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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 괴수의 차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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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트림 헌터의 계획이 알려지고 나서 클랜 A는 더욱 바쁜 날들을 보냈다.
웹 스파이더가 서식하고 있는 늪들을 찾아내서 씨를 말릴 정도로 레이드를 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웹에 버금갈만한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 새로운 괴수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섰다. 레이드를 하는데 없으면 안 되는 무기를 새롭게 만들어내고 익스트림 헌터 길드에 들지 않은 공격대에는 그 무기를 팔지 않겠다고 제한을 걸어두면 익스트림 헌터 길드가 세계 최고의 길드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거라는 게 확실했다.
서규태는 A급 헌터가 되고 임정의 집중적인 치료를 받아가면서 몸이 거의 회복상태에 이르렀다. A급으로 올라가게 되니 치유 차크라를 받아들이는 능력도 같이 높아진 듯했다.
지우의 차크라로 공격받은 것이 그렇게 오랫동안 속을 썩일 거라고 생각을 하지는 못했지만 어쨌거나 그것도 거의 완치 수준에 이르게 되어 서규태도 이제는 슬럼프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상태였다.
클랜원들은 해가 저물기 전의 대부분의 시간은 괴수를 공략하는데 쓰고 밤에는 무기에 대한 연구를 했다. 일반인이었다면 도무지 체력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과였지만 그들은 즐겁게 일상을 이어나갔다.
서규태가 미키 위도의 소식을 들은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하루종일 레이드를 하고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고 나오면서 바닥에 떨어져있던 리모콘을 발로 밟았는데 거기에서 미키 위도의 방송이 나온 것이다.
다른 때 같았다면 시간이 날 때 조금이라도 자자는 생각 뿐이었겠지만 굴러다니던 리모콘을 밟은 덕에 그는 미키 위도가 채널 68에서 하는 마지막 방송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 정도가 되면 미키 위도와의 인연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도 저절로 들 정도였다.
화면 속에서 미키 위도는 애써 밝은 모습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북받치는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마지막에 몇 번, 아랫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눈시울이 붉어지기는 했지만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물이 떨어지는 것만큼은 끝까지 참아냈다.
“지금까지 미키, 위도였습니다.”
강직한 목소리로 마지막 멘트가 맺어졌다.
서규태의 머릿속에 그 목소리가 한동안 어른거렸다.
그 후로도 가끔 미키 위도가 떠올랐다. 심층 취재를 하고 싶다고 했던가 해서 인터뷰를 하자고 했던 것 같은데 그때 결론이 어떻게 났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결국 서규태가 먼저 미키 위도에게 연락을 했고 미키 위도는 서규태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가 반갑게 그의 전화를 받아주었다.
의례적인 말을 주고받다가 서규태는 자기가 미키 위도의 마지막 방송을 봤다는 얘기를 했다. 그 방송을 보게 된 경위도 말해주었다.
미키 위도는 정말 신기한 일이라면서 자기가 알고 있는 신기한 일들을 몇 가지 들려주었고 서규태는 그때마다 정말입니까? 라는 말을 연발하면서 미키 위도의 말에 빠져 들었다.
한참을 웃고 얘기를 하다가, 이제 그만 전화를 끊을 때가 됐다고 생각했을 때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쉬지 않고 떠들어댔는데도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게 신기했다.
“그럼 이제부터 뭘 할 거예요? 방송국으로 출근할 일은 없어진 것 같은데.”
마지막 인사말까지 다 하고 서규태는 그렇게 물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가 다시 또 한참동안 이어졌다.
미키 위도는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얘기를 했지만 돈이 너무 많이 들 것 같아서 고민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중에는 친구들이 돈을 모아주고 있는 것 같아서 고민이 된다는 말도 했다.
“돈이 없어서 못 할 거라고 생각했을 때는 내가 그 일을 시작하지 않는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됐는데 막상 지인들이 돈을 모아준다고 하니까 점점 걱정이 되고 있어요. 이제 남은 일은 내가 잘 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니까 부담스러운 거겠죠.”
“그게 뭔지 알아요.”
서규태가 웃으며 말했다. 미키 위도는 지금까지 해 왔던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서규태는 그 말에 계속해서 귀를 기울여주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미키 위도는 서규태와 이야기가 잘 통했다. 미키 위도도 그 사실을 느꼈다.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돕고 싶어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요.”
서규태는 어느새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요? 그러면 내가 새로 시작하는 회사 홈페이지에 써전 동영상을 싣게 해 줘요. 비용은 지불할게요.”
“써전요?”
서규태가 웃었다. 그를 써전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서규태를 아직까지 써전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그 말에 여러 가지 의미를 담았다. 존경과 사랑, 우정. 기타등등.
“그거야 어렵지 않죠. 헌터들이랑 괴수와 맵의 정보를 계속 공유해야겠다는 필요성은 느끼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한테도 얘길 해 보고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도움을 주는 것보다는 우리도 같이 참여를 하는 게 좋을 것 같거든요.”
서규태가 말했다.
“클랜 A가요? 채널 68에서 짤린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돈데요?”
미키 위도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정해진 건 없고 얘길 해 봐야 하는 거니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고요.”
“안 돼요. 이미 기대가 돼버렸어요.”
막무가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냥 웃음이 나왔다.
“내가 쓴 기사가 있는데 보내줘볼까요? 내가 하려는 일이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 아는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그래요. 좋아요. 보내봐요.”
미키 위도는 신이 나서 당장 메일로 기사를 보냈다. 기사를 클랜원들이랑 같이 확인해야 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서규태는 아마 밤이 끝나도록 미키 위도와 전화 통화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쉬는 동안 한국에 갈 계획이 있는데 그때 인터뷰 할 수 있을까요?”
미키 위도가 기습적으로 묻는 질문에 서규태는 거절을 하지 못하고 얼떨결에 그러겠다고 대답을 했다. 통화를 마쳤을 때 통화 시간이 4시간 47분으로 기록되는 것을 보고는 서규태 자신도 놀랄 지경이었다.
이 밤 중에 깨어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서규태가 밖으로 나갔을 때, 커다란 거실에는 거의 모든 클랜원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각자 자기들의 레이드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서 서로에게 의견을 구하고 있었다.
“왜들 안 잡니까?”
“안 주무셨어요? 배고파서 나와봤더니 다들 있더라고요. 배 안 고프세요? 라면 끓여드릴까요?”
임정이 말하자 지우가 일어서면서 당신은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며 임정의 어깨를 가만히 눌렀다.
“드실 거죠?”
지우가 규태에게 묻고는 라면 물을 올렸다. 서규태는 노트북으로 이것저것 검색을 하던 태인에게 다가갔다.
“잠깐 같이 보고 싶은 게 있어요.”
“네.”
태인은 즉각 일어났고 서규태는 메일을 열어 미키 위도가 보내온 기사를 보여주었다. 사람들이 기사를 보는 동안 서규태는 미키 위도가 채널 68에서 정리됐다는 말을 해 주었다. 그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들 그 일이 자기들과 관련이 돼 있을 거라는 것을 깨달았고 미키 위도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미키는 새 회사를 만들고 싶어해요. 케이블 TV, 잡지, 신문. 여러 매체를 같이 진행해 보고 싶은 것 같아요. 이건 완성된 기사는 아니고. 이런 식으로 할 거다라는 초안 비슷한 건가봐요. 여러 갠데. 방향을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흥미롭네요.”
기사는 뉴저지에 급증하고 있는 늪과 그곳에서 발견되는 주류 괴수인 코브라를 다루고 있었다.
다른 괴수들에 비해서 개체의 크기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크지 않은 개체라고 해도 8미터는 가볍게 넘었다. 코브라 괴수는 전방에 구멍이 뚫려있는 독니를 가지고 있고 그 구멍을 통해 독을 뿌려대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연계에도 그런 특징을 가진 코브라가 있었지만 코브라 괴수의 경우에는 독의 효력이 훨씬 강했고 몸을 갑자기 세우면서 어떤 높이든 맞추어 독을 뿌릴 수가 있다는 위험성 때문에 헌터들이 공략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바닥을 스르륵 기어가던 코브라의 몸이 갑자기 앞으로 확 다가올 때의 두려움이 어떨 것인지는 당해보지 않아도 상상이 되었다. 높은 상공에 있던 코브라의 얼굴이 츠츠츠츠 아래로 내려오다가 정면으로 딱 다가왔을 때의 공포. 게다가 독니에서 나오는 독은 치명적이었다.
코브라 괴수의 독니에서 분사되는 독이 눈에 들어가면 100퍼센트의 가공할 확률로 실명에 이르게 된다고 했다.
꼬리 부분으로 몸을 지탱하고 공중에서 팔을 휘두르듯이 몸을 휘저어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터라 움직임이 빨랐기에 코브라 괴수를 피하는 것만 해도 만만치가 않았다. 분사하는 범위가 넓어서 코브라 괴수의 독을 피해 안전지대를 찾는 것 역시 만만치가 않은 모양이었다.
코브라 괴수를 공략하러 들어갔던 헌터들 중 많은 사람들이 코브라 괴수에게 당해 실명했다는 소식은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코브라 괴수는 헌터들이 공략을 어려워하는 괴수 리스트의 상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미키 위도는 코브라 괴수의 공략에 성공한 공격대를 찾아서 인터뷰를 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기사 말미에 적어두었다.
앞으로도 공략이 까다로운 괴수의 공략방법을 계속 취재하고 싶지만 헌터들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점점 꺼리는 분위기라고도 적어 두었다.
“꼬리로 몸을 지탱하고 몸을 움직인다면 그건 정말 특이한 형태의 이동이네요. 비행을 하는 거랑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겠어요.”
강현이 말했다.
“몸을 지탱하는 꼬리 부분을 지속적으로 공격하면 코브라 괴수가 제대로 공격하지 못할 것 같긴 해요.”
세진이 말하자 일리가 있다는 말로 지우가 세진을 칭찬했다.
“독은 얼마나 뿌릴 수 있대요? 무한정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하긴. 그래도 한 번의 레이드가 끝나고 헌터들이 다시 들어가면 전부 리셋되긴 하겠죠?”
태인이 물었다.
“미키 위도한테 물어보는 게 빠를 것 같은데요? 한국에 들어올 계획이 있대요. 그때 클랜 A를 인터뷰할 수 있겠냐고 하던데요?”
서규태가 말하자 지우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서규태를 바라보았다.
“미키 위도가 직접 말 한 거예요? 써전님한테요? 아니. 이상한 사람이네? 왜 써전님한테만 말을 한 거래요?”
지우가 짓궂게 묻자 서규태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
“미키 위도도 입이 작던데요.”
태인이 말하자 서규태의 얼굴이 한층 더 붉어지더니 태인에게 입 좀 닥치라고 말했다. 주위에 임정과 세진이 있었기에 그 일이 거기에서 끝나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태인과 지우는 같이 큭큭거리면서 서규태를 바라보다가 서규태의 표정이 점점 진지하게 사나워지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공략이 까다로운 개체, 진화하는 맵.
한국에서 발견되는 늪 중에도 그런 것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까다로운 늪 중에는 용암이 해일처럼 높이 일어나는 늪도 있었다. 그 아래에 살고 있는 괴수는 피부 대신 금속을 뒤집어 쓰고 있었고 그 금속은 그 아래에서도 녹지 않았다. 성장하지 않는 1급 늪이어서 한 번 가서 보기만 했을 뿐 아직 공략방법을 찾지 못해서 해결을 보지 못하는 늪 중 하나였다.
생명체뿐만 아니라 기계 괴수까지 나타났다는 사실에 언제까지 충격만 받고 있을 수는 없었다.
곧 그 늪에 대한 공략도 이루어져야 했다.