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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부. 카르마 클랜의 헌터들
일본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아서 그 곳에도 늪의 입장은 열 명의 제한을 받았다. 아키라는 지우와 익헌이 함께 들어갈 테니 자기들은 한 두 명 정도만 들어가도 되겠다고 말했다.
웃자고 하는 말인지 진지하게 하는 말인지 몰라서 지우가 멀뚱하게 바라보는 동안 아키라는 손을 내두르면서 농담이었다고 말했다.
아키라라는 남자는 지우가 그동안 봐 왔던 사람들과는 묘하게 다른 사람이었다. 그동안에는 누구를 만나건 간에, 아, 이 사람은 이런 부류구나 라고 하면서 자기가 알고 있던 사람들의 그룹에 끼워넣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아키라에게서는 그런 보편적인 특징들이 잡히지 않았다. 원래의 성격과, 그가 그 자리에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바꿔야 했던 성격이 같이 나타나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아키라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했지만 큰 규모의 클랜을 이끌기 위해서 자주 조장들을 소집해서 그들의 얘기를 들어야 했다. 자리는 사람을 만들 뿐만 아니라 사람의 성격도 변화시켰다. 아키라는 그런 식으로 이중적인 성격을 갖게 된 것 같았다.
나이는 지우와 익헌의 중간쯤 될 듯했다. 지우는 아키라가 태인보다 서너 살 쯤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강한 성격을 타고 태어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보다는, 유약한 성격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주위의 환경에 의해서 연단되면서 독하게 변한 케이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숙소를 안내받고 싶은데. 카르마 클랜은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하군요. 혹시 크게 폐가 되는 부탁이 아니라면 저희도 카르마 클랜 숙소를 같이 이용해 볼 수 있을까요?”
지우가 웃음을 지으며 화사하게 물었는데도 그 요구는 단칼에 거절당했다.
“아뇨. 숙소가 필요하실 것 같아서 최고급 호텔에 예약을 해 두었습니다.”
아키라가 말했다.
“그렇군요.”
이익헌은 적당한 선에서 말을 끊었다. 이런 사람을 요리하는 법은 따로 있었다. 미리 부탁을 하지 않고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가면 아키라도 어쩔 수 없이 허락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이익헌은 지우에게 적당히 신호를 보냈다.
“일본에는 주로 어떤 괴수들이 많이 나타납니까? 일본에는 헌터들이 꽤 안정적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에는 상급 헌터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 걸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이익헌이 물었다. 알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 틀린 정보가 있으면 아키라가 그것을 고쳐가면서 얘기를 이어나갈 테니 우선 아는 척이나 해 보는 중이었다.
“미국에 비하면. 예.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헌터 아카데미의 수준이 높고 선배 헌터들이 후진 양성에 힘을 쏟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치안대가 맡고 있는 일을 일본에서는 저희 클랜이 거의 맡고 있습니다. 오픈일이 임박한 늪은 무슨 일이 있어도 책임을 지고 공략을 하죠. 아무리 많은 희생이 따르더라도 말입니다. 헌터는 피해를 감당할 수 있지만 일반인이 감당하기에는 그게 너무 크죠.”
“그런가요? 그런 방향에서 접근한다니 굉장히 특이하군요. 요즘에는 헌터들이 그런 생각을 안 하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죠. 관심도 없고요."
아키라가 말했다.
"그럼 치안대가 편하겠군요.”
이익헌이 말했다. 그게 궁금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 방향, 저 방향에서 아키라에게 공을 던져보는 것 뿐이었다. 아키라가 어떤 부분에 반응하는지 알기에는 아직 아키라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했기에 그런 식으로 넓게 그물을 던지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치안대가 편한지 어쩐지는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선량한 사람들이 불의의 피해를 당하지 않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뿐입니다.”
아키라가 말했다.
“소속된 헌터의 수가 굉장한데. 헌터 테스트에서 헌터로 각성한 사람들은 카르마 클랜에 들어가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는 건가보군요.”
이익헌이 물었다.
“그 사람들이 어떤 꿈을 갖는지는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게 진짜로 궁금해서 물은 건 아니라고 확 쏘아주고 싶은 것을 참으면서 이익헌은 입을 다물었다.
“몇 급 늪으로 정하는 게 좋겠습니까? 보고 싶은 게 어떤 건지 말씀하시면 적당한 늪을 정하겠습니다. 거기에 맞는 공격대도 구성을 하고요.”
아키라가 말했다.
“카르마 클랜을 볼 기회가 앞으로 언제 또 생길지 모르니까 웬만하면 지금 모든 걸 볼 수 있으면 좋겠죠.”
지우가 말했다. 아키라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기다리고 계시면 준비를 해 두겠습니다. 30분 이내로 출동하게 될 겁니다.”
“좋습니다.”
아키라가 나가고 나서 지우와 이익헌은 다시 말이 없어졌다. 카르마 클랜의 클랜 마스터라고 하는 아키라의 집무실은 좋은 제품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클랜 마스터의 성격을 유추하게 할 수 있는 특색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기호는 전혀 드러내지 않은 채 다른 사람에게 일체의 인테리어를 맡기고 자기는 그대로 몸만 들어와 앉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키라에 대해서는 아직 뭐라고 단정을 짓기가 어려웠다. 그와 몇 마디 말을 나누기는 했지만 아키라는 이런 사람이다 라고 판단을 할 만한 근거가 지우와 익헌에게 전혀 마련이 되어 있지 않았다.
문이 열리자 지우는 허리를 세웠다. 벌써 준비가 다 된 건가 하고 자기들도 출동 준비를 할 생각이었지만 들어온 사람은 아키라가 아니었다.
세진보다도 한참 어려보이는 소녀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채 다가왔다. 손에는 쟁반이 들려 있었다. 이익헌은 소녀의 모습을 가늠하듯이 바라보았다.
긴 머리가 단정하게 찰랑거렸다. 이익헌과 지우는 어린 아이가 혹사당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선을 돌렸다. 레이카는 두 사람이 자신을 훔쳐보듯이 눈길을 줄 거라고 생각했다가 일순간 당황했다. 다과가 잔뜩 준비된 쟁반을 내려놓으면서 레이카는 지우의 손에 가볍게 접촉하려고 했다. 그러나 지우는 레이카의 수작이 훤하다는 듯이 자기가 먼저 손을 치웠다.
이익헌은 다리를 꼬고 앉은 채 두 사람이 하는 양을 바라보았다. 차에는 입도 대지 않았다. 레이카는 사양하지 말아달라고 말했지만 흔쾌히, 격하게, 아주 적극적으로 사양할 생각이었다.
희생자의 지위를 탐하는 간교한 실력자.
그것이 이익헌이 레이카에 대해 내린 판단이었다.
레이카를 만난 사람이 이익헌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레이카는 그 시간을 쉽게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이익헌이었다. 자신의 것이 아닌 얼굴을 만들기 위해서 타인을 관찰하는 것이 일이 되어 버린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이익헌은 자신의 얼굴을 만들어내는 것뿐만 아니라 미하일이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가는 것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지도를 해 주는 입장이었다.
말귀를 더럽게 못 알아듣는 학생을 데리고 있는 선생은 꼭 불운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 방면에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어떤 면에서 진입에 어려움을 느끼는지 이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미하일은 최고의 학생이었다. 이익헌이 하는 말을 신기할 정도로 못 알아들었던 것이다. 미하일은 차크라를 사용해 자신의 얼굴을 바꾸고 싶어 했으면서도 이익헌이 알려주는 것을 터득하지는 못했고 거기에서 새롭게 자신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중이었다. 거의 우격다짐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거친 방법이었다.
1부터 십만까지 차곡 차곡 더하라는 과제를 받고 곱셈에 대한 이해를 포기한 채 하나씩 십 만까지 더 해 가고 있는 게 지금 미하일이 선택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덧셈의 마력이 그렇듯이, 시간이 무진장 많이 필요하다는 게 문제일 뿐 미하일에게도 발전은 있었다.
이익헌은 레이카를 보면서 미하일을 떠올렸다. 레이카를 보면서 갑자기 미하일이 떠오른 이유를, 처음에는 이익헌도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익헌은 한참만에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미하일은 자기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모습으로 행동했다. 요리사로 변했다고 해서 요리사가 할만한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10대 불량 청소년으로 변했다고 해서 자신의 걸음걸이를 바꿔보려고 시도하지도 않았다.
레이카를 주의깊게 바라보던 이익헌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레이카는 갓난 아기의 얼굴을 한 채로 저벅저벅 걷는 미하일 같았다. 레이카를 이루고 있는 것은 기가 막힌 최상품이었고, 그 점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었지만 레이카의 동작은 레이카의 어린 모습을 지지해 주지 않고 있었다.
닳고 닳은 여자가 숫처녀의 역할을 탐하면서 얼굴에 교묘하게 화장을 한 것처럼, 레이카는 자신의 것이 아닌 역할을 맡아 하고 있었다.
이익헌은 스마트폰을 꺼내서 뭔가를 확인하는 것처럼 하면서 주머니에서 또 무언가를 꺼냈다. 그 부산스런 동작에 지우가 눈을 찌푸릴 정도였지만 이익헌은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으이쿠! 이런.”
이익헌의 손에서 물건들이 떨어졌다. 그것은 뜨거운 차가 담긴 쟁반 위로 향했고 레이카는 뜻하지 않은 상황에 벌떡 일어섰다. 표면적으로 일어난 일은 그것이 전부였다.
이익헌이 실수를 했고 레이카가 일어섰다. 레이카의 스커트 아랫자락에 차가 쏟아졌지만 레이카는 자기가 사과를 했다.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서 생긴 일이라고 하면서 잠시만 실례를 하겠다며 나갔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연발하면서 연신 고개를 숙이면서 크게 죄를 지은 것처럼 굴었다. 잘못하지도 않은 사람이 사과하는 모습을 보는 건 지우에게 불편한 일이었지만 이익헌은 별로 무감동한 모습이었다.
지우는 이익헌을 바라보았다. 왜 조심하지 않고 그러냐고 책망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지우도 레이카의 혼란을 읽었다.
쟁반 위로 떨어지는 것을 충분히 받아낼 수 있도록 몸이 그렇게 숙달된 사람이, 지금 자신은 다른 역할을 맡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몸에 익은 행동을 주저하다가 까다로운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레이카는 찻잔이 쏟아질 것을 예상하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 일을 당했지만 정말로 아무 것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레이카의 손가락과 무릎, 팔꿈치가 먼저 들썩거렸다. 그러나 지금은 자기들이 나설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대로 움직임을 멈춘 것이다.
뜨거운 찻물이 쏟아질 때, 지우는 레이카가 미약한 차크라를 끌어내 자신의 다리를 보호하는 것을 느꼈다. 조심스러웠지만 분명한, 차크라의 흐름이었다.
레이카가 나간 후로 이익헌과 지우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레이카를 이용해서 뭘 하려고 했던 건지는 이해 못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키라가 그들을 위해서 짓궂은 일을 계획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슬그머니 기분이 나빠지려고 했다.
“하긴. 우리도 좋은 의도로 온 건 아니니까 억울하다고 할 건 아니겠죠.”
이익헌이 말했다.
***
미키 위도의 급한 전화에 서규태는 잠에서 깨어났다. 미키는 서규태의 단잠을 깨웠다는 것을 알고도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그런 미키의 얼굴을 보고 서규태는 미키가 특종에 버금가는 소식을 알아낸 거라고 생각했다.
“잠을 깨우고도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는 걸 보니 대단한 걸 건졌나보군요. 무슨 일이예요, 미키? 뭐예요?”
서규태가 묻자 미키는 자신의 책상 앞에 여러 장의 종이를 두고 거기에 펜으로 동그라미를 치고 화살표를 그려가면서 서규태에게 얘기를 시작했다. 안경을 낀 채, 서규태를 제대로 볼 틈도 없이 각각의 사건의 전후 관계를 정리하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일단은 내가 먼저 정리를 해 볼까 했는데 써전이랑 같이 얘기를 하면서 정리하는 게 더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내 전문 영역이 아닌 것들도 있어서요. 다른 사람들은 자나요? 괜찮다면 화상 회의를 해요.”
“자더라도 깨워야죠.”
서규태는 밖으로 나가자마자 방 문을 다 두드리고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깨웠다. 그리고 거실에서 큰 화면으로 미키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세팅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