가져다주는 걸 보면 아이들이 민효재에게 더 시비를 걸 거라는 생각 때문에 머뭇거렸다.

그러는 동안 민효재가 녀석들에게서 풀려났다. 하루종일 괴롭히려면 쉬는 시간도 조금씩 줘가면서 괴롭혀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시현은 문 밖에서 민효재를 기다렸다. 민효재가 화장실에 가려고 나오다가 시현을 발견했다.

“어. 여긴 웬 일이야?”

민효재가 물었다.

“어? 어. 그. 너. 국어책 있으면 빌려줄 수 있어? 다음 시간에 국언데 책을 안 가져왔나봐. 가방에 없더라.”

“책을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냐?”

“당연하지, 인마. 나 공부 굉장히 좋아하거든.”

민효재는 어쩐지 좀 한심한 것 같다는 표정으로 시현을 바라보았다. 그게 그런 표정을 불러일으킬 말인가 하면서도 시현은 꿋꿋하게 버텼다.

잠시 후에 민효재가 국어 책을 가지고 나왔다. 그 길도 순탄하게 나오지는 못하고 머리에 돌멩이만 가득 들어있는 것 같은 멍청이들한테 등을 떠밀리고 다리를 걸리면서 나왔다.

겪지 않아도 될 일을 당하게 한 것이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민효재는 별 일 아니라는 듯이 국어 책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이거. 사물함에 있어서 가져와 봤는데. 작아져서 못 입는 건데 불편한 마음 갖지 않고 입어주면 좋겠다.”

시현은 교복이 든 가방을 건네며 말했다.

“하, 좆나 뻘쭘하네. 힘들게 말했으니까 됐다는 말은 하지 마. 국어책은 네가 가지러 와.”

시현은 그렇게 말을 해 놓고 제 교실로 뛰어갔다. 자기가 한 일로 민효재가  더 힘들어 질 거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국어 책을 돌려줬어야 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점심시간이 지나고 5교시가 시작될 즈음이었다. 그 반도 국어 수업이 있을 텐데 국어책을 받으러 오지 않은 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현은 민효재의 교실로 뛰어갔다.

두 녀석이 민효재의 빈 책상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서 웃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시현이 국어책을 들고 안으로 들어가자 몇 놈이 시현을 바라보았다.

“왜 남의 반 천민이 여기까지 기웃거려? 썩은 냄새 풍기게?”

시현이 자나가자 한 놈이 말했다.

“어디에 있어.”

시현이 말하자 교실 안이 조용해졌다.

“두 번 묻게 하지 마라. 어디에 있어, 민효재.”

시현의 말에, 민효재의 책상 위에 앉아있던 두 녀석이 슬금슬금 내려와서 자리로 돌아갔다. 시현은 다시 한 번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음의 고저도 그대로 똑같았고, 한 말도 똑같았다. 대답을 하지 않으면 몇 날 며칠이고 그 말을 계속해서 물을 것 같았다.

시현이 삼촌과 산다는 얘기를 들어 알고 있는 녀석들은 시현에게 기죽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느 순간에 이르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게 되었다. 시현의 기세에 눌려 결국 한 녀석이 작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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