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부터 레벨업-230화 (2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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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부. 꼬꼬마 헌터

삼촌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저장해 두고 있었고 시현은 클릭 한 번으로 헌터 협회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삼촌의 아이디로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그렇게 방대하다는 사실에 놀라기는 했지만 삼촌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한편으로 수긍을 하면서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학교와 집 주변에 있는 늪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반경 20킬로미터 안에 있는 늪의 개수만 해도 스무 개가 넘었다. 그 중에는 5급 늪이 많았는데 그런 것들은 공격대에 의해서 곧 공략이 될 것 같았다.

그 주변에서 진을 치고 있으면 헌터들이 레이드하러 들어가고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시현은 그곳의 위치들을 기억해 두었다. 갑옷을 입고 중무장을 한 채 레이드를 하러 드나드는 헌터들의 모습을 멀리에서 볼 때마다 시현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게 어떤 감정인지는 시현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것은 자기가 모르는 고향으로 달려가는 기분 같기도 했고, 자기가 잊고 있던 중요한 것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것 같기도 했다. 언젠가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었고 그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왜 그런 생각이 드는 건지, 그 사람들이 누구라는 건지에 대해서는 떠오르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저 막연히, 레이드를 준비하는 헌터들을 보면 다시 또 그 감정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 주위를 그렇게 부지런히 기웃거리고 다니는 것이다.

시현은 연필로 몇 개의 늪을 콕콕 찍었다. 괴수의 체력과 등급이 낮은 늪이 가장 유력해 보였다. 괴수의 체력이 낮은 늪을 공략하고 싶어하는 공격대는 많았기에 그런 곳을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차지해서 공략을 하기 위해서 헌터들이 서두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늪에 사는 괴수는 유별난 개체도 아니었고 헌터 아카데미 신입생도 공략법을 줄줄줄 꿰고 있을만한 흔한 개체였다.

'여기로 오겠군. 네가 1순위다.'

시현은 마지막으로 하나의 점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삼촌이 항상 하는 말 중에, 우리 시현이는 이해력이 딸려서 멍청해 보이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서는 집중력도 뛰어나고 기억력은 평균 이상이라는 말이 있었다.

이해력이 딸린다는 건, 꼭 맞는 말은 아니었다. 시현은 자기가 관심이 없는 얘기가 나오면 그 얘기를 별로 듣고 싶지 않아서 다른 생각을 하다가 얘기를 놓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럴 때 갑자기 삼촌의 질문을 받으면 난감해졌는데, 다른 생각을 했다고 말을 하는 것보다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는 게 삼촌의 화를 피해가는 방법이라는 걸 터득하고 종종 그렇게 위기를 넘겼더니 삼촌이 오해를 한 것이다.

‘오늘은 여기에 가 봐야지.’

삼촌이 알면 위험하다고 화를 내겠지만 시현은 자신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런 게 있으니까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러프 스톤이 박힌 무기를 선물해 준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믿음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시현에게는 기묘한 차크라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삼촌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공부해!' 라거나 '조심해!'라는 말을 따돌리고, '차크라 쓰지 마!'라는 말이었다.

시현은 자신에게 차크라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시현이 초대하지 않은 손님 같았다. 그게 언제부터 시현의 곁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현이 기억하는 한 그것은 늘 시현과 같이 있었다.

삼촌은 시현이 쉽게 화를 내는 성격의 아이로 자라게 될까봐 늘 노심초사했다.

삼촌이 도대체 뭘 그렇게 걱정하는 건가 하다가 어느날, 시현이 그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다행히 집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정확히 이해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시현의 몸이 시현의 뜻을 거스른 채 움직였다. 시현은 겁을 먹은 채 삼촌을 불렀고 삼촌은 곧바로 시현에게 달려오더니 시현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안시현. 너는 차크라따위에 굴복하는 존재가 아니야. 네가 조절할 수 있어. 너는 그걸 누를 수 있어. 네 안으로. 너는 그렇게 할 수 있어. 네가 주인이야. 거기에 먹히지 마."

삼촌은 시현의 차크라에 대해서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은 태도였다. 삼촌에게 그것이 낯설고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에 시현은 안심이 되었다.

시현은 삼촌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삼촌이 하는 말이 시현에게 지도처럼 느껴졌다. 삼촌이 시키는 대로 하나씩 하나씩 따라하다보면 그 일이 제대로 수습될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나중에는 허망할 정도로 괜찮아졌고, 삼촌은 조용히 다가와서 시현을 안아주었다.

시현은 100미터를 전력질주한 것처럼 기진맥진했지만 삼촌이 안심을 하는 것 같아서 저도 마음을 놓았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한 번씩 그런 일이 생겨났다. 그 일은 특히 밤에 자주 일어나는 것 같았다. 그럴 때는 자기가 불꽃의 중심이 되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그 주위로 거대한 불이 타올라 하늘까지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삼촌이 없었다면 아마도 자신은 그 불속으로 사라졌을 거라는 생각을 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삼촌은 그 일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말을 하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했다. 시현도 그 일이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어렸을 때부터 깨달았다.

삼촌은, 시현이 차크라를 잘 다스릴 수 있게 되기만 하면 엄마와 아빠를 다시 만날 수도 있을 거라고 말해왔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 말을 믿지 않게 됐지만 시현은 그 말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차크라를 숨겨왔다.

차크라는 헌터 테스트에서 헌터 타투가 나타난 헌터들에게서만 나타난다. 그런 헌터들도 차크라를 운용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해서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상급 헌터나 돼야 어느 정도 원활하게 차크라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열 여덟 살이 되면 시현이도 헌터 테스트를 받게 되겠지만 아직 헌터 테스트를 받지도 않고 헌터 타투도 없는 시현에게 차크라가 나타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클랜 A가 레이드를 하는 영상을 보면 그들은 언제든지 자유자재로 차크라를 몸과 무기에 두르고 그것으로 공격력을 증폭시키거나 자기들의 몸을 보호하면서 싸웠다. 각자의 차크라가 다른 빛깔을 냈다. 특히 안지우의 차크라는 한 눈에 보기에도 그 양이 엄청난 것 같았다. 안지우의 차크라를 볼 때마다 시현은 자신의 차크라가 그것을 닮은 것 같아서 괜히 신이 났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대로 통제되지 않는 차크라에게 점령당할 뻔한 일을 경험한 이후로는 시현도 스스로 조심하게 되었다.

"너한테 차크라가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하면 안 돼. 이건 정말 중요해. 진짜로 중요해. 시현이랑 삼촌. 모두가 다 위험해질 수도 있어. 언젠가는 괜찮겠지만. 지금은 안 돼. 시현아. 다른 말은 잊어버려도 되지만 이 말은 꼭 기억해야 돼. 그리고 들어줘야 돼."

삼촌은 천 번도, 만 번도 넘게 그 이야기를 해 왔고 시현도 그게 심각하고 중요한 이야기라는 것을 이해했다.

시현은 연습장을 바라보다가, '그래, 차크라만 안 쓰면 돼. 가서 멀리에서 헌터들만 보고 올 거니까 별 일 없을 거야.' 라고 가볍게 마음을 먹었다.

쉬는 시간에 밖에 나갔을 때 복도 끝에서 삼촌이 걸어오고 있었다.

“이사장님이다.”

녀석들이 시현을 밀치며 서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용하는 녀석들이 시현을 밀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시현을 바라보았지만 시현은 딴청을 부렸다.

“이사장님. 안녕하세요.”

녀석들이 꾸벅꾸벅 인사를 했지만 용하는 인사를 받아주지도 않았다.

“누가 복도에서 뛰어다니라고 했어!”

녀석들은 괜히 인사를 하러 뛰어갔다가 복도에서 뛰었다고 혼만 났다.

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시현의 삼촌인 신용하는 학교법인 재인 학원의 이사장이다. 재인 학원은 현신 유치원, 현신 초등학교, 현신 중학교, 현신 고등학교, 현신 대학교로 이어지는 엘리트 코스를 갖추고 있었다.

현신 캠퍼스에는 헌터 아카데미까지 갖춰져 있고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헌터 박물관까지 있었다.

헌터 아카데미는 헌터 테스트에서 헌터 타투가 나타난 헌터들을 직접 가르치는 교육 기관이었다. 두 명의 현직 S급 헌터가 교수로 있다는 사실 때문에 현신 헌터 아카데미는 그 위상이 더 높아져 있었다.

A급 헌터가 레이드로 경험치를 쌓고, 괴수에게서 나오는 캐츠 아이 스톤을 사용해 S급이 될 수 있는데 S급은 S-1급, S-2급 하는 식으로 계속해서 등급이 올라갔다.

시현은 그 두 명의 S급 헌터, 레오니드 소로킨과 미하일 세르게예프가 현신 헌터 아카데미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된 건지 알 수 없었고 삼촌도 그 일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냥 이렇게 말하면 널리고 널린 게 S급 헌터인 것처럼 들리겠지만 세상에 알려진 S급 헌터는 단 두 사람이었고 그 두 사람이 바로 레오니드 소로킨과 미하일 세르게예프였다.

신용하가 학교법인을 만든 이유는 오직 한 가지였다.

시현이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따돌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런 걱정이 된다고 일을 이렇게 크게 벌일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마는 용하 삼촌은 그런 사람이었다.

시현은 처음에 그런 것도 모르고 꽤 행복한 유치원 시절을 보냈다. 어떻게 된 게, 유치원을 3년이나 다니는 동안 시현의 반은 구성원에 변함이 없었고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고도 그 아이들이 그대로 한 반이 되었다.

그게 삼촌 짓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슬슬 머리가 커지면서 아이들 사이에서 편 가르기가 시작되었다. 부모가 헌터인 집은 씀씀이가 달랐고 그런 집 아이들은 거기에 부응하지 못하는 친구들을 놀리거나 무시했다.

시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집에 가서 삼촌에게 얘기하면 며칠 내로 그 아이가 전학을 갔다. 정말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처음에는 그 일에 대해서까지 삼촌에게 들려주었는데 결국에는 시현이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해서 돌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을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삼촌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시현은 이제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을 삼촌에게 말하지 않았다. 삼촌은 시현이를 괴롭히는 아이들이 없는지 굉장히 궁금해하면서 시현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알려달라고 했지만 시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삼촌이 자신의 정체를 알린 것은 시현이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였다. 이사장으로 소개된 사람이 삼촌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놀라움이란.

삼촌은 다른 아이들에게도 시현이 자기의 조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시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삼촌이 이사장이라는 걸 알면, 그것도 다른 시시한 학원의 이사장이 아니라 재인 학원의 이사장이라는 사실을 알면 모두가 다 자신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할 거라고 했다. 그렇게 되면 정말로 좋은 친구를 사귈 기회를 놓칠 거라고 했다. 겨우 중학생인 시현이 그런 말을 했을 때 용하는 시현이 아직 세상의 매운 맛을 덜 봐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시현이 고등학교에 올라갔을 때 용하는 한 번 더 같은 제안을 했다. 시현이 재인 학원 이사장의 조카라는 사실을 밝히면 학교 생활을 하는 게 훨씬 편해질 거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시현은 그때에도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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