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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203화 (20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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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 괴수의 차크라

계단의 마지막 칸이라고 생각하면서 발을 내디뎠다가 한 칸이 더 나타났을 때 허리와 다리에 입는 충격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야나는 쉽게 멈추지 못했다. 야나가 그렇게 회전하는 동안 세진이 야나를 향해 달려갔다. 너무 무모해보이는 쇄도였다. 그 모습에 다른 클랜원들이 일제히 정신을 차렸다.

아무리 야나가 탐난다고 해도 세진을 잃어도 좋을 만큼 탐나는 존재는 아니었던 것이다. 서규태가 가장 먼저 달려갔고 지우도 그 뒤를 따라갔다. 두 사람은 세진이 처음에 노렸던대로 야나의 타이어를 찢었다.

강현도 네메시스로 다른 타이어를 걸레로 만들었다. 야나는 순식간에 능욕을 당했다.

세진은 정보창을 확인했다. 야나에게 공격이 통하고 있었다. 야나의 체력이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에서 본 야나는 차라고 할 수가 없는 구조였다. 문도 없고 안에 시트도 없었다. 사람을 받아들여본 적이 없는, 사람을 받아들일 생각도 없는 완고한 고집스러움이 야나에게서 물씬 풍겨났다.

그러나 야나 역시 괴수였고 놀라운 회복력을 보였다. 야나의 타이어도 마찬가지였다. 야나의 타이어는 회복이 되자마자 헌터들의 무리에서 맹렬히 달아났다.

하지만 그렇게 해 봐야, 다른 헌터들이 야나를 공격하는 동안 혼자서 다른 함정을 파 두고 있던 세진 덕에 얼마 가지도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트랙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던 턱이 느닷없이 나타났다. 야나는 언제나 자신의 편이었던 트랙에게 배신감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야나는 갑자기 나타난 턱을 발견하고 재빨리 방향을 틀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야나는 너무 늦게야 세진을 발견했다. 세진은 투구를 쓴 채로 육중한 해머 드릴을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야나는 자신의 트랙이 처참하게 파헤쳐져 있는 것을 봐야만 했다.

세진이 만들어 놓은 턱에 튕겨 헤매지만 않았다면 해머 드릴이 트랙을 파고드는 동안 야나가 그 진동과 소음을 놓쳤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야나는 세진이 만들어놓은 구덩이에 빠져서 옴짝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괴수에게는 회복력이 있지만 맵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세진은 이제 레이드가 곧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클랜원들은 다시 야나에게 들러붙어서 딜을 퍼부었다. 높은 급수의 괴수도 아니었고 오랜만에 아홉 명이나 붙었는데 무서울 것이 없었다.

레이드가 쉽게 끝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폭설이 내렸다. 어지간한 사람 머리만한 눈송이가 떨어졌다. 헌터들은 순식간에 시야를 뺏겼다. 온 맵이 하얗게 뒤덮이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야나는 해머드릴로 파헤쳐진 바닥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을 쳤고 하얗게 쌓인 눈이 그 밑으로 들어가 다져지면서 야나를 도왔다.

마침내 야나는 그곳을 빠져나갔고 시속 천 킬로미터가 넘을 것 같은 엄청난 속도로 눈 앞에서 사라져버렸다. 달아나는 야나의 모습은 달리는 차처럼 보이는 대신 캔버스에 거칠게 흘린 붓의 터치처럼 보였다. 윤곽은 보이지 않고 어떤 뭉텅이가 휙 지나가는 잔상만이 시각 정보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야나가 사라져버린 후로, 맵에서 야나의 모습은 다시 보이지 않았다. 아직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기는 했지만 야나를 찾지 못한다면 공략이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태인이 맵 전체를 밝힐 수 있는 조명등을 세웠지만 그때에도 야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방법이 없을까요?”

임정이 말했다. 지우가 야로슬라프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힘쓰는 사람들이 전부 모였는데. 무식하게 힘 자랑이나 한 번 해 볼까?”

지우가 야로슬라프에게 말을 하며 레오니드와 미하일을 같이 둘러보았다.

“세진아. 맵의 중간쯤에서 자리를 잡고 트랙을 해머 드릴로 다시 뚫어줘. 거기를 중심으로 우리가 크게 뚫어버릴 거니까.”

세진은 지우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면서도 지우의 말을 따랐다.

머리에 그려지는 그림이 있기는 했다. 트랙의 가운데가 찌그러지면서 홈이 파이고 거기를 중심으로 야나가 기울어지게 하려는 건가 하는 거였다. 하지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지우와 야로슬라프가 괴수 차크라를 가졌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미하일과 레오니드도 같은 부류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맵의 바닥을 그렇게……? 그게 가능해?’

세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해머드릴로 트랙을 깨뜨리기 쉽도록 균열을 냈다.

“그 정도면 충분해.”

그렇게 말하면서 다가오는 지우의 오른 팔에는 차크라가 깃들기 시작했다. 야로슬라프와 레오니드, 미하일도 마찬가지였다.

“셋에 간다.”

지우가 말했다.

"하나."

지우가 세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둘."

"세엣!"

정말 이게 가능한 일일까, 생각했지만 괴수 차크라를 가진 네 사람의 헌터가 동시에 트랙을 주먹으로 가격하자 가공할 위력으로 트랙이 부서졌다.

그 장면에 놀란 것은 헌터들만이 아니었다.

멀리에서 야나의 붉은 눈이 빛을 발했다. 야나는 트랙이 더이상 자신을 보호하지 못할 거라는 것을 깨닫고 도망치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소리없이 도망치는 법을 알지 못한 야나는 헌터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들키고 말았다.

서규태가 가장 먼저 달려갔고 그 뒤를 임정과 다른 헌터들이 따라갔다. 야나는 자신의 위치를 들켰다는 것을 알고 그때부터 헌터들을 떼내기 위해서 무서운 속도로 달렸다. 직선코스를 지나갈 때는 야나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또다시 사라진 건가 할 정도였다.

야나는 헌터들을 따돌려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마구 달리다가 오르막길을 오르면서야 세진이 만들어낸 함정을 기억해냈다. 그것 때문에 갑작스럽게 진로를 변경하려다가 야나는 다시 또 통제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헌터들은 이번에야말로 야나를 끝낼 생각으로 야나에게 달려갔다. 야나의 체력은 이제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헌터들은 정보창을 주의깊게 확인하면서 딜을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번의 공격만을 남겨두고 야나에게 회복할 시간을 주었다.

야나의 차체는 회복 되었다. 야나는 온전한 모습으로 죽기 위해서 회복을 해야 했다. 마치 적의 수장에게 수청을 들기 위해 몸단장을 하는 것만큼이나 굴욕적인 순간이었을 것이다. 야나가 가진 괴수의 차크라는 자신의 차체를 완전히 회복시키고 마지막 일격을 맞았다. 야나는 끝이 났고, 헌터들은 아쉬운 눈으로 야나를 바라보았다.

트랙에 러프 스톤이 떨어졌고 세진이 그것을 집어들었다.

“야로. 레오니드. 미하일. 야나를 이대로 늪 밖으로 들고 올라갈 수 있겠지? 야나는 절대 해체할 수 없어. 알지? 우리 넷이서 같이 들자. 할 수 있지?”

지우는 세 명의 러시아인 헌터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들은 그런 말을 들은 것을 거의 모욕으로 여기는 듯이 지우를 바라보았다. 그 말이야말로 당연한 것 아니겠냐는 표정이었다.

다른 헌터들은 설마설마 하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들이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들이라고 하더라도 정말 그게 가능하겠냐는 눈치였다. 그러나 설마설마하던 일은 그들의 눈 앞에서 현실이 되었다.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들이 야나를 그대로 늪 밖으로 운반하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 나머지 헌터들에게도 특명이 떨어졌다. 지연으로부터 태인에게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공략이 끝난 걸 보고 채준형 마스터님한테 상황을 보고했는데요. 이 맵은 특별한 경우니까 괴수의 사체만 가져오지 말고 트랙까지 운반하라는대요?”

지연의 말에 태인이 입술을 뻐끔거렸지만 다른 사람들은 반항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듯 일에 착수했다.

***

익스트림 헌터 건물의 주차장으로 불려내려간 채준형은 이 악당들이 또 무슨 짓을 했기에 이렇게 의기양양한가 하면서 시큰둥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무얼 보여주든지 놀라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채준형이 아직 클랜 A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부린 치기였다.

채준형은 자신이 클랜 A를 이제 속속들이 안다고 생각했지만 클랜 A는 여전히 그를 놀라게 만들었다. 야나가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 채준형이야말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클랜 A의 클랜원들은 그 어느때보다 흥분한 채로 채준형의 주위를 떠나려고 하지 않고서 야나의 변신을 지켜보려고 했다. 지우가 내 놓은 아이디어는 위험천만해 보이기는 했지만 실현 가능성이 없을 것 같지도 않았다. 야나에게 자신의 차크라를 주입시킬 수 있다면 야나가 늪 밖에서도 주행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냐는 말이었다.

일단 야나가 주행을 할 수 있게 될지 어떨지보다 야나를 클랜 A의 운송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를 먼저 알아야했기 때문에 채준형은 몇날 며칠을 그 일에 매달렸다. 야나에게 문을 만들고 좌석을 만들고, 야나에게 사람을 받아들일 준비를 시켰다. 일반 도로에서도 달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거기에서 시간이 소요되기는 했다. 야나는 일반 도로를 달리기에는 덩치가 컸기 때문에 일반 도로를 달리기에 적합하게 야나의 몸을 개조해야 할 거라는 것이 채준형의 얘기였다.

하지만 일단 그렇게 되면 그것은 더이상 야나라고 할 수가 없었다. 문을 달고 안에 좌석을 넣는 것까지는 야나에게 참아달라고 부탁을 해 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차폭을 변경한다는 건 야나를 죽이고 야나가 가진 재료만을 사용해서 다른 차를 만든다는 의미가 되었다. 그때는 이미 야나가 보여줬던 마술을 전혀 기대할 수 없을 거라는 게 뻔했다.

오랜 토론 끝에도 답을 찾지 못했지만 문제는 뜻밖의 곳에서 해결이 되었다. 바디 펌과 익스트림 헌터 덕이었다. 그 두 회사는 도서 산간 지역 같은 먼 곳에서 괴수 사체를 운반해 와야 할 일이 있을 때 운송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필요성을 느껴오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만들어낸 것이 그들의 전용 도로였다. 시속 350킬로 미터 이상으로 달려야 한다는 속도 제한이 있는 유료 도로였고 지속적으로 추가 건설중이었다. 차량 테스트를 위한 특수한 트랙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과 비슷한 형국이어서 고속 주행을 꿈꾸는 드라이버들을 불러들이는 곳이기도 했다.

얘기가 나오자마자 문제는 이미 해결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 자리에 이익헌이 있었고 선아영을 설득하는 것은 이익헌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익스트림 헌터와 바디 펌의 고속도로에 야나 전용 차선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럼 고속도로 밖에서는 어떻게 해요?"

야로슬라프가 묻자 세진이 그건 별 문제가 안 될 거라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야나가 맵에서 달릴 때 펜스와 도로에 타이어를 하나씩 두고 달리는 일도 종종 있었어요. 벽이 있으면 그걸 걸치고 어떻게든 달릴 수 있을 거예요. 도로는 야나한테 큰 문제가 안 될 것 같긴 해요."

일단 고속도로에서 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야나를 위해서 개조를 진행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채준형은 야나에게 오랜 시간을 쏟아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야나는 클랜 A의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문이 열리고 최고급 송아지 가죽을 씌운 좌석이 나타나고 세련된 실내가 드러나자 클랜 A의 클랜원들은 이미 마음으로 야나를 받아들여 버렸다.

운전석은 없었다. 운전은 야나가 할 거 아니냐고, 채준형이 말했다.

“하긴. 야나야말로 최고의 드라이버긴 한데.”

태인이 약간 걱정이 된다는 듯이 말했다. 혹시 야나가 수틀린다고 클랜 A를 전부 태우고 벽을 들이받기라도 한다면.

태인이 그 말을 하자 강현이 이상하다는 듯이 태인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뭐요?"

"그래서 뭐라니?"

"그러면 우리가 다치기라도 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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