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부터 레벨업-213화 (213/331)

0213 / 0331 ----------------------------------------------

9부. 카르마 클랜의 헌터들

익헌은 지우가 뭔가를 느끼고 거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아키라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아키라가 지우에게 불필요한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아키라에게 말을 걸었고, 레이카에게 관심이 있는 것처럼 굴기도 했다.

아키라는 레이카에게 관심이 있다는 이익헌의 말에 즐거워했다.

“레이카는 카르마 클랜이 자랑하는 녀석이죠.”

아키라가 말했다.

“레이카도 헌터죠?”

이익헌이 물었다.

“네. 레이카도 헌텁니다.”

아키라가 대답을 하기까지 아주 짧기는 했지만 시간이 걸렸다가 대답이 나왔다. 이미 짐작을 했다는 듯이 '레이카도 헌터냐'고 묻는 대신에 단순하게, 레이카는 헌터냐고 물었으면 아니라고 우겼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클랜 마스터께서 아끼는 사람입니까?”

이익헌이 음흉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아키라는 그런 반응이 그저 즐거운지 유쾌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낀다고 해 봐야 소모품이죠. 원하신다면 기꺼이 빌려드리겠습니다.”

“레이카 때문에 일본을 떠나기 싫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 그때는 카르마 클랜에 자리를 하나 내 주시겠습니까? 적당한 간부 자리 하나만 주셔도 감지덕지일 것 같은데.”

이익헌이 능청스럽게 말하자 아키라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재미있는 분입니다. 익스트림 헌터 길드의 마스터에 다름없는 분이 그런 말을 하시니. 제가 지금 웃고 있으면 안 되는 게 맞는 거죠? 저를 놀리신 것 같은데 기분이 나쁘지 않는 걸 보면 제가 멍청하긴 멍청한 모양입니다.”

“레이카를 칭찬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냥 헛소리이기만 한 것도 아니고요. 레이카한테 너무 빠지게 될까봐 살짝 겁이 나기도 하거든요.”

“잘 보신 겁니다. 레이카는 호락호락한 녀석이 아니죠. 한 번 빠지고 보면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겁니다.”

아키라는 자기가 키우는 애완견을 자랑하는 사람처럼, 일단 한 번 말을 시작하자 도중에 멈추지를 못했다.

“그 말을 들으니 더 기대가 되는군요. 레이카를 호텔로 보내실 건가요? 이곳에서 카르마 클랜의 정취를 느끼면서 일본 정원을 바라보면서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더없이 좋을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아키라는 즉답을 피했다. 레이카를 계속 붙여 놓고 이익헌에게서 이것 저것 정보를 캐내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레이카한테 미리 얘기를 해 봐야겠군요. 당연한 얘기지만 레이카 본인의 의사가 중요한 거라서요.”

“레이카도 혹시 같이 갈 수 있나요? 레이드하러 말입니다. 저는 강한 여자가 좋던데요. 레이카가 괴수를 상대로 싸우는 걸 보고 나면 확실하게 레이카의 노예가 될 것 같습니다만.”

“레이카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살짝 걱정이 되기는 하는군요. 레이카는 맹독을 가진 아이죠. 레이카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지고 나면 그 다음에는 힘들어질 겁니다.”

아키라가 말했다.

“나는 많은 독에 면역력이 있죠. 그래서 지금까지도 혼자인 건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좋습니다. 레이카도 데려가도록 하죠.”

이익헌이 아키라와 함께 의미없는 얘기를 주고받는 동안 지우는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그곳 어딘가에 그것이 있었다.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 아니. 주종을 명확히 구분해서 정확히 설명하자면 그것은 헌터 차크라를 가진 괴수였다.

하나의 거대한 순수한 차크라에 수도 없이 많은 헌터 차크라가 혼합되어 있었다. 그 안에 있는 헌터는 이미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비명을 지르고 꿈틀거리지만 갑자기 목이 잘린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어쩔 수 없는 신경 반응일 뿐이었다.

지우의 표정이 굳어갔다.

‘헌터가 제물로 바쳐지고 있는 건가.’

서규태로부터 연락을 받아 지우도 미키 위도가 새롭게 알아낸 소식을 알고 있었다. 서규태에게서 들은 얘기는 왠지 처음 듣는 얘기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키라에게서 느꼈던 감정들과 카르마 클랜의 분위기에서 짐작했던 것들이 서규태의 설명으로 짜맞춰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카르마 클랜에 있는 늪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 지우 역시 거실에 나타났던 늪을 떠올렸다. 지우가 생각했던 것은 단순했다. 지우 자신과 시현에게 나타났던 괴수 차크라, 그리고 야로슬라프와 레오니드, 미하일에게 나타났던 괴수 차크라를 떠올렸기에 지우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그림이 정형화된 채 자리를 잡았다.

그 늪은 비어있을 거라는 것이 지우의 생각이었다. 그곳에 있던 괴수는 다른 헌터에게 자신의 차크라를 주고서 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헌터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헌터 역시 캐츠 아이 스톤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우도 다른 늪들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했다. 아키라와 카르마 클랜이 그 많은 캐츠 아이 스톤을 얻어낸 것을 설명하려면 그 수만큼의 특별한 헌터들이 존재했어야 했다.

그러나 지우는 생각하지 못한 벽에 부딪쳤다. 왜 괴수가 자신을 공격하는 대신 차크라를 맡기고 사라진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었다. 지우의 생각은 거기에서 멈춰야 했다.

이익헌이 지우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익헌의 눈짓을 보고 아키라를 바라보자 아키라가 지우를 보고 있었다.

“어디 불편한 데라도 있습니까?”

아키라가 물었다. 정중한 목소리였지만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아뇨. 컨디션이 완벽한 건 아니지만. 크게 불편한 건 아닙니다.”

지우는 아키라에게 의심을 사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그때부터 아키라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40분 거리에 오픈 예정일을 3주 정도 앞둔 2급 늪이 있습니다. 거기로 갈까 하는데요. 괜찮겠습니까? 만족스럽지 않을 것 같으면 얘길 해 주시죠. 그러면 1급 늪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키라가 말했다. 마음만 먹는다면 1급 늪의 괴수를 공략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한 자신감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아닙니다. 원래 계획했던 곳으로 가죠. 늪이 나타난 곳은 어딥니까?”

이익헌이 물었다.

“신삽니다. 신사에 늪이 많이 나타나죠. 신사에 늪이 많이 나타나는 건지, 신사가 많아서 그렇게 보이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한국에도 그런 곳이 있습니까? 늪이 유난히 자주 나타나는 특정한 장소 말입니다.”

"그런 건 없는 것 같은데요?"

이익헌은 대답을 먼저 해 놓고 혹시 그런 게 있나? 하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몇 초 정도 생각을 하고 나서도 그런 장소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아뇨. 그런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특정한 장소에 몰려서 나타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게 궁금했습니다. 그럼 같이 가 보시죠."

아키라의 말을 들으면서 그들은 레이드를 위해 출발했다.

그곳을 떠나는 그 순간에도, 소름끼치는 비명이 들려왔다. 깜짝 놀란 지우가 익헌을 바라보았지만 익헌은 아무 것도 듣지 못한 얼굴이었다. 아키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우는, 방금 하나의 헌터 차크라가 사라졌다는 사실과 그 차크라가 괴수의 거대한 차크라에 흡수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

“신사라고는 하지만 미신으로 치부된 사교예요. 흑사죠.”

늪이 있는 곳으로 가는 동안 아키라가 설명했다.

“믿는 사람도 없고 자연스럽게 맥이 끊겼어요. 신도, 신관도 없죠.”

“신관이 없으면 거기엔 누가 삽니까?”

익헌이 물었다.

“신관의 가족들요.”

아키라가 말했다.

믿는 사람이 먼저 사라진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신이 사라지고 신관이 사라진다. 마치 유행이 변해서 더이상 만들어지지 않는 공산품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 같아서 지우는 특이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 신이라면 믿는 사람이 있건 없건 신은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면서 지우는 잠시 다른 생각을 했다.

“일본의 신들은 좀 특이한 것 같아요. 뭐. 중요한 얘기는 아니지만요.”

지우의 말에 아키라가 지우를 바라보았다.

“저는 별로 거기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당신 얼굴을 보면 알겠다고 말해주고 싶은 것을 참았다. 이익헌은 그 사이에서 키득거렸다.

사당으로 들어갔을 때 그곳에는 카르마 클랜의 다른 레이더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레이카도 그 중에 끼어 있었다.

레이카는 지우와 이익헌을 향해 살짝 눈웃음을 지었다. 레이카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클랜 마스터를 향해 예의를 지켰고 이익헌과 지우를 경계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키라는 사당의 한 가운데를 가리켰다.

“늪이 있는 자립니다. 원래 저 자리에는 신이 있었죠. 사라진 신은 나무였습니다. 700년 넘게 산 나무였는데 그게 말라 죽고 사람들은 나무신을 버렸죠. 하지만 신관은 나무신이 죽은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신으로 섬기던 나무가 죽은 곳에 늪이 생긴 거예요.”

아키라가 말했다.

“나무신이 죽은 게 아니면 나무는 왜 죽었다는 겁니까?”

지우가 물었다.

“신이 나무를 떠난 것 뿐이라고 하더군요. 다른 몸으로 태어날 거라고 했던 것 같은데. 관심이 없는 얘기라서 자세히 듣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몸으로 태어난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그 신이 사람 몸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건가요?”

지우가 묻자 아키라가 웃었다.

“일본 신앙에 관심을 보이는 외국인들을 볼 때마다 솔직히 좀 당혹스럽습니다. 내가 그쪽으로 박식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말이예요. 내가 계속해서 말했지만 나는 그런 것들에 관심이 없습니다. 관심 있는 거라곤 레이드와 무기, 괴수 정도일 겁니다.”

아키라가 말을 하고 헌터들을 향해 손짓을 했다.

“들어가보죠.”

아키라는 그렇게 말을 하고 먼저 늪 안으로 들어갔다.

모두가 늪 아래로 내려갔다. 괴수에 대한 브리핑은 없었다. 이익헌과 지우는 레이드에 참여하지 않을 테니 괴수에 대한 정보를 알려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늪 아래에 내려가고 나서야 두 사람은 늪의 주인이 샤론이라는 괴수라는 것을 알았다. 크기는 40미터를 조금 넘었고 열 두 쌍의 다리가 달려있었다.

공룡이 나타나기 이전 시대에 지구를 정복했던 생물 중에 그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녀석이 있었던 모양이고 사람들은 그 녀석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이 괴수를 샤론이라고 불렀다.

이익헌과 지우도 샤론에 대해서 얘기를 들어본 정도였지 실제로 마주한 적은 없었다.

커다란 몸을 가졌으면서도 샤론은 움직임이 빨랐다. 열 두 쌍의 다리는 항상 같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고 그 중에 한 쌍이 지지대가 되어준 채 몸 전체의 방향을 한 번에 바꿔버릴 수도 있었다.

샤론의 뒤로 왔다고 방심을 하고 있는 사이에 샤론의 무시무시한 얼굴을 마주보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샤론은 맨 앞에 달려있는 두 쌍의 다리와 머리에 달려있는 기다란 촉수를 이용해서 헌터들을 공격했다. 샤론의 공격 방식은 간단했다. 다리로 잡아서 입에 넣거나 촉수로 잡아서 입에 넣는 방식이었다.

일단 샤론에게 붙잡히면 저항이나 탈출은 어려웠고 많은 헌터들이 레이드 도중에 샤론에게 잡아먹혔다. 그러다보니 샤론은 헌터들이 기피하는 개체가 되었지만 샤론이 서식하는 늪은 성장하지 않는 1급 늪인 경우가 많았다.

아키라는 이익헌과 지우를 바라보았다. 샤론은 아직 싸울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아시겠지만 샤론입니다. 샤론은 거의 1급 늪에서 나타나죠. 이 녀석은 2급 괴수입니다. 개체가 이렇게 큰데도 말이죠. 그래서 이 샤론을 공략하려는 공격대가 많지 않죠. 위험한 개체인데 힘들여서 공략을 해 봤자 샤론에게서 나오는 러프 스톤은 2급 늪의 러프 스톤 가격밖에 안 할 테니까 말입니다.”

아키라가 말했다.

“샤론을 공략해본 적이 있습니까?”

지우가 물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