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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220화 (22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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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부. 카르마 클랜의 헌터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죠? 그런 일이 계속 일어나게 할 수는 없잖아요.”

임정이 말했다.

“누나는 우리나라 치안대장이지 일본 치안대장이 아니잖아요. 우리가 일본 클랜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나서야 할 이유가 있나요?”

강현이 말했다.

임정은 강현의 말에,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고 물었다.

“일본 치안대에 알려줄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뭘 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모르겠긴 해요. 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이건 우리가 나서면 안 되는 문제예요. 외교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다고요. 우리 관할이 아니잖아요. 우리 클랜원이 피해를 당한 것도 아니고 일본의 클랜 마스터가 자기 클랜원을 죽이는 건데. 일본 경찰이나 일본 치안대가 나서야 할 문제지 우리가 나설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들을 대상으로 조직적인 범죄가 이루어지는 건 줄 알았지만 이건…….”

서규태는 말을 흐렸다.

자기가 하는 말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조직적인 범죄가 이루어지는 건 맞는데, 관할의 문제 때문에 손댈 수 없다고 말을 정정해야 할 것 같기도 했다.

“이건. 양식이네요. 양식. 진주 조개를 양식하는 거랑 똑같네요. 헌터한테 괴수 차크라를 넣어서 캐츠 아이 스톤을 만들어내게 하고 캐츠 아이 스톤을 얻고 그 헌터를 죽이는 거잖아요.”

강현이 말했다. 더할 나위없이 적절한 비유이면서 불쾌해지는 표현이었다. 특히 야로슬라프와 레오니드, 미하일은 강현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고 야로슬라프는 도저히 화가 참아지지 않는다는 듯이 강현을 쥐어박아 버렸다.

“왜요! 맞는 말이잖아요!”

강현이 말했다.

“네가 찐따같다는 말도 맞는 말이지만 너한테 직접 그런 말을 하지는 않잖아!”

“뭐라고요? 내가 왜 찐따예요? 찐따가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고 있기는 한 거예요?”

그때 임정이 손뼉을 쳤다.

“좋은 생각이 난 것 같아요. 카르마 클랜은 어차피 익스트림 헌터 길드에 들어오려고 하는 거잖아요. 길드 내부에 치안대 같은 성격의 조직을 만드는 건 어떨까요? 범국가적으로, 익스트림 헌터 길드에 가입돼 있는 정규공격대나 클랜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길드 내부의 치안조직이 사법권을 갖는 걸로 정하는 거예요.”

“만약에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는 묵인을 해 줘야 할 겁니다.”

서규태가 말했다.

“아마 그래야 되기는 하겠죠.”

임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우와 이익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대충 알게 된 것 같고.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에 우리가 관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곧바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우가 익헌에게 물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위계 질서를 강조하는 카르마 클랜이라면. 카르마 클랜에 들어오는 헌터들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들어오는 거기도 하고요. 우리가 나설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레이드를 할 때도 봤잖아요. 아무도 우리가 도와주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목숨을 구해주더라도 말이예요. 우리한테 도움을 받았다는 걸 수치스러워하는 것 같았고 그 자체로 다른 동료들한테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잖아요.”

이익헌이 말했다.

“카르마 클랜에 들어오는 헌터들이, 카르마 클랜에서는 아무나 데려다가 괴수가 묶여있는 늪에 던진다는 것까지 알고 들어온 건 아닐 텐데요.”

태인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일본 치안대에 말해줄 수는 있겠지만 일본 치안대는 카르마 클랜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 겁니다. 카르마 클랜과 비교해서 치안대가 모든 면에서 절대적으로 뒤져요. 조직의 크기, 구성원의 실력, 차크라. 모든 것에서요.”

지우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고 지금 바로 클랜 A나 익스트림 헌터 길드가 나선다는 건. 그거야말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요? 반박을 하려는 건 아니고. 제 생각이 그렇다는 거예요. 저도 소름이 끼치고 지금 바로 중단시킬 수 있는 방안이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태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야로슬라프와 레오니드, 미하일의 표정은 아까부터 좋지 않았고 벌써 몇 분째 거의 말이 없었다.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지는가 하면 가끔씩 혼자서 한숨을 쉬기도 했다. 괴수 차크라를 가진 그들은 그 문제에서 절대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할 것 같았다.

결국 이렇다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통화가 끝났다.

이익헌과 지우는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다음 일을 정해야 했다. 일단 아키라에게 해 놓은 말이 있으니 카르마 클랜과 함께 1급 괴수를 공략해야 하기는 했다.

“이런 걸 물어도 될지 모르지만.”

이익헌이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지우에게 말했다.

“뭔데요?”

이익헌이 저런 말을 미리 할 정도면 어지간히 심각한 얘기겠다고 생각하면서 지우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물었다.

“안지우씨는 말입니다. 그냥 까놓고 말해서요. 다 그냥 딱 까놓고 말해서요. 혹시 아키라한테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도 안 듭니까?”

“어떤 걸요?”

“그거요. 괴수를 제압하고 괴수 차크라를 뽑아서 헌터한테 주입하는 방법 같은 거요. 익스트림 헌터 길드와 클랜 A라면 카르마 클랜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헌터들이 모여들 거고. 그러면 얼마든지.”

“캐츠 아이 스톤을 얻을 수 있다고요?”

지우가 말했다.

지우는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익헌은 혹시나 하고 물었던 것에 반응이 강경하게 나오자 뻘쭘해져서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동료와 자식의 목숨까지 달린 상황이니 혹시라도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물어본 거였는데 지우는 어디서 날아온 쓰레기인가 하는 표정으로 이익헌을 노려보았다. 그런 질문을 받은 자체만으로 씻을 수 없는 치욕을 겪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니. 뭐. 생각은 해 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캐츠 아이 스톤 때문에 걱정할 일도 없고 시현이랑 떨어져살지 않아도 될지 모르고 시현이가 헌터가 된다고 해도 걱정을 크게 덜 수 있고 말입니다.”

이익헌의 말에 지우는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사장님을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을 하기는 합니다만. 우리는 평행선을 달리는 사람들 같다는 생각이 가끔 들어요.”

“아키라가 가진 캐츠 아이 스톤에 욕심이 전혀 안 생긴다고요? 그런 생각이 조금도 안 든다는 말입니까?”

“예.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헌터를 죽이고 그 헌터한테서 얻은 캐츠 아이 스톤으로 너를 살린 거라고, 시현이한테 절대로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캐츠 아이 스톤을 모을 겁니다. 그걸로 시현이를 살릴 거예요. 야로슬라프와 레오니드, 미하일. 모두 그렇게 살릴 거라고요!”

“예. 예. 왜 안 그렇겠어요. 대단한 성인군자 나셨지!”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없어지면. 우리를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네.”

“벽을 보고 얘기하는 게 낫겠네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 말이예요.”

“그런데 왜 남의 일에 그렇게 화를 내세요?”

“그게 남의 일이 아닐 것 같으니까 이러는 겁니다. 야로슬라프, 레오니드, 미하일. 그리고 시현이. 안지우씨까지. 내가 몇 안 가진 내 동료들인데. 쉬운 방법을 찾을 수도 있는 것 같은데 자꾸 돌아가자고 하니까 답답해서 이러는 거예요.”

이익헌이 화를 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마음은 고맙지만. 지킬 건 지키고 싶어요. 내가 자기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죽였다는 걸 알면 시현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지우가 말했다.

“뭐……. 더는 말 안 하겠습니다. 나는 생각이 다르지만. 우리는 서로를 설득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확실히 그런 것 같긴 하네요.”

서로를 위한다는 마음이 그렇게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지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

아키라는 정원에 나와 있었다. 가만히 보면 아키라에게는 가까이 어울리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조장들이 수시로 아키라에게 보고를 하느라고 아키라의 주변에 왔다 가기는 했지만 공적인 관계에서 조금도 발전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키라는 대개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몇 마디 답변을 해 주고 대화를 끝냈다.

“저 사람은 왜 저러고 사는 것 같습니까?”

지우가 이익헌에게 물었다.

“세진이가 말한 게 딱 맞는 것 같은데요? 살아있는 동안은 그냥 사는 거겠죠.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

“아키라야말로 최상위 포식자겠죠?”

“최상위 포식자요?”

이익헌이 되물었다.

“아키라가 한 말이예요. 인류에 대해서요. 최상위 포식자중에 인류만큼 많은 개체수를 유지하고 있는 종은 없대요. 듣고보니까 그런 것 같더라고요. 다른 녀석들은 자기들 개체수를 유지하기 위해서 사냥을 해야 하는데 인류는 그렇게 하지 않잖아요.”

“괴수가 나타난 지금은 인류를 최상위 포식자라고만 할 수도 없죠. 아키라가 최상위 포식자라고 말한 건……. 어쩌면 그건,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를 말한 게 아니었을까요?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들이 개체수를 유지하기 위해서 사냥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죠.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들이야말로 최상위 포식자면서도, 사냥에 성공하지 못하고 캐츠 아이 스톤을 구하지 못하면 그대로 멸종돼 버리고 말 수도 있죠. 종이 사라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개체가 사라지는 거잖아요. 안지우 당신. 야로슬라프, 레오니드, 미하일, 그리고 시현이라는 개체들 말입니다. 하지만 사냥이 필요없어진다면요? 아키라는 그 말을 하려고 그랬던 게 아닐까요? 캐츠 아이 스톤을 언제든지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면.”

이익헌은 지우를 바라보았다.

“아뇨.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우가 익헌에게 말했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뭔가 대단한 말이 나올줄 알았는데 그대로 얘기가 끝나버린 것을 보고 황당함을 느낄 정도였다.

이익헌이 다가가자 아키라가 이익헌을 바라보았다.

“익스트림 헌터 길드 쪽에서 아직 소식 들은 건 없습니까?”

아키라가 물었다.

“원하시는 걸 얻게 될 겁니다.”

이익헌이 말했다.

“다행이네요.”

“둘이서만 얘기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둘이서만요.”

이익헌이 말하자 아키라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멀리 지우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일행분이 들을까봐 걱정된다는 말인가요?”

“어디가 좋겠습니까? 늪이 좋지 않을까요? 훈련을 할 겸. 가볍게 둘이서 공략할 수 있는 늪으로 가시죠.”

이익헌의 말에 아키라도 거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면 상급 늪으로 하고요.”

아키라가 말했다.

“3급 늪 정도면 적당하겠군요.”

아키라는 레이카를 불러 레이드를 준비하게 했다. 지우는 이익헌이 갑자기 무슨 짓을 하려는 건가 하는 표정으로 이익헌을 바라보았지만 이익헌은 눈을 마주쳐 주지도 않았다.

아키라와 이익헌, 두 사람만이 레이드에 나섰다. 늪에 도착했을 때 아키라가 늪과 괴수에 대해서 설명을 하려고 했지만 이익헌은 손을 들어서 그의 말을 막았다.

“그런 얘기를 듣자는 건 아닙니다.”

아키라는 그 후로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말없이 늪으로 내려갔다.

늪의 괴수는 흔한 거미였다.

“이 녀석은 몸 밖에서 소화를 시키죠. 먹잇감을 붙잡고 소화액을 넣어서 즙을 만들고 그걸 빨아서 먹습니다.”

아키라가 말했다.

두 사람은 벽에 대고 테니스 공을 치는 것처럼 나란히 서서 괴수를 공격했다. 빨리 해치우고 나가겠다는 목적 의식도 없었다. 이 괴수는 그저, 두 사람 사이에 감도는 침묵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준비해둔 찻잔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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