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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부. 카르마 클랜의 헌터들
"아키라는. 그냥 딱 보면 사는 게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이예요.”
이익헌이 말했다.
“그런 사람이 왜 익스트림 헌터 길드에 가입하려고 그렇게 애를 쓴대요?”
태인이 물었다.
“죽는 그 순간까지는 어쨌든 살아야 하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그 말을 한 사람은 뜻밖에도 세진이었다. 가장 어린 세진이 그렇게 냉소적인 말을 하자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세진을 바라보았다.
“세진아. 혹시 그런 생각 하고 있었어? 너. 그런 생각하면서 사는 거야?”
강현이 놀라서 묻자 세진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저를 향했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젓고 손을 흔들어댔다.
"아뇨. 아니예요. 그냥. 얘기를 듣고 추측해본 거죠."
그러나 한 번 이 사람들의 타겟이 되어 버리면 공개재판이 시작되고 그 앞에서 걸레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김강현. 너는 도대체 뭘 어떻게 하고 있길래 세진이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게 만들어?”
태인이 말하자 강현이야말로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아니예요. 정말로요.”
세진은 자기가 한 말을 해명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하고 난감해 했다.
“세진씨가 한 말이 그럭저럭 맞는 것 같긴 한데요?”
서규태가 말했다. 그때 미키가 그들의 대화를 중단시켰다.
“잠깐만요. 이 얘기를 들으면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언젠가 이런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정신병동 중환자실에서 만난 사람이었는데. 그때는 얘기들이 너무 허무맹랑하고 의사도 믿을만한 얘기가 못 될 거라고 말해서 신경 끄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그렇게 지나쳐버리면 안 되는 얘기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조금만 시간을 주면 그 자료를 찾아낼게요.”
“네. 그러세요.”
지우가 말했다. 그리고 미키 위도가 자료를 찾는 동안 완벽한 침묵이 감돌았다. 결국 미키 위도가 말을 했다.
“그렇게 조용히 있으라는 얘기는 아니었어요.”
“아, 중요한 걸 기억해내야 하니까 조용히 하라는 건 줄 알았어요.”
강현이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아. 조용히 있어주기를 원할 때는 조용히 해달라고 말할게요. 그러니까 지금은 아까처럼 자유롭게 얘기들을 나누세요. 아. 지금 제가 찾은 것 같네요. 들어보세요. 읽어드릴게요.”
미키 위도가 안경을 가져다 걸치며 자기가 기록해 두었던 것을 읽어주었다.
“가감없이, 그 사람이 한 말을 그대로 녹취해 놓은 거예요. 읽을게요.”
미키 위도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정신병자가 한 말이 틀림없는 것 같은 이야기로 사람들을 당혹시켰다.
“그 일을 처음 시작한 건 아키라가 아니었어. 아키라는 그냥 조용하고 연약한 소년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거야. 아키라의 할아버지가 아키라를 그렇게 만든 거야. 아키라는 그냥 멈추려는 생각이었던 거야. 그 사람은 미쳐버렸어. 정말로 그렇게 될 줄은 몰랐던 거야. 그런데 정말 그런 일이 생겨버린 거라고. 그는 자기가 연금술사가 됐다고 생각했을 거라고. 아주 틀린 생각도 아니지. 연금술사보다 훨씬 더 대단한 것 아닌가? 캐츠 아이 스톤을 만들 수 있게 됐는데.”
“지금 아키라 할아버지 얘기를 하고 있는 거죠?”
강현이 물었다.
“그렇다고 했잖아! 계속 하세요, 미키.”
태인이 강현의 입을 닫게 해놓고 미키 위도를 재촉했다.
“그 사람은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알아냈어. 괴수 차크라를 헌터한테 주입하는 방법이랑. 헌터 차크라를 괴수한테 주입하는 방법이랑. 헌터 차크라를 괴수한테 주입하는 건 간단해. 괴수한테 헌터를 먹으라고 주면 되는 거거든. 쓸모없는 괴수는 건너뛰었지. 처음에는 괜찮아 보였던 게 나중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 당연하잖아. 더 대단한 괴수들이 계속해서 나왔으니까. 괴수의 차크라를 헌터한테 주입하고 그 사람들을 육성했지. 써먹을 수 있을 만큼 써먹었어. 늪에 데리고 다니면서 죽을 때까지 레이드를 하게 했다는 얘기야. 그러다가 죽으면 죽은 헌터한테서 캐츠 아이 스톤이 나왔지. 그러면 그 캐츠 아이 스톤을 챙겼고. 얼마나 대단한 장사였는지 생각해 보라고. 정말 대단했지.”
미키 위도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얘기를 하는 줄 알았다면 다른 것들을 물어볼 수도 있었을 텐데 안타깝네요. 나는 그때 이 사람이 하는 말을 믿지도 않았고 내가 어디에 집중해서 들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알겠는데. 계속해 주면 안 될까요?”
이익헌이 말했다. 미키 위도는 고개를 끄덕이고 계속해서 녹취 내용을 읽어주었다.
“아키라는 달랐다고. 왠줄 알아? 그 녀석이야말로 천재야. 사람들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걸 일찍부터 알았거든. 제 아버지 때문이기도 했지. 사람들은 아키라의 아버지가 카르마 클랜을 이끌어 가기에 부족하다고 말했어. 아키라는 너무 어렸고. 후계자 다툼이 일찍부터 시작된 거지.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들을 중심으로 해서.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들이 전부 바보인 건 아니었거든. 처음 몇 사람은 노예처럼 혹사 당하고 자기 능력을 정치적으로 사용하지 못했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어. 그런 능력을 가졌는데 레이드에만 신경을 쓸 수 있겠어? 자기가 가진 권력을 누리겠다는 생각을 하는 게 정상이었겠지. 그 사람들한테는 아키라가 악몽이었지.”
“아키라가 그 사람들을 전부 죽인 건가요?”
태인이 물었다. 미키 위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군요. 아키라의 아버지가 죽은 후에 아키라는 그 사람들을 처리했어요. 읽어드릴게요. '아키라 아버지가 갑자기 죽었어. 타살일 수도 있어. 나도 그게 타살일 거라고 생각해. 아키라의 아버지가 없다면 카르마 클랜을 제 손에 쥘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세 명 정도 있었을 거야. 그 당시의 카르마 클랜은 정말 대단했다고. 늪이 많아질수록 카르마 클랜의 사업은 번창했어. 카르마 클랜의 클랜 마스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무도 그걸 쉽게 포기하지 못했을 거야. 아키라는 제 아버지가 죽은 후에 변했지.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들을 죽였어. 공개적으로. 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미키 위도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여기에서 물었어야 되는 거였어요. 그런 대단한 차크라를 가진 헌터들을 상대로 아키라라는 어린 아이가 어떻게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었는지 말이예요. 우선은 계속해서 읽을게요.”
미키 위도가 다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 다음부터 아키라는 모든 사람을 죽였어. 괴수 차크라를 주입해 보고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바로 죽이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기다렸다가 죽였지. 곧바로 캐츠 아이 스톤이 생기는 건 아니었거든.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 아까운 헌터를 많이 죽였지. 캐츠 아이 스톤은 얻지도 못한 채로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예요? 아깝게 죽었다는 게 캐츠 아이 스톤을 얻지도 못하고 죽어서 아까웠다는 말 같은데. 그 사람도 제정신이 아닌 거네요."
세진이 말했다.
"정신병동 중환자실에 있었다고 하잖아."
강현이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그랬던 거군. 해리와 라미실한테서는 캐츠 아이 스톤이 나오지 않았잖아.”
이익헌이 말했다.
“그건 조금 다른 경우죠. 해리와 라미실은 괴수 차크라를 직접 받은 게 아니라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의 차크라를 주입받은 경우잖아요.”
임정이 말하면서 야로슬라프를 바라보자 야로슬라프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하게 알아볼 방법은 없지만 저도 일단은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의 차크라를 주입한다고 그 사람들한테서 캐츠 아이 스톤이 생겨날 것 같지는 않거든요. 만약에 그랬다면 지금까지 세상에 캐츠 아이 스톤이 이렇게 희귀할 리가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혹시 내가 자고 있는 동안 내 차크라를 빼가려고 하거나 그러지 마세요.”
야로슬라프가 말했다.
"만약에 야로가 자는 동안 뭔가를 노린다면 차크라가 아니라 캐츠 아이 스톤을 노리겠지."
이익헌이 말했다가 모두의 질타를 받았다. 이익헌은 왜 자기가 시도하는 개그는 매번 무산되는 거냐고 절규했다.
"그런 걸 개그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 아닐까요?"
태인이 따끔하게 말했다.
“여기가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미키 위도가 말했다.
“아키라는 사람들을 속였어. 카르마 클랜의 명성을 이용했지. 모두들 카르마 클랜에 들고 싶어했으니까 문만 열어 놓으면 알아서들 제 발로 찾아서 기어들어왔어. 카르마 클랜에 들어온 사람들 중에는 레이드를 별로 해 본 적도 없는 새파란 신입들도 많았어."
"갓 헌터가 된 어른 애들도 희생이 됐다는 건가요?"
레오니드가 물었다.
"그런 것 같아요."
미키가 말했다.
"계속할게요. 아키라는 실력을 알아본다는 명목으로 그 사람들을 늪으로 내려보냈어. 거기에는 세 명의 헌터가 미리 들어가 있었지. 괴수는 묶여 있었고. 늪 아래로 내려간 헌터들은 정작 괴수하고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괴수의 차크라를 주입받았어. 그 뒤의 일은 정해진 대로 이루어진 거지. 결과는 어차피 똑같았어. 늪 아래에서 죽거나, 아니면 늪에서 나와서 며칠동안 감금 돼 있다가 죽으면서 캐츠 아이 스톤을 토해내거나. 누가 내려올지는 정해져 있는 게 아니었어. 같이 레이드를 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내려보내기도 했고. 내려오는 사람이 하급 헌터일 때도 있었고 상급 헌터일 때도 있었어."
"내려온다고 말하고 있어요. 내려간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태인이 말했다.
"그 사람인 거군요. 괴수를 지키면서 늪 아래에서 머물던 사람요."
강현이 말했다.
"이제 그 얘기가 나와요."
미키가 말했다.
"내가 누구냐고 물어봐. 당신은 이제 그걸 물어봐야 되는 거거든. 묻지 않는 걸 보니 내 말을 안 믿는 거군. 그래도 나중에 갑자기 이 말이 생각날 때를 대비해서 말해주지. 녹음은 하고 있었던 거지? 내가 누구일 것 같나. 그런 일들이 일어난 걸 내가 어떻게 알 것 같아? 괄호 안에, 신경을 긁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며, 라고 적혀있네요."
미키가 그렇게 말했을 때, 미키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 역시 그 소리를 생생히 듣고 있는 기분을 느꼈다.
"계속 읽을게요. '늪 아래에서 괴수를 지키면서 헌터를 괴수한테 던져준 게 나였거든. 내가 빠졌지만 거기는 계속 그렇게 돌아가고 있을 걸? 헌터 하나를 채워넣는 건 카르마 클랜에게 일도 아닐 테니까. 가끔씩 아키라가 생각나. 아키라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요즘에도 그 소리가 들려와. 헌터들이 비명을 지르던 소리. 괴수가 몸부림치면서 내던 소리. 잠을 자는 동안에도 그 소리가 나를 따라온다고. 이렇게 멀리 도망쳐 왔는데도 그 소리는 나를 놔주지 않아.'”
미키 위도가 말을 멈췄다.
"그게 전분가요?"
서규태가 물었다.
"네. 그때 했던 말이 이걸로 끝난 건지, 아니면 내가 녹취를 해 놓은 게 여기까지인 건지 그건 잘 모르겠어요. 혹시 녹음해 둔 내용이 더 있으면 알려드릴게요."
미키가 말했다.
"고마워요. 미키. 도움이 크게 됐어요."
서규태가 말하자 모두들 미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지우와 익헌도, 다른 클랜원들도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를 오래 가둬둘 필요도 없었다는 거네요.”
이익헌이 말했다.
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늪에 던져지는 헌터는 어떻게 정해진 거죠? 그냥 그날 그날의 기분에 따라서 아키라의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보이면?”
서규태가 물었다.
“그건 못 물어봤어요.”
미키 위도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누구라도 상관이 없었을 것 같아요. 아키라한테는 모두가 다 무의미하거든요. 레이카한테만 감정이 좀 다를까 하고. 다른 사람한테는 관심이 없어요. 그러니까 누구를 늪으로 내려보내냐 하는 건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지우가 말했다.
이익헌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