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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215화 (215/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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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부. 카르마 클랜의 헌터들

레이카는 샤론의 거대한 몸을 밟고 움직이면서 샤론의 몸을 벌집으로 만들어놓았다.

“여섯 번 정도면 된다. 레이카.”

아키라가 말했다. 다른 헌터들이라면 몰라도, 혹시 레이카가 샤론의 공격을 당한다면 아키라도 나설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지우와 이익헌 두 사람의 머릿속에 들었다.

“아키라는 자기 마음을 모르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레이카한테 빠져드는 마음이 겁나서 레이카를 함부로 하는 건지도 모르고요. 다른 남자들한테 레이카를 넘겨주는 걸로 말입니다.”

이익헌이 말했다. 지우도 그 마음이 이해되었다. 자기라면 절대로 그렇게 멍청한 짓을 하지는 않겠지만 아키라라는 남자를 보면 그가 그런 식으로 화풀이를 하려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은 남자에게 나타나 그 남자의 마음을 빼앗은 여자라면.

"레이카가 잘못했네. 레이카가 잘못 했어."

이익헌은 이미 그렇게 단정을 지어버리고 중얼거렸다.

“두 번이다. 레이카.”

아키라가 말하자 레이카가 갑자기 석궁을 거두었다. 그 대신, 허리에 차고 있던 제법 긴 검을 꺼내들었다. 경주에서 이길 거라고 확신한 선수가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기 직전에 미리 세레모니를 하는 것과 비슷했다.

가늘고 평범한 검이 샤론의 목을 찌르고 들어갔다. 레이카는 격렬하게 저항하는 샤론의 목에서 검을 빼들고, 샤론의 피로 젖어든 검을 다시 한 번 찔러 넣었다.

샤론의 거대한 몸이 바닥으로 푹, 떨어졌다. 맵의 바닥에서 엄청난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것과 대조적으로 레이카는 부드러운 나뭇잎처럼 바닥에 내려왔다. 아키라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레이카를 바라보았다.

“자. 이만하면 길드의 가입 심사에 통과한 겁니까?”

아키라가 지우와 익헌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다른 헌터들의 얼굴에서 적대감이 읽혔다. 그들 역시 이 상황을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굉장히 훌륭하고 실력이 뛰어나서 감탄했습니다.”

이익헌은 단단하게 굳힌 표정으로 말했다. 무례한 태도에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 않다는 표정을 한 이익헌을 보고 아키라가 웃음을 지었다.

레이카가 러프 스톤을 챙겼다.

“샤론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모습은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아키라가 말했다.

“저야말로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클랜 마스터에 대한 클랜원들의 충성심이 대단한 것 같더군요. 혹시 얘기를 더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기쁘겠습니다.”

지우가 말했다.

“호텔에 돌아가서 쉬셔야 하지 않을까요?”

“죽으면 계속 쉴텐데요, 뭘. 그리고 나한테 주기로 약속한 선물도 있지 않습니까?”

이익헌이 말했다.

아키라는 잠시 생각을 하는 눈치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함께 가시죠.”

늪을 나오자 신관의 가족들이 서 있었다.

“이 늪은 이제 사라질 겁니다.”

아키라가 설명을 하고 먼저 걸음을 옮겼고 지우는 신이 있었다는 자리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

레이카가 앞장서는 동안 두 명의 헌터는 아무 것도 묻지 못했다.

두 사람의 헌터는 아키라와 함께 신사에서 레이드를 할 때 지우의 도움을 받았던 헌터들이었다. 그들은 지우의 도움을 받은 것이 달갑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도움을 받아 목숨을 부지한 후로는 누구보다 열심히 싸웠고, 괴수에게 많은 데미지를 가했다고 자부했다. 자신들이 레이드에 공을 세웠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것을 어느 정도는 상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레이카가 그들을 따로 불렀을 때 두 사람은 아무 것도 예측하지 못했다. 레이카는 자기를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 후 아무 말도 없이 두 사람의 앞에서 걷는 중이었다.

그들은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곳을, 레이카를 따라서 말없이 걸었다. 걸음이 계속될수록 마음이 답답해졌다. 잘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레이카에게 사과를 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레이카는 그들이 하는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레이카. 어디로 가는 거니.”

여자 헌터가 묻자 레이카가 웃었다. 겉으로 보이는 대로만 판단을 하고 레이카에게 함부로 반말을 하는 모습이 가소로웠다. 레이카는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점점 빠른 속도로 걸어나갔다.

여기에서부터 원래의 자리로 혼자 알아서 돌아가라고 한다고 해도 두 사람은 자기들이 길을 제대로 찾아나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카르마 클랜에 속한 이후로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지냈지만 지금 레이카와 함께 걷는 길은 생경하기 그지없었다.

갑자기 여자 헌터가 걸음을 멈췄다. 방금 무슨 소린가를 들은 것 같았다.

괴수가 울부짖는 소리였다. 헌터의 공격을 받았는지, 도발을 당했는지 끔찍하게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헌터는 그 소리가 어디에서 들려오는 건지 알 수가 없었고, 혹시 괴수가 늪 밖으로 출몰을 해서 이 안으로 들어온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여자 헌터는 걸음을 멈춘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남자 헌터의 팔을 붙잡았다.

"저 소리가 안 들려요?"

남자 헌터도 이상한 기운을 눈치채기는 했지만 어떻게 할지 아직 결정을 내리지는 못하고 있었다. 레이카 자체로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레이카는 아키라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헌터였다. 레이카를 거스른다는 것은 아키라를 거스른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레이카. 어디까지 가는 거야?"

남자 헌터는 그렇게 레이카에게 말했지만 레이카는 여전히 대꾸가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못 가. 안 가. 가지 않을 거야!”

여자 헌터가 갑자기 히스테릭하게 외쳤다. 레이카는 천천히 여자 헌터를 향해서 돌아섰다. 네가 뭐라고 말하건 그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것 같았다.

"레이카! 나는!"

여자 헌터가 레이카를 향해 뭔가 더 소리를 치려고 했을 때였다. 레이카의 얼굴이 변했다. 표정의 변화에 대한 말이 아니다. 남자 헌터는 레이카의 얼굴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얗고 매끈하던 피부가 변하고 있었다.

레이카의 얼굴에서 눈과 코와 입이 천천히 파묻혔고 코와 입이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하나의 커다란 구멍이 생겨나고 있었다.

“네, 네… 네머티나 괴수잖아!”

남자 헌터가 소리를 지르며 뒤로 달아나려 했다.

그는 네머티나 괴수를 알고 있었다. 언젠가 네머티나가 살고 있는 4급 늪을 공략한 적도 있었다. 네머티나 괴수는 이 지역에 유달리 많이 출몰하는 괴수였다.

몸 속에 독성을 가진 끈적한 액체를 숨기고 있다가 헌터가 다가오면 독사의 혀처럼 그것을 순식간에 내밀어 헌터를 낚아채는 괴수였다. 동그란 몸통에 짧은 다리가 앞 뒤로 두 개씩 붙어있는 녀석이었고 움직이는 속도 자체는 빠르지 않았지만 한 번 입안의 액체를 토해내면 헌터가 피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괴수의 급수가 높아질수록 독성이 강했고 한 번에 주입하는 독의 양도 많았다.

여자 헌터는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제 앞에서 형태가 바뀌어가는 레이카의 얼굴을 넋을 잃은 듯이 바라보았다.

남자 헌터가 뒤로 돌아 도망치려는 그 순간, 레이카의 얼굴에 생긴 구멍에서 끈적한 하얀 액체가 뻗어나갔다. 그것은 나무 뿌리가 물을 찾아 뻗어나가듯이 순식간에 가지를 쳤고 남자의 몸을 꽁꽁 감싸 공중에서 들어올렸다. 단순한 액체가 아니었다.

“레이카! 너는 헌터잖아! 네가 왜 네머티나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거야! 정신 차려, 레이카!”

남자 헌터는 허공에 매달린 채 소리를 질렀다. 레이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끈끈한 액체는 성인 남자의 몸을 들어올리고도 끄떡도 없었다.

레이카가 여자를 바라보았다. 눈이 사라진 얼굴이니 바라봤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여자 헌터는 의미없는 저항으로 제 죽음을 앞당기고 싶어하지 않았다. 레이카가 남자 헌터를 데려가는 동안 여자 헌터도 묵묵히 레이카의 뒤를 따랐다.

끈끈한 액체에서 퍼져나온 독이 남자 헌터의 몸을 서서히 마비시켰다. 그는 자신의 몸이 마비되는 것을 깨달아가면서 레이카를 불렀다.

“레이카. 정신차려! 너는 헌터잖아! 네머티나한테 네 몸을 내 준 거야?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클랜 마스터께서 아시면 용서받지 못하게 돼!”

남자 헌터는 어떻게든 레이카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를 결박한 줄은 점점 더 조여들기만 했다.

"이노! 너라도 정신 차려. 정신 차리라고! 이대로 계속 레이카를 따라갔다가는 죽게 돼. 너도 마찬가지라고. 이노. 정신 차려. 레이카를 공격해!"

그러나 이노라 불린 여자는 레이카를 공격하지 못했다. 얼굴을 잃은 레이카는 이미 레이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런 레이카의 얼굴을 보자니 모든 의지가 깔끔하게 사라져 버렸다.

세 사람은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이노가 처음에 들었던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그곳에 커다란 늪이 있었다. 그런 곳에 늪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노는 거기에 새삼스럽게 호기심을 갖지도 못했다.

남자 헌터를 붙들고 있던 하얀 액체가 허공에서 한 번 휘둘러졌다.

"으으윽!!"

"하루키!!"

이노가 비명을 질렀다.

하루키의 몸이 늪으로 던져지자 그때까지 하루키를 결박하고 있던 것이 레이카의 얼굴로 다시 들어갔다.  이노는 그 끔찍한 광경을 전부 다 지켜보고 있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발은 주인의 의지와 다르게 늪으로 향했다. 마침내 이노의 모습도 늪 아래로 사라졌다.

레이카도 그 뒤를 따랐다.

늪 아래의 모습은 여느 늪과는 달랐다. 하루키가 네머티나라고 불렀던 괴수가 늪 아래를 지키고 있었다. 네머티나는 늪 아래에 살고 있을 뿐, 늪의 주인이라고 부를만한 위용은 보이고 있지 못했다. 네머티나는 긴 몸을 돌돌 말고 있었다. 가끔 머리를 이쪽 저쪽으로 돌리면서 주둥이에서 끈끈한 액체를 쏘아댔지만 그것은 무의미한 공격일 뿐이었다.

네머티나의 주위에는 세 사람의 헌터가 버티고 서 있었다.

"하루키인가."

한 남자가 말했다. 하루키는 고개를 들었지만 레이카가 그의 얼굴을 바닥으로 처박아 버리는 바람에 얼굴을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네머티나는 바닥에 깊이 박힌 고리에 결박되어 있었다. 괴수치고는 처참한 몰골이었다.

“레이카.”

늪에 있던 남자가 레이카를 불렀다. 레이카의 얼굴은 여느 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먹이인가?”

“먹이가 될 수도 있지만. 우선은 차크라를 주입해 보죠. 혹시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고 살아나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만약에 그런 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때 네머티나에게 먹이로 줘도 될 거고요.”

네머티나는 레이카가 데려온 헌터들의 냄새를 맡았다. 네머티나의 주둥이에서 끈적한 액체가 나가는 순간 헌터가 네머티나의 안면을 강타했다. 네머티나는 꼼짝하지 못하고 액체를 되삼켰다.

레이카가 데려온 헌터들은 아무렇게나 내던져졌다. 고통은 그들만의 몫이 아니었다. 네머티나도 고통스럽게 몸부림을 쳤다. 괴수의 차크라가 네머티나에게서 빠져나갔다.

이노와 하루키는 비명을 지르면서 괴수의 차크라를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레이카가 말했던 운은 그 두 사람을 따라주지 않았고, 네머티나의 차크라가 들어가자마자 두 명의 헌터는 격렬하게 부들거렸고 몸이 뒤집혔다.

늪을 지키고 있던 헌터들은 신중하게 이노와 하루키의 반응을 살폈다.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잦아들었고 희미하게 보이던 반응마저 나중에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죽어버렸나."

재미없게 됐다는 듯이, 자기들이 괴롭히던 작은 동물이 죽은 것을 아쉬워하는 철없는 꼬마들처럼 헌터들이 말했다.

그들이 죽었을 때 레이카는 주저할 것도 없다는 듯이 두 사람을 네머티나의 먹이로 내던져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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