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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부. 카르마 클랜의 헌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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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는 귀를 기울였다. 그 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에는 너무 짧았다. 아주 빠른 순간에 모든 일이 끝났다는 뜻이었다.
괴수의 차크라는 이상한 흐름을 보였다. 괴수에게서 헌터에게로, 그리고 다시 헌터에게서 괴수에게로.
한동안 말없이 무섭게 집중을 하는 지우를 이익헌이 바라보았다.
“이상한 거라도 있습니까?”
익헌이 묻자 지우가 익헌에게 바짝 다가갔다.
“차크라 흐름이 이상합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어딘가에 괴수가 있는 것 같고 그 괴수한테 헌터가 제공되는 것 같은데 차크라 흐름이 쌍방향으로 이루어져요.”
“쌍방향으로요?”
“처음에는 괴수의 차크라가 헌터한테 주입되는 것 같더니 그 다음에는 헌터의 차크라가. 아!”
지우가 작은 비명을 질렀다.
“이 사람들.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들을 양성하려는 건가보군요. 캐츠 아이 스톤을 노리고 그러는 걸까요?”
이익헌이 물었다.
“그런 거라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괴수 차크라를 주입시켰을 때 헌터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괴수가 어떤 수준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받아들이지 못하는 헌터가 더 많을 겁니다.”
“시험 삼아서 차크라를 주입을 해보고, 헌터가 괴수 차크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로 판명되면 헌터를 괴수한테 먹이로 준다는 말인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지우가 말했다.
“그럼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들은 어디에 있는 거죠? 어떻게 된 거고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들의 차크라는 느껴지지 않아요. 괴수의 차크라도 차크라의 흐름이 명확할 때만 잠깐씩 느껴지고. 가까이 가 봐야 알 것 같긴 합니다.”
“그럼 여기에서 며칠 더 머물 이유를 만들어야 되겠군요.”
“그리고 미키 위도한테도 얘기를 해 봐야 할 것 같고요. 이런 내용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는지 사람들한테 물어봐 달라고 해야겠습니다.”
“그건 안지우씨가 하시죠. 나는 레이카를 만날 준비를 해야 돼서.”
이익헌이 말하자 지우가 이익헌을 바라보았다. 이익헌은 지우의 시선이 금방 다른 곳으로 갈 거라고 생각하다가 꽤 집요하게 머무는 것을 보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뭐요, 왜요! 내가 공과 사도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인 줄 압니까?!”
“그 말은. 공을 위해서 사를 희생하겠다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가짐인 겁니까?”
“무슨 소립니까?”
“사장님. 저는 클랜 A가 그런 집단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클랜 A를 위해서 신념을 꺾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내가 레이카하고 뭐, 그런 짓을 하기라도 할 것 같아서 지금 그러는 겁니까? 아, 진짜. 웃기는 사람이네.”
“그런 생각이 아니라면 다행인 거고요. 선대표를 실망시키는 일을 하신다면 우리도 미안해지지 않겠습니까? 클랜 A를 위해서 한 일로 두 분의 관계가 틀어진다면.”
지우의 말을 듣고 이익헌은 어이없어 하면서 지우를 노려보았다.
“만약에 레이카하고 나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책임 집니다.”
“당연히 사장님이 책임을 지겠죠. 제 말은.”
“아, 그 말 안 들어도 된다고요. 안지우씨는 그 차크라 흐름이나 잘 감지하라고요. 그리고 이제 나가요.”
지우는 이익헌에게 등을 떠밀린 채 나왔다. 아키라가 정원 앞에서 다른 헌터와 얘기를 하다가 안에서 떠밀려 나오는 지우를 발견했다.
“차라도 하시겠습니까?”
아키라가 물었다.
“예? 그럼. 뭐. 그럴까요?”
지우가 아키라와 자리를 옮기는 동안 레이카가 이익헌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혹시 다른 여자가 필요하시면 말씀하시면 됩니다. 이런 류의 접대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준비가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키라가 말했다.
“아뇨. 아뇨. 굉장히 잘 대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의 아니게 너무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도 있고요. 그런데 클랜을 운영하는 방식이 독특합니다. 배워보고 싶습니다.”
“배울 게 있겠습니까? 이미 세계적인 클랜을 운영하고 계신데. 세계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곳이죠.”
“이렇게 큰 규모는 아니죠. 이렇게 큰 규모를 운영하는 건 생각보다 일이 많을 것 같고 사람들의 중심을 파악하는 것도 어려울 것 같거든요.”
아키라는 지우를 자신의 서재로 안내했고 그리로 차를 가져다 달라고 지시를 내려 놓았다.
“이 일이 어떻게 진행될 거라고 보십니까?”
아키라가 물었다.
"이 일요?"
"지금의 이런 상태요. 괴수와 인간이 불안하게 공존하고 있는 이 상태요."
“글쎄요. 계속 이렇게 균형을 이루게 되거나 아니면 한쪽이 사라지면서 끝이 나겠죠.”
지우가 말했다.
“한쪽이 사라진다면. 그게 어느 쪽이 될 것 같습니까?”
“인류가 사라질 거라는 생각은 별로 안 드는군요.”
“왜 그렇습니까? 강한 걸로 말하자면 괴수 쪽이 훨씬 더 강한데. 그리고 맵에 제한이 돼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야말로 막강한 존재들이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만. 괴수들이 한꺼번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죠. 그거야말로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듭니까? 괴수들이 한꺼번에 늪 밖으로 나오면 그때는 일이 쉽게 해결이 되겠죠.”
“일이 쉽게 해결되다뇨? 인류의 말살을 목표로 하고 있는 사람이 하는 말투 같습니다.”
지우가 말했다.
“내 입장에서 말하는 게 아닙니다. 누군가 이 일을 의도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세계에 이런 저런 종을 만들어 온 그 어떤 존재가. 그 존재가 이번에는 늪과 괴수들을 만든 거겠죠.”
“그렇게 생각하는 게 간단할 것 같긴 합니다.”
"그거 압니까? 지구상에 있는 어떤 종도 70억이나 되는 개체 수를 유지하지 못합니다. 아니. 그 말은 틀렸군요. 크릴 새우 같은 건 훨씬 더 많이 존재하니까. 그러니까 한 번에 몇 천 마리씩 잡아먹혀도 종족을 유지해 나가는 거죠. 최상위 포식자 중에서 70억이나 되는 개체 수를 유지하는 종은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계속해서 그 수를 불려나가고 있죠. 먹이가 사라질 거라는 두려움 같은 건 갖지 않은 채 말입니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그 말이 맞겠군요."
"단순히 개체 수가 많기만 한 것도 아니죠. 인간은 다른 종의 개체수 유지에도 관여를 합니다. 멸종을 막으려고 노력도 하고 개체수를 조절하려고 일시적으로 사냥을 허락하기도 하고. 그런 짓을 하는 건 인간뿐이죠."
"그런데 괴수가 나타난 거군요. 괴수는 인간보다 상위의 포식자인가요?"
깊이 생각할 때의 아키라는 상대방이 하는 질문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았다. 대답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애시당초 가져본 적도 없는 사람처럼 당연하게, 질문을 무시했다.
“나는 오랫동안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 왔습니다. 내 옆에서 달리기 시작하라는 신호가 떨어졌을 때도 그랬죠. 무작정 달리기보다는 이 게임의 룰을 정확히 알고 시작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지우는 어느새 아키라가 하는 말에 빠져들었다.
“달리기만 하면, 그래서 끝에 이르기만 하면 내가 이기는 건지. 거기에 대한 확신을 갖기 전에는 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게임이라는 게. 늪과 괴수의 출현이군요. 그리고 레이더가 돼서 괴수를 죽이는 거고요.”
“맞습니다. 내가 끝까지 전력을 다했을 때 이길 가능성이 없는 게임이라면 시작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어요.”
“그럼. 지금은 확신을 갖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아직은 보류 상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내가 싸우는 동안은 갑자기 룰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안정적인 상태는 아니고 그 누군가에 의해서 상황은 언제든지 바뀔 수도 있을 겁니다.”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그러니까. 늪이 갑자기 다같이 오픈이 되고 한꺼번에 많은 괴수들이 늪 밖으로 뛰쳐나오는 상황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 일이 생기면 우리 힘으로는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을 겁니다. 1급 괴수 하나만 늪 밖으로 나와도 거기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죠.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희생되고.”
“안타까운 일이죠.”
지우는 그 말을 하면서 아키라의 표정을 살폈다. 안타까운 일이라는 말에 아키라가 동조를 할 것 같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역시나 아키라는, 그렇게 생각하냐는 것 같은 표정을 지은 채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냥 허공을 보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시선이 한동안 오래 머물기에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 아키라를 닮은 남자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아버집니다. 아버지도 헌터였죠.”
아키라가 말했다. 그때 차가 들어왔다. 지우는 사람들이 대화 중에 차를 마시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찻잔을 들고 그것을 비우는 행위가, 침묵의 죄를 면책 시켜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익스트림 헌터는 대단한 곳입니다. 현대 사회에 꼭 필요한 곳이죠. 그곳의 무기 마스터에 대해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정말 대단한 사람인 것 같더군요. 사람들이 한계라고 생각하건 말건 그 사람은 그런 생각에는 사로잡히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공격 증폭률 400, 500이 가능하리라고 본 사람들이 없었을 때 그 사람은 그걸 만들기 위해서 혼자 노력했겠죠. 그 주위에서 그 사람을 믿고 기회를 준 사람들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익스트림 헌터의 많은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예. 확실히 훌륭한 분들입니다."
지우는 아키라가 채준형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의외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내가 공략한 많은 괴수들 중에 특이한 사체를 남긴 괴수들이 여럿 됩니다. 사체 운반을 할 때 그걸 특별히 따로 챙겨 뒀는데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그것들을 익스트림 헌터의 무기 마스터에게 보여주고 싶은 생각도 들어요. 기회가 찾아올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꼭 불가능하리란 법도 없겠죠."
"익스트림 헌터가 길드를 만들고 정규 공격대를 편입시키는 건 익스트림 헌터에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나라마다 나타나는 괴수가 많이 다르니까 말입니까. 똑같은 샤론이라고 해도 조금씩은 다를 겁니다. 그러면 어떤 걸 이용하는 게 더 효율적일지 여러 가지 중에 선택을 할 수 있게 되겠죠."
"언제 같이 얘기할 기회가 오면 유익한 시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지우가 말했다.
"그 사람도 그냥 한낱 사람에 불과하다는 게 참 안타깝더군요. 쓸모없는 인간한테 주어진 시간도 80여년이고 익스트림 헌터의 무기 마스터한테 주어진 시간도 80여년이라고 한다면 그건 절대로 공평하다고 할 수가 없죠.”
“훌륭한 사람은 더 오래 살아야 한다는 건가요?”
지우가 웃으며 말했다.
아키라는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이 지우를 바라보았다.
“오래 살고 싶습니까?”
지우가 물었다.
“나요? 아뇨. 나는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냥 다만. 나는 내가 살아가는 동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요. 내가 죽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슬퍼하건 말건, 그건 내 몫의 슬픔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그게 굉장히 크더군요. 한동안 극복을 못 했습니다.”
아키라에게서 얘기가 더 나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찻잔을 조금씩 비우면서 기다렸지만 아키라는 한동안 말을 잇지 않았다.
“부탁이라고 할 수도 있고 제안이라고 할 수도 있는 건데. 우리가 여기에 와 있는 동안 카르마 클랜과 연합해서 1급 괴수를 공략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카르마 클랜에도 버거운 괴수들이 있을 텐데 우리가 같이 레이드를 한다면 공략 가능성이 높아질 겁니다.”
결국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지우였다. 뱅뱅 돌기만 하는 화법은 지겨워졌다는 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