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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 괴수의 차크라
“레오니드의 차크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니까 우리는 최대한 빨리 끝내야 돼요. 이건 차크라가 보통 소모되는 일이 아니니까요.”
지우가 말하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리가 놔지기는 했지만 괴수의 능력이 처음으로 나타난 레오니드가 만든 다리를 믿고 건너는 것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미하일은 이럴 때 친구에게 믿음을 보이는 사람은 자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심호흡을 했다. 그러는 동안 다리 저쪽에서 쿵쿵쿵쿵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보니 지우가 어느새 아이온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휴, 저 형은 진짜!’
그러다가는 꼴찌를 면하면 다행이겠다 싶을 정도로 모두가 한꺼번에 다리 위로 달려갔다.
레오니드는 잘 버티고 있었다. 지우와 서규태가 먼저 아이온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그 뒤는 야로슬라프가 맡았다. 아이온의 몸에 올라탈 수는 없었다. 그렇게 했다가는 갑옷과 함께 몸이 같이 녹아버릴 게 뻔했다.
“씹, 이건 진짜, 완전 불신지옥이냐, 이거?”
태인이 소리를 질렀다. 뜨거워서 미칠 것 같았고, 다른 사람들도 그 대단한 열기를 맞서면서 싸우고 있는 걸 텐데 모두가 묵묵히 딜을 가하기만 하고 있으니 자기만 나서서 우는 소리를 할 수도 없었다.
“레오니드. 다리를 아이온한테 조금만 더 붙여줄 수 있어?”
미하일이 소리쳤다. 레오니드의 다리가 아이온쪽으로 조금씩 옮겨졌다.
레오니드의 얼굴에서는 땀이 비오듯이 쏟아졌다. 갑옷 안의 몸을 타고 땀이 줄줄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레오니드 뿐만 아니라 모든 헌터들이 마찬가지였다. 얼굴은 숯불처럼 붉어져 있었고 무기를 쥔 손에는 화상을 입었다. 무기는 아이온의 열기를 흡수했고 그것을 헌터들에게 전했다.
화상을 입은 손에 힘을 주어 검을 잡고 휘두르다보니 손은 너덜너덜해졌고 끔찍한 통증이 밀려들었지만, 레오니드가 힘겹게 만들어주고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아무도 자신의 고통을 돌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때 아이온이 쇳물 아래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아이온은 자기가 이 싸움에서 살아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 같았다. 정보창에 새겨진 괴수의 체력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이온이 쇳물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나면 영영 기회를 놓칠지 모른다는 생각이 강현을 조급하게 했다.
강현은 네메시스에 잔뜩 차크라를 싣고 아이온을 겨누었다. 그러나 강현이 예상했던 속도보다 빠르게 밑으로 내려가는 아이온을 찌르려다가 강현의 몸이 아래로 기우뚱했다.
끔찍한 순간이었다. 강현은 그 쇳물이 이제 곧 저를 삼키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몸이 떠올려졌을 때 강현은 제 눈 앞으로 떨어지는 지우를 보았다. 지우는 강현의 어깨를 잡아 뒤로 밀면서 자신은 아이온의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안 돼, 형!”
강현이 비명을 질렀다.
지우는 온몸 가득 차크라를 둘렀지만 아이온의 위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레오니드야말로 그 광경을 보고 놀랐고 레오니드가 동요하는 순간 나무 다리에 균열이 생겼다.
“정신차려, 레오니드!!”
지우의 목소리가 맵을 채웠다. 지우는 아이온을 계속해서 공격했다.
흔들리는 다리 위에서 헌터들은 위기를 맞았다. 서규태와 임정은 지우를 구출하려고 했고 이익헌과 태인은 다른 사람들을 정신 차리게 하면서 레오니드가 있는 쪽으로 달려가게 했다.
서규태와 임정의 자세는 너무 위태로워 보였다. 지우는, 자기가 그 손을 잡으면 그들까지 위험해지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온의 몸은 등까지 쇳물로 잠기고 있었고, 지우는 제 힘으로 도약해서 뛰어 오르려고 했다. 그러나 끓는 쇳물에서 몸을 지키지 위해 차크라를 두른 채 도약까지 시도하는 것은 지우에게도 무리가 있었다.
다리는 더 이상 버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써전님. 이 사람을 데리고 돌아가세요. 레오니드는 더 이상 못 버텨요!”
지우는 임정의 시선을 외면한 채 서규태에게 외쳤다. 서규태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고통스런 표정을 짓고 임정을 안았다. 임정이 고함을 쳤지만 서규태는 지우의 뜻을 이루어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지우는 다시 도약을 시도했다. 나무 다리는 더 이상 힘을 얻지 못하고 쇳물 호수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레오니드의 모습이 보였다.
“형!”
투구 속 그의 얼굴이 울고 있을 거라는 것을 알았지만 지우는 그를 격려해주고 싶었다. 쇳물이 보글거리면서 솟아올랐다.
그때 무언가가 호수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사람은 강현이었다.
“형, 눈이 내려요. 레오니드 형. 다시 해 봐요. 다시 한 번만 힘 내 봐요. 눈이 내려요. 야나가 하고 있다고요. 레오니드 형. 포기하지 말고 한 번만 더 해 봐요.”
레오니드는 벌떡 일어섰다. 차크라가 폭주하고 저 자신이 사라져도 지우만큼은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 이유를 그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레오니드는 더 이상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야나에게서 배운 건지도 몰랐다. 생각하지 않고 달리기. 야나는 언제나 너무 빠른 속도로 달렸기 때문에 도중에 생각을 하면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낳았다. 내가 가는 길이 잘못된 거라면 어쩌나 하는 걱정 같은 것은 야나에게 없었다. 야나는 그냥 달릴 뿐이었다.
'그래. 나도 그냥 달리는 거다.'
레오니드는 그 후에 일어날 일은 더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레오니드의 팔에서 마른 나뭇가지가 순식간에 뻗어나갔고, 지우는 그것을 잡고 그 위를 달렸다. 생각보다 너무 간단해서 피차간에 전부 민망해질 지경이었다. 이렇게 쉽게 할 수 있었으면서 힘을 뭘 그렇게 아꼈던 거냐고 한 대를 툭 때려주고 싶기까지 했다.
지우가 쇳물 호수에서 밖으로 나오자마자 임정이 지우에게 달려가 지우에게 안겼다. 지우는 레오니드에게 다가가 레오니드의 어깨를 쳐 주었다.
“한 건 할 거라는 거 알았어.”
“내가 구해 놓은 녀석이죠.”
이익헌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한 건 한 녀석이 또 있어.”
태인이 지우에게 말했다. 태인이 가리킨 곳에 야나가 있었다. 야나는 문을 모두 열어 놓은 채 그들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직은 야나에 오를 때가 아니었다.
“아이온. 거의 다 잡은 건데.”
강현이 아쉬운 듯이 말했다. 아쉬움은 모두에게 남았다. 그래도 방법은 없었다. 쇳물을 뚫고 들어가서 아이온을 끌고 나올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야나가 폭설을 내리게 해도 아이온을 끌어내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었다.
“그래도 야나가 우리한테 마음을 완전히 연 것 같아서 다행이예요.”
서규태가 말했다. 서규태는 야나의 본넷을 쓰다듬어 주었다. 눈은 호수 위로만 떨어졌다.
미하일이 호수 위로 떨어지는 커다란 눈송이를 손으로 받으려다가 기겁을 하고 손을 치웠다. 순식간에 동상이라도 걸릴 것처럼 손에는 아직도 얼얼한 감각이 남아 있었다.
“이게 뭐죠? 그냥 눈송이가 아닌 것 같은데요?”
미하일의 말에 태인이 감응기를 꺼냈다.
“뭐죠? 눈송이 온도가 영하 140도예요.”
태인이 감응기에 나타난 정보를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드라이 아이스 같은 건가?”
임정이 수면으로 떨어지는 눈송이를 보면서 말했다.
“지금 이런 게 떨어진다고 해도 쇳물의 온도를 낮추지는 못할 거야.”
이익헌이 말하자 하늘에서 떨어지던 눈송이들이 공중에서 주춤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야. 아니야. 야나. 아주 잘 하고 있어. 쇳물의 온도를 완전히 낮출 필요는 없어. 다시 아이온이 나오게 하기만 하면 돼.”
세진이 말하자 눈송이가 다시 펑펑 떨어졌다.
송이 송이 날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눈보라가 되어 호수로 쏟아졌다. 헌터들은 이제 한 곳에 모여서 정보창에 남은 아이온의 체력을 보면서 계산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온이 적어도 한 번은 더 튀어나올 거예요. 그러면 레오니드. 한 번 더 다리를 만들어. 그러면 우리가 거기로 가서 한꺼번에 아이온을 공격하는 거야. 5분도 안 걸릴 겁니다.”
이익헌이 말했다. 이쪽 저쪽을 보면서 말을 하느라 말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이번에는 벽까지 만들 필요는 없겠어. 봐. 쇳물이 올라오지 않아. 아까 같았으면 쇳물이 벌써 몇 번은 치솟아 올라왔을 텐데. 야나의 눈송이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거야.”
야로슬라프가 말했다.
“나 진짜. 야나 너무 좋아!”
태인이 소리쳤다. 그 말을 야나가 들었는지, 눈보라 같던 것이 이제는 산사태가 난 것처럼 불량스럽게 쏟아졌다. 아예 삽으로 퍼서 떨어뜨리는 것처럼 엄청난 양이었다.
“저기에 맞으면 죽을 수도 있겠다.”
서규태가 말하자 눈송이가 다시 또 진정세에 접어 들었다.
“우리가 하는 말을 다 아는 것 같아요, 야나는. 야나한테는 계속 잘 한다고 해 줘야 돼요. 야나는 우리가 야나한테 뭘 어느 정도로 원하는지 몰라서 계속 눈치를 보는 것 같아요. 야나. 지금은 계속 퍼부어도 돼. 그러다가 아이온이 나오면 그때는 우리가 아이온한테 가야 하니까 멈춰주면 좋겠고. 여기에 맞는다고 죽지는 않겠지만 동상에 걸릴 수는 있을 것 같거든? 우리도 갑옷을 입었고 차크라를 쓰고 있으니까 내키지 않으면 계속 퍼부어도 되긴 해.”
세진이 말하자 야나는 완전히 이해했다는 듯이 헤드 라이트를 깜박였다. 쇳물은 더 이상 위력적이지 않았다. 정말로 눈송이의 정체가 드라이 아이스인지 뭔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극단적으로 온도가 낮은 녀석들이 계속해서 호수로 내려앉자 쇳물 호수는 기죽은 아이처럼 잠잠해졌다.
그리고 바로 그때 아이온이 수면으로 나왔다.
“레오니드! 지금이야.”
야로슬라프가 외치자 레오니드가 다리를 만들었다. 아이온은 달아날 틈을 찾지 못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이온이 헌터들에게 공격을 당하는 동안에도 쇳물은 아이온을 지켜주지 못했다.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요!”
레오니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로슬라프가 그런 레오니드를 향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레오니드도 정보창을 바라보았다.
괴수의 체력이 0이었다.
‘해냈구나!’
레오니드가 순간적으로 나무 다리를 유지하던 차크라를 빼려다가 정신을 차렸다. 괴수는 사라졌지만 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러프 스톤이예요.”
이익헌이 말했다. 러프 스톤은 아이온의 머리에서 나왔다. 아이온의 사체가 쇳물 속으로 가라앉기 전에 지우가 러프 스톤을 낚아챘다.
“레오니드가 쓰러지기 전에 돌아가죠.”
지우의 말에 모두가 우당탕탕, 다리를 밟으면서 레오니드에게 돌아갔다. 달려오는 헌터들에게 잘 했다고 손뼉이라도 쳐주려는 것처럼 야나의 헤드라이트가 깜박거렸다.
"잘 했어. 레오니드. 해 낼 수 있을 줄 알았어!"
미하일이 격정적으로 레오니드를 안아주면서 말했다. 레오니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미하일의 얼굴을 밀어내며 격한 축하를 사양했다.
"굉장한데, 레오니드? 그게 네가 가진 진짜 힘인가 보다. 응?"
이익헌도 레오니드의 팔을 퍽, 쳐주면서 축하해 주었다.
"어이. 야로. 미하일. 너희도 놀고 있지만 말고 꺼내서 보여줘봐. 너희도 뭔가 있을 것 아니야. 어?"
태인이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야로슬라프와 미하일은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정말 자기들한테도 그런 힘이 숨겨져 있을까 하고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야나는 어서들 타라는 듯이 문을 활짝 활짝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이 급한지 와이퍼까지 팔랑거리고 헤드라이트도 깜빡거렸다. 야나가 내리게 했던 눈송이가 멈추자 쇳물의 열기가 다시 맵을 감싸기 시작했다.
"야나. 진짜 최고였어!"
강현과 세진이 야나에게 달려갔다.
"일단은 나가자고요. 바디 펌에 연락을 해서 맵이 사라지기 전에 이 쇳물을 퍼나를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할 거고요."
이익헌이 말했다.
모두들 괴성을 지르고 환호하면서 야나에게 올라탔고 야나는 다른 사람들만큼이나 신이 나서 늪을 나갔다.
8부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