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3 / 0331 ----------------------------------------------
10부. 꼬꼬마 헌터
크고 빛나는 두 눈으로는 시현을 쏘아 보고 있었고 가끔 입을 열어서 이상한 소리를 냈다. 거기에 또 주둥이는 새의 주둥이처럼 보였고 괴수가 입을 열 때면 그 안에서 날카로운 이빨이 보였는데 이빨은 입천장과 턱의 가운데에서 일렬로 나와 있었다. 이빨 하나 하나가 날카로운 검 같았다.
턱 관절은 자유자재로 늘어나면서 입을 열면 입이 한없이 벌어졌다. 그대로 사람 하나를 통째로 삼킨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을 것 같았다.
물고기에게 두 다리와 날개가 달려있고 그 뒤로는 물고기의 특징인 몸통과 꼬리 지느러미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는 모습이라서 한 눈에 보기에도 징그럽고 저절로 눈이 찌푸려졌다.
시현은 그 괴수가 그냥 날아가버리기를 바랐다. 어디로 가는 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던 길이나 서둘러서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괴수가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시현은 그 모습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할머니가 건물 안으로 제대로 들어갔는지 보려고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렇게 올라갔던 괴수가 북쪽으로 날아가려던 것이 아니라 시현을 노리고 전력으로 다시 내려오는 중이라는 것을 시현은 뒤늦게야 깨달았다. 시현은 깜짝 놀라서 도망쳤다.
괴수는 시현이 있던 곳으로 날아들어 멈추지도 않고 그대로 처박혔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시현이 서 있었던 자리에 엄청나게 커다란 구멍이 생겨나 버렸다. 구멍의 크기보다 더 소름끼친 것은 구멍의 깊이였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그냥 말끔한 길이었던 곳에 지하 50미터는 되는 구덩이가 생겨난 것이다.
아찔해진 채로 시현은 그 자리를 바라보았다. 괴수는 여유만만한 모습으로 조금 전까지 앉아있던 곳으로 다시 날아 올라갔다. 처박힌 것은 실수가 아닌 듯했다. 심술궂게 생긴 주둥이가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을 뿐, 머리를 박아서 그런 구덩이를 만들어놓고도 다친 흔적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시현은 사태가 점점 심각해져간다고 생각했다. 밖에서 그렇게 난리 굿이 벌어지는데도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미 헌터 협회와 치안대에서 사람들을 통제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시현은 슬금슬금 괴수의 눈치를 보면서 저도 건물 안으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괴수는 시현을 순순히 놔 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 듯했다. 시현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려고 하면 괴수는 대단한 날개를 펄럭거리면서 시현을 향해 날아왔다. 그 이빨에 한 번 물리거나 주둥이에 쪼이면 살덩어리가 찢겨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가 않았다.
괴수가 위협적으로 날아와서 시현을 스치고 날아올라갈 때마다 시현의 주위에 있던 도로가 부숴졌다. 그러는 판에 괴수의 주둥이가 저를 노리고 들어온다면 그대로 죽겠다는 생각이 멈추질 않았다.
그때였다.
“아, 나가라고요! 어디로 저런 걸 끌고 온 거냐고! 저게 다른 데로 가지도 않고 계속 여기만 맴돌잖아. 그게 다 당신 때문인 거잖아! 저 애는 또 뭐고! 당장 저 애를 데리고 여기에서 사라지라고! 저건 어쩔 거야, 어? 저 구덩이는 어쩔 거냐고!”
사나운 목소리가 들려왔고 백탁이 낀 할머니가 내던져지듯이 빌라의 입구 앞으로 쫓겨나오고 있었다.
“나가요! 버티지 말고 나가라고!”
사나운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여기에서 나가서 어쩌라고! 네 눈에는 저게 안 보여? 저 시커먼 것이 안 보여?”
할머니도 더 이상 쫓겨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나가라고! 저거 데리고 당장 사라지라고!”
계단 위에서 목소리만 들려올 뿐, 소리를 지르는 사람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잽싸게 계단을 내려와서 할머니를 떠밀어버리고는 유리문을 단단히 잠갔다. 할머니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괴수를 피해서 옆 동의 빌라를 향해 도망쳤다.
괴수는 할머니를 바라보았고 괴수의 날개가 살포시 움직였다. 사냥의 기회를 포착하려는 포식자의 냉정함이 괴수의 눈에 깃들었다.
옆동에 살던 사람들이 밖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할머니가 자기들의 빌라로 오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계단으로 한꺼번에 내려와 문을 잠갔다. 할머니는 빌라의 틈에 우두커니 선 채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했다. 그런 할머니를 먹잇감으로 인식한 괴수는 주둥이를 벌리고 날개를 펄럭거렸다.
시현의 몸에서 차크라가 솟구치려는 순간이었다.
사람 몸길이 정도는 되는 것 같은 기다란 창이 날아와 괴수의 목 아래에 박혔다. 괴수가 크게 비명을 질렀다. 창 끝에는 밧줄이 달려 있었다.
시현이 바라보자 레오니드 소로킨이 밧줄을 잡아 당기는 것이 보였다. 그래봤자 괴수의 목 아래에 난 상처는 금방 회복이 되고 창이 빠져버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레오니드는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미하일이 괴수의 목에 올라타 검을 휘둘렀을 때까지 시현은 미하일을 보지 못했다. 그가 갑자기 어디에서 나타난 건지도 알지 못했다. 두 사람이 공격의 포문을 열자 헌터 아카데미의 교수들인 정예대원들이 일제히 괴수를 향해서 공격을 가했다. 레오니드와 미하일도 괴수에게 딜을 가하면서 시현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시현은 자신의 몸에서 차크라가 일렁이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레오니드는 시현과 눈이 마주치자 그곳을 떠나라고 손짓을 했다. 그들이 레이드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시현도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다. 시현은 얼이 빠진 것처럼 서있는 할머니를 향해 달려가서 할머니를 부축했다.
“고마워. 고마워. 에이고. 내가 죽어야 하는 건데. 내가 진작 죽었어야 하는 건데.”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막처럼 메마른, 수분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얼굴에서 꾸역꾸역 눈물이 넘쳐나고 있었다.
시현은 할머니를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내려놓고 용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용하는 가까운 곳에 차를 대기한 채 시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시현이 그 근처에 있을 것 같았다는 말이 이어졌다. 시현은 그곳을 헌터들에게만 맡기도 가도 되는 거냐고 물었다.
“헌터들에게만 맡기고 가도 되는 거냐고? 그럼 누가 더 필요한데?”
용하가 말했다.
“그게 아니라.”
“치안대도 곧 도착할 거야. 아까도 말했지만 네 차크라가 사람들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어. 가자.”
삼촌의 차가 굉음을 내면서 현장을 떠나는 동안 시현은 레이드 현장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고개를 한껏 뒤로 돌렸다.
***
TV에서는 현장의 모습이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시현은 조금 전까지 자기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레오니드 소로킨과 미하일 세르게예프가 주축이 된 현신 헌터 아카데미의 교수들과 치안대원들의 활약으로 시화호 근처의 늪에서 출몰한 1급 괴수가 공략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주민들은 괴수가 만들어낸 거대한 구덩이를 빨리 메워달라고 정부에 요구했고 괴수를 그리로 끌고 온 고등학생과 할머니를 찾아서 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나섰다. 치안대원들이 할머니를 찾아내기는 했지만 할머니는 그 빌라 사람들이 전부 다 미친 모양이라면서 자기는 그 사람들이 말하는 고등학생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백탁 낀 눈을 가리키면서, 만약에 그런 고등학생이 자기 옆에 있었다고 해도 자기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말미에 뼈있는 말을 덧붙였다.
“아, 뭔가 본 것 같기도 하긴 하네. 내가 괴수를 끌고 왔다고 나를 계단에서 밀고 문을 잠그던 인간들 말이야. 보상을 해 달라고? 하늘에서 천벌이 떨어진 거야. 이 악마같은 인간들아. 천벌을 받고 보상을 해달래? 에라 이 잡것들아!”
용하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안심이 되지 않는 눈으로 시현을 바라보았다.
“다음부터는 그런 일에 나서지 마라. 세상은 네 마음을 그대로 다 알아주지 않을 거야. 그러면 너만 상처받게 돼.”
“할머니를 돕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건 아니지 않냐는 말투로 시현이 말했다.
“그래. 할머니를 돕지 말았어야 돼. 너는 그냥 어린애야. 네가 돌봄을 받아야 되는 거지 다른 사람을 도울 처지가 아니라고.”
“삼촌!”
“여러 말 할 필요 없다. 나는 너희 아빠랑 그렇게 약속했어. 너를 잘 보살피겠다고. 그러니까 다시는 그런 일에 나서지 마.”
“삼촌!”
“얘기는 그만하자. 일어나라.”
“……어딜 가는데?”
“가보면 알아.”
용하는 화가 난 것 같았지만 시현에게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자신에게 화가 난 거였다. 그 일을 막을 방법이 없었으면서도 막지 못한 것에 대해 화를 참지 못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삼촌은 항상 그랬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현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봐 늘 조바심을 냈고 시현에게 문제가 생기면 늘 자책했다. 시현이 삼촌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어느새 삼촌의 키를 다 따라잡아버렸다.
“조심할게. 앞으로는 더. 삼촌. 미안해.”
“…….”
용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두 사람이 함께 도착한 곳은 익스트림 헌터였다. 시현은 왜 여기에 온 거냐는 표정으로 삼촌을 바라보았다.
“너를 지킬 무기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헌터가 아니라도 말이야. 무기가 아니라고 해도. 방어구 같은 거라도 있어야겠더라. 오늘 같은 일이 생길 줄은 몰랐지만, 한 번 생긴 일이 두 번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고.”
“이건. 엄청 비싸잖아. 삼촌.”
“그래서 뭐. 죽어서 다 지고 갈 돈도 아니고. 너한테 이런 거 사 줄 정도는 되니까 소란떨지 마라. 그리고 어쩌면 공짜로 받을 수도 있어.”
“어?”
세상에 누가 이런 물건을 공짜로 준다는 말인가. 가끔은 삼촌의 생각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1, 2억 하는 물건들도 아니고 공격 증폭률과 방어 증폭률에 따라서 2천억, 3천억에 육박하는 제품도 있었다.
그런데도 삼촌은 야무진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음대로 둘러봐도 되는 거야?”
그러면서도 시현은 우물쭈물했다. 헌터 전용의 무기와 방어구들을 파는 곳에 헌터 타투도 나타나지 않은 일반인이 마구 출입을 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시현의 걱정에는 아랑곳없이 용하는 곧바로 중역 전용의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삼촌. 이건 아무나 타는 엘리베이터가 아닌 것 같은데?”
“알아. 맨 꼭대기층까지는 올라가지도 않아. 안에 들어가면 버튼도 따로 없고. 위에서 모니터를 보고 받아주지 않으면 내리지도 못하지.”
“그걸 어떻게 알아? 아니. 그걸 아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런데 왜 타?”
“우리는 받아들여 줄 테니까.”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용하가 버튼을 눌렀다. 일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는 했다. 시현은 걱정돼 죽겠다는 표정으로 엘리베이터에 같이 올랐지만 문은 닫히지도 않고, 올라가지도 않았다.
용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뻘쭘한 심경을 감추려고 했다. 그러다가 도저히 더 이상은 못참겠다고 생각했는지 카메라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신용하예요. 신용하! 얘는 시현이고요. 안시현!”
그 즉시 문이 닫히고 순식간에 47층까지 논스톱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용하가 시현의 손을 잡아 끌고 내렸다.
“한 층은 걸어서 올라가야 돼.”
용하가 말했다.
“응.”
그때 계단 위에서 삐거덕거리는 소리들이 요란하게 겹쳐지더니 이내 헉헉거리는 모습의 세 사람이 나타났다.
여자 둘에 남자 하나.
여자들은 동그래진 눈을 하고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시선은 세 사람 모두 시현을 향하고 있었다. 왠지 익숙한 풍경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옥상에서 레오니드와 미하일 교수를 만났을 때도 이랬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