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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부. 꼬꼬마 헌터
여자는 헌터 아카데미에 다니는 헌터였고 남자는 현신 고등학교 3학년 선배였다.
‘오, 대단한데!’
여자의 기술이 좋았는지 현신고 선배는 나무에 등을 기댄 채 서서 두 손을 뒤로 하고 가끔씩 고개만 뒤로 젖히면서 신음을 질러댔다.
여자는 선배의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연신 머리를 움직여댔다. 선배의 신음 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그것을 보면서 시현은 저절로 아랫도리가 묵직해져 오는 것을 느끼면서, 이대로는 좀 위험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귀에 따뜻한 바람이 와서 닿았다.
"어이. 또 보네."
“……!”
소리도 못내고 옆을 돌아보았더니 레오니드 소로킨이 음흉한 눈으로 시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교, 교, 교수님!”
시현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자 열연을 펼치던 두 연인도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옷을 입기에 급했다.
“서두를 필요 없다. 거기있는 남학생한테는 관심 없고. 여학생은 헌터 아카데미 학생이지? 자네는 퇴학이다.”
두 사람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시현은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선배가 시현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꼭 시현이 그들을 보고 레오니드를 불러와서 이른 것처럼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현은 정신없이 고개를 저었지만 변명이 통할 것 같지가 않았다. 레오니드는 홱 돌아서서 자기 갈 길을 가는 중이었고 헌터 아카데미의 여학생은 옷을 꿰입고 레오니드를 쫓아갔다.
"교수님. 제가 그런 게 아니고요. 교수님.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제 말씀 좀 들어주세요. 이 아카데미에 들어올려고 제가 얼마나 좆빠지게, 아니, 교수님. 저기요!"
여학생은 정신없이 달려가면서 레오니드에게 설명을 하려고 했지만 레오니드는 천박한 것을 보듯이 한 번 차갑게 노려보기만 하고 그대로 가버렸다. 여학생도 그 기세에 눌려서 더이상 레오니드를 쫓아가지 못한 채 선배와 시현만 무섭게 노려보다가 그대로 가버렸다.
시현은 딱히 잘못한 것도 없이 선배와 둘만 남겨지게 되었다.
“너, 이 새끼야!”
아, 진짜. 이럴 때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 건지.
“본 건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게 다예요. 소로킨 교수님도 지나가다 보신 걸 거예요. 그렇게 소리를 크게 지르시니까 다 들리……. 하실 거면 안에 좀 깊이 들어가서 하시든가. 아, 아닙니다. 그건 제가 할 말이 아니고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시현은 줄행랑을 쳤다. 선배가 뒤에서 쫓아왔지만 저런 건 차크라를 쓰지 않아도 얼마든지 따돌릴 수가 있었다.
레오니드 소로킨은 아무래도 자기 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학생을 퇴학시킬 거면 자기를 먼저 보내놓고 해도 되는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자기가 함정에 빠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니지. 애초에 내가 신경을 끄고 그냥 가던 길을 가면 되는 거였지. 아니지. 그런 소리를 낸 게 잘못이지. 그런 소리를 듣고 누가 그냥 지나가? 아니야. 내 잘못이야. 으으윽.“
시현은 제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면서 고등학교 건물로 돌아갔다.
그날은 하교 시간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아니나다를까, 교실 앞에서 선배들이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먼저 밖으로 나간 녀석들이 무작위로 걸려서 맞고 있었다. 안시현은 왜 안 나오냐는 목소리가 밖에서 시끄럽게 들려오고 있었다.
시현은, 다른 때라면 하지 않았을 일을 했다.
[삼촌. 나 좀 도와줘. 3학년이 우리 반 복도에서 우리 반 애들을 패고 있어.]
톡을 날리기가 무섭게 신용하가 달려왔다. 삼촌은 시현을 지키는 일 말고는 달리 신경쓰는 일이 없는 것처럼, 시현이 도움을 청하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나타나주곤 했다.
“야, 이사장이 여기에 왜 와? 우리 학교는 왜 이사장이 교장보다 더 자주 나타나? 저 이사장은 고등학교만 돌아다녀. 몇 년 전에는 중학교 건물에 붙어서 살다시피 하더니. 변탠가봐. 취향이 자꾸 변하는 변탠가봐.”
용하를 발견한 선배들이 소리를 질렀다.
"그 전에는 초등학교에만 나타났고 그보다 더 전에는 유치원에만 나타났어. 변태가 확실한 것 같아!"
선배들이 정신없이 도망치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용하는 무슨 일인지 묻지 않았다. 물을래야 물을 수도 없었다. 복도에서 정리를 하고 안을 들여다 봤을 때 시현의 자리는 이미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그 시간에 시현은 이미 예정하고 있었던 길로 달려가고 있었다. 어쩌면 레이드가 이미 시작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헌터들이 늪에 들어가는 건 놓쳤어도 나오는 건 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헌터들의 수준이 어떠냐에 따라서 레이드 시간이 결정나기는 하겠지만 전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쩌리들만 모아놓은 공격대가 아니라면 네 시간에서 다섯시간이면 공략을 마칠 수 있을 것이다.
이 늪에 들어간 헌터들이 레이드를 얼마나 오래 끌지도 그런 것들에 의해서 결정될 터였다. 헌터들의 기본 공격력과 무기의 공격 증폭률, 그리고 그들이 공격 기회를 얼마나 가지게 되는가 하는 것에 의해서 말이다.
시현은 대충 땅바닥에 앉아서 헌터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과제를 시작했다. 어지간히 실력없는 사람들만 들어갔는지 헌터들은 나올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용하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은 그때였다.
시현이 전화를 받자마자 용하의 목소리가 급히 나왔다.
“안시현! 너 지금 어디야, 어?”
“삼촌. 왜?”
“너 어디냐고! 집에는 아직 안 간 거지?”
“어. 가는 길이야. 왜?”
“그리로 가지마. 괴수가 출몰했대.”
“무슨 말이야?”
내가 봤을 때는 오픈일이 예정된 늪은 없었다고 말을 할 뻔 했다가 마지막 순간에 입을 닫았다.
“시화호 근처에 있던 늪에서 괴수가 출몰했어.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는 않고 지금 계속해서 북상하는 중이야. 그게 지금 여기를 날아가고 있는 거고.”
용하가 말했다.
“날아가? 여기에선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시현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래도 조심해.”
“일단은 알았어, 삼촌. 삼촌도 조심해.”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해야돼. 안시현.”
“괴수를 조심하라는 말이 아니었어?”
“안시현. 삼촌 말 잘 들어라. 네가 싸우고 싶지 않아도 네 차크라가 먼저 움직일지 몰라. 네 차크라는 그런 식으로 움직여. 네가 공격을 당하고 위험에 처했다고 생각하면 자기가 나서서 싸우려고 할 거란 말이야. 너 지금 야외에 있는 거면 당장 건물 안으로 들어가. 차 안으로 들어가든지. 도로 가까이에 있으면 차라리 택시를 잡아 타.”
“그게 무슨 말이야, 삼촌?”
“네가 겁내야 할 건 괴수가 아니야. 시현아. 네 차크라를 보면 사람들이 너를 죽이려고 할 거야.”
용하가 말했다. 분명히 삼촌이 하는 말을 전부 다 들었고, 이해를 하는데도 문제가 없기는 했지만 시현은 자기가 들은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를 알 수가 없었다. 삼촌이 장난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삼촌은 이런 식으로 사람의 기운을 빼놓는 사람이 아니었다.
"삼촌."
"일단은 삼촌이 하는 말을 들어. 설명은 나중에 해 줄 테니까. 기억해. 꼭 명심해야 돼. 안시현."
“도대체 뭐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어.”
사람들의 눈에 띄지 말라는 말도, 시현이 겁내야 할 게 괴수가 아니라는 것도, 시현의 차크라를 보면 사람들이 시현을 죽일 거라는 말도 다 이해되지 않았다. 한꺼번에 자기가 감당하기에 너무 힘든 여러 가지 말을 들었지만 시현은 삼촌의 말을 믿었다. 삼촌이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급박한 사정이 생긴 거라는 것을 시현도 이해했다.
시현이 담과 담을 넘으면서, 자기가 자주 가던 높은 건물의 지하실을 향해 달리는 동안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낀 것처럼 주위가 어두워졌다. 이내 다시 빛이 돌아오기는 했지만 태양이 자주 가리워졌다.
시현이 고개를 들었을 때, 펼친 한 쪽 날개의 길이만 해도 8미터는 족히 돼 보이는 괴수가 낮게 날고 있는 것이 보였다. 괴수는 한 방향을 향해 빠르게 전진을 하더니 갑자기 크게 한 바퀴를 돌면서 공중을 맴돌았다. 시현은 괴수가 무엇을 노리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괴수가 어딘가를 향해 빠르게 내려꽂히듯 날아가는 것을 보았을 때는 괴수가 발견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한 할머니가 리어카를 끌고 가고 있었다. 리어카에는 폐지며 고물들이 잔뜩 실려 있었다. 자신의 몸집보다 열 배는 커 보이는 리어카를 끌고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할머니는 걸음이 빠르지 않았는데 걸음의 문제도 있었지만 앞을 잘 보지도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할머니는 어두워진 하늘에서 내려오는 괴수 새를 뒤늦게 발견하고 달아나려고 하고 있었다.
절대로 괴수 새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할머니가 아니라 A급 헌터라고 하더라도 괴수의 공격을 피할 수가 없을 것처럼 보였다. 시현은 두 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할머니를 향해 달려갔다. 손이 닿았다고 생각되는 순간, 시현은 할머니의 몸을 안은 채 그대로 달렸다.
괴수는 방금까지 할머니가 서 있던 곳을 향해 날아오다가 날개를 퍼득거리면서 다시 날아올랐다. 괴수는 시현을 노려보았다. 제 먹이를 뺏어간 것 때문에 시현을 향한 감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
시현이 할머니를 안은 채 몇 백 미터를 쉬지도 않고 달려 빌라 단지의 입구에 할머니를 내려놓고 돌아보았을 때 괴수가 시현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할머니는 백탁이 낀 눈으로 시현을 바라보았다. 그 눈으로는 앞이 잘 보이지도 않을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차크라를 써 버리고 말았지만 삼촌이 안다고 해도 이번만큼은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할머니, 안으로 들어가세요. 괴수라고 해도 건물 안까지 쫓아가지는 못할 거예요. 들어가실 수 있죠?”
시현은 그 말을 마치고 괴수의 시선을 끌었다. 괴수는 이제 할머니에게서는 관심을 잃고 시현만 노리는 것 같았다.
"조심해야 돼. 같이 들어가. 너도 여기에 있으면 안 돼. 그러다간 네가 죽어!"
할머니가 시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앞이 아주 안 보이는 것은 아니고, 희미하게 형체를 구분하는 정도는 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시현은 할머니를 놔두고 다시 달려나갔다.
"안으로 들어가세요."
시현의 목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들으면서 할머니도 더이상 망설이지 않고 빌라 안쪽으로 들어갔다.
시현은 몸 안에서 차크라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빠른 속도로 달릴 때 사용하던 수준의 차크라가 아니었다. 그것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거칠고, 스스로 인격체를 지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이 그것을 해제하기만 하면 순식간에 그 괴수를 해치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시현의 머릿속에는 강력한 제동 장치가 걸려 있었다. 차크라를 쓰면 안 된다던 삼촌의 목소리가 그 순간에도 들려오는 것 같았다. 시현은 할머니가 건물 안으로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더이상 괴수의 시선을 끌 필요도 없었고 괴수를 쓸데없이 도발할 필요도 없었다. 이제는 저도 도망쳐야 했다. 그 생각 뿐이었다.
괴수는 제 눈 앞에 나타난 시현이 헌터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휙 지나가버리는 것을 보고 호기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러나 순수했던 호기심은 이내 전의로 바뀌어 있었다.
시현은 순식간에 달려, 건축물 폐기장의 담 위로 올라갔다. 괴수는 높은 건물 옥상 위에 앉았다. 둘 간의 거리가 상당했지만 안전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괴수는 시현으로부터 시선을 옮기지 않은 채 계속해서 시현을 노려보았다.
어떻게 괴수가 늪 밖으로 나온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드디어 대한민국도 그렇게 되어버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급 늪이 성장하고, 변칙적인 성장으로 오픈일을 앞서서 괴수가 출몰하는 일이 한국에서도 일어나게 되었다는 말인지. 클랜 A도 없는 이때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한국의 헌터들이 괴수들로부터 사람들을 지켜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정작 시현의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의문은 따로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죽일 거라니? 삼촌은 왜 그런 말을 한 거지? 나를 왜? 사람들이 나를 왜?’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시현은 괴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괴수는 몸통의 양쪽에 커다란 날개가 달려있기는 했지만 조류라고 부르기에 무엇한 구석이 있었다. 얼굴은 바닷속 깊은 곳에서 사는 흉측한 몰골의 물고기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