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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부. 카르마 클랜의 헌터들
“캐츠 아이 스톤을 사고 싶습니다.”
이익헌이 말했다.
“값이 상당할 텐데요?”
“돈은 문제되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필요 때문입니까?”
“그렇다고 해 둡시다.”
“필요한 게 얼마나 됩니까?”
“일흔개 정도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캐츠 아이 스톤 일흔 개면 얼만지 알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아키라가 이익헌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시할 뜻은 없다고 강조하고 싶어하는 표정이었다.
“그동안 한 일이라곤 돈 버는 것밖에 없어서요.”
이익헌은 돈을 준비하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나한테 그만큼의 캐츠 아이 스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이유라도 있나요?”
아키라가 물었다.
“없습니까?”
이익헌이 아키라를 바라보았다. 괴수는 맵의 구석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두 헌터는 괴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아키라는 한동안 대답을 하지 않고 가늠하는 눈으로 이익헌을 바라보았다.
“나는 내가 누군지 속이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같잖은 인간들이 나를 깔보는 게 싫거든요. 필요에 따라서 영업을 해야 할 때도 있었죠. 그러면 사람들이 착각을 하더군요. 나를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좆도 아닌 것들이.”
이익헌의 말에 아키라가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버는 수입의 만 분의 일도 안 되는 걸 벌어서 그걸 쪼개서 가족이랑 나눠서 쓰는 것들이. 그런 주제에 자기가 나와의 관계에서 갑이 된 것처럼 나를 을 취급하면서 건방을 떠는 걸 보면 속에서 짜증이 밀려들었죠. 그래도 회사를 위해서 거래처를 확보하는 건 중요한 일이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그냥 그런 일도 하죠. 원래 내가 할 일은 아니지만 나간 김에 입만 털어주면 되는 거니까.”
이익헌이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실컷 그렇게 건방지게 굴던 사람들이 내가 누군지 제대로 알게 된 후에는 바로 허리를 구부리죠. 그냥 일개 영업사원인줄 알았다가 내가 바디 펌의 대표라는 걸 알면 자기 혀를 자기가 깨물고 싶어지나봐요.”
“그렇겠네요.”
“나는 많은 걸 가진 사람이고 많은 걸 누리고 삽니다. 큰 힘을 가지고 있고요. 하지만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건 내가 앞으로 가질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별로 숨기고 싶지 않습니다.”
“많은 걸 알고 있는 모양이죠?”
“나는 꽤 머리가 좋은 편이라서요. 주어진 정보로, 다른 사람들이 알아내는 것에 비해서 훨씬 많은 걸 알게 되는 편이죠.”
“카르마 클랜에 대해서도 알게 된 게 있습니까?”
“까놓고 말합시다. 내가 무섭습니까?”
“무섭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까다로운 상대라는 건 알죠. 죽이고 싶다고 해서 그냥 쉽게 죽여서 묻어버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요.”
아키라가 말했다.
“여기에서는 죽인 후에 사람을 그대로 묻어버리는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시체 하나는 야무지게 사용하지 않습니까?”
“우리가요? 그런가요?”
아키라가 웃었다.
“쓸데없는 걸로 머리 굴리지 맙시다. 내가 가진 패를 보여주죠. 당신도 당신이 가진 걸 전부 보여주면 좋겠군요.”
이익헌이 말했다.
늪의 주인이었던 괴수는 이제 자기가 나설 때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맵의 끝에서부터 전력으로 괴수가 달려왔다. 아키라가 소름끼치는 웃음을 짓더니 그대로 이익헌을 바라보았다.
“내가 그 뻔한 수에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실 테고.”
아키라가 말했다.
그는 그를 향해 쇄도하는 괴수를 등지고 있었다.
“왜 이러세요. 잔뜩 기대하고 있는데.”
아키라는 이익헌의 속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아키라의 뒤로 괴수가 다가왔다. 괴수가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놓칠 리가 없을 아키라였지만 아키라는 괴수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시선은 이익헌에게서 떼지 않았다. 이익헌도 그를 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괴수의 주둥이가 아키라의 등 뒤로 사라졌다. 괴수는 내친 김에 아키라의 몸 속에 소화액을 밀어 넣었다.
아키라의 얼굴에서는 이제 웃음이 그쳤다. 귀찮다는 듯이 칼을 빼서 휘둘러 저를 먹으려고 시도하던 녀석의 머리를 베어냈다. 괴수의 공격을 당한 적도 없는 사람처럼 아키라는 멀쩡한 모습이었다.
헌터라는 것으로는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아키라 역시 괴수 차크라를 가졌다는 것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70개면. 익스트림 헌터의 일본내 독점 판매권은 확실하게 갖게 되는 겁니까?”
아키라가 물었다. 이익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익스트림 헌터 길드에서 몇 가지 제한이 뒤따르게 될지 모릅니다. 각 나라에 헌터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치안대가 많아지고 있죠. 익스트림 헌터 길드는 헌터들을 통제하고 싶어합니다.”
“까다롭게 굴겠다는 거군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사람들이 한다고 하면 그 일은 이미 이루어졌다고 보면 됩니다.”
“시간이 얼마나 남은 것 같습니까.”
“번개칠 시간정도?”
“주인이 곧 돌아올 테니까 훔칠 수 있을 때 부지런을 떨라는 말인 거군요. 맞습니까?”
“내가 그 말에 대답을 해 줄 것 같습니까?”
이익헌이 말했다. 유도심문에 넘어가지 않겠다고 결연히 다짐을 했다는 듯이. 아키라는 이익헌이 짓는 표정이 우스워서 웃음을 터뜨렸다.
“캐츠 아이 스톤이 필요한 이유는요?”
아키라가 다시 물었다.
“그 말에는 대답을 해 줄 것 같습니까?”
“내가 그걸 얼마나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까?”
아키라가 은근하게 물었다. 이익헌은 그 질문에 혹했다. 내가 대답을 해 줄 것 같냐고 말을 할까봐 겁이 나기는 했지만 알고 싶었다.
“어쨌든. 알겠습니다. 좋은 정보를 줘서 고맙군요. 내용은 정확하게 이해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니까 좋군요.”
아키라가 웃음을 지었다. 이익헌은 웃지 않았다.
원래 힘을 가진 자는 자기 기분과 상관없이 웃지 않아도 돼서 좋은 거라는 게 이익헌의 평소 생각이었다. 지금 그가 아키라에게 웃어줄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
천기정은 한숨을 쉬면서 이익헌을 돌아보았다. 이 많은 캐츠 아이 스톤이 지구상에 존재했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모두 128개였다. 그걸 구하기 위해서 뭘 준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천기정이 여러 말로 설득을 하고 구슬러 보았지만 익헌은 절대로 입을 열지 않은 생각인 듯 보였다.
“이제 거지가 되셨겠는데요?”
천기정이 말했다.
“거의 비슷하죠.”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요. 정말 맞는 거죠?”
“뭘 꼬치꼬치 따집니까? 거지가 됐다는 게 확인되면 밥이라도 주게요? 아니면 놀리려고요? 물어볼 것도 없이 그냥 간단하게 계산기 두드려보면 답이 나오겠구만.”
“사기당해서, 아무 것도 아닌 돌들을 사오신 건 아니죠?”
천기정이 정말로 걱정이 된다는 듯이 묻자 익헌이 고개를 저었다.
“확실한 진품이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천기정은 이익헌이 더 이상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는 게 확실한 것 같아서 자기도 입을 다물었다.
이익헌이 나섰다는 것은 왠지 불법적인 요소가 개입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캐츠 아이 스톤만큼은 그렇게 해서라도 그 수가 계속해서 불어났으면 좋겠다는 게 천기정의 바람이기도 했다.
‘사람을 죽인 것만 아니라면 뭐.’
천기정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익헌이 값도 제대로 지불을 한 것 같으니 괜한 걱정은 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독였다.
클랜 A의 금고에 캐츠 아이 스톤 128개가 추가되었다는 것을 클랜 A의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전에는 서규태에게 알려 주었지만 이번에는 서규태에게도 비밀을 지켰다. 그 사실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는 것이 이익헌의 판단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의 판단이 옳았을 것이다.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씨앗으로 쓸 옥수수는 죽어도 먹지 않을 사람들. 익헌이 생각하기에 클랜 A는 그런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믿기도 하고 기대해 보기도 하는 거겠지만.
익헌은 천기정을 두고 나오면서 제 손을 바라보았다. 거기에서 피 냄새 같은 것은 나지 않았다. 아키라의 손에서라면 몰라도.
***
길드의 내규가 만들어졌다.
길드에 편입된 정규 공격대와 클랜을 대상으로 익스트림 헌터 길드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헌터들의 행위를 규율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 각 나라의 헌터들을 대상으로 하는 치안대와 독자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이 주어진, 익스트림 헌터 길드의 새로운 기구 이름은 네메시스라고 지어졌다.
네메시스의 조직과 구성은 임정과 서규태가 맡아 도와주었다. 치안대 살림을 여러 해 해 왔기 때문에 특별히 어려울 것이 없었다.
야로슬라프가 네메시스의 대장이 되었고 강현이 부대장이 되었다. 대장이 된 야로슬라프보다 강현이 더 감격을 하고 좋아했다. 강현은 임정에게 칭찬을 더 들어볼 수 있을까 해서, 자기를 부대장으로 삼은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둘이 놀고 있잖아. 다른 사람들은 다 바쁜데. 왜? 그게 궁금했어?”
임정은 강현을 바라보고 또박또박 말을 해 주고 지나가버렸다. 강현의 자존감이 다시 조각조각 무너져내렸다.
***
레이카는 연신 아키라를 바라보았다. 아키라는 가던 길을 서두르지도 않고, 바람이 좋으면 앉기도 하고 구름이 좋으면 그것을 한없이 구경했다.
새로운 클랜 마스터는 조장들 중에서 정해질 거였지만 아무래도 그 과정이 평탄치만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카르마 클랜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키라는 풀이 짧게 돋아난 곳에서 아예 드러누워 버렸다.
레이카는 어느덧 차가워진 바람을 맞고 쌀쌀함을 느끼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주머니 안에서 러프 스톤이 만져졌다. 레이카는 그것을 꺼내서 한동안 들여다 보았다. 오랜 시간, 헌터를 먹고 헌터를 키우던 네머티나의 러프 스톤이었다.
모든 러프 스톤이 그렇듯이 그 녀석도 네머티나의 눈을 꼭 닮아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가요?”
레이카가 물었다.
“어디로든. 상관 없잖아.”
아키라가 말했다.
태평한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레이카가 아키라의 곁에 앉았다.
구름이 지나가면서 해가 드러났다. 레이카는 눈이 부실까봐서 얼른 손을 들어 아키라의 얼굴 위에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아키라는 눈을 깜빡거리다가 그대로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어요?”
“그러게. 방금 왜 웃음이 나온 거지?”
아키라가 말했다. 좋아하는 마음도 없이 억지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던 여자와의 관계를 말끔하게 청산해 버린 것처럼 속이 시원했다.
마지막으로 괴수에게 던져진 헌터들은 카르마 클랜의 비밀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괴수의 차크라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괴수에게 던져졌다. 늪을 지키던 헌터 세 명도 그렇게 사라졌다. 레이카를 처리하는 문제만큼은 아키라의 마음 속에 큰 갈등을 불러 일으켰다. 레이카는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아키라가 자신에게 따로 명령을 내릴 필요도 없이 얼굴에 그런 표정을 짓기만 한다면 곧바로 괴수에게 저를 내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키라는 레이카를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가 레이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어떤 일이요?”
“모르지. 내가 어떻게 알아. 아직 일어난 일도 아닌데.”
흘러가는 구름을 따라, 레이카는 손을 움직였다. 레이카가 만들어준 그늘 덕분에 아키라는 눈을 감지 않고 눈부신 하늘을 오만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의 눈에 웃음이 지어졌다. 레이카는 그것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