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부터 레벨업-235화 (235/331)

0235 / 0331 ----------------------------------------------

10부. 꼬꼬마 헌터

“내년에 들어오죠?”

“네.”

용하가 아는 척을 하자 선아영은 다시 밝게 대답했다. 엄마를 닮았다면 딸도 굉장히 귀엽겠다고 생각하면서 시현은 괜히 흐뭇해했다. 완전 잘 해 주리라는 다짐까지 저절로 생겨날 판이었다.

“우리 시현이한테는 기대 안 하는 게 좋아요. 시현이가 신경 써 준다는 이유만으로 수만대군을 적으로 양성할 수 있게 될 걸요?”

용하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왜요?”

선아영이 물었다.

“우리 시현이한테 마성의 매력이 있는지. 학교에서 여자애들한테 인기짱이거든요. 그만큼 남자애들은 시현이를 미워하지만.”

“정말이예요? 그런데 나는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원래 시현이 아빠가. 아. 시현아. 매장에 내려가서 다른 것들도 보자. 원하는 건 집어들기만 하면 돼. 그러면 다 네 꺼가 되는 거야.”

선아영이 말했다. 아빠에 대해서 말하려고 했던 것 같아서 뒤에 나올 말이 궁금했는데 이번에도 이야기는 이상하게 맺어졌다.

내려가는 동안 지연은 시현에게, 요즘 나오고 있는 괴수들의 동향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 괴수들이 나왔을 때는 어땠는지, 그 괴수들을 헌터들이 어떻게 공략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를 해 주었다. 시현은 정신없이 그 얘기에 빠져들었지만 나중에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모는 헌터예요?”

“아니.”

지연은 자신의 팔을 보여주었다. 헌터 타투는 없었다.

“그런데 늪 아래에서 있었던 레이드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아세요?”

“나한테는 내가 만든 감응기라는 게 있거든. 그게 늪 아래의 상황을 보여줘. 그게 차크라별로 분류를 해서 보여주거든. 헌터 차크라와 괴수 차크라.”

“이모도 그럼 감응기를 가지고 헌터들이랑 같이 레이드를 하러 다녔어요?”

“응. 내 연구를 위해서 가끔.”

“대단하네요. 저도 그걸 볼 수 있어요?”

“당연하지. 삼촌한테 말하고 놀러와. 아니면 내가 가도 되지 않을까?”

지연이 물으면서 용하를 바라보자 용하가 고개를 저었다. 또다시 저 과보호 삼촌의 철벽 블로킹에 막혔다고 생각하면서 지연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시현은 매장에 내려가서 무기들을 보다가 론 디어라는 무기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게 마음에 드니?”

선아영이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론 디어는 짧고 단호한 무기였고 기능은 단순했지만 저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헌터에게는 최고의 동반자가 되어주는 녀석이었다.

“왠지 론 디어는 하나 가져야 할 것 같다.”

선아영은 론 디어를 시현에게 안겼다. 시현은 이런 것들을 정말 척척 다 받아도 되는 건가 하는 표정으로 삼촌을 바라보았다.

“그러지 말고. 시현이 팔 길이랑 손 길이에 맞춰서 내가 다시 만들어 줄게. 론 디어를 넣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칼집도 같이 만들어서 줄게. 보름쯤 있다가 다시 와.”

채준형이 말했다.

“삼촌. 내 생일 같아. 아니. 생일이라고 해도 이런 일은 안 생길 것 같고. 꿈 같아.”

시현이 용하의 귀에 대고 속삭이자 용하도 기분이 좋아져서 같이 웃었다. 그러나 시현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역시나’ 라고 해야 할지 엑스 블레이드였다.

초승달 모양의 커다란 칼 안쪽에, 희번덕거리는 흰자위처럼 날카로운 칼날이 빛나며 자리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무기의 위엄 앞에 멈춰서기는 했지만 그 칼로 괴수를 어떻게 공격을 하나, 하면서 지나가버리곤 하는 무기였다. 그러나 시현은 그 엑스 블레이드가, 클랜 A의 헌터 안지우가 사용하던 그 무기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아무나 사용할 수는 없는 칼이지. 들어볼래?”

채준형이 말했다. 시현은 또 습관적으로 용하를 바라보았다. 용하는 시현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은 숨을 고르고 엑스 블레이드를 들었다.

“휘둘러 봐도 돼.”

채준형이 말하자 시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현이 엑스 블레이드를 높이 쳐들려는 순간에 시현을 막은 사람은 용하였다. 용하는 공기의 밀도가 시현을 중심으로 해서 급격히 변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시현의 차크라가 뿜어져 나오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여긴.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올라가서 하거나 하자. 괜찮지?”

용하의 말에 시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의 팔을 타고 올라오던 차크라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지연과 채준형이 서로 눈빛을 주고 받았다. 위험할 수도 있을 뻔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시현에게는, 일반인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너무 강하고 방대한 차크라가 내재돼 있었다. 지연이 말했던 괴수 차크라다. 여느 괴수 차크라와도 다른,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른 괴수나 헌터를 순식간에 죽일 수도 있는 차크라였다.

시현이 두 살이 되기 전까지 시현은 그 차크라를 사용해서 괴수와 사람을 죽인 일이 있었다.

시현이 용하와 살게 된 데에는 다른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용하가 시현의 차크라를 다스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어리고 제대로 능력이 각성됐다고 볼 수 없지만 언젠가 시현이 자신의 차크라를 다스리고 그것을 자신의 무기로 다룰 수 있게 된다면 괴수와 헌터들간의 판세는 완전히 뒤집힐 거라고 지연은 믿고 있었다.

시현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익스트림 헌터에서 실어온 물건이 얼마나 많았는지, 차에서 짐을 빼느라고 두 사람이 몇 번을 왔다 갔다 했어야 할 정도였다.

“삼촌. 아직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없어?”

“…….”

용하는 그 자리에 멈춰선 채 허공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입을 열어 말했다.

“없는 것 같다.”

“알았어.”

“아. 있다. 고맙다. 오늘, 다치지 않고 아무 일 없이 돌아와줘서.”

“응."

잠시 두 사람 사이에 말이 없었다. 시현의 머릿속이 복잡할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해주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용하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삼촌의 마음을 모르지 않는 시현이 용하에게 다가갔다.

"나 그거 해 줘. 해물 파스타.”

“그래? 그거 먹고 싶어? 알았어. 이 자식. 삼촌 부려먹을 줄은 알아가지고.”

그러면서도 신이 나는지 후다다닥 먼저 들어가며 와이셔츠 소매를 말아올렸다.

***

시현은 다른 생각에 빠지는 일이 많아졌고 담임은 여전히 겨냥을 잘못한 채 분필을 던졌다.

시현 때문에 헌터 여자친구를 잃은 3학년 선배는 지치지도 않고 자주 복도에 출몰했고, 그때마다 삼촌을 부를 수는 없어서 시현이 드디어 결판을 내기로 했다. 시현이 밖으로 나가자 시현을 알아본 선배가 곧바로 시현에게 다가와 시현의 멱살을 잡았다.

“선배님. 저도 이렇게까지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요. 제가 어떻게 하면 해결되는 겁니까? 사람들 지나다니는 거기에서 한 선배님한테도 책임이 있는 거잖아요. 소리지른 것도 좀 책임이 있고요. 그리고 저한테 할 말이 있어서 오시는 거면 혼자 오시던가요. 왜 매번 다른 선배들이랑 같이 다니시는 건지도 모르겠고요. 제가 피하는 건, 무서워서 그러는 게 아니거든요. 그냥 적당히 하시다가 떨어지실 줄 알았어요. 저도 이거. 굉장히 피곤하거든요. 힘없는 척 하는 거요.”

시현이 작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하자 3학년 선배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졌다. 순식간에 복도가 꽉 찰 정도로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곧 싸움이 날 거라고 생각하면서 은근히 기대들을 하는 분위기였다. 시현의 입장에서는 싸움이 난다고 해도 크게 걱정할 것도 없었다. 여차하면 너클을 써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보호구까지 하고 다니는 건 아무래도 너무 과한 것 같아서 그건 못하고 다녔지만 왼 손에는 너클을 끼우고 다녔다. 별 것도 아닌 그것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해지는 기분이었다.

채준형은 시현에게, 차크라를 정교하게 모으는데 그게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었다. 시현은 채준형이 한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가끔 생각이 날 때마다 차크라를 모으려고 시도를 해 보기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어려움을 겪었다. 자기한테 차크라가 있기는 한 건지 그런 것도 의문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래도 너클은, 시현을 이전보다 훨씬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바꿔주었다. 이제는 학교에 혼자 있어도 아주 혼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따라와. 건방진 새끼야.”

선배가 말했다. 시현은 그를 따라가는 대신 벽에 주먹을 박아넣었다.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벽에 금이 갔다. 현신 고등학교 건물은 바디 펌이 재료 공급을 도맡아 해 준 곳이었고 괴수의 공격을 받아도 쓰러지지 않을 재료를 사용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런데 그 곳에 금이 가 있었다.

“안 갈 건데요.”

시현이 말했다. 선배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리로 향했다. 벽에 간 금을 보자, 얘를 꼭 데리고 가야 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각자가 갑자기, 다 하지 못한 숙제를 떠올리거나 약속을 생각해내면서 하나 둘씩 먼저 자리를 떠버렸다.

그러나 헌터 여자친구를 잃어버린 불굴의 선배는 끝까지 버텼다.

“너. 부모가 뭐하는 사람이야.”

그가 물었다.

“없는데요? 그리고. 있다고 해도 선배가 그런 식으로 물어볼 건 아닌 것 같은데요? 나나 후배지 내 부모님이 후배도 아닌데 왜 그렇게 함부로 말합니까?”

"뭐?"

선배는 잠시 할 말을 잃고 시현을 노려 보았다. 말싸움에서는 이겨본 적이 없는 녀석이었다. 말을 내뱉는 순간 저도 조금 과했다고 생각을 하기는 했다. '부모님이 뭐하시는 분이야!' 라고 물을까 하다가 그건 너무 약해보이는 것 같아서 막판에 그렇게 바꾼 건데 거기에서 꼬투리를 잡힐 줄은 몰랐기에 그 녀석도 당황하고 있었다.

“부, 부모님이, 없어? 그러면서 뭘 믿고 까불어?”

시현은 대답은 하지 않고 선배의 얼굴을 빤히 노려보기만 했다.

“너는 이제 죽었어. 개새끼야.”

그렇게 말하고 선배가 돌아갔다. 대뜸 부모가 뭘 하는지 물은 걸 보면 자기 부모는 헌턴가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 학교에 헌터가 나타나려나보다고 생각하면서도 시현은 별로 마음을 쓰지 않았다.

시현은 현신 고등학교가 이런 식으로 굳어지는 것이 싫었다. 삼촌도 그런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대책을 세우지 않는 것이 이해되지 않기도 했다.

수업종이 울려 교실에 들어가자 역사 선생이 들어왔다. 그날 배울 부분이 어떤 부분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수업을 듣다보니 클랜 A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클랜 A의 클랜원이 미국의 전직 대통령 살해에 관련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시현의 귀가 바짝 섰다.

‘클랜 A가?’

역사 선생은 교과서에 있는 내용을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읽으면서 설명을 했다. 역사 선생은 그것이 클랜 A의 명성에 오점을 남겼다고 말하면서 결국 힘을 가지기만 하고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른 채 교만에 빠진 사람들의 최후가 어떤 건지를 가장 잘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그것이 클랜 A의 해산을 당긴 결정적인 사건이었다는 말을 듣고 시현은 괜히 우울해졌다.

그때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일방의 주장일 뿐입니다. 미키 위도의 저서를 보면 그게 정확한 진실은 아니라는 내용이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클랜 A하고의 계약을 미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파기하려고 했던 정황도 있었고 당시 미국 대통령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모면하려고 클랜 A에게 함정을 팠다는 이야기도 나오죠. 당시에 괴수들이 출몰했던 상황과, 미국 정부가 클랜 A에게 보였던 태도들을 보면, 이 교과서에 나온 것과는 다른 내용이 있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적어도 우리 나라에서는 다른 관점에서 그 내용을 볼 수 있어야 할 겁니다. 클랜 A를 살인자집단으로 평가 절하하기보다는 말입니다.”

시현은 흥미를 가지고 뒤를 돌아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