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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부. 카르마 클랜의 헌터들
다들 피곤한 얼굴이기는 했지만 결국 전부 다 침대에서 기어나왔다. 미키는 간단한 인사말만 하고 자기가 새롭게 알아낸 것들에 대해서 말했다.
“카르마 클랜에는 독자적인 헌터 등급 체계가 있었어요. 시스템이 정한 A급부터 F급의 등급 체계와 다르게요. 1급부터 4급까지 있었는데 3급과 4급은 카르마 클랜에 갓 입문한 사람이나 헌터로서 능력이 별로 없는 사람이 맡고 있었고요. 2급은 1급에 오르기 위한 전 단계로 인식되는 단계였어요. 카르마 클랜의 1급 헌터가 된다는 건 A급 헌터가 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졌는데 그만큼 카르마 클랜의 1급 헌터는 달랐어요.”
“달랐다는 건. 혜택을 말하는 건가요?”
써전이 물었다.
“아뇨. 갑자기 실력이 월등하게 향상이 된 거예요.”
미키가 말했다. 미키는 자기가 인용해야 할 말이 적힌 종이를 찾느라 이것저것 뒤지다가 종이 한 장을 찾아서 거기에 자기가 휘갈겨 썼던 대목을 읽었다. 자기 글씬데도 해독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았다.
“카르마 클랜의 1급 헌터 다섯 명이 하급 늪 하나를 공략하는데 걸린 평균 시간이 다섯 시간 미만이었대요. 익스트림 헌터의 무기를 사용하면서는 그 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됐고요.”
“그렇게 말해서는 실력이 어느 정돈지 가늠하기가 어렵네요. 하급 늪이라고 해도 여러 가지니까. 괴수의 체력에 따라서도 다르고요.”
태인이 말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미키는 그 말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럴 거라는 생각은 그때에야 하게 된 것 같았다.
“카르마 클랜의 1급 헌터는 클랜 내에서 선망의 대상이 됐던 것 같아요. 일단 1급 헌터가 되기만 하면 비약적으로 실력이 올랐다고 해요.”
미키가 말했다.
“1급이 됐다고 실력이 바로 올랐다고요?”
야로슬라프가 웃으며 물었다. 당연히 그것은 말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야로슬라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미키 위도가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오해한 거라고 생각했다.
“미키. 미키가 뭔가 잘못 생각하는 것 같은데. 헌터의 실력은 그렇게 느는 게 아니예요. 등급이 올라가면 기본 공격력이 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실력이 늘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죠. 전투 센스라는 건 그렇게 갑자기 좋아지는 게 아니거든요.”
서규태가 설명했다. 그러자 미키가 이해한다는 듯이 웃었다.
“써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요. 나도 똑같은 말을 했거든요. 그런데 카르마 클랜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대요. 1급 헌터가 되기 전과 1급 헌터가 된 후가 완전히 달랐대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고 하기도 했고, 이상한 약물을 복용한 것처럼 보였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약물을 복용해요?”
서규태가 말했다. 레오니드가 야로슬라프를 바라보았다.
“괴수 차크라를 주입한 걸까?”
레오니드의 말을 들은 미하일의 눈이 반짝였다. 정말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로슬라프야말로 누구보다 확실하게 그 일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괴수 차크라를 주입했다고 한다면 그 말을 이해할 수 있겠는데요? 해리와 라미실이 그랬거든요. 여기에 있는 레오니드와 미하일의 차크라를 주입받고 해리와 라미실이 갑자기 강해졌었어요. 차크라가 폭발할 것 같았고 힘이 엄청나졌죠.”
야로슬라프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럴 가능성이 크겠네요.”
태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카르마 클랜이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를 데리고 있다는 간접 증거가 하나 더 생긴 건가요?”
태인이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모든 클랜원들의 표정이 나빠졌다.
“잠깐만요. 미키. 미키는 미키한테 그 얘기를 해 줬던 사람한테 추가 질문을 할 수 있는 거죠? 그 사람한테 이걸 물어봐 줄 수 있어요? 1급 헌터가 된 사람들이 레이드를 할 때 쓰던 공격 패턴이 비슷했는지, 아니면 서로 완전히 달랐는지 말이예요. 그리고 그 사람들한테서 일반적인 헌터들이 사용하는 공격방법이랑 다른 특이한 능력이 나타났는지도 물어봐줘요.”
야로슬라프가 미키에게 말했다.
“예를 들어서 이런 거예요.”
미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야로슬라프가 레오니드의 팔을 흔들었다. 레오니드는 어색해하면서 팔을 들어올리더니 손 끝에 조그만 나뭇잎을 피워냈다.
“…….”
미키는 멍하니 그것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볼게요.”
“그걸 알면 카르마 클랜이 몇 명을 데리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 말이예요. 그런 헌터가 여러 명이라면 차크라를 주입받은 사람들한테서 각양각색의 반응이 나타나겠죠.”
야로슬라프가 설명했다.
“아, 그리고 아직 몇 가지가 더 남았어요.”
미키가 말했다.
“아키라의 할아버지에 대한 건데요. 아키라와 할아버지의 관계가 아주 나빴다는 얘기가 있어요. 이건 얼마나 믿을 수 있는 얘긴지는 모르겠고 좀 더 취재가 필요한 부분이긴 한데 이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없어서 우선 얘기만 하는 거예요. 두 사람은 사이가 좋지 않았고 특히 아키라 쪽에서 할아버지를 유난히 싫어했대요. 아키라는 아버지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아버지가 할아버지한테 많이 시달리다가 죽은 모양이예요. 그런 거 있잖아요. 아들한테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세우고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업신여기는 그런 사람이었나봐요. 아키라의 할아버지는.”
“뭔가 그림이 그려지네. 그런데 그런 가정사로 뭘 추측해야 할지는 아직도 모르겠는데요?”
임정이 말했다.
“아키라의 할아버지에 대한 건데. 죽음이 의문스럽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은 아키라의 할아버지가 죽기 직전까지도 건강했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알츠하이머에 걸려서 죽었다는 건 꾸며진 얘기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 얘기는 아까도 말했지만 믿을 수 있는 말인지 어쩐지 아직 확신을 할 수가 없어요.”
미키가 말했다.
“그걸로도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임정이 말하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참. 가장 중요한 걸 빠뜨릴 뻔 했는데 카르마 클랜에 잠깐이라도 가담한 적이 있었던 사람들이 모두들 빼놓지 않고 한 얘기가 있었어요. 어떤 늪에 대한 얘긴데. 그 늪은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았고 카르마 클랜 소속이 아니면 공략을 시도할 수도 없었대요. 성장하는 늪이 아니어서 오픈 예정일은 없었다고 하고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이건데.”
미키가 헌터들을 바라보며 잠시 뜸을 들였다.
“늪의 주변 색깔이 특이했대요.”
“혹시.”
강현이 미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늪의 테두리가 불꽃처럼 빛나더라고 하던가요?”
강현이 물었다. 미키는 신기하다는 듯이 강현을 바라보았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테두리가 불꽃처럼 빛나는 늪.
‘노란 빛과 파란 빛이 꼬리를 물고 일렁이며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 같은 모습이었어.’
지우가 자신의 집 거실에 나타났던 늪에 대해서 강현에게 해 주었던 말이었다. 강현의 말을 듣고 있던 다른 클랜원들도 지우의 늪을 떠올렸다.
“그 늪에 대해서 더 얘기해 주세요.”
강현이 미키를 재촉했다.
“그 늪에 가끔 헌터들이 들어갔대요. 공략을 위해서요. 그건 비밀스럽고 엄숙한 의식 같았는데 거기에 들어간 사람 중에 나온 사람이 없었대요. 그 일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는데, 그런데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꽤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럴 수밖에 없겠죠. 같이 생활하던 동료들이 사라져버린 일이니까요.”
“늪에 들어간 헌터들이 늪에서 레이드를 하다가 괴수한테 먹힌 거라고 생각하던가요? 그 사람들은?”
서규태가 물었다.
“다른 이유는 없겠죠. 그 늪에는 굉장히 강한 괴수가 살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어요. 그런 늪은 그곳에서만 봤고 그 이후로 다른 곳에서는 그런 늪을 본 적이 없었대요.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전부 그렇게 말했어요.”
“그 늪이 언제 나타난 건지 혹시 알 수 있나요?”
임정이 물었다. 미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키라의 할아버지가 카르마 클랜의 클랜 마스터였을 때부터 있었다고 했는데 카르마 클랜이 생기기 전에도 그게 있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아키라의 할아버지는 아키라의 아버지를 클랜 마스터로 키우려고 훈련을 시켰던 거죠?”
서규태가 물었다.
“네. 아키라의 아버지도 카르마 클랜의 1급 헌터였다고 해요. 아키아의 아버지를 직접 봤다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자료를 모으는데 애를 먹기는 했는데, 다행히 아키라의 아버지가 있는 동안 카르마 클랜에 있었던 사람을 소개받을 수 있었어요. 그 사람은 아키라의 아버지가 심약한 사람이었다고 말하더군요. 아버지와 아들이 그렇게 다를 수가 없었대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1급 헌터가 된 후에 완전히 바뀌었다고 하더라고요.”
“차크라를 주입받았을 테니까.”
야로슬라프가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키라의 아버지가 갑자기 죽었을 때 아키라는 할아버지한테 쫓아가서 반드시 자기 손으로 할아버지를 죽여버리겠다고 했대요.”
미키의 얘기는 그 후로도 한동안 계속해서 이어졌지만 헌터들은 점점 말이 없어졌다.
“그 늪을 봐야 알 것 같은데요?”
태인이 임정과 서규태를 바라보며 말했다.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 형한테 알려줘야 되겠죠? 미키. 그 늪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태인이 물었다.
“카르마 클랜에는 클랜 마스터가 기거하는 독립된 건물이 있는데 늪이 있는 곳은 그 건물 뒤라고 했어요. 사람들 눈을 피해서 그 늪에 가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는 말도 했고요.”
“카르마 클랜이 그동안 캐츠 아이 스톤을 모아온 걸 보면 훨씬 더 많은,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들이 있었을 거예요. 다른 늪들은 어디에 있는 거죠? 그리고 그 헌터들은 어떻게 된 거죠?”
임정이 서규태에게 물었다. 클랜원들은 머리가 깨질 지경이었다. 얘기를 할수록 답은 보이지 않았고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들기만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
아키라는 자신의 무기 콜렉션을 보여주었다. 그거야말로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익스트림 헌터 매장에서 언제든지 자기가 원하는 무기를 들고 나올 수도 있고, 자기가 사냥한 괴수의 사체를 가져다 주고 무기 마스터에게 그걸로 무기를 만들어 달라고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 두 사람에게 자기가 가진 익스트림 헌터 무기들을 보여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아키라는 지치지 않고 자랑을 하면서 자기가 각각의 무기로 어떤 괴수들을 잡았는지 설명을 했다. 이익헌은 아키라가 하는 얘기를 참을성 있게 들었다. 그러면서 이익헌은 그의 무기 창고가, 그가 가식적인 모습을 완전히 내려놓고 진심으로 평온을 누리는 유일한 장소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한 사람은 이익헌만이 아니었다. 지우는 아키라와 아키라의 무기창고를 보면서 그곳이 아키라의 퀘렌시아라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아키라는 쉬면서 재충전을 하고, 이곳을 나갈 때는 다시 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제가 뭘 보여드려야 하는 건지 정확하게 알 수 있으면 일이 훨씬 쉬울 것 같은데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기는 합니다. 우리가 익스트림 헌터 길드에서 무기와 장비들을 제공받으면 그걸 실제로 우리의 레이드를 위해서 쓸 거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나요?”
아키라가 지우에게 물었다. 둘 중에 연장자는 이익헌이었지만 그는 결정권을 손에 쥔 사람이 지우라고 생각했다. 지우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전부터 지우는 말이 없어졌다. 익헌은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카르마 클랜의 내부 어딘가에서 굉장히 신경쓰이는 차크라의 기운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