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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부. 꼬꼬마 헌터
“오랜만입니다.”
용하가 말했다.
“네. 이사장님.”
셋 중에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남자가 말했다. 하지만 그도 여전히 시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고 용하에게 건성으로 손을 내밀었다. 용하는 그런 불성실한 악수는 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자기 쪽에서 먼저 그의 손을 외면했다.
“세상에. 얘가 시현이래. 정말. 똑같.”
말을 하던 여자는 재빨리 자기 입을 막고 시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 나는 선아영이야. 익스트림 헌터의 짱을 맡고 있지.”
“안녕. 채준형이다. 익스트림 헌터의 무기 마스터야. 매장은 둘러보고 오는 길이야? 갖고 싶은 건 없어? 아니. 내가 아예 새로 만들어줄게. 혹시 갖고 싶었던 건 없어? 상상하고 있던 것 없어?”
“네?”
시현은 어리둥절해져서 그들을 바라보다가 삼촌을 보았다. 이 사람들 전부 이상한 것 같다는 표정으로 용하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그런 거였지만 용하는 괜찮다는 얼굴이었다.
“에이. 내가 제일 먼저 소개할 걸. 앞에서 워낙 쟁쟁하게들 소개를 하니까. 나는. 어. 지연 이모야.”
지연이 시현에게 말을 하고 손을 흔들어 보였다.
“네. 안녕하세요.”
지연은 뭔가 굉장히 기대하는 표정으로 시현을 바라보았다. 셋 중에서 시현과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낸 사람이 자신이었기에 시현이가 자기를 기억해줄지도 모른다는 소망을 품었던 것이다. 시현은 지연을 바라보기는 했지만 바늘 끝에 걸렸던 것이 아슬아슬하게 틱, 떨어지는 것처럼 아쉽게도 아무 기억도 떠올리지를 못했다.
지연은 안타까워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시현을 만나게 된 것이 기뻤는지 시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이제 이런 것도 하면 안 되겠다. 정말 많이 컸다.”
“저를 아세요?”
시현이 물었다.
“응? 응.”
지연은 그렇게 말을 해 놓고 용하를 바라보았다. 그런 말도 하면 안 되는 건가, 하면서 용하의 사인을 기다리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용하는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어깨를 한 번 으쓱여 보이기만 했다.
“여긴 어떻게 왔어요? 언젠가 올 거라고 생각을 하기는 했는데 용하씨가 너무 꽁꽁 숨겨두는 바람에 나는 영영 구경을 못하게 될 줄 알았어요.”
선아영이 말했다.
“근데. 익스트림 헌터의 짱을 맡고 계신다는 게 무슨 뜻이예요?”
시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 대표라고. 그렇게 안 생겼니? 왜? 권위가 물씬 풍기잖아. 막 존경스러워지려고 하지?”
선아영이 말했다.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세련된 미인이었고 자기 관리를 끝까지 치열하게 하는 중인 것 같았다. 시현은 저도 모르게, 엄마도 이런 모습으로 늙어간다면 정말 멋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시현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2대 기업 중 하나인 익스트림 헌터의 대표를 만났다는 사실에 엄청난 흥분을 느꼈다.
“저희 삼촌을 어떻게 아세요? 삼촌이 익스트림 헌터 대표분이랑 인맥이 닿아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하긴. 삼촌은 별별 희한한 사람들이랑 다 알고 있기는 하지만요.”
시현이 말하자 세 사람이 동시에 웃었다.
“실제로 네가 누군지 알게 된다면 너는 진짜로 놀랄걸?”
지연이 시현의 볼을 잡고 흔들며 말했다. 왠지 그런 짓을 당할 나이는 훨씬 지난 것 같은데 지연 이모라는 사람한테는 시현이가 아직 어린 아기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야, 안시현. 남자들끼리의 대화가 필요한 시점 아니냐? 내 연구실로 가자. 응? 당장 네 힘 좀 보여줘. 차크라도. 여기에 왔다는 건 시현이 너한테도 너만의 무기가 필요해서 온 것 맞지?"
무기 마스터라는 채준형이 시현에게 말했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된 게 하나같이 말들을 하다가 도중에 끊거나 얼굴을 붉히거나 당황하곤 했다. 도대체 누구 한 사람도 나서서 속시원하게 말을 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원망스런 표정으로 삼촌을 바라보았지만 삼촌은 시현이 딱 예상했던대로 딴청을 부렸다.
채준형이라는 무기 마스터에게 붙잡혀서 연구실로 가는 동안 뒤에서 소곤거리는 말소리들이 끊이질 않았다. 정말 많이 컸다느니, 정말 똑같다느니 하는 말이 나왔고, 아빠보다 훨씬 잘 생겼지 뭐가 똑같냐는 용하의 반박이 이어졌다.
“저희 아빠를 아세요?”
시현이 눈을 빛내면서 채준형에게 물었지만 채준형은 갑자기 가는 귀를 먹기라도 한 것처럼 듣지 못한 척을 했다. 그러면서도 시현에게 미안해하는 것 같아서 시현도 더 이상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채준형의 연구실은 시현이 생각했던 것만큼 대단하지는 않았다. 채준형도 시현이 자신의 연구실을 보고 실망을 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 같았지만 그래도 굴하지 않았다. 시현을 깜짝 놀라게 만들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너. 친구들 많아?”
채준형이 기습질문을 했다. 시현은 적잖이 당황한 채로 삼촌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삼촌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자기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혼자 있는 걸 좋아해요.”
“그 나이에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녀석은 대개 자의로 그렇게 되지는 않지.”
채준형의 말에 반박을 할 생각도 없었다. 채준형은 시현을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게 하고 시현의 체격을 가늠했다.
“시현이는 오른손잡이냐?”
“아니예요.”
“왼손잡이야? 내가 이걸 왼팔용으로 만든 건 순전히 실수였는데. 재미있게 됐네. 오른손을 쓰는 건 어느 정도로 불편해?”
"두 손 다 쓰기는 하는데 왼손이 더 편해요. 생각을 하지 않고 연필이나 가위 같은 걸 잡을 때는 왼손이 나간다는 정도고 둘 다 쓰는데 불편함은 없어요."
"아주 좋네."
채준형이 말하며 시현에게 손짓을 했다.
“한 번 일어난 일은 그 다음부터 엄청나게 자주 일어날 일의 징조라고 보면 돼. 한 번 늪 밖으로 괴수가 나오기 시작하면 끝이야. 앞으로는 괴수들이 앞에 있는 놈을 밀어가면서 나올 거다. 그럴 때를 위해서 너도 미리 대비하는 게 좋아. 직접 싸우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만약을 위해서 대비하고 있기는 해야 되지.”
채준형의 말에 시현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시현은 삼촌을 바라보았다. 삼촌도 그렇게 생각하냐고 묻는 표정이었다.
“아마. 그 말이 맞을 것 같긴 해. 그래서 나도 너한테 이런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고.”
“이런 일이 왜 갑자기 일어나는 건데요?”
시현이 물었다. 처음에는 삼촌에게 물었지만 삼촌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더 잘 알 것 같아서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들에게 물었다. 입을 연 사람은 지연이었다.
“의견만 분분하지 아직 확실히 밝혀진 건 없어. 어떤 사람들은, 상위 공격자가 없어서 퇴화된 조류에 우리 인류를 빗대기도 하지. 고립된 섬에 살면서 자기를 공격하는 포식자들한테서 도망다닐 필요가 없던 조류한테 나타난 일이 지금 인류한테 나타나고 있다는 건데. 고립된 섬에 살던 조류들중에 몇 몇 종은 개체 크기도 작아지고 날개도 퇴화하면서 조류답지 않게 변했어. 사냥은 쉽고 자기들을 공격하는 녀석들은 없었으니까 강해질 필요가 없었던 거지. 그러다가 섬에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달갑지 않은 포식자들이 같이 유입이 됐고 섬의 새들이 갑자기 유입된 포식자들한테 잡아먹히는 일이 생겨난 거야. 많은 종이 거기에 전혀 대응을 하지 못하고 멸종됐는데 지금 인류가 그런 상황이라는 거고. 오랫동안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가 없는 상태가 유지되면서 퇴화됐다는 거지.”
지연이 말했다.
“그럼 이 포식자들은 어떻게 유입된 건데요?”
시현이 물었다.
“그걸 알아내려고 끊임없이 연구들을 하고 있지. 언젠가는 알아낼 수 있을 거야. 지금은 그것보다, 포식자를 어떻게 처치할지 거기에 몰두하느라고 다들 바쁘긴 하지만.”
그러는 동안 채준형이 악기가 들어있을 것 같은 커다란 케이스를 들고 왔다.
“열어봐. 직접.”
시현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것을 열었다.
“차크라를 다루는데 도움이 될 거다. 아직 너한테 설명할 수 없는 게 많긴 하지만 언젠가는 이것들이 필요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미리 만들어 봤다.”
“이걸……. 저를 위해서 만드신 거라고요?”
시현은 이게 다 무슨 일인가 하면서 삼촌을 바라보았다.
익스트림 헌터의 대표와 무기 마스터라는 사람이 자기를 알 거라는 것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같은 반에 있는 녀석들 중에 가끔 익스트림 헌터에서 만들어진 단검을 학교에 가지고 오는 녀석들이 있었다. 그러면 그 녀석은 하루 종일 다른 녀석들에게 둘러싸인 채 부러움을 샀다. 그런 단검은 헌터들은 쓰지도 않는 장난감 수준의 것이었는데 그런 것의 가격도 2백만원이 넘었다. 학교에 그걸 들고 오는 이유는 순전히 자랑을 하고 다른 아이들의 기를 죽이려는 속셈인 거지만 그걸 빤히 알고도 당하는 것이다. 시현은 아이들 틈에 직접 끼어서 구경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고 아이들의 어깨 뒤에서 그것을 보면서 얼마나 부럽고 갖고 싶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건. 무기 마스터가 저만을 위해서 특수 제작한 물건이라니.
“팔을 펴 봐. 양 손에 너클을 끼울 거고 손목 위부터 어깨까지는 보호구를 감쌀 거다. 방패를 들고 다니면서 싸우는 건 귀찮을 테니까. 방패보다 보호하는 면적이 좁긴 하지만 네 순발력이라면 이걸로 충분할 거다. 그래도 훈련이 되기는 해야겠지만.”
시현은 얼굴에 감정을 잘 드러내는 아이가 아니었지만 이번만큼은 자기도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았다. 좋아 죽겠다는 글씨가 얼굴에 가득 써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용하도 시현이 그걸 마음에 들어한다는 걸 알아차리고 자기도 기분이 좋아져서 흐뭇하게 시현을 바라보았다. 찰칵 찰칵 소리가 여러 번 들리면서 보호구가 왼 팔에 장착되었다.
“여러 번 연습하면 나중에는 혼자서도 할 수 있게 될 거야.”
시현은 양손의 너클과 왼팔의 보호구를 한 모습을 빨리 보고 싶었다. 그래서 채준형이 설명을 하는 도중에 슬금슬금 거울을 찾아 그 앞으로 다가갔다.
“우와……!”
시현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웃을 때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지는 것을 보니 제 아빠를 정말 쏙 빼닮았다는 생각이 모두의 머릿속에 저절로 들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애는 애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다닐 때도 하고 다녀. 괴수는 이제 언제 어디에서 나올지 모르니까.”
채준형이 말했다. 그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걸 일상적으로 착용한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지금이 과도기라서 어색하기는 할 거야. 사람들은 이 일이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생각을 못하겠지. 하지만 이미 일어난 거야. 멈추지 않을 거고 앞으로는 더 심각해지겠지.”
선아영이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익스트림 헌터에서 현신에 물량 지원 좀 해 줬으면 하는데요? 헌터가 아닌 애들도 기본적으로 자기 방어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물건들이 없을까요?”
용하가 말했다. 말하는 태도가, 돈을 지불하겠다는 의지는 거의 보이지 않아서 시현은 자기가 다 창피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선아영은 흔쾌히 그러마고 대답했다.
“대신에 우리 아이가 현신고에 들어가면 정말 잘 봐줘야 돼요.”
“아이요? 아이가 있으세요?”
시현의 얼굴이 빛났다.
“왜? 이 나이가 되도록 결혼도 못 했을 것 같니?”
선아영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각자 그 나이가 되도록 결혼도 못한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발끈하면서 선아영을 노려보았다. 선아영은 진땀을 빼면서 팔을 저었다.
“아, 제가 경솔했어요. 원래 좋은 걸 누리는 사람일수록 겸손해져야 되는 건데. 이건 명백한 실수네요.”
“그 말이 더 기분 나빠요!”
지연이 말하자 선아영은 뒷수습이 잘 안 된다는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