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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 괴수의 차크라
하긴. 그런다고 해 봤자 자기들이 다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차크라는 장식용으로 두르고 다니는 게 아니었다. 충돌하는 순간 차크라로 몸 하나 보호하는 것쯤이야 클랜 A의 클랜원들에게는 일도 아니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더이상 걱정할 것이 없었다.
“좋아. 까짓것. 나를 어디로든 데려가버렷!”
태인이 소리쳤다.
다시는, 다른 차는 타지 않으리라는 각오가 모두의 얼굴에 이미 드러나 버렸다.
“차크라 주입에 실패하면 지우 너 안 볼 거야. 야나는 우리 펫이야. 처음 봤을 때 알아 봤다고.”
태인이 말했다. 지우는 부담감을 가진 채 야나에게 다가갔다.
“주유는 계속 지우씨가 하게 되는 거예요?”
임정이 말했다.
“그러게요. 어떤 의미로 그렇게 되겠네요. 야나는 차크라를 먹고 달리는 차가 되는 거군요.”
야로슬라프가 말했다. 모두가 엄청난 기대감을 가지고 지우를 둘러쌌다. 지우가 느끼는 부담감은 엄청났다.
지우가 서규태를 바라보았다.
“써전님. 이런 일은 없던 거잖아요. 그렇죠? 공략당한 괴수가 다시 살아나는 일은……. 그렇죠?”
“공략당한 괴수를 다른 괴수가 살리려고 시도한 일이라면. 단연코 없습니다.”
써전이 말했다. 지우가 발끈하면서 자기는 괴수가 아니라고 말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하는 말이었다.
모두가 웃었다. 그런 말을 해 놓고 웃는 사람들이라니.
“지우씨. 너무 부담은 갖지 말고 야나를 살려놓기만 해요.”
임정이 파이팅을 외치며 말했다.
“그래. 부담가질 필요는 전혀 없어. 그냥 상상만 해 봐. 우리한테 야나가 있으면 얼마나 멋질지. 야나가 아까 시속 천 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달리는 거 너도 봤지? 야나는 괴수잖아. 어쩌면 야나는 늪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몰라. 우리 전부를 태우고. 그러면 맵이 아무리 넓어도 걱정이 없겠지.”
태인이 말했다.
“그건 진짜 굉장하겠는데? 야나를 타고 맵을 돌아다닌다뇨. 형. 형의 실력을 보여줘요!”
야로슬라프까지 가세했다.
"사체 운반은 아무 일도 아니겠다. 야나가 있으면."
강현이 말하자 태인이, '맞아. 그것도 있지!' 라면서 강현과 하이 파이브까지 했다. 그들 사이에서는 이미 그게 다 된 일인 것 같았다. 지우는 점점 긴장감을 느꼈다.
“다들 먼저 올라가 있어요. 끝나면 말해줄게요.”
그렇게 말을 해 봤자였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어느때보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지우와 야나를 바라보았다.
“이제 뭐라도 좀 해 봐요. 지우씨.”
그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이익헌까지 나서서 지우에게 말을 했다. 임정은 지우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는 것을 보고 지우가 필요 이상의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제 이 사람들을 데리고 잠시 사라져줘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임정이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우리는 올라가 있죠. 이렇게 모두 서서 보고 있으면 될 일도 안 되겠어요."
임정이 말했다. 사람들은 더 고집을 부릴 생각은 하지 않고 지우에게 시간을 주려고 움직였다.
그때 지우가 웃음을 지었다. 아무도 몰랐지만 지우의 차크라가 야나에게 주입된 후였다. 야나가 달릴 준비를 마쳤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사람은 채준형이었다.
“세상에! 정말로 이게 다시 살아날 줄은 몰랐어요! 세상에!”
채준형은 광분한 사람처럼 야나에게 다가가 차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문이 열리지 않았다.
“왜요. 안 열려요? 문을 어떻게 만들었는데 그래요?”
이익헌이 같이 시도를 했지만 역시 열리지 않았다.
“문이 안 열린다고요? 뭐예요, 마스터님. 그 일은 완전히 마쳐놓은 건 줄 알았는데! 문이 안 열린다면 괜한 짓을 한 거잖아요.”
지우는 문도 안 열리는 차에 자기가 무슨 뻘짓을 한 건가 하면서 문을 열었다.
문이 열렸다.
너무 쉽고 너무 간단하게.
당신의 손길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뭐야, 이거. 지우 형만 열 수 있는 거야?”
강현이 문을 열자 열렸다.
“어라! 네가 지우 형 급이야? 야나야.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이 자식 기특한데?”
강현이 야나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태인이 달려와서 강현이 열었던 문을 닫았다. 문은 태인이 열렸을 때도 열렸다. 이제 한 사람씩 테스트를 받듯이 다가와서 문을 열어보았다. 이익헌을 제외한 모든 헌터들이 야나의 문을 열 수 있었다. 레오니드와 미하일도 마찬가지였다.
“나쁜 사람이 열면 안 열리나봐요.”
세진이 말했다. 덕분에 이익헌은 한층 더 기분이 나빠졌다.
“야나를 공략할 때 같이 있었던 헌터들한테만 열리는 것 같은데요? 문이 열린다는 건 야나의 항복 표시 같은 건가 봐요. 부사장님은 그 자리에 없었잖아요. 그래서 야나가 다르게 대우하는 것 같습니다.”
서규태가 말했다.
“부사장님이 같이 탈 수 없다면 번거로운 일이 많을 텐데요?”
그렇게 말하면서 야로슬라프가 문을 열어주고 이익헌에게 안에 타보라고 말했다. 이익헌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도 자존심 있는 남자였다. 열리지도 않는 차에 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익헌이 그런 생각을 하고 버틸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태인이 이익헌을 뒤에서 밀었다. 그리고 야나의 안에 구겨넣는 데에 성공했다.
내친 김에 태인은 채준형의 몸도 구겨 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야나는 냉정했다. 이익헌까지는 어떻게든 받아들여주겠지만 채준형은 안 된다는 듯했다.
“아니. 진짜 냉정하네. 내가 꼭 타봐야겠다고 했어? 내가 한 번만 태워달라고 사정했어? 내가 뭘 어쨌다고 이렇게 야박하게 굴어? 아니. 진짜. 나 요 몇 달 동안 화내본 적 없는 사람인데. 야! 야나! 이렇게 나올 거였으면 말을 해 주던가. 그러면 애초에 너를 고쳐주지도 않았어!”
채준형은 야나에게 멱살잡이라도 할 듯이 달려들었다. 차체를 뻥뻥 차려는 채준형을, 클랜 A의 헌터들이 잡아 뜯어 말렸다. 감히 누가 내 차에 그런 짓을 하냐는 듯이 정색을 하고 달려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채준형도 움찔했다.
"헌터는 되고 일반인은 안 된다는 기준인 건가? 마스터님을 거부할 이유는 그것밖에 없는 것 같은데?"
지우가 말하자 태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인의 탑승은 거절한다. 자기를 공략했던 클랜원이 아니면 문을 열 수 없다. 야나로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겠네."
태인이 말했다.
클랜원들은 어느새 다시 똘똘 뭉쳐서, 내친 김에 야나가 늪에 들어갈 수 있는지 그것까지 확인을 하자며 떠났다. 채준형에게 인사를 할 틈도 없었다. 그들도 그렇게 인사도 없이 떠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어딘가로 가 보자고 클랜 A의 의견이 모아지는 순간, 야나는 출발해버렸다.
클랜 A는 서서히 그 사실을 깨달아가게 되었다. 클랜원이 전부 타고, 목적지에 의견 일치가 모아지면 야나는 달렸다.
승객 전원 탑승. 목적지 결정. 야나를 움직이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이었다.
야나가 늪 아래로 들어갈 수 있을지 어떨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사람들이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태운 사람들이 모두 헌터라면 야나가 늪 아래로 들어가는데 문제가 될 게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정말 야나가 들어갈 수 있을지 확신을 갖지는 못했다. 하지만 야나는 의심을 일거에 불식시켰다.
누군가 나서서 늪을 덮고 있는 리드를 치워주기만 하면 야나는 클랜 A를 태우고 어떤 늪에든지 뛰어들었다. 늪에서 나오는 것도 신속했다.
처음에는 전부를 태워야 나오는 건 줄 알고 모두가 탑승하기를 기다리기도 했지만, 가끔 경험치 몰아주기를 하느라고 한 두명을 남겨두고 나올 때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때는 한 두 명을 남겨놓고 나오기도 했다.
야나는 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는 게 분명했다. 처음에는 야나를 괴수라고 여기고 거리를 두었던 클랜원들도 나중에는 야나를 완전히 받아들였다.
야나도 마찬가지였다. 점점 헌터들에게 자신의 영역을 내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익헌에 대해 거리를 두는 것은 여전했다. 익헌은 자기도 똑같이 야나를 차별해 주고 싶었지만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은 그도 이미 알고 있었다. 야나를 본 사람이라면 한숨을 쉴 수는 있어도 눈을 흘길 수는 없었다.
야나는 늪 아래로 같이 들어가기는 해도 헌터들의 싸움에 관여하지는 않았다. 야나에게 특별한 공격 방법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클랜 A가 야나를 공략하러 야나의 늪으로 들어갔을 때도 야나는 계속해서 트랙을 돌기만 했었다. 어느 순간 방향을 바꿔서 헌터들을 향해 돌진해 올 수도 있었겠지만 야나보다 훨씬 큰 괴수들에게 그게 어떤 위력을 가질 수 있을지 그것도 미지수였다. 거침없는 속도로 날아오는 파리를 보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괴수들도 야나를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 같았다.
야나가 생긴 후 클랜 A는 개별적인 레이드를 거의 하지 않았다. 서규태가 공략의 필요성을 제기했던 여러 고난도 늪에 대한 공략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클랜 A가 야나를 차고에 두고 숙소로 돌아와 다음 공략을 위해서 회의를 하던 중이었다.
“야나는 기계 괴수잖아. 우리가 다른 괴수들이랑 싸울 때는 우리를 돕지만 우리가 기계 괴수들이랑 싸울 때는 기계 괴수를 돕는 게 아닐까?”
이익헌이 말했다.
“야나는 우리가 다른 괴수들이랑 싸울 때도 우리를 돕지 않아요.”
세진이 자신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세진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직접 괴수를 상대하느라고, 맵을 세진만큼 빨빨 거리고 돌아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세진은 다른 사람들이 괴수를 상대해서 싸우는 동안 맵 여기저기에 새로운 함정과 덫을 설치하고 돌아다니느라고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그럴 때 야나의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야나의 문을 열려고 하면 야나는 그냥 도망쳐버렸다. 세진이 야나의 행적을 폭로하자 다른 헌터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세진이라서 그런 거 아닐까? 야나는 세진이 때문에 공략당한 거나 마찬가진데 세진이한테 감정이 좋을 리가 없지.”
강현이 말했다.
세진은 다른 헌터들이 야나를 의인화하거나 야나에게 감정이 있다는 듯이 말을 할 때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진도 곧 그들이 생각하는대로 생각하게 되었다. 야나를 보면 정말 감정이 있는 것 같았던 것이다.
"기계 괴수들이라고 해서 서로를 동료라고 생각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러시아에서 괴수가 서식하는 늪에 다른 괴수를 던져 넣은 적이 있었잖아요. 안에 있던 괴수는 다른 괴수가 방문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침입으로 간주하죠. 서로 공격하고 한쪽이 죽어야 끝나는 싸움이 시작되는 거예요."
지우가 말했다. 이익헌도 곧 그 말에 수긍했다.
“이제 그 늪을 공략할 때가 된 것 같은데요.”
서규태가 말했을 때 클랜원들은 서규태가 말하는 게 어떤 늪인지 알아들었다. 아직 그들이 공략을 시도하지 못한 늪 중에 용광로가 있는 늪이 있었다. 성장하지 않는 1급 늪이어서 오픈일이 예정된 것도 아니고 급할 것도 없었다.
일단 성장을 시작한다고 하면 어마어마한 위험성을 내포한 것은 분명했기에 한 번 가서 보기만 했을 뿐 아직 공략방법을 찾지 못해서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서규태가 지금 다시 그 늪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지금이라고 해서 다른 방법이 있을까 하고 의구심을 갖는 헌터들에게 서규태가 입을 열었다.
“그 맵은 둘레의 일부를 제외하고, 끓는 쇳물로 채워져있죠. 지연씨가 만든 감응기로 확인했을 때 쇳물의 온도는 1560도였습니다. 그곳에 사는 괴수 아이온은 1560도의 쇳물 아래에서 살고 있었고요.”
처음 듣는 얘기는 아니었지만 그 얘기를 다시 듣는 것만으로 한숨이 나왔다. 도무지 그 괴수를 공략할 방법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