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1 / 0331 ----------------------------------------------
8부. 괴수의 차크라
“방향이 괜찮은 것 같은데요? 헌터를 스타로 부각시키고 사생활을 보여주는 프로그램 같은 것말고 이제 이런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때도 되긴 했어요. 다른 헌터들의 공략법을 공유할 수 있으면 우리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고요.”
지우가 말하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클랜 A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지분 참여를 하겠다고 말씀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임정이 말하자 서규태가 반가워하면서 활짝 웃었다.
“그 말이 나와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거든요.”
서규태가 말했다.
“미키 위도를 신경쓰고 계신 것 같아요.”
임정이 조심스럽게 말하자 서규태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냥. 말이 잘 통하는 내 또래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사랑은 그렇게 찾아오죠.”
태인은 서규태에게 걸리면 맞기라도 할 거라고 생각을 했는지 그렇게 말을 해놓고 냉큼 도망쳐버렸다.
***
새싹반 선생님에게, 자기를 못 잊게 만들어서 나중에 견디기 힘든 이별을 안겨주겠다는 일념으로 오늘도 용하는 열심이다.
나른하게 앉아있다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시현의 선생님이 말했다.
“어제 낮잠 시간에 시현이가 안 자고 애들이랑 싸웠어요.”
“시현이가? 왜?”
용하는 어느새 몸을 벌떡 일으켰다.
“백설공주 얘기를 시현이가 잘못 알고 있었는데 애들이 그걸 가지고 놀렸어요. 시현이는 자기가 아는 얘기가 맞다고 계속 우겼고요.”
“나는 시현이한테 잘 알려줬는데?”
“백설공주가 일곱 난장이를 못 잊어서 왕자랑 이혼하고 일곱 난장이한테 돌아왔다고요? 백설공주가 일곱 난장이한테 계속해서 물을 줬더니 일곱 난장이가 멋진 왕자들로 자라서 클랜 A가 됐다고 알려준 거라는 거죠?”
“내가? 내가 그랬대? 내가 한 잔 했을 때 물어봤나? 나는 전혀 그런 기억이 없는데. 그런데 클랜 A가 일곱명이야?”
“시현이 교육에 신경 좀 써요. 다른 애들은 영어 단어도 외우고 쓸 줄 아는데 시현이는 A밖에 못 써요. 그나마 클랜 A 때문에 그거라도 쓰는 거라고요.”
“그럼 클랜 A 뒤를 이어서 다른 클랜들이 만들어지면 자연스럽게 해결되겠네.”
“이사장님!”
“알았어. 선행 학습 받는 애들은 다 퇴학시켜야지 안 되겠어.”
“진심은 아니죠?”
“태권도 수업 끝나겠다. 가자. 가자. 데려다줄게.”
“혹시 열매반 선생님도 만나고 있어요?”
“나는 절대로!”
용하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한 번에 두 여자는 같이 안 만나.”
용하가 피노키오가 아닌 게 천만다행이었다.
시현이 돌아왔을 때 용하는 진지한 얼굴로 시현에게 물었다.
“시현아. 클랜 A가 일곱 난장이라고 삼촌이 그랬어? 일곱 난장이가 커서 클랜 A가 된다고?”
“아니.”
“그러면 시현이가 거짓말한 거야?”
“다른 옛날 얘기는 많은데 클랜 A 이야기는 없잖아.”
“그래서 시현이가 클랜 A 이야기를 만들어낸 거야?”
“응. 시현이가 지어냈어.”
“시현이는 클랜 A가 좋아?”
“응. 클랜 A가 좋아.”
“왜?”
“멋있으니까.”
“그래. 삼촌도 클랜 A가 좋아. 그런데 삼촌은 시현이가 애들이랑 안 싸웠으면 좋겠어.”
“애들히 시현이, 엄마 없다고 놀렸어.”
“어떤 새끼가?”
용하가 당장 일어서자 시현이 두 팔을 내둘렀다.
“시현이가 때려줬어.”
“그래? 시현이가 확실히 때려줬어?”
“응. 선생님이도 때려줬고.”
“그랬더니 다시는 안 그러겠대?”
“응.”
“시현아. 시현이도 엄마 있어.”
“근데 왜 안 와?”
“시현이한테 꼭 필요한 걸 찾으려고 모험을 떠났지. 친구들이랑 같이.”
“시현이 아빠는?”
“시현이 아빠도. 시현이 아빠가 대장이야.”
“그걸 다 찾으면 온대? 시현이 보러?”
“당연하지. 지금도 너무너무너무 오고 싶은데 참는 거지. 시현이를 위해서 그게 꼭 필요하니까.”
“그게 뭔데?”
“아주아주 예쁜 돌.”
“시현이한테 그게 왜 필요해?”
“그건. 시현이가 크면 알게 돼.”
“시현이도 형아야. 씨앗반 동생들이 시현이한테 형아라고 불러.”
“그래. 새싹보다 조금 더 크면. 그때 알게 돼.”
시현이는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싹인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휙 지나가게 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
익스트림 헌터의 예상은 적중했다. 웹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광풍이 불었다고 하는 게 딱 적절한 말일 것이다. 웹을 사지 못해서 사람들은 안달이 났고 그깟 익스트림 헌터 길드에 얼마든지 소속돼 주겠다는 심정으로 익스트림 헌터의 아래로 들어왔다.
익스트림 헌터와 클랜 A는 다시 한 번 재산을 엄청나게 불릴 기회를 얻었다. 길드에 소속되기 위해 정규 공격대는 100억의 입회비를 내야 했고, 정규 공격대들의 입회 신청을 받은 첫 주만에 전 세계에서 850개가 넘는 정규 공격대가 익스트림 헌터 길드의 아래로 들어왔다.
이익헌에게도 그것은 놀라운 소식이었다. 잘만 된다면 일 년에 850개의 캐츠 아이 스톤을 모을 수도 있게 될 것 같았다. 천 번의 레이드를 하는 동안 캐츠 아이 스톤이 하나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캐츠 아이 스톤이 나오는 확률이 그것보다 훨씬 더 낮다는 것을 알게 된 거야 나중 일이었지만 일단 이익헌은 클랜원들과 기쁨을 누렸다.
이익헌이 길드의 문제로 익스트림 헌터와 바디 펌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느라 레이드에 소홀해진 틈을 타서, 다른 클랜원들은 실력을 올려 놓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이익헌이 돌아왔을 때도 제 자리에 있으면, 그동안 실력도 안 키우고 뭘 했냐고 한 소리를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이익헌의 잔소리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는데 그건 날이 갈수록 희귀종이라고 할만한 맵과 괴수가 자꾸만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성장하지 않는 1급 늪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오픈일을 예정한 채 계속해서 자라나는 2급 늪이나 3급 늪이었다.
체력과 개체의 크기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맵의 진화 속도가 너무 빨랐다. 시스템이 불공정하게 멋대로 핸디캡을 주고 경기를 치르는 것 같은 상황에 헌터들은 갈수록 경악했다.
누군가 먼저 공략에 성공하고 공략법을 공유하지 않는 한 공략할 수 없는 괴수와 맵들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그리고 그럴 경우에 그 누군가는 당연히 클랜 A가 되어야 했다.
익스트림 헌터가 길드를 창설하면서 헌터들로부터 막대한 이익을 얻었기 때문에 공략법 환원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소식을 전한 사람은 지연이었기에 지연은 그 소식을 전하게 된 것을 미안해했다. 지연이 보고하게 된 괴수는 클랜 A가 그동안 들어왔던 어떤 맵이나 괴수보다도 더 지랄맞은 괴수였다.
"너무 그렇게 겁먹지 말고 편하게 말해보세요. 우리도 그동안 별별 괴수들을 다 봤는데 뭘 그렇게 걱정하세요?"
강현이 말했지만 지연은 고개를 저었다. 자기도 그런 말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지연이 입을 열었을 때 지연의 입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말이 나왔다.
“차예요. 서킷 위를 달리는 차요. 속도는 듣고 싶지 않을 거예요. 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건 맵의 날씬데, 길은 빙판이고 얼음비가 내려요.”
늪 아래로 내려갈 수 없는 지연이 마치 들어가본 것처럼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지연의 감응기 때문이었다. 진화하는 것은 괴수와 맵과 헌터만이 아니었다. 지연의 감응기도 진화에 진호를 거듭했다. 그것이 채준형이 지연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지연의 얘기를 들은 사람들 중 누구도 거기에 제대로 반응을 하지 못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태인이 조용한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게 제법 심한 욕을 했다.
“몇 급인데요? 오픈일은 언제고요?”
지우가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오픈 예정일은 한 달 넘게 남았어요. 하지만 공략 방법을 빨리 찾지 않으면 안 될 거예요. 늪의 급수는 2급이예요. 문제는 그 늪이 나타난 곳인데.”
“거기가 어딘데요?”
강현이 물었다.
“채준형 마스터님의 동생이 묻힌 곳이야.”
“……!”
모두가 동시에 입을 벌렸다. 채준형 마스터의 동생이라면 이익헌 사장에 의해서 죽은 그 사람을 말하는 거냐고 하자 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사장님도 알아요? 아니. 이제는 사장님이지.”
서규태가 묻자 지연이 고개를 저었다.
“사장님은 그 일에 감정적으로 너무 깊이 연결돼 있어서. 제가 혼자서 결정을 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여기로 먼저 온 거예요.”
“채준형 마스터님은 알고 있어? 그곳에 늪이 났다는 거.”
태인이 물었다.
“알고는 있지만 이렇게 심각하다는 건 모르세요. 때가 되면 어느 공격대든 나서서 공략을 해 줄 거라고 편하게 생각하고 계세요.”
서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은 꼭 성공을 해야겠군요. 하나씩 하나씩 해결을 합시다. 괴수와 맵이 아무리 진화를 해도 클랜 A가 있으니까요. 이 참에 그동안 미뤄두고 있었던 것들도 하나씩 차례대로 해결을 봐 나갑시다."
서규태가 의견을 구하려는 듯이 지우를 바라보자 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분간은 캐츠 아이 스톤 비축분이 좀 있으니까 클랜원들이 다시 전부 모여서 어려운 늪들의 공략법을 알아가는데 중점을 두는 게 어떨까 해요. 지금처럼 각자가 갈라져서 싸우는 대신에요.”
서규태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하자 모두들 그 말에 수긍을 하는 분위기였다.
이익헌이 빠지기는 했지만 여차하면 이익헌을 소환할 수도 있을 테고, 이익헌이 없다고 하더라도 서규태와 태인, 강현, 지우 3인방과 임정, 세진 여자 2인방, 그리고 괴수 차크라를 가진 러시아 헌터 3인방, 야로슬라프와 레오니드, 미하일까지 하면 아홉명이었다.
이익헌을 데려다 끼운다고 하면 늪에 들어갈 수 있는 마지노선에 딱 맞게 되니 서킷 맵을 공략한 이후에는 이익헌을 소환해서 같이 다니는 걸로 하자고 의견의 합치를 보았다. 그때쯤에는 이익헌이 맡아서 하는 일들도 어느 정도는 마무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제가 같이 다닐 거니까 너무 크게 걱정은 하지 마세요.”
지연이 말했지만 아무도 그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데 웹 말이예요. 다른 맵에서 사용해 봤는데 괴수들한테도 효과가 있었거든요. 그물이 날아가면 그 접착력으로 괴수들의 움직임이 둔화되곤 했는데 웹이 그 괴수한테도 통할까요? 차에 웹을 쏴서 거미줄을 날리면 그 괴수를 잡아둘 수 없을까요?”
지우가 물었다.
“괴수가 눈 앞에 지나가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거예요. 0.01초 후의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가능할 거고요. 하지만 그게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한테는, 괴수는 그냥 지나가고 그물은 그 뒤에 떨어지는 장면만 상상이 되는데요.”
지연이 말했다.
“드라이버도 없는데 차가 움직인단 말이죠.”
서규태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하긴.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나타나다 보니까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기는 하지만 애초에 이런 것들이 전부 다 말이 안 되는 거긴 했어요. 이런 것들요. 늪 아래에 맵이 나타나고 괴수가 나타나고 헌터가 그 괴수들이랑 싸우는 거요.”
세진이 말했다. 그때까지 세진이 같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지연이 세진에게 인사를 했다.
“맵을 이용한 공략방법을 세진씨가 잘 생각해낸다고 얘길 들었어요. 이번에도 세진씨한테 거는 기대가 커요.”
지연이 말했다.
“그저 운이 좋았던 건데요.”
사소한 칭찬에도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는 것을 보면서 아직 어리긴 어린가보다는 생각을 하며 지연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