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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225화 (225/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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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부. 카르마 클랜의 헌터들

다른 사람들이 캐츠 아이 스톤을 찾아왔을 때 이익헌이 보이는 반응을 봐도 그랬다. 다른 사람들은 캐츠 아이 스톤 하나를 보고 전부 다 모여들어서 열광을 하는데 이익헌은 아, 그랬쪄요, 우쭈쭈쭈, 하는 식으로 무성의하게 격려해 줄 뿐이었다.

그 쯤 되자 야로슬라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일이 어떻게 돌아간 거라는 것을 대충 짐작하게 되었다.

지우조차도 그랬다. 이익헌에게 절대로 안 된다고 말을 하기는 했지만 이익헌이 언제 자기가 하는 말을 신중하게 제대로 들었던 적이 있었는가 하는 생각도 했다.

임정은. 솔직한 심정으로. 그런 일을 해 주고 그런 말을 해 주고 그런 딜을 해 준 이익헌이 고마웠다. 지우의 마음도 이해가 가고, 자기가 같은 상황에서 결정을 내려야 했다고 하더라도 지우와 같은 결정을 내리기는 했겠지만 그런 결정을 내리면서도 아마 임정은 이익헌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이익헌에게 남모르게 눈짓을 보냈을 것이었다.

이익헌이 아키라와의 은밀한 거래를 통해서 얻어온 캐츠 아이 스톤이 전부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천기정은 금고를 관리하고 있고 클랜 A의 자산 관리를 맡고 있으니 알겠지만 천기정의 입은 클랜 A의 금고보다도 더 무거웠다. 그의 입을 여는 것은 불가능한 거라고 애초에 그렇게 포기를 해 버리는 게 나았다.

그런 사정이다보니 눈 앞에 나타난 아키라와 레이카를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어찌보면 생명의 은인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뺏은 손으로 자기들을 살려준 것이 영 거리끼기는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손에 의해서 자기들이 몇 년의 시간을 연장받게 됐다는 것을, 야로슬라프와 레오니드, 미하일 같은,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들은 알 수가 있었다.

아키라가 밖으로 나왔다.

“잠들었습니다. 잠들 수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렇게 잠깐 잠이 든다고 해도 오래 자지는 못해요. 금방 깰 겁니다.”

아키라가 지우와 익헌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익헌은 그에게 클랜원들을 소개했다. 아키라가 채준형 마스터를 만나고 싶어했었다는 것이 떠올랐지만 지금은 그런 얘기같은 건 완전히 잊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로운 시절에 이것 저것 품었던 소원들이 아무 것도 아니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정말로 지켜야 할, 단 하나의 가치가 무언지 깨닫게 될 때. 그리고 아키라에게 그것은 레이카가 된 것 같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먼저 알아야 할 것 같은데요. 원인을 알아야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병원에는 혹시 가 보셨나요?”

서규태가 물었다.

“어떤 병원에요?”

아키라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사람들의 거절과 냉대를 소름끼칠 정도로 당하고 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떻게 나타난 일이예요?”

태인이 물었다.

“갑자기요. 잠을 자다가. 옆에서 레이카가 신음 소리를 냈어요. 꿈을 꾸는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나중에, 레이카가 신음 소리를 억지로 참고 있다는 걸 깨닫고, 레이카의 숨소리가 거칠어진 걸 알고 일어나서 불을 켰어요. 레이카는 제발 불을 켜지 말아달라고 소리를 치고 있었고 내가 불을 켜자마자 밖으로 달아났어요.”

“네머티나가 나타났던가요?”

이익헌이 물었다. 아키라가 그를 바라보았다. 레이카에게서 네머티나 괴수가 나타난다는 것까지 이익헌이 알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못했다. 레이카가 최면으로 이익헌의 기억을 지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 일에 대해서 다시 논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아키라는 고개를 저었다.

“네머티나가 나타난 게 아닙니다. 레이카의 몸을 두르고 있던 차크라가 사라지기 시작한 거예요. 레이카는 더 이상 이전의 모습을 지키지 못했죠. 이전의 모습이라고는 하지만 그게 원래의 모습은 아니었죠.”

“무슨 말인지 압니다. 왜곡된 어린 모습. 그게 사라졌다는 거겠죠. 차크라가 사라진 후에 나타난 모습이 원래의 모습일 거고요. 지금 방 안에 누워있는 그 모습요.”

이익헌이 말하자 아키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카는 그 모습을 나한테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어요. 레이카가 어린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아도 레이카는 그냥 레이카니까. 거기에서 멈추기만 했다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데 레이카의 차크라 일부분이 사라지면서 다른 문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차크라가. 이렇게 설명하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 녹아버린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 다른 차크라들이 자꾸 밀고 들어오는 느낌이었죠. 영역을 다투면서, 서로 그 영역을 자기가 차지하려고 다투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아키라가 말했다.

“레이카에게는 몇 마리의 괴수 차크라가 들어있는 겁니까?”

지우가 물었다. 아키라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고 잠시 말이 없었다.

“네머티나가 있다는 걸 알고 있고, 젊음을 유지한 차크라도 레이카 자신의 차크라는 아니었을 거라는 걸 알고 있고, 정신 공격을 하는 차크라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바닥에 깔려있던 것들이 있었어요.”

이익헌이 말했다.

아키라는 무기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카한테 주입된 게 스스로 사라져버리지 않았다면 레이카의 안에 열 한 개의 차크라가 있을 겁니다. 레이카 본인의 차크라까지 하면 열 두 개일 거예요.”

“젊음을 유지해주던 그 차크라가 사라지고 나서 지금 상태가 그렇다는 건가요?”

임정이 물었다.

객관성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얼굴이기는 했지만 끔찍하다는 표정을 숨기지는 못했다. 아키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차크라를 다 받아들이고도 그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겁니까?”

레오니드가 물었다. 레오니드의 얼굴 근육이 떨렸다. 그가 심하게 동요하고 있다는 것이 옆에서도 느껴졌다.

“그렇습니다. 레이카만은 그랬죠.”

아키라가 말했다.

“그나마 거기에서 멈춘 게 다행이군요.”

이익헌이 말했다.

명백히 비난하는 어조였다.

“레이카를 위해서 멈춘 건 아닐 테고. 더 강한 괴수를 찾지 못한 겁니까?”

이익헌이 말하자 아키라가 고개를 떨군채 말이 없었다. 레이카를 저렇게 만든 게 전부 다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잠시 모두들 말이 없었다.

“어떤 시도들을 해 봤는지 알려주세요.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말입니다.”

지우가 말했다.

아키라는 고개를 저었고 커다란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익헌이 그를 바라보았다. 자기 스스로 길을 찾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기가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 문제가 자신의 손을 떠났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을 때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이익헌은 아키라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되돌릴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키라가 말했다.

지우는 그의 본심을 깨달았다.

그의 서재에서 함께 얘기를 나누다가 아키라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를 잃고서 한동안 극복해내지 못했었다고 아키라가 말했었다.

지우는 아키라가 모든 사람에게 벽을 쌓고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아키라에게 다가가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키라는 스스로 벽을 만들어 세우고 아무도 자신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했다. 다시는 그렇게 아프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를 잃고 슬펐던 것은 순전히, 자기가 아버지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었던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벽을 세웠지만 레이카가 그 안으로 들어와버렸고, 자기가 레이카를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로 레이카를 아끼다가 이 일을 당해버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우는 아키라의 어깨가 들썩거리는 것을 보았다. 강한 남자가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도망치면 피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아키라가 말했다.

그의 말을 이해한 사람은 지우와 이익헌 뿐이었다.

지우는 아키라의 슬픔을 이해했다. 그의 악행을 판단하고 처단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 아니고, 지금 자신은 레이카의 차크라를 안정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클랜원들을 향해 돌아섰다.

“혹시 이런 일에 대해서 알고 있는 분은 없습니까?”

지우는 그렇게 물으면서 서규태와 야로슬라프를 바라보았다. 서규태는 미안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지만 야로슬르파는 레오니드를 바라보았다.

“레오니드. 생각나는 거 없어?”

“어떤 거?”

“세멘노프 교수가 우리한테 했던 얘기중에.”

야로슬라프는 말을 하면서도 확신에 찬 모습이 아니었다. 무언가 생각이 날듯말듯해서 괴로운 것 같은 모습이었다. 잡으려고 하는 잠자리가 나뭇가지 위에 딱 내려와 앉지를 않고 주위를 계속 경계하면서 자꾸 날아가는 걸 보면서 조바심을 내는 얼굴. 그게 야로슬라프의 표정이었다.

“세멘노프 교수도 그걸 시도했던 걸로 아는데. 생각이 날 듯 말 듯 하면서 안 나니까 죽겠네! 너는 생각이 안 나, 레오니드?”

야로슬라프가 물었지만 레오니드는 전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 듯했다.

“잘은 모르겠는데. 세멘노프 교수도 완전한 방법을 찾은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세멘노프 교수는 강한 차크라를 가진 사람이 약한 차크라를 흡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세멘노프 교수가 괴수 차크라를 가진 한 헌터한테 또다른 차크라를 주입했다가 아마 그 일이 일어나서 그랬을 거예요. 그때는 실패했던 것 같은데.”

이익헌이 지우를 바라보았다.

“안지우씨가 그때 차크라를 느꼈지 않습니까? 카르마 클랜에 갔을 때요. 괴수의 차크라가 헌터한테 옮겨지는 것도 느꼈고 헌터 차크라가 괴수한테 옮겨지는 것도 느꼈고요. 차크라를 느끼는 민감도는 다른 누구보다 탁월한 사람이니까 안지우씨가 시도를 해 보면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때 방 안에서 레이카의 비명이 들렸다.

아키라는 나는 듯이 방안으로 들어갔다. 레이카는 어떻게든 비명을 참으려고 손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런 레이카를 바라보는 아키라의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임정이 달려가 레이카의 차크라를 눌렀다.

“괴수의 차크라가 폭주하기 시작하면 모두들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서규태가 말했다.

서규태는 직접 그 일을 겪은 사람이었다. 지우도 다른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지우는 클랜원들에게, 갑옷을 입고 차크라를 두르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가, 언제든지 달아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할 거라고 말했다.

“차크라가 서로 얽혀들어가고 있어요. 이렇게 얽히면 폭주할 수밖에 없겠어요.”

임정이 레이카에게서 손을 떼며 말했다. 지우가 레이카에게 다가가며 야로슬라프를 바라보았다.

“야로. 나를 도와줘.”

야로슬라프가 지우에게 다가갔다. 지우는 야로슬라프에게 레이카의 한 팔을 맡겼다. 야로슬라프는 레이카의 팔을 잡은 채 지우를 바라보았다.

“차크라가 몇 개나 느껴지는지 말해봐.”

지우가 말했다.

“……. 여섯 개요.”

“가장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

“어떻게요? 차크라를 흡수하라고요?”

"흡수하라는 게 아니야. 튀어나오게 만들어. 받아들이지 말고."

"네? 어떻게요?"

“네 차크라로 눌러. 그곳에서 버틸 수 없게. 공간을 공격하는 거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환경이 되게 해. 뜨겁게 하든 차갑게 하든. 레이카를 포기하게 만들라고.”

그리고 지우는 아키라를 바라보았다.

“레이카가 버틸 수 있게 해 줘야 합니다. 할 수 있겠어요?”

“내 차크라를 넣어주라는 말인가요? 나는 그건 할 줄 모르는데요.”

지우가 임정을 바라보자 임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레이카에게 다가갔다. 아키라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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