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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부. 카르마 클랜의 헌터들
아키라는 지우를 바라보더니 웃었다.
“아직 시간이 모자랐던 모양이죠? 찾는 걸 못 찾았거나, 알아내려고 한 걸 못 알아냈거나.”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생각을 하신다면 정말로 그렇게 해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없는데 오해를 받는 거라면 억울하지 않습니까?”
지우의 능청스러운 말에 아키라가 웃었다.
호의가 담긴 웃음은 아니었다.
“거절한다면요?”
아키라가 말했다.
“거절하실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카르마 클랜을 보면서 우리 길드가 각각의 정규 공격대에 대해서 충분한 정보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카르마 클랜이 일본내 익스트림 헌터 길드의 거점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게. 우리가 거절할 수 없는 이유인가요?"
"힘을 가지게 되니까 좋은 점이 그거더군요. 아무도 우리 제안을 함부로 거절하지 못하더라는 거요."
“거절할 수 없다고 못박아 두고 하는 제안인데 거기에 대해서 제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우리한테는 익스트림 헌터 무기가 꼭 필요한데 말입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굴욕감이군요.”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화가 난 표정은 아니었다.
지우의 머릿속에, 언젠가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을 텐데 욕망을 갖지 않은 사람. 모든 의욕을 잃은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조종하기도 힘들고 예측도 어렵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한 사람은 아마 이익헌이었을 것이다. 지우가 지금 그 생각을 하는 것은 아키라에게서 어떤 욕망도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
레이카는 늪 아래에서 보여주었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게 치장을 하고 이익헌의 방으로 들어왔다. 한 눈에 봤을 때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자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고개를 돌리고 난 후에도 자꾸 다시 보고 싶어져서 고개가 멋대로 돌아가게 되는, 그런 맛은 없었다.
레이카는 자극적인 옷을 입고 이익헌에게 고혹적으로 다가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속살이 파격적으로 드러나 보였다. 그러나 이익헌은 그런 것을 훔쳐보고 싶은 마음이 별로 들지 않았다.
이익헌은 레이카를 보고 웃음을 지었다.
“스시를 먹는데는 순서가 있는데. 혹시 아나?”
이익헌이 물었다.
레이카는 이익헌이 무슨 말을 하려고 그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도 이익헌이 하는 말을 자기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웃었다.
이익헌은 그런 레이카를 보고 웃었다.
방금 뒤돌아서 선 채로 산 닭을 잡아먹고, 잇사이에 생살과 피가 전부 묻은 채로 얼굴에 묻은 피만 닦아내고서, 이익헌이 자신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입을 꼭 다물고 웃고 있는 것 같은 레이카를 보고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맛이 강한 건 나중에 먹어야 하는 거지. 처음에 그걸 먹어버리면 나중에 먹는 것들은 아무 맛이 안 나. 나도 그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어떻게 보면 나는 실패한 거야.”
레이카는 이익헌이 하는 말을 듣느라고 지루함을 느끼지도 못했다. 방심하는 사이에 결정적인 한 방이 날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레이카가 집중을 했어도 이익헌의 얘기가 그쪽으로 방향을 잡아갈 거라고는 예측을 할 수가 없었다.
“여자를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거든. 초반에 맛있는 여자를 만나면 그 후에는 인생이 무미건조해지는 것 같아. 그런 여자를 그냥 포기해버릴 수 있으면 상관이 없는데. 내가 말했잖아. 맛있는 여자라고. 대부분은 그 정도로 맛있는 여자를 못 만나지. 광어나 참치 같은 여자를 만난 사람들은 그 다음에 나올 스시를 기대할 수 있다고. 장어나 그런 것들을 기대하면서 기다릴 수 있단 말이지. 그러고 보면 나야말로 불행한 남자네? 처음부터 장어를 먹은 사람이 다시 광어를 먹는다고 생각해 보라고. 내가 적당한 예를 들고 있는 게 맞는 건가? 다른 예를 들어줄까?”
이익헌은 주절주절 헛소리를 하면서 레이카의 혼을 쏙 빼 놓았다. 그런 식으로 혼자서 세 시간이라도 떠들어댈 수가 있었다. 말을 하는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도 상대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언변을 가진 것은 이익헌이 가진 재능이었다.
“좋은 여자 친구를 둔 것 같네요.”
레이카는 저도 꿀먹은 벙어리는 아니라는 듯이 한 마디를 거들었다.
“아니지. 나쁜 여자 친구지. 지금까지 내가 하는 말을 이해를 못했구만.”
그래서 뭘 어쩌라고, 씨발놈아!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참으면서 레이카가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내가 별로 만족스럽지 않은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을 불러줄 수도 있어요. 우리 카르마 클랜에 중요한 분이니까요. 제대로 대접하고 싶어요. 클랜 마스터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고요."
"아니. 아니. 괜찮아."
"괜찮으면 그렇게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시던가요. 내가 페니스를 물고 있을 때 그걸 물어서 잘라버리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레이카가 말했다.
그런 말을 농담으로 하는 여자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설사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정말로 능히 그런 일을 저질러 버릴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여자를 만날 거라고는 더더욱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싸우자는 건 아니었는데. 화 났나?"
"그런 말을 들으면 대부분 화가 날 것 같은데요? 여자친구 자랑은 다른 사람한테 하는 게 좋을 거라고 알려주고 싶네요."
"내가 잘못 시작한 것 같은데. 다시 시작하지. 자. 문밖으로 나가서 다시 들어오라고."
이익헌이 레이카의 어깨를 붙잡고 문 밖으로 밀어냈다.
"자. 노크하고 다시 들어와."
레이카는 내키지 않는 모습이기는 했지만 이익헌에게 기회를 다시 줄 생각인 듯했다. 다시 들어온 레이카를 보고 이익헌은 한껏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레이카의 기분을 맞춰줄 필요야 없었지만 괜히 레이카를 심술나게 할 필요도 없었다.
“옷이 불편하지는 않은가? 편하게 얘기를 해 보는 건 어때?”
이익헌은 먼저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이익헌은 레이카의 얼굴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레이카의 얼굴을 중심으로 기묘한 차크라의 변동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레이카는 이익헌의 말을 순순히 따랐다. 이익헌은 레이카의 얼굴을 만져보고 싶었지만 괜히 거기에만 집중을 했다가는 레이카의 의심을 사게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레이카의 옷을 벗겼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벗기려고 시도하다가 실패하기는 했지만.
뭔 지랄맞은 놈의 옷이 제대로 벗겨지지도 않았고 매듭 찾는 것도 짜증이 났다. 나중에는 그냥 알아서 벗고 올라오라고 버럭 소리를 지른 채 먼저 침대 위로 올라갔다. 레이카가 침대 위로 올라오자 마자 이익헌은 레이카를 쓰러뜨렸다.
레이카는 키스를 기대하면서 눈을 감았다. 이익헌은 레이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 아래에 통째로 차크라가 비어있었다. 다른 것으로 채워져 있다가 그것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밑바닥에서부터 새로 차 오르고 있는 중이기는 했지만 제대로 채워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흥미가 일었다. 그런 얼굴에 키스를 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레이카의 눈을 감게 하고 마음껏 관찰을 하기 위한 다른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다.
“좋은 얼굴이네.”
이익헌은 잠깐동안 갈등을 하다가 레이카를 바라보았다.
“이 녀석이 서질 않는데. 이런 기회를 그냥 날리고 싶지도 않고. 다른 녀석을 불러다가 둘이서 하는 걸 보여줘.”
이익헌이 말하자 레이카가 당혹스런 얼굴로 이익헌을 바라보았다.
“세워…줄까요?”
진짜 가지가지한다고 생각하는 듯 이를 꽉 문 채로 레이카가 말했다. 이익헌은 선량하고 무능력한 남자의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안 하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이 녀석이 배신하는 걸 날더러 어쩌라는 거냐는 표정이었다.
“할 수 있겠어?”
이익헌은 레이카에게 제 꼬마를 맡겼다. 그리고 일곱자리 숫자의 세제곱을 구하려고 노력하며 주의를 분산시켰다. 레이카는 별별짓을 다 해 보다가 시무룩하게 어깨를 떨어뜨렸다. 아무래도 자기는 너무 늦게 나타난 광어인 모양이라고 절망하는 중인 것 같았다.
“심해어같이 무성의하게 생긴 녀석말고 좀 그럴듯하게 생긴 녀석으로. 둘이 하는 걸 보면서 나도 즐길 수 있게.”
이익헌은 그냥 해 본 말이 아니었다는 듯, 적극적으로 레이카를 재촉했다.
카르마 클랜의 비쥬얼을 담당하고 있는 것 같은 남자가 들어왔을 때 이익헌은 레이카가 자신의 의중을 완전히 오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냥 딱 보기에도 레이카의 뺨싸대기를 휘갈겨버릴 것 같은 미모의 남자였다. 익헌의 성향을 그쪽으로 오해한 카르마 클랜의 배려에 몸둘 바를 몰라하면서 익헌은 두 사람의 플레이를 진행시켰다. 레이카는 전혀 관심없는 척 하다가 어느새 흥흥 거리면서 행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저도 남자들의 욕망을 채워주기만 했지 이쪽에서 상대를 고르거나 제 만족을 위해서 그것을 해 본 적은 거의 없다가 그 방면으로 남다른 재능을 가진 남자의 손길에 몸이 맡겨지자 새로운 세상이 열린 듯 자꾸만 정신을 놓치게 되었다.
레이카가 교체 투입된 선수에게 몸을 맡기고 신세계를 구경하는 동안 익헌은 레이카의 얼굴을 주의깊게 바라보았다. 기름기가 굳어서 엉겨붙은 것처럼 선뜻 손이 가지 않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대단한 실험정신으로 중무장한 채 레이카의 얼굴에 손을 가져갔다.
사실 레이카의 얼굴은 정말로 부드러웠다. 그냥 익헌의 주관적인 혐오증 비슷한 것이 작용해서 익헌에게만 그렇게 느껴지는 것 뿐이었다. 익헌의 손가락이 닿자 레이카의 얼굴은 소리를 질러댔다. 그것은 레이카 본인도 알아차리지 못한 사실이었다.
밑바닥에서 올라오던 차크라가 새로운 차크라의 출현에 당혹하는 것이 느껴졌다. 익헌은 레이카의 얼굴을 계속해서 어루만졌다. 그, 바닥보다 더 깊은 곳에 그것이 숨어 있었다. 이익헌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레이카의 차크라가 숨기고 있는 비밀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레이카의 얼굴 안에는 괴수를 품은 늪과 같은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이 점성 강한 하얀 액체로 채워져 있었다. 굳이 설명을 하자면 굳어버린 정액같은 것이 얌전히 웅크리고 있었다.
레이카와의 관계에 몰두했던 선수는 곧 폭발을 일으킬 것 같았는지 잠시 휴지기에 들어갔다. 그러는 동안 레이카의 몸이 식지 않도록 레이카를 애무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레이카는 본연의 임무도 망각한 채 남자에게 집중했다. 이익헌은 남자를 부른 것이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자기는 진짜 천재인 것 같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이익헌은 가끔 레이카가 이익헌을 떠올리고 손으로 더듬어오면 그때마다 몸을 내맡기기는 했지만 레이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이익헌의 꼬마는 레이카의 손길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익헌은 레이카의 얼굴에 담긴 비밀을 알아내고 레이카의 몸을 애무하듯이 쓰다듬었다. 몸에도 그런 비밀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레이카의 몸 전체를 두툼한 차크라가 감싸고 있었다. 이익헌은 그 내공에 혀를 내둘렀다. 적어도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내보이고 있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그 모습을 하고 있는 레이카였다.
이익헌은 자신의 얼굴을 바꿀 수 있었지만 지속 시간은 그렇게 길지 못했다. 미하일이 오히려 이익헌보다 지속 시간이 길었다.
‘괴수의 차크라를 가진 헌터라서 역시 다른 거군.’
이익헌은 생각을 정리했다. 이익헌은 뒤로 물러나 앉았다. 너무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하기만 했다가는 괜한 의심을 살 수도 있을 것 같았고, 교체 투입된 선수가 서두르고 있어서 이제부터는 경기를 제대로 지켜봐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